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79화
서 할아범이 급하게 말했지만, 금하는 여전히 의혹이 풀리지 않았다.
“그럴 리 없어요. 제가 알기론 성을 공격하는 건 삼 일 후였어요. 지금은 아닐 거예요.”
“삼 일 후와 지금이 무슨 차이가 있습니까. 왜구가 결국은 오는 걸요. 여러분은 얼른 저와 함께 토굴로 가십시다.”
바깥의 땅땅거리는 소리는 계속 다급하게 울렸다.
금하는 양악에게 재빨리 말했다.
“내가 척 부인 쪽에 가서 물어볼게. 대체 무슨 일이지? 여러분은 먼저 서 할아범을 따라가세요.”
금하가 돌아서 나가려는데 누군가 그녀의 손을 붙들었다. 고개 돌려 보니 바로 심 부인이었다.
“이모.”
이 며칠 금하는 심 부인과 제대로 얘기를 해 본 적이 없었다. 그녀가 자신의 손을 붙든 것을 보고는 다시 또 막으려 한다는 생각이 들어 저도 모르게 미간을 찡그렸다.
심 부인은 그녀의 손을 붙잡고 있었으나, 시선은 개숙을 향했다.
“육 오라버니.”
개숙이 어찌 그녀의 마음을 모를까. 그가 앞으로 나섰다.
“걱정 마. 내가 이 계집애 따라다니며 사고 나지 않게 할게.”
“고마워요.”
개숙이 웃어 보였다.
“우리 사이에 그런 말은 또 섭하지.”
금하는 심 부인의 의도를 이해했다. 그녀는 자신을 막지는 않겠으나, 여전히 그녀가 위험한 상황에 처하는 것은 마음을 놓을 수 없으니 개숙에게 그녀를 보호해달라 하는 것이었다.
“아저씨, 괜찮아요……. 전 척 부인 쪽에 상황 물어보러 가는 것뿐이에요. 아저씨는 우리 이모와 함께 계시는 게 더 좋아요. 지금은 상황이 혼란해서, 아마 성안에도 이 틈을 타서 도둑질하려는 이들이 있을 거예요. 아저씨가 우리 이모랑 계셔야 저도 마음이 놓여요.”
당장 심 부인이 그녀를 제지했다.
“안 돼.”
지켜보던 잠수가 그들을 중단시키고, 명쾌하게 결론 내렸다.
“지금은 상황이 확실치 않으니, 여러분은 모두 제 말을 들으세요. 두 분 선배님과 순우 아가씨, 그리고 상관 당주, 아예는 모두 서 할아범을 따라 토굴로 피하세요. 양악도 따라가서 이분들 적절히 조치한 후, 다시 별원으로 돌아와 우리를 기다립니다.”
양악은 이의 없이 고개를 끄덕였다.
“저, 사소, 그리고 원 낭자는 척 부인 쪽에 가서 현재 상황을 분명히 확인하겠습니다. 되도록 빨리 돌아와 여러분과 합류할게요.”
잠수가 이어서 심 부인을 향해 돌아섰다.
“선배님, 원 낭자는 제가 지켜보겠습니다. 별일 없을 테니, 선배님도 걱정 마십시오.”
심 부인이 그래도 무언가 말하려고 했지만, 금하가 그녀의 말머리를 끊었다.
“정말 괜찮네요. 그럼 이렇게 정해요……. 우리 먼저 가겠습니다!”
그녀는 말을 끝내자마자 날듯이 달려 나갔다. 잠수와 사소 또한 그 뒤를 따랐다.
“저 아이…….”
금하의 뒷모습을 바라보던 심 부인은 어쩔 수 없다며 한숨을 내쉬었다.
“여러분, 더는 지체하지 마시고 얼른 짐을 챙기셔서 절 따라오세요.”
서 할아범이 그들을 재촉했다.
바깥에서 연달아 울리는 땅땅 소리는 사람의 마음을 깊숙한 곳부터 긴장되게 했다. 다들 각자 급히 물건을 챙겼고, 서 할아범을 따라 토굴로 갔다.
* * *
금하는 척 부인이 사는 집에 도착하자마자 크게 놀랄 수밖에 없었다.
문은 열려 있었고, 안에 있는 사람들은 분주하여 그들을 상대할 시간도 없었다. 눈앞은 전시 작전을 준비하는 상황이 펼쳐진 것 같았다.
집 안의 가복과 계집종들은 분주히 움직였다. 그들은 손에 각양각색의 칼을 들고 있었는데, 자세히 보면, 장작을 패는 칼, 부엌의 식칼까지 전부 나왔다.
계속 안으로 들어가니, 척 부인은 내당에서 붓을 휘두르며 글을 쓰는 중이고, 옆에는 계집종이 이미 다 쓴 게시문을 말리는 중이었다.
“부인…….”
금하가 입을 열자마자, 옆의 계집종이 눈빛으로 제지했다. 척 부인이 지금 바쁘니, 절대 방해하지 말라는 뜻이다.
사소와 잠수도 마음이 급했다. 그러나 척 부인이 결국은 아녀자인지라 그들도 분별없이 행동할 수도 없어 답답함만 가득 안고 기다릴 수밖에 없었다.
그동안 금하는 고개를 기울여 말리고 있는 게시문을 전부 읽어 내렸다.
게시문은 지원군이 곧 도착하니, 성의 백성은 당황할 필요가 없음을 밝혔으며, 각 가정의 육십 세 이하 남자는 오늘 밤 자시에 동성문 아래로 오라 하고, 나오지 않는 자는 첩자로 처분할 거라고 하였다.
육십 세 이하 남자? 설마 척 부인은 그들이 참전하여 적과 상대하길 바라는 거야?
금하와 두 사람은 서로 얼굴만 쳐다볼 뿐이었다. 이 일은 오리한테 횃대에 오르라는 것, 그야말로 할 수 없는 일을 강요하는 것이라고 생각하고 있었다.
가까스로 게시문을 다 쓴 척 부인은 근위병들에게 가져가 성안의 주요 중심도로에 게시하라 명했다. 금하는 무언가 입을 열려 했으나, 척 부인은 빠르게 그녀를 지나쳤다. 작은 정원으로 간 그녀는 미간을 깊이 찡그리고 앞에 놓인 것들을 바라보았다. 장작 패는 도끼, 부엌의 식칼 등 안에서 쓰는 것이 포함된 각종 칼, 창, 곤봉 등의 물건이었다.
“척 부인, 무슨 일이 일어났나요?”
이때서야 금하가 물었고, 척 부인이 가라앉은 음성으로 말했다.
“이십 리 밖에서 왜구의 대군을 발견했다는 척후병의 보고가 있었습니다. 그들은 지금 신하성을 향해 오고 있고, 내 예측으로는 하반야(*자정부터 해 뜰 새벽녘까지의 사이.)면, 성 밑까지 쳐들어올 겁니다.”
잠수는 이해할 수 없었다.
“진공은 삼 일 후라 하지 않았습니까? 심문한 이십여 명 왜구가 모두 같은 진술을 했으니 틀린 건 아닐 텐데요.”
“그들이 말한 것이 사실이든 아니든 결과적으로 왜구의 대군은 이미 이십 리 밖에 있습니다. 설마 당신은 그들이 성 밖에서 삼 일을 주둔한 후에 성을 공격할 거라 기대합니까?”
초조한 마음 때문일까. 척 부인의 말투는 좋지 않았다.
“아마 그 동양인 때문일 텐데, 우리가 소홀했던 거예요.”
금하는 상황을 분석했다.
“왜구는 그가 돌아오지 않자, 상황이 변했다고 생각하여 공성을 앞당기기로 결정했을 테죠.”
“그럴 수 있습니다.”
척 부인이 말했다.
“하지만 지금은 원인을 찾을 때는 지났어요. 여러분도 알다시피, 성안의 근위병은 백 명이 되질 않고, 남은 이는 전부 군의 식솔과 일반 백성입니다. 어떤 훈련도 받은 적이 없어 적과 싸울 방법이 전혀 없습니다.”
사소가 이를 악물고 말했다.
“그럼 필사적으로 지킬 수밖에요. 남은 이가 몇인지 상관없이 그들과 목숨을 걸어야 합니다!”
금하는 무기를 살피다 척 부인에게 물었다.
“병기도 부족하죠? 쓸 줄 아는 사람도 많지 않을 거예요.”
“그들이 쓸 줄 아는 건 필요 없어요. 잡을 줄 알면 됩니다!”
척 부인의 어조는 단호했다.
“그들이 뭘 할 수 있다고 들고 있어요!”
사소는 연신 고개를 저었다.
“쓸 줄도 모르는데 칼을 주든 빨랫방망이를 주든 그건 다를 게 없어요. 결국은 헛되게 죽는 겁니다.”
잠수 역시 미간을 잔뜩 찌푸렸다.
“부인, 차라리 사람들을 성 밖으로 내보낼 방법을 생각하는 건 어떻습니까?”
“늦었습니다! 성안 대다수는 노인과 부녀, 아이들이에요. 마차도 부족하여 오직 걷는 것뿐인데, 근본적으로 멀리 달아나지 못해요.”
척 부인이 말했다.
“수성하며 원병을 기다리면, 그래도 마지막 길 하나는 남아 있을 겁니다.”
“수성?”
바닥에 가득한 무기는 심지어 곰팡이와 녹이 슨 것도 있었다. 착잡한 눈길로 바라보던 금하는 이 일이 지나치게 어려울 거라고 생각했다.
“부인, 직언을 용서하십시오. 이것들을 갖고 수성하긴 어렵습니다.”
척 부인의 표정은 전혀 동요가 없었다.
“병력의 차이가 너무 크다는 건 알아요. 그래서 공성계(*성을 비우는 전술. 위급한 상황에서 상대방을 속이는 계책.)를 쓸 수밖에 없습니다.”
“공성계!”
잠수와 사소는 동시에 정신이 멍해졌고, 금하도 놀라 굳었다.
척 부인의 말이 이어졌다.
“지금 우린 이미 성안의 왜구를 잡았습니다. 성 밖의 왜구는 성안 상황은 자세히 모를 겁니다. 성안에 주둔군이 얼마나 남았는지, 병력이 어떠한지, 그들은 상황을 전혀 알지 못합니다. 성벽 위에 서 있는 병사만 충분하다면, 그들은 성안의 주둔군이 매우 많을 거라 생각할 테고, 쉽게 공격하지 못할 겁니다.”
“하지만 이 무기를 갖고 해야 하는데…….”
금하는 무기들을 미간을 찌푸린 채 계속 바라보았다.
“바로 탄로 날 거예요, 부인.”
척 부인이 바닥 위에 무기를 주시하다 잠시 후 결단을 내렸다.
“군계고로 가서 무기를 가져와라!”
군계고는 척가군의 무기를 보관하는 곳으로 도, 창, 검, 극의 무기 외에 화기도 있었다. 이곳은 군사 요지로 장군의 영패를 가진 자만이 지키는 이에게 문을 열라고 명할 수 있었다.
군계고를 지키는 수비병의 우두머리 라오섭老聂은 척 장군의 부하로 오래도록 있었다. 그는 하는 일에 조금의 빈틈도 없었고, 척 장군 한 사람만 알 뿐으로 도독인 호종헌이 와서 문을 열라고 해도, 그는 얼굴색 하나 변하지 않고 척 장군의 영패를 보자고 할 사람이었다.
척 부인의 요구를 접한 이때도 라오섭은 일단 예를 올린 후, 공무를 처리하는 감정 없는 어조로 입을 열었다.
“부인도 알고 계시겠지만, 군계고를 여는 것은 반드시 장군의 영패를 가져오셔야 합니다.”
척 부인은 당연히 알고 있었으니, 즉시 부드러운 어조로 대답했다.
“장군께서 너무 급히 떠나시는 바람에 장군의 영패를 두고 가지 못하셨습니다. 게다가 그분도 왜구가 신하성을 공격할 거라고는 생각지 못하셨지요. 지금은 형세가 급하니 잠시 창고를 여십시오. 모든 책임은 제가 집니다.”
라오섭이 적당한 속도로 공수를 하며 예의 있게 말했다.
“부인의 말씀에 이견이 있습니다. 장군께서 군계고를 제게 맡기시며 엄격히 지키라 하시고 실수를 용납지 않는다 하셨지요. 누구를 막론하고 영패를 들고 있지 않으면, 저 라오섭은 조금이라도 절대 비킬 수가 없습니다.”
석계 아래서 그들의 대화를 듣던 금하와 사소는 서로 귀엣말을 했다.
“이미 발등에 불이 떨어졌는데, 저 영감은 어쩜 저렇게 고리타분하냐?”
사소가 미간을 찌푸리며 말했다.
“내가 말했으면, 이런 쓸데없는 소모 안 한다. 그냥 가서 바로 내동댕이치고 말지.”
청력이 매우 좋은 라오섭은 석계 아래 있던 사소의 말을 들었다. 다시 금하와 그쪽 사람들을 보니 전부 낯선 이들이었다.
그는 바로 척 부인에게 냉랭한 어조로 입을 열었다.
“부인, 제가 한 말씀 더 하고자 합니다. 저 사람들은 정체가 분명치 않고, 우리 척가군 사람도 아닙니다. 부인께서는 그들의 선동에 경솔히 일을 처리하지 마십시오.”
척 부인은 그를 척 장군 곁을 지키는 원로라고 생각하고 있었다. 비록 마음은 초조하기 이를 데 없었으나, 사전에 그와 예의를 차려 얘기를 한 것은 모두 척 장군의 얼굴을 보아서였다. 그런데 지금은 그가 오히려 늙은 티를 내며 거만하게 자신을 가르치려 하니, 그녀는 분노를 참을 수가 없었다.
“내가 일을 하는 것은 당연히 내 기준이 있습니다. 무얼 갖고 남에게 선동되었다고 합니까. 왜구는 곧 성 앞에 닥칠 겁니다. 빨리 창고를 여세요. 나는 적을 맞아 싸울 무기가 필요해요.”
그러나 라오섭은 조금도 비킬 생각 없이 딱딱하게 말했다.
“장군의 영패가 없으십니다. 명령에 따르지 못함을 용서해 주시길 바랍니다!”
“자네…….”
척 부인이 앞으로 한 걸음 나섰다. 아름다운 눈에는 노기가 잔뜩 서렸다.
“자네 대체 열건가, 안 열건가!”
“명령에 따르지 못함을 용서해 주시길 바랍니다!”
다음 순간, 척 부인은 이미 출수하여 움직였다. 부드럽고 아름다운 장법은 마치 꽃 사이를 날아가는 제비 같았고, 라오섭은 무슨 일이 벌어졌는지 파악도 못한 채 강하게 얻어맞아 바닥에 쓰러졌다. 대경실색하여 달려든 수비병들을 향해 척 부인이 커다란 소리로 일갈했다.
“이제 누가 대담히 나서서 날 막을 것인지 내가 지켜보겠다! 나서겠느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