소설리스트

금의지하 (183)화 (183/224)

183화

“음…….”

아예는 잠시 멈췄다가 그제야 입을 열었다.

“전 방으로 돌아갈 생각은 해 본 적 없어요. 걱정하지 마세요.”

상관희는 차갑게 흥 소리를 냈다.

“뭐야, 오안방의 물이 너무 작고 하찮아서, 너 같은 거물이 있기엔 부족해? 생각해 보니, 넌 예전에 정말 답답했겠구나?”

아예는 그녀의 말에 담긴 조롱을 마치 알아듣지 못한 듯 조용한 음성으로 입을 열었다.

“방에 있을 때, 저는 줄곧 생각했어요. 내가 정말 아예라는 사람이었다면, 정말 그저 방 안의 이름 없는 부하였다면, 그랬으면 얼마나 좋았을까.”

“…….”

그의 목소리에 묻어난 슬픔을 알아 버렸다. 상관희는 어찌 대답해야 할지 몰라 한참을 침묵했다.

“넌 대체 방에 있으면서 무슨 말 못할 짓을 얼마나 한 거야?”

아예는 이제 무엇도 숨기지 않고 사실대로 말했다.

“제 임무는 다른 방파와의 은화 거래를 포함해 방의 상황을 상세히 보고하는 거였어요. 참, 주현이 대신 운하수리자금 운반하는 건도 제가 일부러 받았어요. 원래 계획은 강에서 수리자금에 손을 대는 거였는데, 나중에 계획이 바로 직전에 변경이 되어 그만두었습니다.”

“방의 형제를 해친 적은?”

그녀가 물었다.

“생명을 상하게 한 적은 없어요……. 단지 일에 방해가 되었을 때, 몽환약을 써서……, 일하기 편하게 했습니다.”

상관희가 크게 화를 내며 그의 멱살을 꽉 움켜쥐었다.

“나한테도 약을 썼었니?”

“아니요. 켁켁…….”

아예는 목이 답답하게 졸리면서도 다급하게 말했다.

“지금껏 당주께 약 쓴 적 없어요. 정말이에요. 3년 전, 절 구하셨을 때, 무슨 일이 있어도 당주는 다치게 하지 않겠다고 결심했습니다.”

“네가 이리 능력이 좋은데, 어찌 내가 널 구하게 했을까. 그건 네가 방에 잠입하려 했던 수단에 불과했구나.”

상관희는 아무것도 믿지 않았다.

“그땐 제가 확실히 당주를 속였어요. 하지만 당주는 진심으로 절 구하셨고, 전 줄곧 당주께 매우 감사하고 있었습니다.”

“아무 말도 하지 마! 내가 그때 눈이 멀어서 늑대를 주워온 거야!”

상관희는 계속 분노했다.

아예는 당연히 더는 말하지 않았다. 그저 그녀를 업고 조용히 앞을 향해 걷다가 성벽에 도착해서야 그녀를 내려놓았다.

왜구는 일단 병사를 후퇴시켰다. 성문은 온전히 그대로였고, 성벽 위의 사람들도 모두 무탈하다. 그를 확인하고서야 상관희는 살짝 한숨을 돌렸다. 이때 마침 화총을 든 잠수가 눈매를 찌푸린 채 옆으로 지나가고 있었다.

상관희가 급히 그를 불렀다.

“잠 대인, 우리 넷째 봤어요?”

“아. 그와 금하, 그리고 양악은 사람들을 데리고 성 밖의 청박하 입구로 갔습니다. 다들 몰래몰래 대체 뭘 하러 갔는지 모르겠어요.”

잠수는 화약이 충분치 않아서 초조하고 화가 나 있었다. 그래도 칸막이 공간에 화약이 더 숨겨져 있을 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동삼의 집을 한 번 뒤집으려고 생각 중이었다.

“청박하?”

상관희는 정신이 멍해졌다. 그녀는 줄곧 별원에 있었기에 신하성은 전혀 익숙지 않았다.

“그를 찾아요? 따라오세요. 저도 마침 그쪽으로 가려 했습니다.”

잠수가 손짓하여 상관희를 불렀다.

상관희가 앞으로 한 발을 내딛는데, 아예는 이미 그녀의 앞으로 나섰다. 몸을 웅크리고 앉아 상관희를 다시 업고는 잠수의 뒤를 따랐다.

이걸 본 잠수는 속으로 웃으며 무엇도 묻지 않으려 안간힘을 썼다.

* * *

청박하 변, 큰 회화나무 아래.

양악은 병사로 가장한 백성들을 이끌고, 강변을 왔다 갔다 순시 중이었다. 보기에는 그래도 매우 위풍이 있었다. 골목 한쪽에 숨어 있던 금하는 큰 회화나무 위로 숨은 사소를 향해 손짓했는데, 그건 그가 적의 동정을 발견하면 바로 그녀에게 알려달라는 의미였다.

청박하를 통해 성으로 들어오는 입구에는 원래 두 개의 수문이 있었다. 그들은 왜구가 잠입해 들어오는 데 시간이 걸리고 힘이 들까 걱정되어 특별히 가장 두꺼운 철 수문을 들어 올렸다. 그렇게 모든 준비가 끝났고, 왜구가 성으로 헤엄쳐 들어오기만 기다리고 있었다.

상관희를 데리고 골목 저 끝에서 걸어오던 잠수는 금하가 담벼락에 숨어 바깥을 정탐하는 것을 보고, 손을 내밀어 그녀의 어깨를 툭 쳤다.

“이 수상쩍은 처자는 뭘 하는 건가?”

고개 돌린 금하는 허둥지둥 잠수에게 소리를 내지 말라는 손짓을 하다가 상관희를 업은 아예를 보고 순간 멍하니 굳었다.

“상관 언니, 어떻게 나왔어요?”

그녀가 매우 낮게 억누른 목소리로 물었다.

상관희를 내려놓은 아예는 말없이 옆으로 물러섰고, 금하가 급히 다가와 그녀를 잘 잡았다.

“넷째는?”

상관희가 물었다.

“그는 괜찮아요?”

“괜찮아요. 저기 나무 위에 있어요. 잘하고 있어요.”

금하는 목소리를 낮게 죽였다.

“오빠가 저보다 시력이 좋다고 우기더라고요. 물속에 어떤 움직임이 있는지, 자기는 잔물결만 봐도 알 수 있대요.”

“물속에 무엇이 있어요?”

상관희가 놀라 물었다.

“왜구는 성안의 상황을 알지 못해요. 그러니 바로 사람을 성으로 잠입시킬 거고, 대개는 수로로 올 거예요. 그래서 우리는 여기서 그루터기에 토끼가 부딪쳐 죽기만을 기다리고 있죠.”

금하는 고개를 저었다.

마침 그때 사소가 가볍게 던진 작은 돌이 금하의 신발에 맞았다. 그녀가 바라보니, 그가 손짓하고 있었다.

……물 아래 움직임이 있어!

금하도 손짓으로 물었다.

사람이야?

한참 물을 응시하던 사소가 대답했다.

맞아. 그리고 두 사람이야.

역시 왔어!

뛰어 나갈 수 없는 금하는 귀를 기울여 물소리를 세심히 듣고, 사소의 손짓도 바라봤다.

그는 두 사람이 강기슭의 병사들이 순찰하는 것을 보고 있다고, 감히 뭍으로 오르지는 못하고, 단지 물가에 붙어 천천히 움직이며 뭍으로 올라올 기회를 찾고 있다고 금하에게 손짓으로 알렸다.

양악은 비록 물속에 있는 사람을 보지 못하지만, 사소가 그들에게 해 주는 손짓은 볼 수 있었다. 왜구가 이제 잠입한 것을 알게 되었으니, 바로 목소리를 더욱 분명하게 했다. 옆에서 함께 순찰하는 사람에게 큰소리로 불평을 시작했다.

“우리 척가군이 성안에 삼사천은 더 있잖아. 저 왜구들에게 돌격해서 통쾌하게 죽이면 얼마나 좋아! 고작 여기서 순찰이나 하고 있을 게 뭐야.”

미리 말을 맞춰둔 대오의 사람이 대답했다.

“누가 아니래. 하지만 척 부인이 척 장군의 체면을 세워줘야 하니 부인이 나서서 손봐주기에는 적당치 않지. 아무튼 척 장군 돌아오시길 기다려야지 뭐.”

“사실 성을 지키지 말고, 왜구를 성으로 끌어들이고 그때 성문을 닫았어야지. 그들이 독 안의 쥐가 되면, 우리가 딱 만두처럼 싸서 처리하기 좋잖아!”

양악의 말에 대오의 사람들이 짐짓 하하거리며 크게 웃었다.

사소는 조용히 양악을 향해 엄지를 치켜세우며, 그가 말을 잘한다며 칭찬해줬다. 바로 연이어 물속의 움직임을 주시했다.

골목에 숨어있던 금하도 슬며시 고개를 끄덕였다.

한바탕 연극은 꽤 잘한 편이다. 그러나 시간을 오래 끌면 아무래도 어떤 허점이든 드러날 수 있으니, 이제는 일찌감치 이 왜구 둘을 돌려보내야 했다. 그래서 그녀는 양악을 향해 재빨리 손짓했다.

양악은 금하의 뜻을 알아듣고 즉시 큰 소리로 외쳤다.

“모두 조심해, 물속에 첩자가 있다!”

그는 동시에 장창으로 물속을 어지럽게 찔렀다. 대오의 사람들도 그 모습을 따라 장창과 낭선(*창의 일종.)으로 강물을 헤집었다.

원래 물가에 붙어 있던 두 명의 왜구는 이 한바탕 찌르기의 혼란 속에서 자신들이 계속 숨어있기가 불가능하다고 생각했다. 그때, 장창에 어깨를 다친 한 사람이 장창을 들고 있던 이를 아예 물속으로 홱 잡아당겼다.

창을 든 이는 평범한 백성으로 어딜 왜구와 싸울 수나 있을까. 공교롭게도 수영마저 할 줄 몰라 그는 부글부글 거리며 물속으로 가라앉고 있었다. 양악이 급히 구하러 뛰었고, 이걸 본 사소도 나무 위에서 몸을 날려 뛰어내렸다. 금하 또한 무슨 일이 일어났는지는 모르지만, 골목에서 급하게 뛰어나갔다.

수영에 관해선 양악은 당연히 사소보다 못했다. 사소는 물에 들어가자마자, 교룡이 바다를 만난 것처럼 땅 위보다 훨씬 생기가 넘쳤다. 커다란 물보라가 일어난 것이 보였으나, 사람의 모습은 제대로 보이지 않았다. 그때 사소가 뭍으로 사람 하나를 던졌다. 바로 왜구에게 물속으로 끌려들어간 이로 다행히 물 몇 모금 마셨을 뿐 큰 문제는 없었다.

“넷째야!”

상관희는 사소가 아무 것도 손에 들지 않아 불리할까 걱정했다. 그녀는 손에 걸리는 대로 옆에서 누군가의 낭선을 빼앗아 수중으로 던졌다.

“받아!”

뭐라 해도 한 스승 아래서 여러 해를 함께 배우고, 함께 자란 두 사람은 손발이 척척 맞았다. 대답과 동시에 수면으로 튀어 오른 사소는 반공중에서 낭선을 잡아챘다. 그대로 돌아선 그가 물속 왜구의 왼쪽 가슴에 낭선을 꽂아 넣었다. 그리고 상대를 수면으로 끄집어냈다.

사소는 낭선을 되뽑았다.

피가 강물 속으로 진하게 번졌고, 왜구는 강바닥으로 천천히 가라앉았다.

동료가 죽는 것을 본 다른 왜구는 이리 많은 명군에 사소의 무공 또한 높으니 감히 싸울 생각도 하지 못했다. 그는 재빨리 돌아서 물속으로 도망치려고 했다. 그런데 그를 본 사소가 아무런 생각도 없이 왜구의 등짝을 향해 낭선을 던졌다.

“오빠, 안 돼!”

금하는 급히 소리쳤지만, 두 눈 빤히 뜨고 낭선이 왜구의 등 복판을 명중한 것을 지켜보았다.

몸을 부르르 떤 왜구는 발버둥 치며 앞으로 헤엄쳐갔고, 금하는 유심히 물속을 주시하고 있었다.

사소는 온몸이 흠뻑 젖어 뭍으로 올라와 얼굴의 물방울을 귀찮은 듯 훔쳐냈다.

“오빠…….”

금하가 그에게 푸념식으로 짜증을 냈다.

“저들 도망가게 하라고 한 거 못 들었어? 어떻게 틈을 조금도 안 주고, 무슨 손을 그리 심하게 써?”

사소는 억울하다는 표정이었다.

“그것도 봐줬다. 그 작살, 나는 가볍게 던진 거야.”

“뭐가 가볍게야. 하마터면 맞아 죽을 뻔하게 했으면서!”

금하가 걱정스런 눈빛으로 물속을 바라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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