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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의지하 (173)화 (173/224)

173화

허릿심으로 치고 들어간 그는 적수헌화滴水献花의 초식으로 곤봉의 끝을 위로 치켜 올려 육역의 가슴에 있는 신봉혈을 직접 때렸다.

육역은 봉을 써 벗어났고, 오히려 그의 위로 흐르는 힘을 이용해 몸을 굴렸다. 연이어 제비처럼 가볍게 상대의 머리 위로 뛰어넘은 그가 주마회두走马回头의 초식으로 유대유 등의 요혈을 내리쳤다.

등 뒤에서 바람 소리가 들리자, 유대유는 몸을 기울여 봉을 피했다. 그러면서도 속으로는 은근히 환호성을 질렀다. 실로 인재를 알아보고 감탄한 마음이 절로 든 것이다.

“조심하오!”

유대유가 크게 외쳤다.

그의 봉은 마치 뱀이 구불구불 기어가는 것처럼 땅에서 끌려가다가 육역의 아래쪽을 빠르게 공격해 들어갔다. 육역은 뒤로 몇 보 물러났고, 흐르는 물처럼 유연해진 그의 봉이 상대의 봉을 내리쳤다. 두 개의 긴 봉이 서로 맞붙은 순간, 극도로 맹렬한 힘은 금속이 마주친 듯한 쨍한 소리를 날카롭게 자아냈다.

연이어 때리고 다시 붙고, 승부는 좀처럼 가리기 힘들었다.

옆에선 수많은 관병의 함성소리가 여전히 들렸지만, 잠복도 더는 참을 수가 없었다. 설령 그들을 소리로 이길 수는 없다 해도, 그 또한 벌떡 일어나 자신의 대공자를 응원하기 위해 고함을 치며 부르짖었다.

연속 수초를 겨룬 후, 유대유의 봉이 가로로 누워 밀려들고, 삽시간에 봉의 끝이 육역의 가슴을 치고 들었다. 그 순간이었다. 봉 끝에 걸려 튀어나온 옷 속의 물건 하나가 허공으로 날아올랐다.

육역은 쥐고 있던 봉으로 상대의 것을 밀어내려 했었다. 그러나 물건이 날아가는 것을 본 그는 다른 생각을 할 틈도 없이 물건을 잡기 위해 손을 뻗었다.

이건 유대유도 미처 예상치 못한 상황이었다. 육역이 갑자기 자신의 봉을 막지도 피하지도 않을 줄은 몰랐으니, 그가 급히 봉의 기세를 거두려 했으나 이미 늦었다. 봉은 육역의 왼쪽 다리를 둔중하게 가격했다.

순간 육역은 움찔하며 다리 쪽을 파고든 아픔에 한쪽 무릎을 꿇었다. 그래도 물건은 이미 안전하게 받아든 후였다.

육역이 고개를 들고 웃으며 말했다.

“훌륭한 곤법입니다. 제가 졌습니다.”

그러나 육역을 잡아 일으키는 유대유의 생각은 달랐다.

“자네가 한눈을 팔지 않았다면, 나는 결단코 이길 방법이 없었지……. 솔직히 한마디 하자면, 자네의 나이로 무예에 이런 성취를 보이는데, 나이도 많은 내가 졌다함이 맞는 얘길세.”

“장군의 과찬이시라, 실로 저는 감당키 어렵습니다. 오늘의 배움에서 장군의 곤봉술은 진정 신의 경지였습니다.”

육역이 낭랑한 목소리로 크게 말했다.

“제 기억으론 장군께선 일찍이 말씀하셨지요. 곤을 쓰는 것은 사서를 읽는 것과 같다. 갈고리, 도, 창, 살은 일단 그중 한 가지를 익히게 되면, 사서는 이미 밝아지고, 육경의 도리도 역시 밝아질 것이다. 능히 곤을 다룰 수 있게 되면, 다른 병기 다루는 법 또한 이것으로부터 얻게 된다라고요.”

“자네 설마 검경을 읽었는가?”

이는 정말 유대유의 기대를 넘어선 것으로 방금 육역이 한 말은 바로 그가 저술한 ‘검경剑经’에서 다룬 말이었다.

육역이 웃으며 말했다.

“아버님께서 이 책을 높이 평가하시어 특별히 제게 필사하라 하시고, 심혈을 기울여 읽으라 하셨습니다.”

이른바 아부와 아첨이란 싫어하는 이가 없다 하였다. 유대유 또한 육역이 하는 말이 그저 인사말일 가능성이 매우 크다는 걸 분명 알지만, 육병 같은 거물도 검경에 대해 높이 평가했다는 말을 들으니, 참으로 마음은 기쁘기 그지없었다.

주산에 온 이후, 유대유는 이리 기분이 좋았던 적이 없었다. 그는 당장 손을 휘둘러 모인 병사들을 해산시켰고, 육역의 손을 붙들었다. 그리고 왕숭고를 불러 함께 대막사로 돌아갔다.

대막사로 들어서자마자, 유대유는 허리춤에서 쇄은을 꺼내 샹쯔에게 술과 안주를 준비하라 명했다.

유대유의 이런 기분은 보기가 극히 드물었으니, 왕숭고의 기분도 매우 좋아져 그 또한 샹쯔를 불러 웃으며 말했다.

“내가 원래 잠항을 함락시킨 후 성공을 축하할 때나 마시려고 술 한 단지를 보관해 두었지. 지금 장군의 기분이 좋으시니, 너는 가서 그 술 단지를 가져오너라.”

이 말에 유대유가 기분 좋게 웃었다.

“자네가 좋은 술을 몰래 숨겨둘 줄 생각도 못 했네. 그래, 오늘 기꺼이 다 내놓는 것인가.”

“육 첨사는 모르시겠지만, 장군의 곤봉은 북소림의 스님들도 승복하신 분야입니다.”

왕숭고가 육역을 향해 웃으며 말했다.

“오늘이야말로 장군께서 연무장에서 고개 숙이신 것을 볼 수 있었으니, 저는 당연히 축하주를 마셔야지요.”

“저도 검경에서 배운 많은 것으로 겨우 장군과 겨룰 수 있었습니다.”

“아까 맞은 곳은 다쳤는가?”

유대유가 묻자, 육역이 손을 내저었다.

“괜찮습니다. 장군께서 곤에 사정을 봐주시어 전력을 다하지 않으셨는데, 제가 어찌 다칠 수 있습니까.”

그때 샹쯔가 술과 요리를 마련해 왔다. 군영에서는 그럴듯한 술잔도 찾을 수 없어 술은 사발에 담았고, 세 사람은 술잔을 나누며 허심탄회하게 얘기를 나눴다.

“오늘 자네가 비무는 신경도 쓰지 못한 채 낚아챈 건 무엇인가? 중요해 보이던데?”

유대유가 호기심을 갖고 물었다. 이내 육역은 품속에서 인연석을 꺼내어 그에게 보였다.

“이게 무엇인가?”

유대유의 미간이 살짝 일그러졌다.

“……내 보기에는 그저 돌이구만!”

왕숭고도 자세히 보고는 물건을 가늠해 보았다.

“혹시 귀중한 보석입니까? 떨어뜨려 부서질까 걱정되셨겠습니다.”

육역은 그저 담담하게 웃었다.

“진귀한 보석 같은 건 아닙니다. 어떤 친구가 준 인연석이지요. 영험하다고 들어 지니고 있습니다.”

왕숭고가 듣더니 어리둥절해했다.

“육 첨사의 인품과 용모, 그리고 가세로서, 어찌 인연이란 단어에 연연하십니까. 여인이 너무 많아 근심하는 것이 맞을 텐데요.”

“대장부가 어찌 장가 못 갈 걱정을 해!”

유대유도 육역이 이 물건을 왜 이리 중요하게 여기는지 알 수가 없었다.

“여기가 만일 전쟁터였다면, 물건 하나 때문에 헛되이 목숨을 잃을 수도 있었다네.”

육역은 더는 해명하고 싶지 않아 빙긋 웃었을 뿐이었다. 인연석도 다시 잘 챙겨 넣은 그가 화제를 돌렸다.

“제가 알기로 장군께서는 복건 진강 분이시죠. 장군의 훌륭한 무예는 어느 스승께 사사하셨습니까?”

“나는 이량흠이란 분을 스승으로 모셨지.”

유대유도 오랫동안 술을 마실 기회가 없었다. 그는 왕숭고의 좋은 술을 그대로 지나칠 수가 없어 다시 제 손으로 한 사발을 따라 마시며 자연스레 탄식으로 한숨을 내쉬었다.

“그때 스승님 아래 있던 생각이 나네. 무공 연습 외에도 사제와 산에 올라 새 둥지를 뒤지기도 하고, 강에 가 물고기를 잡기도 했지. 참으로 좋은 시절이었어.”

“장군께 사제도 있으십니까?”

“내 사부께선 다른 이들과 다르셨네. 남들이 열 몇 명, 혹은 수십 명의 제자를 거두는 것과 달리 그분은 나와 내 사제 둘만 거두시고는 전심전력을 다해 가르치셨지. 이렇게 생각하면 우리 둘 다 변변치 못하군. 그 어르신께 좋은 날도 보여 드리지 못했어.”

술이 들어가니, 유대유는 말도 상당히 친밀하게 했다. 또한 버릇처럼 연달아 한숨을 내쉬었다.

왕숭고는 유대유의 모습에 어깨를 으쓱할 뿐이라, 그는 술을 마신 유대유의 모습에는 이미 익숙해진 것이 분명했다.

“사제는 지금 어디에 있습니까?”

육역이 유대유의 말을 뒤이어 물었다.

“모른다네.”

무언가 생각하는 모습이던 유대유가 육역의 어깨를 연신 또 두드렸다.

“대장부가 어찌 장가를 못 갈까 걱정해. 무슨 일이 있다 해도 아내는 맞을 수 있는 것을. 여인의 일에, 절대 가치도 없는 일에 매달리면 안 돼. 내 사제가 바로 가장 확실하게 보여주고 있지!”

아마도 정 때문에 곤란해진 이야기인 듯하여 육역은 다시 물어볼 생각이 없었다. 그러나 유대유 스스로 계속 말을 이어갔다.

“내 사제는 무공을 익히기에 좋은 재목이었어. 사부께서는 원래 제자 하나만 거두시려 했는데, 사제를 본 후, 그 골격이며 자질이 도통 뛰어난 것이 아니어서 도저히 참지 못하시고 그를 마지막 제자로 삼아 거두셨다네. 따지면 내 사제는 정말 이해력이나 배움에 있어 무엇을 해도 나보다 빨랐지. 그런 사제가 정에 사로잡히어 학문을 이루지도 못하고 가버렸으니 안타까워. 듣기로는 상경하여 공명을 얻겠다고 뛰어다니고 있다지.”

“그럼 그는 지금 어떤 상황입니까?”

왕숭고가 물었다.

“조정에 있습니까?”

유대유가 연신 손을 내저었다.

“사제는 떠날 때 이름자도 바꿨어. 초기에야 그가 금의위가 됐다는 소식을 들었는데, 그 이후로는 들은 바가 전혀 없었네.”

육역이 설핏 웃었다.

“금의위에 있다면, 장군께서 이 사제분의 이름을 말씀해 주시면 어떻습니까. 어쩌면 제가 알고 있을지도 모릅니다.”

“사제의 성은 양, 이름은 립이라는 외자를 쓰네. 하지만 훗날 이름까지 고쳤어. 대장부는 붕정만리라고 하더니, 양정만으로 개명했다더군. 자네 그 이름 들어봤나?”

양정만?!

육역은 유대유의 사제가 그일 거라고는 결코 생각해 본 적이 없었다. 그러나 다시 돌이켜 보면, 그 윤병이란 것이 원래 복건의 음식이었다. 그는 양정만이 복건에 가 본 적이 없을 텐데, 어찌 이 음식을 즐길까 의문을 갖고 있었다. 그런데 이런 상황이라면 아버지가 윤병을 좋아하신다고 한 양악의 말도 이상한 것이 아니었다.

육역의 안색이 좋지 않아 보여 유대유가 물었다.

“자네 들어봤나?”

“예. 우연찮게도 들어봤습니다……. 이분은 부상으로 수년 전 금의위를 사직하고, 현재는 육선문의 포두로 있습니다. 지금은 혼인하여 아들이 있고, 아들도 육선문의 포쾌로 있지요.”

육역의 머릿속은 밀려든 생각들이 얼기설기 뒤엉켜 확실히 정리되지 않았다.

그래도 유대유는 감개무량함을 금치 못했다. 옛 사람이 된 양정만이 그나마 지금은 평온하단 사실을 알게 되어 긴 한숨을 내쉬었다.

“장군께서 그가 당시 정 때문에 힘들었다고 하셨지요. 혹시……, 어느 댁 아가씨 때문이었을까요?”

“그 시절 천주부에 의료를 업으로 하는 임가가 있었다네. 사제는 임가와 어렵게나마 친분을 맺어 자주 왕래를 하였어. 임가에 아가씨가 둘 있었는데, 그가 마음속에 그 언니를 염두에 두고 있던 게야. 안타깝지만 임가는 사제가 눈에 차지 않아 그 언니를 다른 이에게 시집보내겠다고 약속했다네. 이마 상대가 관료 집안이었을 게야. 내 사제는 그걸 승복하지 않고, 상경하고 싶다며 울분을 토해내더군.”

임가의 첫째 아가씨는 하장청에게 시집갔다. 심 부인은 임가의 둘째 딸이었고, 역시 그녀는 양정만의 이름을 들은 후 남고자 했던 것이다. 그것은…….

육역은 다시 깊은 생각에 잠겼다.

하언 사건 당시 양정만은 아직 금의위에 있었다. 그런 그가 그 사건의 파급이 하장청까지 이를 거라 모를 리 없었을 터.

당시 그는 어떤 선택을 했을까?

그가 북진무사에 갇히게 된 것이 이 일과 관계가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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