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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의지하 (182)화 (182/224)

182화

그런 그에게 금하는 성벽 위의 화기를 입을 삐죽여 가리켰다.

“뭐가 두려워요. 저런 위용을 보면, 왜구도 쉽게 공격 못 해요.”

성벽 위에는 대포, 화총, 분사화통, 투갑창, 표창 등 각종 화기와 무기가 놓여 있어 언뜻 보아선 확실히 사람을 아주 놀라게 할 법했다.

잠수는 바닥의 화약 상자를 입으로 가리켰다.

“화약은 봤냐? 화약은 백 근이 안 되고, 총알은 이십 근이 안 되고, 황은 다섯 근이 안 돼. 그리고 저 대포는 온 무기고를 뒤져서 겨우 포탄 하나 찾았다. 다시 말해…….”

주위에 사람이 있었다. 지금 그의 말은 동요를 일으킬 수 있어서 잠수는 뒷말은 잇지 않았다.

다시 말하면, 이 대포는 보기에는 매우 위협적이지만, 한 번 발사한 후에는 사실 번지르르한 장식품이 된다는 뜻이었다.

금하는 이를 악물고 주먹을 쥔 채 사납게 으르렁댔다.

“폭파시켜 죽이지 못하면, 놀래 죽이면 돼요!”

잠수는 헛웃음이 나서 이마를 짚었다.

“오라버니, 와 봐요. 혹시 북 두드리는 자가 어떤 놈인지 확인돼요?”

금하가 잠수를 성벽 한쪽으로 잡아당겨 물었다.

“그자를 거꾸러뜨려서 저들 기세를 꺼뜨려버리죠!”

잠수가 눈을 가늘게 뜨고 보았다.

“어떤 놈인지는 알겠는데, 안타깝게도 화총의 사정거리 밖이다.”

“그럼 조금 더 가까워지면 합시다!”

금하는 저 북소리가 듣기 매우 괴로웠다.

“서두르지 마. 척 부인의 호령을 듣고 그때 움직여.”

잠수는 육역과 함께 공부했던 병서를 떠올리고는 당당하고 차분하게 말했다.

“양군이 교전할 때, 가장 금기되는 것이 감정을 억누르지 못하는 거야. 게다가 우리는 화약이 적으니 꼭 결정적인 곳에 써서 단번에 저들의 기세를 꺾어버려야 해.”

금하는 천천히 고개를 끄덕이며 존경의 눈빛으로 그를 바라보았다.

“육 대인이 가르쳐 주신 거죠?”

잠수는 하늘을 향해 머리를 젖혔다.

“나는 잠깐이라도 천부적으로 총명하면 안 되는 거냐?”

“안 되긴요.”

금하는 헤헤거리며 웃음을 그치지 않았다.

북소리는 점점 더 가까워지고, 왜구는 성 코앞까지 새까맣게 밀려들었다. 성벽과는 불과 이십여 장 밖에 떨어지지 않은 곳에 멈춘 그들은 성벽 위의 명군과 마주보며 대치했다.

쿵, 쿵쿵, 쿵! 쿵, 쿵쿵, 쿵!

북소리는 끄떡없이 여전히 울리고 있다. 멸시하는 것처럼, 그리고 위협하는 것처럼.

그때, 미간을 잔뜩 찡그렸던 척 부인이 군장을 하고 옆에 있던 시녀의 손에서 활과 화살을 받았다. 그녀는 이내 활을 걸어 시위를 당겼고, 피융 하는 바람 가르는 소리와 함께 활은 시위를 떠났다.

많은 이의 시선이 화살을 따라 밤하늘을 갈랐다. 그리고 그 화살은 북을 두드리던 자의 왼쪽 가슴에 정확히 꽂혔다.

화살 끝에 달린 흰 깃털이 가볍게 떨렸다.

북소리가 돌연 멈추고, 왜구는 일시에 소란해졌다.

금하도 척 부인이 권법을 잘한다고만 알고 있었을 뿐, 그녀의 궁술이 이렇게 놀라울 만큼 뛰어날 줄은 생각지 못했다. 이런 짙은 어둠 속에서 가볍게 적의 목숨을 빼앗다니. 척 부인에 대한 그녀의 감탄은 한층 더 깊어질 수밖에 없었다.

그러나 동료가 목숨을 잃은 것을 본 왜구들은 흥분했다. 무기를 손에 들고 큰 소리로 고함을 지르며 소란을 피우는 기세가 매우 방자하고 제멋대로였다.

사소는 지금껏 사람한테는 져도 기세로는 지지 않던 이였다. 왜구가 이리도 안하무인이니 더는 봐 줄 수가 없었다. 이내 사소는 몸을 훌쩍 솟구쳐 내력을 운용해 길게 휘파람을 불었다. 이 상황을 본 잠수도 즉시 길게 빼는 휘파람 소리로 호응했다. 이 휘파람 소리는 감화력이 매우 강하여 이를 들은 많은 이들의 용기를 한껏 진작시켰다.

무공을 할 수 있는 이는 길게 휘파람을 불었고, 무공을 할 줄 모르는 이도 목구멍을 활짝 열어 크게 고함을 질렀다. 금하도 따라 계속 아아, 소리를 지르니, 지금껏 긴장했던 그들에게는 대단히 통쾌한 일이 아닐 수 없었다!

한편, 소리 하나만으로도 왜구의 두령은 성벽 위에 사람이 많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이것은 그가 사전에 예상치 못한 것으로 그는 잠시 생각에 잠겼다.

척 장군이 병사를 이끌고 이미 영해로 간 것은 틀림이 없을 것이다. 그러니 성 위의 상황은 아마 허세를 부리는 것일 뿐 실질적인 위협이 될 수 없다.

그는 즉시 성을 공격하라 명을 내렸다.

왜구는 급습을 위해 장거리를 달려왔고, 또한 신하성을 우습게 봤기에 그들은 변변한 공성무기도 갖추지 않았다. 긴 사다리 하나 없이 그저 성 밖에서 큰 나무 하나를 베어 공성추로 쓰고 있었다.

즉시 왜구 수십 명이 그 공성추를 메고 성문으로 돌진했다. 그리고 화총수들은 성 위를 향해 화총을 발사하며 공성하는 이들을 엄호했다.

척 부인의 호령에 따라 성벽 위의 근위병들도 성 아래로 화총을 발사했다. 가까운 거리와 높은 곳에서 굽어보는 이점을 가진 그들은 투갑창과 화살로 성을 공격하는 왜구를 무수히 사살하고 부상 입혔다. 화기나 병기를 쓸 수 없는 사람들도 깃발을 흔들고 함성을 질러 군의 기운을 북돋웠다.

왜구의 수령은 성안에 이렇게 많은 화기가 비축되었을 거라고는 전혀 생각지 못했다. 순식간에 밝아진 성벽 위는 온통 사람의 모습으로 가득했고, 하늘을 찌르는 기세에 함성이 허공을 뒤흔들었으니 그 또한 놀랄 수밖에 없었다.

앞쪽에서 공성하던 왜구는 이미 반 가까이 쓰러졌다. 상황을 보던 왜구의 수령은 손을 흔들어 뒤쪽의 왜구가 계속 진공하게 했다.

그때 성벽 위의 척 부인은 왜구가 후퇴하지 않은 것을 보고는 이를 악물고, 대포를 성벽으로 옮기라는 명령을 내렸다.

화살통의 마지막 화살 한 대까지 다 쏜 금하는 대포를 미는 끽끽 소리가 들리자, 마음이 문득 두려움에 떨었다.

“부인, 지금 우리는……, 단 한 발의 포탄만을 갖고 있습니다. 써버리면 하나도 없어요.”

척 부인의 표정은 의연하였다.

“이번 공성에 반드시 격퇴시켜야 합니다. 이래야만 저들을 두려움에 떨게 할 수 있어요!”

금하는 그녀의 말이 맞는다는 걸 알았다. 그러나 시작하자마자 겨우 하나 있는 포탄을 써버린다니. 그녀는 줄곧 마음 둘 곳이 없어져 안절부절못한 채 한쪽 구석으로 화살을 찾으러 갔다.

근위병 중에는 대포를 다루는 이가 없어 척 부인이 직접 포탄을 장전하고, 직접 바퀴의 축을 이동시켰다. 그런 후 상대를 향해 대포를 조준했다.

쾅!

대포 몸통의 반동력이 성벽 전체를 진동하며 흔들었다.

대포에서 쏜살같이 날아간 포탄은 곧장 이십여 장 밖의 왜군 안으로 파고들었고, 이내 펑하는 거대한 소리와 함께 터졌다.

눈 깜짝할 사이 주변에 있던 십여 명이 전부 죽어 쓰러지고, 왜구 수령조차도 놀라 말에서 굴러 떨어졌다.

이건 진정 예상치 못한 일이다. 신하성에 아직 이런 중형 화기가 있을 줄이야.

깜짝 놀란 왜구 수령은 더 생각할 틈도 없이 즉각 철수 명령을 내렸다. 성을 공격하던 왜구는 공성추를 던져 버리고 활과 화살, 화총에 쫓겨 도망쳤고, 왜구는 전군을 바로 대포의 사정거리 밖으로 철수시켰다.

“우리 이겼어요?”

금하는 좀처럼 믿을 수 없었다.

잠수의 손은 화약을 채울 때 묻은 화약 가루로 가득했다. 살짝 숨을 돌린 그는 남은 화약을 어두운 눈빛으로 바라보았다.

“다행히 저들이 철군했어. 하지만 다시 공격해 오면 이 화약은 바로 다 바닥날 거야.”

성벽 위의 많은 이가 한숨을 돌렸다. 그러나 왜구는 그들의 시야 안에 주둔했고, 분명 아직은 포기하지 않았다. 지켜보는 이들의 마음도 여전히 불안해졌다.

척 부인은 성벽을 둘러보았다.

“긴장을 늦추지 말아야 합니다! 성내에 아직은 주둔군이 매우 많다는 허상으로 적군을 헷갈리게 해야 합니다!”

사람들에게 당부한 척 부인은 급하게 금하 쪽 사람들을 찾았다.

“청박하를 지키는 데, 사람은 얼마나 필요합니까?”

“이십 명이요!”

“근위병은 갈 수 없어요. 성벽 위에 남아야 합니다.”

“근위병 필요 없어요. 단지 군복을 입고, 무기를 멜 수 있으면 됩니다.”

금하가 말했다.

“너 스무 명으로 뭐 하려고?”

옆에서 도무지 영문을 알 수 없어하는 사소에게 금하는 고개를 저어 보였다.

“여전히 공성계지!”

척 부인이 스무 명을 지목했고, 그들은 전부 군복으로 갈아입고 군모를 썼다. 손에는 잘 닦아 번쩍이는 장창까지 들고 보니 보기에는 매우 그럴듯해 보였다.

금하는 그들에게 예의 있게 공수를 했다.

“오라버니들께서 수고 좀 해 주세요. 이따 고개를 높이 들고, 걸음걸이는 가지런해야 해요. 적어도 7할 정도의 수준은 만족하게 해야 합니다.”

사소는 의혹이 가득한 얼굴로 양악을 바라봤다. 양악도 이미 군복을 입고 행장을 꾸려 출발을 기다리고 있었다.

* * *

화총의 펑펑 울리는 사격 소리와 공성추가 부딪히는 육중한 소리가 바깥에서 들려와 순우 가에서 일찍 몸을 피한 사람들도 안절부절 못했다. 토굴에서도 머무르지 못한 채 그들은 별원으로 나와 바깥의 움직임을 귀를 세워 듣고 있었다.

그런데 다시 대포의 폭격 소리가 들리자, 상관희는 더는 앉아 있을 수 없어 다리를 절뚝이며 밖으로 나갔다.

“아가씨, 나가실 수 없습니다!”

서 할아범이 뒤에서 큰 소리로 불렀다. 그리고 아예는 상관희의 뒷모습을 보며 꼼짝도 하지 않고 제자리에 서 있었다. 아무런 소리도 내지 않고, 앞으로 가지도 않았다.

그런데 다리를 절뚝거리며 한 걸음씩 앞으로 나아가던 상관희가 별원의 문에 도착했을 때, 돌연 아예가 그녀의 뒤에서 앞으로 불쑥 나섰다. 낮게 몸을 숙인 그가 상관희를 끌어당겼고, 그대로 그녀를 등에 업고 일어섰다.

“너……, 네 도움은 필요 없다!”

깜짝 놀란 상관희가 벌컥 화를 냈다.

그녀는 아예가 오안방에 잠입해 들어왔던 일로 성을 낸 이후로, 며칠 동안 그와 한마디 말도 하지 않았다. 하지만 아예는 그런 그녀를 업은 채 말없이 앞을 향해 걸었다.

“다리가 아직 낫지 않으셨습니다. 제가 업고 그에게 가겠습니다.”

상관희가 무뚝뚝하게 말했다.

“내가 알아서 갈 수 있어. 넌 필요 없다니까.”

“제가 업으면 조금 더 빠르게 그를 볼 수 있습니다.”

아예의 목소리는 지극히 낮았다.

상관희는 흠칫 굳었다. 지금 그녀는 확실히 조금 더 빨리 사소를 찾아가고 싶었다.

그러나……, 아예의 어깨 옷자락을 꽉 틀어쥐고 있던 그녀의 손은 저도 모르게 점점 긴장을 풀었다. 그러나 입에서 나오는 말은 여전히 냉랭했다.

“왜 나한테 잘 보이려 해? 설마 오안방으로 돌아오려는 궁리 중이야? 네가 삼도육동의 벌을 감수한다 해도, 나는 절대 네가 방으로 돌아오는 건 용인할 수 없어!”

거리에는 사람의 그림자도 하나 얼씬대지 않았고, 아예는 그 거리를 한 걸음 한 걸음 그녀를 업고 걸었다. 그녀의 목소리를 들으니, 그녀가 무슨 말을 한다 해도 상관없이 좋았다.

적어도 그녀는 그에게 말을 하고 있고, 그것만으로도 그는 충분히, 아주 충분히 좋았다.

아예의 등 상처는 아직 아무는 중이었다. 그러나 상관희를 업으니, 상처가 마찰되어 바늘이 찌르는 것 같은 통증이 느껴졌다. 그러나 이 순간, 그는 이 통증마저 기꺼이 감내할 만큼 충분히 만족하고 있었다.

“너는 왜 아무 말도 없지?”

아예가 그저 고개를 숙이고 길을 걸을 뿐 한마디도 하지 않자, 상관희는 결국 참지 못하고 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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