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71화
“성을 봉쇄한다! 성을 봉쇄한다!”
둔중한 성문이 천천히 닫혔다. 일 척 두께의 빗장 4개가 겹겹이 내려와 두껍고 무거운 성문을 꽉 눌렀다.
성문뿐 아니라, 청박하를 비롯해 성으로 들어가는 하구 또한 봉인되었다. 무게가 천근이 넘는 철 막대로 용접된 매우 두꺼운 철 수문이 수면부터 강바닥까지 빈틈없이 입구를 막았다.
사소는 어엿한 이유가 생겼으니 더는 물고기를 잡으러 갈 필요가 없었고, 또한 정체를 들킬까 걱정할 일도 사라졌다. 그리고 금하는 이전의 일로 여전히 마음에 불편함이 남아 심 부인을 보러 가지 않았다. 부엌에 틀어박힌 그녀는 양악의 일손만 돕고 있었다.
“척 장군이 정말 지원하지 않을 것 같아?”
양악은 채소절임 준비를 시작했다. 성을 봉쇄하는 건 아마 하루 이틀의 일이 아닐 터이니, 양식 일부를 비축해 둬야 했다.
금하는 정신이 딴 데 팔려있으면서도 그를 도와 채소를 다듬었다.
“그렇지는 않을 거야. 성안에 저리 많은 명군 가족이 있고, 척 부인도 여기 있잖아. 척 장군이 본인 아내와 아이를 상관 않고 내버리진 않겠지.”
“아내지만, 아이는 없어.”
양악이 그녀를 정정해 줬다.
“너 모르지? 척 부인 슬하에 아무도 없어서, 척 장군이 밖에다 몰래 첩을 몇 두고, 아이도 몇 명 낳았대. 척 부인이 그녀들과 서로 대립할 걸 염려해서 그네들은 모두 신하성에 없단다.”
“…….”
금하는 말이 나오질 않았다.
“게다가 바깥에 온통 퍼지길 척 부인이 질투가 심하고 포악한 부인이라 척 장군이 그녀를 호랑이처럼 겁낸단다.”
양악이 한숨을 내쉬었다.
“내 보기에 척 장군이 지원하는 일은 정말 단언하기 어렵다.”
금하는 이해할 수 없어 물었다.
“넌 어디서 이런 걸 들었어?”
“채소 사면서. 전부 명군 가족들인데, 수다쟁이에 얼마나 입방아들인지. 네가 듣고 싶은 건 다 있을걸.”
“이걸 보면 또 정말인가?”
금하는 척 부인의 표정을 떠올리며 한숨을 쉬었다.
“설마 척 부인도 척 장군이 지원하지 않을 거라고 생각하나, 그럼 그분 마음은…….”
그때 누군가 가뿐하게 별원 밖으로 내려앉았다. 반응이 매우 빠른 금하가 손에 잡히는 대로 무언가를 던졌는데, 던지고 나서야 날아간 것이 바가지란 것을 알았다.
식은 죽 먹기로 바가지를 받아 든 잠수가 안으로 들어왔다. 그는 바가지를 한쪽에 놓고 바로 입을 열었다.
“먹을 거 있냐. 밤새웠더니, 배고파 죽겠다.”
아직 밥때가 되지 않았다. 양악은 시루에서 식은 만두를 꺼내 잠수에게 건네며 미안해했다.
“차가워요. 조금 딱딱하기도 할 거고.”
“상관없어.”
잠수가 받아서 씹으며 얘기를 꺼냈다.
“드디어 진전이 좀 있네. 어제 성 봉쇄 후, 내가 보기에 그놈이 심상치 않더라고. 집안의 불도 한밤중이 되어서야 꺼지고. 그러더니 오늘 그가 아침 일찍 일어나서 큰 회화나무로 가서 그 몸통 줄기에 표기를 했어.”
“무슨 표기요?”
잠수가 손가락에 물을 묻힌 후, 부뚜막 위에 어떤 그림을 그려 그들에게 보여줬다. 하지만 두 사람 다 이해할 수 없었다.
“뭔 소린지 모르겠지?”
잠수가 헤헤 웃었다.
“나도 모르겠고, 척 부인도 모르셔서 다시 감옥으로 뛰어갔다. 지난번 잡은 동양인이 말하길, 이 기호는 오늘 밤 4경에 모인다는 뜻이야……. 뱀이 드디어 동굴을 나오려 해!”
금하 역시 상당히 흥분했다.
“다시 말하면, 오늘 밤 그들을 일망타진할 수 있는 거군요!”
그들의 대화 사이 순우민이 찻주전자를 들고 들어왔다. 생각과 달리 많은 이가 있는 것을 보고는 어리둥절해 하며 작은 목소리로 말했다.
“저, 뜨거운 물을 좀 가지러 왔어요.”
“여기 있어요. 제가 할게요.”
양악이 재빨리 찻주전자를 받았다.
금하를 본 순우민이 무슨 할 말이 있는 듯하다 또 망설이는 것이 보였다.
“무슨 일 있어요?”
그를 알아챈 금하가 물었다.
“원 낭자……, 내가 어쩌면 이 일은 말해선 안 될 수도 있지만, 나는…….”
순우민은 한참을 주저했다.
“그날 이후 심 부인을 줄곧 보지 않았죠?”
금하가 불편한 느낌으로 ‘응’ 소리를 냈다.
“내가 보기에 요즘 그분 안색이 그리 좋지 않으세요. 계속 낭자 걱정만 하시는 것 같아요.”
순우민이 말한 후 물을 채운 양악도 금하를 타일렀다.
“그날은 그분도 순간 욱해서 실언하셨을 거야. 네가 이렇게 계속 사람을 피하는 것도 문제가 되지.”
금하는 한참을 우울해하다가 한숨을 내쉬었다.
“나도 알아……. 하지만 이모는 내 머리부터 발끝까지 간섭하고, 이것도 안 돼, 저것도 안 된다고 하시잖아. 지금은 어려운 때인데, 내가 만약 지금 이모와 화해하면, 왜구가 성을 공격할 때, 이모는 분명 또 나를 붙들고 놓지 않으실 거야.”
“왜구가 성을 공격해요?”
순우민이 놀라 물었다.
동시에 양악은 눈을 부릅뜨고 금하를 노려보았다. 그는 순우민이 놀랄까 걱정하여 그녀에게는 사실을 계속 감춰달라고 부탁했었다.
오히려 금하의 생각은 달랐다.
“지금이 어떤 때인지 아가씨도 알아야 해. 그래야 마음의 준비도 하지.”
“왜구가 정말로 성을 공격해요?”
순우민의 물음에 금하는 그녀의 손을 붙잡고 진지하게 말했다.
“언니, 신하성은 곧 큰 전투가 있을 거예요. 원병이 올지 안 올지 몰라요. 성이 혼란스러운 건 상관하지 말고, 언니는 우리 아저씨, 이모를 따라간다는 걸 꼭 기억해 둬요. 아저씨 무공은 아주 강해서 분명 문제없이 보호해 주실 거예요.”
순우민이 조급해하며 물었다.
“그럼 여러분은요?”
금하는 양악과 잠수를 바라봤다. 세 사람의 눈빛에 담긴 뜻은 이제 말하지 않아도 알 수 있었다.
“성에는 지키는 이가 적어서 우리가 척 부인을 도와 성을 지켜야 해요.”
* * *
유대유가 휴식을 취하며 군대를 정비하라는 명령을 내린 후, 눈 깜짝할 사이 벌써 8일이 지났다. 그사이 잠복도 경성에서 돌아와 있었다.
이 여드레라는 시간은 넘칠 만큼 무리하던 사병들에게 드디어 휴식의 시간을 줬고, 그들은 그렇게 쉬면서 무기를 손질할 수 있었다. 또한 틈이 날 때면, 죽었으나 묻어주지 못한 전우를 추모할 수도 있었다. 그리고 때로는 그저 멍하니 생사를 알 수 없고 승패를 가늠할 수 없는 전쟁에 대해 생각해보곤 했다.
육역의 이 계책은 솔직히 유대유가 전혀 생각지 못한 것이었다. 계책은 지극히 간단한 것으로 적을 현혹시켜 긴장을 풀게 하고, 그 후 허를 찔러 공격한다는 것이었다.
그러나 이전 많은 전투로 보아, 왜구의 수비는 상당히 빈틈이 없었고, 산 위에는 각종 화기가 완비되어 있었다. 갑작스러운 맹공을 퍼붓는다 해도, 잠항을 손에 넣는 것은 결코 쉬운 일이 아니었다.
지금은 유대유가 장군 직위에서 이미 면직된 상황이나, 그는 여전히 군무를 보아야 했다. 만약 다시 잠항을 공격하지 않는다면, 아마 그다음 단계는 감옥행일 수도 있다.
그는 군영 안을 발길이 닿는 대로 걸었다. 그러다 부상자들이 거처하는 막사에도 가서 그들의 상황을 둘러보았다. 왕숭고는 마침 약재들을 가져오며 부상자 사이에 앉아 한담 중이었다.
유대유의 엄격하고 신속한 일 처리 방식과 달리 왕숭고의 성격은 매우 부드러웠다. 병사들이 보기에 유 장군은 높디높은 곳에 있어서 매우 권위가 있으나 왕 부사는 그들과 일상 얘기로 한담을 나눌 수 있는 사람이었다.
“장군.”
왕숭고가 웃으며 그를 불렀다.
그들에게 다가간 유대유가 주위 병사들에게 그대로 있으라는 손짓을 하고, 자신도 아무 곳에 털썩 앉았다.
“방금 제가 무슨 말을 좀 들었는데요.”
왕숭고가 다리에 부상을 입은 옆쪽 병사를 입술을 삐죽여 가리켰다.
“장군께선 저 병사가 어찌 군영으로 돌아왔는지 맞춰보시겠습니까?”
유대유가 그를 힐끔 보았다.
“업혀 돌아왔나?”
왕숭고가 웃으며 말했다.
“육 대인의 말로 돌아왔답니다.”
“육역?”
“그렇습니다. 그가 우리 군영으로 오던 그 날, 길에서 후퇴하는 저들을 만났는데, 육 대인이 자신의 말과 수행하던 이의 말 전부를 병사들에게 내주었답니다. 그리고 본인은 걸어왔고요. 한 시진 이상을 걸었다더군요.”
유대유는 정신이 멍했다. 이건 그의 생각을 벗어난 일로 육역이 말한 적도 없었다.
왕숭고가 그런 그의 어깨를 토닥거렸다.
“허심탄회하게 말해 요즘의 그는 군영 안에 있지만, 먹는 것, 자는 것 하나 그의 불평을 들은 적이 없습니다. 충분히 인내심을 갖고 기다리고 있으니, 장군도 온종일 그를 못마땅하게 좀 보지 마십시오.”
“됐어. 나도 생각이 있어.”
유대유가 한숨을 내쉬었다.
“그가 만약 이 계획을 성공시키면, 나는 그를 보살로 생각해 공경할 거야. 아침저녁으로 지극히 예를 갖추고, 저녁에는 향도 하나 피워주지.”
왕숭고의 커다란 웃음소리가 막사를 울렸다.
* * *
밤이 되어 누군가 육역의 창 앞에서 가볍게 몇 번 두드렸다. 잠시 후 창문 틈으로 두께가 지극히 얇은 서신 한 통이 밀려 들어왔다.
잠복이 쫓아 나가려고 했으나, 육역이 막았다. 서신을 집어 든 그는 창을 사이에 두고 조용한 음성으로 말했다.
“다치지 않았나?”
육역이 창문을 여니, 밖은 이미 아무 소리도 없이 고요했다. 달빛만 쏟아지는 하늘 아래, 남색 저고리 자락이 이미 먼 곳에서 춤을 추듯 펄럭거렸다.
“대공자, 누구입니까?”
잠복의 의아함에 육역은 빙긋 웃었다.
“반가운 친구로구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