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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의지하 (169)화 (169/224)

169화

묵직하게 드리워진 밤의 어둠 속에서 사소는 소리도 없이 배를 한 바퀴 돌렸다. 그렇게 동삼의 배를 피한 뒤 접선자의 배를 향해 곧장 추격해 갔다.

물살을 탄 그 배는 속도가 매우 빨랐다. 급하게 쫓아가던 사소는 점차 물소리도 신경 쓸 겨를이 없었다. 배를 몰고 있는 이는 이미 알아차린 듯 몇 번이나 뒤를 돌아보며 배의 속도를 더욱 높였다.

“그가 알아챘어. 빨리!”

이미 들킨 이상, 잠수도 즉시 노 하나를 들어 맹렬히 저었다. 노가 없는 금하 또한 뱃전에 기대어 온힘을 다해 손으로 물을 저으니, 커다란 물소리는 끊임없이 콸콸 울리고, 작디작은 배는 수면 위를 나는 듯이 달렸다.

이내 두 배의 거리는 3장도 채 떨어지지 않았다. 순간 그쪽 배의 사람이 돌아서 오른손을 높이 흔들었다.

“조심해!”

눈썰미가 예리한 잠수가 다급하게 고함을 질렀다.

사소는 반응이 매우 빨라 암기가 허공을 가르는 소리를 듣자마자 노를 들어 막았다.

타닥!

소털만큼 가는 암기가 순간 나무로 된 노 가운데 정확히 박혔다.

그때, 잠수는 내력 실린 배의 노를 그 사람의 등을 향해 정확히 던졌다. 이 일격은 효과가 매우 커 상대는 고통스런 비명을 지르며 선실로 엎어졌다. 노를 젓던 사소가 배를 바짝 접근시킨 사이, 배 안으로 몸을 날린 잠수는 일어나지 못하는 그놈을 단숨에 제압해 버렸다.

“고개 돌리지 못하게 하고, 입안에 암기 물고 있는 거 조심해야 해요.”

금하도 맞은편 배로 뛰어올랐다. 지난번 아예가 당했던 일을 기억한 그녀가 급히 잠수를 경계시켰다.

“알았어. 보면 알지.”

그놈의 뒷덜미를 붙든 잠수가 살짝 힘을 줘 누르니, 갑자기 헛구역질 소리가 나고, 땅땅하는 소리도 몇 번 들렸다. 과연 그자의 입안에서 가는 침 3개가 토해져 나왔다.

“역시 악독한 놈이었어!”

잠수의 어조는 매서웠다.

사소도 배의 밧줄을 잡고 뛰어 올라왔다. 왜구가 토해낸 가는 침을 보고는 조금 전 일이 떠올라 성질을 죽이지 못했다.

“이 자식이!”

분노가 극에 달한 사소는 왜구를 향해 마구 발길질을 해댔다.

“감히 암기로 본좌를 노려! 죽고 싶어 환장했지, 어!”

순간 고개를 홱 든 왜구가 동양어를 중얼중얼 줄줄이 내뱉었다. 순간 세 사람의 눈이 일시에 휘둥그레졌다.

왜구의 입에서 무슨 단서라도 끄집어낼 거라 생각했건만, 그들 중에는 동양어를 할 수 있는 이가 없었다. 이건 정말 골치 아픈 일이다.

“모르는 척하지 마!”

사소가 또 발길질을 해댔다.

코는 푸르딩딩해지고, 얼굴도 부어오른 그는 다시 또 중얼중얼 동양어를 쏟아냈다.

고민으로 이마를 두드리던 금하가 문득 잠수에게 물었다.

“오라버니네 대공자는 이 말 알아들으시는데, 오라버니는 못해요?”

잠수가 난처한 얼굴로 고개를 저었다.

“당장 어쩌지?”

사소가 물었다.

금하는 손을 내저으며 결단을 내렸다.

“때려 기절시켜요. 우선 묶어서 데려가고 다시 얘기하죠!”

온 별원을 샅샅이 찾아도 동양어를 할 수 있는 사람은 전혀 없었다. 그래서 왜구는 묶어 두었지만, 그는 그들의 물음에 대답할 수 없었고, 헛되이 밥까지 축냈으니, 실로 사람을 안타깝게 만들었다.

금하와 잠수는 반나절을 상의한 후, 마지막으로 이 일을 이곳에 주둔한 척 장군에게 보고하기로 결정했다. 척 장군은 왜구와 오랫동안 싸웠으니, 군에는 동양어를 하는 이가 분명 있을 터였다.

두 사람은 그 길로 군영으로 갔으나 군영 밖에서 저지당했다. 그리고 바로 알게 된 것은 척 장군은 군대를 인솔하여 태주로 갔고 언제 돌아올지 알 수 없다는 사실이었다.

“그럼 지금 성안에서는 누가 업무를 주재하십니까?”

잠수가 물었다.

“성안의 일이면 당연히 관아로 가야 합니다.”

금하가 물었다.

“만약 왜구의 종적을 발견했다면요? 관아 분들은 한계가 있고, 일이 많아 관심 두지 않을까 염려됩니다.”

군영 문을 지키던 부사관이 잠시지만 골똘히 생각했다.

“척 부인이 판단을 내리실 수 있으니, 그분께 보고해도 무방합니다.”

“척 부인?”

금하는 어리둥절해졌다.

“오라버니께서 말씀하시는 분이 척 장군의 부인이세요? 그분이 왜구의 일을 다루실 수 있으십니까?”

일개 여인에게 보고라니. 잠수는 본능적으로 미간을 찡그리고, 매우 황당해졌다.

그들이 이런 반응을 할 거라고 미리 예상이라도 한 것처럼 부사관이 웃으며 말했다.

“여러분은 절 믿으십시오. 지금 성안에서 결정권을 가질 수 있는 이, 감히 결정할 수 있는 이는 척 부인뿐입니다.”

금하와 잠수는 반신반의하며 부사관에게 척 부인이 있는 곳을 자세히 물었다. 다행히 근처로 찾아가는 것도 오래 걸리지 않았다.

척 가의 문을 두드린 후, 계집종이 나와 문을 열었다. 그녀는 겁내는 기색 하나 없이 그들을 살폈고, 잠수와 금하의 요패를 받고서도 자세히 들여다보았다.

“금의위와 육선문…….”

계집종이 요패를 그들에게 돌려줬다.

“두 분 잠시 기다리십시오. 제가 먼저 부인께 보고하겠습니다.”

“수고를 끼칩니다.”

금하가 예의 있게 말했다.

문이 다시 닫힌 후, 금하는 잠수를 보며 고개를 저었다.

“봤어요? 아래 계집종까지도 자태가 늠름하고 싹싹하네요. 이 척 부인은 분명 보통 사람은 아니에요.”

잠수는 여전히 눈살을 찌푸렸다.

“보통이 아니라 해도 여자일 뿐이야. 이 왜구 건은 예삿일이 아닌데, 여자가 무슨 대책이 있을 수 있어. 나는 부인이 척 장군에게 속히 연락하기를 바랄 뿐이야.”

“여자 얕보다가 큰코다쳐요, 오라버니.”

금하는 싱글싱글 웃었지만, 잠수는 말 상대하지 않고 그저 흥 소리를 냈을 뿐이었다.

잠시 후, 그 계집종이 다시 문을 열고, 그들에게 말했다.

“부인께서 들어오라십니다. 두 분 저를 따라오십시오.”

이곳은 아마 척 장군이 신하성에서 머무는 숙소일 터이고, 단출한 작은 주택으로 순우 어르신의 별원보다 크지도 않았다.

계집종을 따라 내당으로 들어서니, 소매통이 넓은 자줏빛 비단 상의와 긴 주름이 잡힌 치마를 입은 젊은 부인이 탁자 앞에서 바쁘게 움직이고 있었다. 그녀 앞의 커다란 팔선탁 위에는 장총의 머리, 낭선(*18반 무예 중 하나.)의 선두, 그리고 칼 등의 물건이 가득 놓였고, 번뜩이는 무기의 냉랭한 기운은 보는 이의 몸을 덜덜 떨게 하기 충분하였다.

“부인, 오셨습니다.”

계집종이 보고했다.

젊은 부인은 검을 들어 계속 닦고 있다가 이 말에 시선을 들었다. 그들을 바라보며 담담하게 말했다.

“두 분 앉으시죠. 차를 내오너라.”

누구라 한들 육선문의 포쾌가, 그것도 금의위와 함께 찾아온다는 것은 좋은 일일 거라고 생각하진 않는다.

잠수는 탁자 위의 예리한 칼날을 보고서야 눈앞의 이 척 부인이야말로 보통이 아닌 사람이라고 뒤늦게 깨달았다.

“척 장군의 원앙진(*중국 고대 진법의 하나.)이 매우 대단하다고 들었는데, 장총과 낭선을 쓰시는군요.”

큰 흥미를 느낀 금하가 탁자 위의 무기를 바라보았다. 들고 있던 요도를 칼집에 넣은 척 부인이 금하를 향해 싱긋 웃어 보였다.

“아가씨는 경성 사람이면서 원앙진도 아십니까?”

“네, 저희 대장은 척 장군께서 개량하신 원앙진을 매우 높게 평가하시죠. 일찍이 저희에게 원앙진의 여러 가지 변화에 대해 말씀하신 적이 있어요. 시가전에 적용하는 오행진과 추격과 돌격이 가능한 삼재진 같은 것이죠. 저희는 척 장군께 깊은 감명을 받았습니다.”

금하를 흘끔 본 잠수는 속으로 감탄해 마지않았다.

진정 아부가 경지에 이르렀구만.

과연 척 부인이 그들을 대하는 안색이 많이 부드러워졌다.

“듣자니 아가씨는 육선문의 포쾌이고, 이 관리께서는 금의위라고요. 이렇게 찾아오신 것은 무슨 중요한 일 때문입니까?”

“실은…….”

금하는 매우 조리 있게 일의 전후 사정을 척 부인에게 설명했다. 항주성 밖에서 동삼을 만났던 것부터 다시 신하성에서 어떻게 그를 미행했는지까지, 그녀의 말은 상당히 자세했고, 척 부인의 미간은 들을수록 잔뜩 찌푸려졌다.

“부인 쪽에 혹시 동양어를 할 수 있는 이가 있거나, 동양어를 할 줄 아는 이를 찾을 방도가 있는지요?”

이야기의 마지막 즈음에 잠수가 물었다.

척 부인이 빙긋 웃었다.

“제가 동양어를 할 줄 아니, 제가 그자를 심문하죠.”

이번에는 잠수뿐 아니라 금하도 살짝 놀랐다.

“부인도 동양어를 할 줄 아세요?”

“제가 장군을 따라 여러 해를 왜와 싸우다 보니, 동양인과의 왕래가 매우 잦았죠. 소위 지피지기해야 백전백승할 수 있다잖습니까. 그래서 특별히 교습 선생을 불러 동양어를 배웠습니다.”

척 부인이 일어나 말했다.

“두 분 잠시 앉아 계시죠. 제가 옷을 갈아입고, 여러분을 따라가겠습니다.”

“감사합니다, 부인!”

금하와 잠수도 서둘러 일어서 예를 갖췄다.

척 부인이 내당을 나간 후, 금하는 잠수에게 눈을 찡긋거렸다.

“어때요? 내가 이 척 부인은 보통이 아니라고 했죠?”

여자가 왜와 싸우는 남편 때문에 자신은 특별히 동양어를 배웠다니. 이건 확실히 보통 여자가 할 수 있는 일은 아니다.

잠수는 말없이 고개를 끄덕일 수밖에 없었다.

“근데 오라버니네 대공자는 어떻게 동양어를 해요?”

금하의 호기심 서린 질문에 잠수는 한숨을 내쉬었다.

“어르신은 대공자에 대한 요구가 높으셔. 동양어 외에도 조선어, 몽고어도 배우셨어.”

“다행히 그분은 타고난 자질이 총명하죠. 나였으면 죽도록 고생만 하고 머리엔 남지도 않았을 걸요.”

금하가 연신 감탄하자, 잠수가 웃으며 그녀를 놀렸다.

“대공자는 지금 여기 안 계시니, 넌 아부할 필요 없다.”

“오라버니, 아부 이런 일은 사람이 있거나 없거나 가리지 말고, 기회를 잡으면 무조건 해야 해요.”

금하는 당당함이 가득한 얼굴로 그를 가르쳤다.

잠수도 말로는 그녀를 못 이긴다는 것을 진작 알고 있어서 이번에도 졌다며 손을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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