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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의지하 (181)화 (181/224)

181화

당시 상황은 급박했다. 육역은 무기고 안을 자세히 살펴 화약과 탄약 상자는 모두 왼쪽에 놓여 있고, 대포와 화총 등 무기류는 오른쪽에 쌓여 있는 것을 알아차렸다. 그래서 그는 대포로 왼편에 쌓인 화약 상자를 터트린 후, 바로 오른편 석문 뒤로 몸을 피했다.

석문의 두께는 5, 6촌이나 되어 가장 좋은 보호벽이 되었고, 게다가 입고 있던 은사면갑이 사방으로 튀는 포탄조각과 돌조각을 막았다. 그러기에 그는 굉음에 기절은 했지만, 중상은 입지 않을 수 있었다.

그때 매우 급하게 들어온 왕숭고도 육역이 깨어난 것을 보고는 얼굴이 온통 기쁨으로 환해졌다.

“육 대인, 정신이 드셨군요!”

육역이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심려를 끼쳤습니다.”

“장군께서 종일 무엇도 드시지 않으셨습니다. 지금 육 대인이 깨어났으니, 장군도 안심하시고 뭐라도 좀 드십시오. 참, 장군께선 잠항 승전보의 상주서를 빨리 쓰십시오. 급보로 경성에 전하는 것이 옳습니다. 일각이라도 지체하면, 또 무슨 일이 생길지 모릅니다.”

유대유도 왕숭고의 말이 일리가 있다는 것을 알고 있다. 승전보는 반드시 급보로 경성으로 보내야 한다.

하지만 유대유는 다시 미간을 찡그렸다.

“다만 모해봉이 도망을 쳐 성상께서 그다지 좋은 말을 하지 않으실까 걱정이네.”

왕숭고가 한숨을 내쉬었다.

“어쨌든 잠항은 함락시킨 겁니다. 모해봉이 도망은 갔어도 의지할 데 없이 이리저리 떠돌아다니는 개일 뿐이니, 걱정거리가 될 순 없지요.”

육역은 남도행이 건네준 물을 받아 몇 모금 마셨다. 그러다 한 가지 일이 떠올라 바로 말했다.

“형님, 잠항대첩의 공을 청하는 상주서에 저는 언급치 마십시오.”

유대유는 이해할 수 없었다.

“그게 어찌 가능해. 이번에 동생이 병사를 데리고 잠항에 잠입하지 않았다면, 또 목숨을 걸고 무기고를 폭파하지 않았다면, 내가 어찌 잠항을 손에 넣을 수 있었겠나. 이 전투에 자네는 당연히 일등공신이야.”

“아닙니다. 이번 싸움의 승리는 첫째는 모해봉의 명운이 이미 다한 것이고, 둘째는 형님이 지략과 용맹 둘 다 갖추신 덕입니다. 제게 무슨 공이 있겠습니까.”

육역이 웃으며 말했다.

“동생…….”

“형님 제 말씀 들으십시오. 이 일에 저는 제가 해야 할 것이 있으나, 지금은 자세히 설명하기가 어렵습니다. 훗날 모든 것이 마무리된 후, 형님께 자초지종을 말씀드릴 기회가 다시 있을 겁니다.”

유대유는 금의위의 신분이 미묘함을 알고 있었고, 육역이 이렇게 말한 이상 더는 고집하지 않았다.

“그럼 내가 동생 말 한 번 듣겠네.”

방을 나가려던 왕숭고는 갑자기 한 가지 일이 떠올랐다.

“참, 장군, 전해온 군사 정보에 따르면, 원래 태주로 모이던 왜구가 이유도 모르게 방향을 바꿔 급히 신하성 쪽으로 향했다고 합니다. 척 장군 혼자 미처 싸움을 준비할 틈은 없었을 테고, 척 장군이 늦지 않게 돌아와 막을 수 있을지도 모르겠습니다.”

“신하성!”

육역이 왕숭고 쪽으로 몸을 거세게 기울이며 급하게 물었다.

“방금 왜구가 신하성을 향해 갔다고 말씀하셨습니까?”

왕숭고는 육역이 왜 이렇게 급해하는지 알 수 없었다.

“그렇습니다. 전해온 군사 정보에 그렇게 되어 있습니다.”

“대체 무슨 일인가?”

유대유가 물었다.

“원래 왜구는 계속 영해로 모이고 있었고, 상황을 보아 태주를 공격 점령하려 했습니다. 그러나 척 장군이 수일 전 대군을 이끌고 영해로 갔고, 신하성에는 노인과 부녀, 아이들만 남아 빈 성이나 다름이 없어진 겁니다. 왜구가 노선을 바꾸어 신하성으로 돌진할 줄은 미처 생각지 못했지요.”

왕숭고가 고개를 저었다.

“이 왜구들은 지나치게 교활합니다.”

육역은 이미 바닥으로 내려서려고 안간힘을 쓰고 있었다. 하지만 아직 기력을 찾지 못해서 넘어질 뻔한 그를 남도행이 재빨리 부축했다.

“동생, 자네 왜 그런가?”

유대유가 의아하게 바라보았다.

“형님, 제게 빠른 말 한 마리 준비해 주십시오! 전 급히 신하성으로 가야 합니다.”

육역이 한쪽에 둔 장포를 되는 대로 잡아 걸쳤으나, 왼팔의 부상으로 저절로 미간이 잔뜩 일그러졌다.

하지만 유대유는 본능적으로 거절했다.

“안 돼. 이 꼴로 어디 말을 탄다고 그래. 올라가자마자 고꾸라질걸세. 자네한테 중요한 사람이 신하성에 있나? 내가 자네 대신 사람을 보내겠네.”

육역이 고개를 저었다.

“안 됩니다. 다른 사람이 간다 해도 전 마음을 놓을 수 없을 겁니다. 반드시 제가 가야 합니다!”

그 사이 육역은 이미 일어섰다. 비록 몸은 살짝 흔들렸으나, 의지는 오히려 비할 바 없이 단단했다.

“육 대인, 신하성에는 척가군의 군사 가족들이 매우 많습니다. 척가군은 아마 먹거나 잘 틈도 없이 서둘러 돌아갈 거고, 왜구가 신하성을 공격하게 그냥 두지 않을 겁니다.”

왕숭고도 유대유를 도와 육역을 타일렀다.

“게다가 혼자 돌아간다 해서 무슨 소용이 있겠습니까.”

육역도 머리로는 왕숭고의 말이 모두 맞는다는 걸 알았다. 그러나 여전히 마음을 놓지 못하여 고개를 저었다.

“무엇이 어찌 되었든 저는 신하성으로 가야 합니다. 여기서 기다리는 것은 제가 결코 마음을 놓을 수 없습니다.”

“자네…….”

그의 표정을 본 유대유는 문득 떠오르는 것이 있었다.

“신하성에 있는 사람이 그 돌멩이와 관계가 있나?”

육역이 겨우 웃어 보였다. 말은 하지 않았으나, 인정한 셈이었다.

“아이고, 동생아! 자네 정말…….”

유대유는 한참을 생각해도 그를 묘사할 좋은 말이 떠오르지 않아 그저 탄식할 뿐이었다.

“형인 내가 자네한테 졌네.”

남도행이 뒤를 이어 말했다.

“제가 대인을 따라 함께 가겠습니다. 저도 어설프나마 의원이니, 가는 길에서도 잘 살펴드릴 수 있습니다.”

“정말 가려고?”

유대유는 여전히 이건 적절치 않은 일이라고 생각했다.

“아니면 더 기다려 보세. 소식이 곧 올 거야.”

육역이 고개를 젓고, 유대유를 향해 공수했다.

“수고스러우시겠지만, 형님 제게 두 필의 빠른 말을 빌려주십시오!”

“자네 상처는 낫지도 않았고, 걸음도 제대로 못 걷는데. 어떻게 신하성엘 가? 아이고!”

유대유는 결국 육역의 고집을 꺾을 수 없어 말을 준비하라 분부할 수밖에 없었다. 그가 다시 남도행에게 말했다.

“나는 이 동생이 말에 올라탈 수 있는지도 미덥지 않아. 자네가 꼭 잘 살펴야 해.”

남도행이 웃어 보였다.

“장군 걱정 마십시오. 만약 제대로 앉지 못하시면, 제가 저분을 말 등 위에 묶어놓으면 되지 않겠습니까?”

유대유는 이 생각에 칭찬을 아끼지 않았다.

그들이 길에서 먹을 비상식량도 말 안장주머니에 넣어 모든 준비를 다 끝냈다. 몸을 훌쩍 날려 말에 오른 육역은 다치지 않은 팔로 고삐를 잡았다. 그는 유대유와 왕숭고를 향해 공수하여 작별인사를 했고, 남도행도 말을 타고 그의 뒤를 따랐다.

무겁게 내려앉은 어둠 속, 그들을 태운 두 마리의 말은 먼지를 일으키며 관도 위를 질주했다.

유대유는 잠항에 우뚝 서서 밤빛 속으로 사라지는 그들의 뒷모습을 바라보고 있었다. 가벼운 한숨이 절로 나왔다.

* * *

금하는 조용히 성벽 위에 서 있었다.

그때 누군가 뒤에서 어깨를 툭 쳐 깜짝 놀라 돌아보니 개숙이 씩 웃고 있었다.

“아저씨 어떻게 오셨어요?”

그녀는 말을 하기 무섭게 경계의 눈빛으로 그를 바라봤다.

“우리 이모가 가라 하셨죠? 저 잡아 오래요?”

개숙이 그녀의 이마를 쿡 찌르며 비웃었다.

“이런 소갈딱지하고는!”

“그럼…….”

이때서야 금하는 개숙 뒤에 선 심 부인을 발견했다.

“이모, 왜 나오셨어요? 여긴 안전하지 않아요. 얼른 아저씨와 돌아가세요.”

심 부인이 설핏 웃었다.

“너희 젊은 애들이 전부 여기 있는데, 설마 내가 너희만 못하겠니.”

“그 뜻이 아니에요. 치고받고 싸우는 일은 지저분한 일이에요. 보세요. 이모는 단정하고 우아한 게 어울리는 분이고, 이런 지저분한 건 우리가 하면 돼요.”

금하는 좋은 말로 권했다. 조금 후 싸움이 시작되면, 총칼에는 눈이 없으니, 심 부인에게 뜻하지 않은 사고라도 생길까 두려워졌다.

심 부인은 그녀의 말은 무시한 채 품속에서 종이 꾸러미 하나를 꺼냈다.

“물 한 통을 가져다가 이 약을 녹이고, 발사하려는 화살 끝, 창끝 전부에 그 물을 묻히렴. 이건 피를 보고 즉사시키는 독약 같은 건 아니지만, 핏속으로 들어가기만 하면, 사람의 전신을 마비시켜 힘을 쓸 수 없게 한단다.”

크게 기뻐한 금하는 조심스레 종이 꾸러미를 받았다.

심 부인은 금하에게 물건을 전한 후, 성루 위의 척 부인을 바라보았다.

가볍게 한숨을 내쉰 그녀는 개숙과 성벽을 내려왔다. 하지만 그녀는 멀리 가지 않고 근처 외진 곳을 찾아 기다림을 시작했다.

개숙은 심 부인이 성이 함락될 경우, 혹시 모를 금하의 위험을 걱정하고 있음을 알았다. 그래서 그는 돌아가자고 권하지도 않았다. 단지 이 여자 둘을 어떻게 해야 확실히 보호할까, 그런 생각만 하고 있었다.

* * *

축시 삼각, 신하성 앞쪽으로 횃불 모습이 희미하게 어른거리고, 연달아 북소리가 들렸다.

“쿵, 쿵쿵, 쿵! 쿵, 쿵쿵, 쿵!”

밤은 쥐죽은 듯 고요했고, 조금의 흐트러짐도 없는 북소리는 유달리 듣는 이의 귀를 자극했다. 쿵쿵 울리는 북소리는 성벽 위 사람들의 마음까지 직접 두드리는 것과 같았다.

그들이 왔다. 바로 이 어둠 속으로.

활과 화살을 단단히 껴안은 금하는 미동도 하지 않은 채 북소리의 근원을 뚫어지게 바라봤다. 그런데 문득 뒤에서 검은 그림자가 아른거려 돌아보니, 잠수가 칼날처럼 세운 손을 허공으로 들어 올리고 있었다.

“뭐해요?”

금하는 의심의 눈길로 그의 손을 응시했다. 이내 멋쩍게 손을 내려놓은 잠수가 눈앞에서 두어 번 손을 휘둘러 보였다.

“별일 아니야. 왜구에게 내가 너희를 인정사정 봐주지 않고 때려죽이겠노라는 결심을 보여준 거지.”

“둘러대기는!”

금하는 코웃음을 치며 비웃었다.

“몰래 나 기절시켜서 끌고 돌아가려고? 사가 오빠가 다 말했거든요!”

“뭐? 이 배신자!”

잠수가 이를 악물어 이를 갈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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