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65화
“너 이 사람 알아?”
한숨을 내쉰 금하는 간단하게 요약해 설명했다.
“그는 중상을 입었고, 육 대인이 구하셨어. 그는……, 얼굴 때문에, 오빠네가 알기를 원치 않았어. 그래서 계속 오빠와 상관 언니를 속이게 된 거야.”
사소는 그제야 손을 놓고 불만스러운 어조로 입을 열었다.
“어쩐지. 이 자식이 무슨 꿍꿍이 있는 것처럼 우릴 계속 지켜보더라니까. 바로 무슨 문제가 있는 걸 알고 있었다.”
“상처는 거의 다 나았어. 원래도 며칠 안에 알리려 했었어.”
금하가 한 마디 보충했다.
“그……, 그분께 알리지 마요.”
아예는 너울모자를 주워 다시 썼다. 어조에 묻어난 떨림은 감추지 못했다.
“왜? 내가 말해 줄까? 우리 누나는 누군가에게 속는 거 정말 싫어해.”
아예의 상흔이 매우 흉악한 것은 조금 전 보아 사소도 알고 있었다. 고통을 심했을 거라는 생각으로 그 또한 조금 전의 일을 따지지 않고, 아예의 어깨를 토닥거렸다.
“괜찮아. 누나가 네가 아예란 걸 알면, 분명 매우 기뻐할 거야. 양주에서 네가 여러 날 실종되고, 누나는 많은 사람을 움직여 널 찾았어. 그 때문에 소금방 애들 신세까지 졌다. 네가 말해 봐라. 계속 이렇게 누나 속일 거야? 이건 누나한테 면목이 서냐?”
“난 그분에게 죄송할 뿐입니다.”
아예의 목소리는 매우 낮았다. 더는 말하고 싶지 않아 너울 모자를 꾹꾹 눌러쓰고는 급하게 자리를 떴다.
영문을 모르는 사소만 그의 뒷모습을 바라보고 있었다. 그런 후 그는 금하를 향해 돌아섰다.
“저 말이 무슨 의미야? 누나한테 무슨 미안한 일이라도 했냐?”
다시 이 일을 끄집어내면, 이 식사는 아마 끝이 나질 않을 거다.
금하는 한숨을 내쉬었다.
“오빠, 우리 우선 밥 먹자. 다른 일은 다시 얘기해, 응?”
“안 돼!”
역시 사소는 끝까지 물고 늘어졌다.
“이 일을 분명히 말하지 않으면 누가 밥을 먹을 수 있겠어.”
“난 먹을 수 있어.”
금하는 유달리 간절하게 그를 바라봤다.
사소는 이제까지 부드럽게 대하면 받아들이고, 강하게 나오면 반발하던 사람이라 그도 어쩔 수 없었다.
“먹으면서 말해.”
이때, 양악이 부엌에서 양념장을 들고 오고, 잠수는 그를 도와 어환탕을 들고 왔다. 순우민은 엎어지려는 둥근 걸상을 바로 세웠고, 금하는 여러 사람에게 밥을 퍼줬다. 개숙과 심 부인도 식사를 하러 들어왔다.
“개싸움 시작했냐, 앞날이 촉망되는군!”
개숙이 반쯤 떨어진 문짝을 보고 쯧쯧 혀를 찼다. 그 문은 아예에게 차였던 사소가 나가 떨어져 부딪힌 것이었다.
금하가 연이어 고개를 끄덕였다.
“물론이죠. 자고로 난세가 우리 같은 이들을 만든다잖아요……. 이모, 이건 제가 오늘 사 온 신선한 생선인데, 대양 솜씨가 좋아요. 이모는 특히 많이 드세요.”
심 부인이 설핏 웃었다.
“이따가 내가 고치면 됩니다. 큰일도 아니에요.”
사소가 금하를 재촉했다.
“넌 빨리 얘기나 해라.”
우선 밥을 몇 숟가락 뜨고, 또 반찬 몇 가지를 집어 금하는 씹으며 말하며 우물거렸다.
“이번……, 일은……. 거기……, 거기……. 도화……. 이 어탕 정말 맛좋다……. 나중에 그녀가 바로…….”
‘어환, 어탕, 생선튀김’ 등이 섞인 말 속에서, 사소는 가까스로 중요한 일을 조금이나마 알아들었다.
“네 말은 그러니까, 적란엽이 그에게 살해됐다고?”
양악은 옆에서 수저로 탕을 마시려 하고 있었다. 그런데 이 말에 그의 손은 갑자기 희미하게 떨려 탕을 거의 쏟고 말았다.
순우민이 그 모습을 가만히 지켜보고 있었다.
“그녀만이 아니야. 도화림에는 아직……, 여자 시신 세 구가 더 있어. 뱀한테 거의 다 뜯어 먹혔을 거야.”
금하가 어깨를 으쓱했다.
“아마 아예가 손을 썼겠지……. 후에 그도 죽는 것보다 못한 고통을 겪었다는 걸 생각하면, 정말 업보를 치른 셈이야.”
사소는 한참 뒤에서야 미간을 찡그리며 말했다.
“저 자식은 평소에 돌덩이처럼 말도 하지 않더니만, 저렇게 흉악해서는 여자까지 손댈 줄 생각도 못 했네. 난 쟤 계속 우리 누나 옆에 둘 수 없어. 너무 위험해!”
양악은 밥 한 그릇을 다 먹고 말없이 자리를 떴다.
“양 오라버니 왜 저래요?”
순우민이 금하에게 작은 소리로 물었다.
“어디 좋지 않은 것 같아요.”
금하는 뜰로 나가는 양악의 뒷모습을 보고는 괴로워하며 이마를 계속 두드렸다.
“큰일 났다. 이 일은 말하지 말았어야 했는데……, 이건 다 오빠 때문이야. 나한테 기어코 다 말하게 했어!”
사소는 영문을 몰라하며 그녀를 바라봤다.
“양악은 왜 저래? 이일이 그와 상관있어?”
“말 안 해, 말 안한다고…….”
금하는 밥도 먹지 않고, 서둘러 우선 양악을 위로하러 뛰어갔다.
부엌 바닥에 앉은 양악은 묵묵히 무에다 꽃을 새기고 있었다.
“대양?”
금하는 고개를 들이밀고 그를 바라보다가 이내 부엌으로 들어가 함께 주저앉았다. 그녀 역시 말은 하지 않았다.
“나 괜찮아. 걱정할 필요 없어.”
한참이 지나 드디어 양악이 그녀를 흘끔 보며 입을 열었다.
“……네가 아예를 용서할 수 있어서, 나는 네가 이 일을 이미 마음에서 지웠는 줄 알았어.”
금하가 낮은 음성으로 말했다.
양악은 말없이 조각칼로 무에 세밀한 조각을 새겨넣고 있을 뿐이었다. 한참이 지나서야 그가 조용히 말했다.
“방금 나는 내가 그녀의 모습을 잘 기억 못 한다는 걸 깨달았어.”
금하가 생각을 해보고는 진지함을 가장했다.
“난 아직 기억해. 내가 그림 그리는 게 좀 모자라긴 하지만, 너만 괜찮으면 그녀 초상화 그려 줄게.”
그녀가 일부러 농담한다는 것을 알고 있어 양악은 웃어 보였다.
“난 생각했을 뿐이야. 이렇게 한번 만난 것도 기억하고 있으면, 아예 배후의 그 사람을 법으로 제재할 수 있는 그 날이 언젠간 올 거라고……. 넌 알지. 그녀에 대해서는 처음부터 끝까지 나 혼자만의 생각이었어. 그녀는 결코 내게 어떤 감정도 없었어.”
“하지만 넌 마음을 다해 그녀를 도와줬잖아. 그녀도 속으로는 네가 좋은 사람이란 걸 알고 있었을 거야.”
금하가 고개를 갸웃 기울여 그를 바라봤다.
“넌 정말 좋은 사람이야.”
양악이 자조적으로 웃어 보였다.
“가끔은 내가 매우 무능하다고 느낄 때가 있어. 무엇도 하지 못했지. 그녀도 구하지 못하고, 그녀 대신 복수할 방법도 없고, 심지어 그녀를 죽인 당사자와도 나는 얼굴을 맞대고 함께 생활하고 있고.”
금하는 신중한 표정으로 그를 바라봤다.
“대양, 그건 무능한 게 아니야. 네가 아예를 용서할 수 있는 건 그도 불쌍하게 버린 수였을 뿐이라는 걸, 바둑돌을 놓는 다른 사람이 있다는 걸 알고 있기 때문이잖아. 이건 사리를 이해한다고 하는 거고, 이런 신념은 모든 사람이 다 갖고 있진 않아. 대장이 아셨다면, 속으로라도 분명 기특하다고 하셨을 거야.”
“나 그렇게 좋은 사람 아니야.”
양악이 고개를 저었다.
“아마도 결론적으로는 그녀에 대한 내 마음이 부족해서 그런 것 같기도 해.”
“마음이 부족한 게 아니라, 연분이 부족한 거지.”
금하는 스스로도 조금은 멈칫해졌다.
“하지만 인연 이런 건 정말 강요할 수 없더라. 너도 어른이 됐는데, 네 부인은 대체 언제 만날 수 있을까? 어쩌면 너도 이미 만났는데, 네가 모르는 걸 수도…….”
양악은 그녀의 말재주를 감당할 능력은 없었다.
“또 아무 말이나 하지.”
부엌 밖의 담 모퉁이에서 무슨 소리가 들렸다. 잠수나 개숙일 거라고만 생각한 금하는 눈썹을 세우고 소리를 버럭 질렀다.
“누군데 귀신처럼 몰래 담벼락에 붙어 듣고 있어?”
그러나 들어온 이는 생각 밖으로 순우민이었다. 그릇을 쌓아 들고 있던 그녀는 미안함이 가득한 얼굴과 부드러운 목소리로 조용히 얘기했다.
“미안해요. 식기를 들고 왔는데, 얘기 소리가 들렸어요. 방해될까 봐 밖에서 잠시 기다리고 있던 거예요.”
“괜찮아요. 제가 웃자고 한 소리니, 마음에 두지 마세요.”
금하는 후다닥 일어나 그녀가 들고 있는 그릇을 받았다. 재빨리 우물가로 가서 물을 길어 설거지를 시작했다.
양악도 일어섰다. 무를 내려놓은 그가 순우민에게 미안해하며 자연스럽게 웃었다.
“두 선배님도 식사하셨어요?”
순우민이 고개를 저었다.
“상관 당주 상처에 문제가 생겼대요. 심 부인은 다 드시지도 못하고 급히 가셨어요.”
“상관 언니가 어떻다고요?”
금하의 귀는 예민해서, 설거지하면서도 그들의 말을 들을 수 있었다. 그녀가 우물가에서 목소리를 높여 물었다.
“사 대협이 그분과 무슨 얘기를 한 것 같기도 하고요. 아금 아니면 아예란 분과 관련된 일 같기도 하고……, 저도 잘은 모르겠어요.”
순우민은 그들 사이의 강호, 관료사회, 파벌 등의 어지러운 사정은 사실 잘 이해할 수 없었다.
이 말에 양악은 손을 들어 이마를 짚었다. 저절로 한숨이 나왔다.
“사가 오빠는 정말 쓸데없는 말을 많이 해!”
금하는 젖은 손을 허리에 얹으며 연이어 한숨을 쉬었다.
“상관 언니가 만약 아예를 첩자로 취급하면, 아예는 죽고 싶을 텐데. 사가 오빠도 참나, 그걸 조금도 마음에 담아두질 못하네. 이틀도 못 기다리고 바로 말해?”
그 자리에서 잠시 섰던 금하는 생각해 보니 마음을 놓을 수가 없었다.
“대양, 넌 가서 아예 좀 보고 있어. 그가 바보 같은 짓을 할 가능성이 커. 나는 상관 언니를 가서 좀 볼게.”
그녀와 양악이 급하게 달려갔다.
순우민은 이 일에 자신이 어떤 도움도 줄 수 없다는 걸 알았다. 조용히 우물가로 가서 웅크리고 앉아 설거지를 시작했다.
금하가 상관희의 문밖에 도착했을 때, 사소는 방문을 가로막고 들어가지 말라는 손짓을 했다. 금하는 이내 돌아서 아예의 방으로 향했다. 그런데 개숙과 잠수가 아예의 방에서 나와 그녀에게 또 들어가지 말라는 손짓을 했다.
“대체 무슨 일이에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