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60화
성지를 받은 후부터 잠항에 대한 공격은 더욱 잦아졌다. 명군이 거의 밤낮으로 공격했으나, 성과는 매우 미미하였다.
유대유는 연일 작전을 지휘하여 수일 동안 군영으로 돌아오지 않았다. 육역은 군영에 머무르며 끊임없이 돌아오고 있는 부상병만 볼 수 있을 뿐, 참장 하나 찾으려 해도 찾을 수 없었다.
육역은 대막사에서 군사 자료를 보는 것 외에, 부상병으로부터 전선의 상황도 들었다. 왜적은 잠항을 공격하는 길 위에 겹겹이 저지선을 설치했는데, 육역은 전황에 대한 이해가 깊어갈수록 미간은 더욱 깊게 일그러졌다.
“대공자, 저희 여기서 이미 이십 일 가까이 머물고 있습니다.”
잠복이 그에게 상기시켰다.
여전히 해안방비도를 보고 있던 육역은 잠복이 계속 말하는 것을 제지하고 지시했다.
“잠복, 너는 군영 입구에서 지키고 있다가 유 장군이 돌아오자마자, 바로 보고해.”
“대공자 무슨…….”
“아무것도 묻지 말고 빨리 가거라! 반드시 유 장군과 상의해야 할 중요한 일이 있다.”
잠복은 감히 다시 묻지 못하고 명령을 들을 수밖에 없었다.
한나절이 지나서 잠복은 기다리던 유대유 대신 왕숭고를 데리고 왔다. 모습을 보아하니, 왕숭고도 이제 막 전장에서 돌아온 것으로 얼굴은 온통 화약 냄새가 가득 묻었고, 옷은 몇 군데가 찢어져 있었다.
“육 첨사, 제가 이 아우님이 계속 유 장군을 기다리고 있는 것을 보았습니다. 이쪽에 급한 일이 있나 걱정이 되는군요.”
본인의 상황과 달리 그래도 왕숭고의 어조는 매우 온화했다.
“장군께서는 근래 갑옷도 벗지 못하신 채 줄곧 전선에서 전투를 독려 중이시라 언제 돌아오실지는 저도 말하기 어렵습니다. 유 장군께서 일전에 제게 분부하여 첨사께 식사 대접을 하라하셨죠. 제가 마음으로 늘 생각하고 있으나, 보다시피 전투가 그치지 않아 틈을 낼 수가 없으니, 절대 책망치 말아 주십시오.”
“왕 부사. 천만의 말씀을요.”
육역이 잠복에게 차를 따르라고 눈짓했다.
“전선의 상황은 어떠합니까?”
왕숭고가 고개를 저었다.
“저도 첨사께 숨길 필요가 없지요. 상황이 매우 급박합니다. 이 왜구들이 교활하기 짝이 없습니다. 며칠 전 큰비가 내렸고, 그들이 산 위에 제방을 쌓아 물을 가뒀습니다. 아군이 저지대로 들어간 틈을 타 그들은 제방을 열어 물을 방류하여 많은 장병이 익사했습니다.”
“이렇게 어려운데, 왜 철수하여 정비하지 않습니까?”
육역이 물었다.
“잠항 안에 남은 왜구의 수는 사실 많지 않습니다. 장군의 처음 생각은 기세로 밀고 들어가는 것으로 왜구에게 숨 쉴 틈도 주지 않고 잠항을 점령하는 것이었습니다만…….”
“외람되지만 솔직히 말씀드리자면, 왕직이 죽고, 모해봉은 가슴에 한을 품었습니다. 그는 결코 도망가고 싶어 하지도, 이기고 싶어 하지도 않습니다. 더 많은 명군이 잠항에서 죽기를 바라며 복수를 하는 중입니다!”
육역이 가라앉은 음성으로 말했다.
왕숭고는 순간 얼이 빠졌다. 산 위에, 좁은 길 위에 누워 있던 사병들의 시신이 하나하나 그의 눈앞에 떠올랐다. 겹겹이, 또 겹겹이 쌓였고, 선혈은 스며들어 흙을 적셨다.
육역이 계속 말을 이었다.
“저는 모해봉의 자료를 자세히 살폈습니다. 그의 작전방식을 대략이나마 파악했고, 몇 번의 전투에 쓰인 화약 소모량도 계산했습니다. 잠항의 화약 비축분으로는 모해봉이 이런 공격을 버티기에는 절대 부족합니다. 그에게는 무기와 탄약을 운송하기 위한 그들만의 통로가 분명히 있을 겁니다.”
“통로가 있다면, 그는 왜 도망가지 않습니까?”
왕숭고는 말을 내뱉자마자 깨달았다.
모해봉은 분명히 도망갈 수 있었다. 그러나 그는 도망가기는커녕 오히려 온갖 수를 다 짜내어 잠항에 각양각색의 함정을 깔았다. 그러니 그의 질문에 대한 답은 육역이 이미 말한 것으로, 그는 더 많은 명군을 끌어들이기 위해, 더 많은 명군을 잠항에서 목 졸라 죽이기 위해 도망가지 않는 것이었다.
“귀하는……, 이걸 어떻게 파악하셨습니까?”
그의 눈앞에 있는 이는 아직은 새파랗게 젊은 첨사였다. 왕숭고는 문득 자신과 장군 모두 육역을 과소평가하고 있었음을 깨달았다.
“소위 당사자는 알지 못해도, 구경꾼은 명확히 안다고 하지요. 게다가 유 장군께는 잠항 공격이 가장 중요한 일이 되었고 매우 무거운 부담을 지고 계시죠.”
육역이 잠시 말을 멈췄다가 이었다.
“죄송하지만 직언을 하자면, 지금 장군께서 이렇게 밤낮으로 공격하는 것은 사실 모해봉의 의도에 딱 들어맞는 것입니다.”
“귀하의 말씀이 맞습니다.”
이를 악문 왕숭고는 일어나 육역에게 공수하고는 빠르게 떠났다.
* * *
연이은 작전으로 사병은 견디지 못할 정도로 피로한 상태였고, 손실이 심했다. 그에 더해 왕숭고도 열심히 권유하였으니, 결국 유대유는 다음날 이른 아침 군대를 철수시키고 재정돈을 위해 군영으로 돌아왔다.
그러나 군영에서 유대유를 기다리고 있던 것은 또 다른 성지였다.
지금 성상은 성격이 조급한 이로, 한 달의 기한이 되지도 않았건만, 그는 유대유의 총병직을 거두어 버렸다. 당연히 그 아래 장수들도 피할 수 없어 총병 이하 모두 면직을 당한 것이다.
그러나 성상은 가까스로 약간의 틈을 두어, 성지 말미에 유대유 등 사람들이 공을 세워 속죄하기를 요구했다. 만약 잠항을 함락시키면, 그들의 관직을 복직시킨다는 것이었다.
이 성지를 본 유대유는 울지도 웃지도 못했다. 매일의 전투로 그는 몸과 마음이 지쳐 말조차 하고 싶지 않았고, 손을 내저어 장수들을 흩어지게 하고는 무거운 발을 끌며 대막사로 돌아갔다.
“장군!”
대막사에서 그를 오래도록 기다리던 육역이 일어섰다.
안색이 무겁게 가라앉은 유대유는 육역을 보았지만, 한마디도 하지 않고 그의 옆으로 비켜 갔다. 마치 그를 전혀 보지 않은 것처럼.
아무리 무슨 말을 한다 해도 유대유는 십여 일을 연이어 싸운 사람이었다. 피로한 것은 이해할 수 있었고, 육역은 그의 태도를 전혀 문제시하지도 않았다.
“장군, 제가 해안방비도를 자세히 검토했는데, 서쪽에 매우 의심 가는 곳이 한 곳 있습니다. 분명 빈틈이 있을 겁니다.”
유대유는 치밀어 오르는 화를 있는 힘을 다하여 누른 채 들고 있던 성지를 높이 들어 그의 말을 중지시켰다.
“이 일, 틀림없이 육 첨사는 진작에 알고 있었지?”
육역은 그렇다고 인정할 수밖에 없었다.
“한 달의 기한이 채 되지도 않았는데 성상께서는 내 직위를 파하셨지.”
유대유가 그를 바라보며 느린 음성으로 말했다.
“이일이 자네와 관계가 있나?”
육역은 순간 멈칫했다. 문득 유대유가 오해하고 있음을 깨달았다.
“제가 없다고 말씀드리면 장군은 믿으시겠습니까?”
그가 반문하자, 유대유는 냉소했다.
“육 첨사의 말에 내 어찌 감히 토를 달겠소? 게다가 나는 지금 막 파직이 되어 장군이라는 이 두 글자에 실로 몸 둘 바를 모르겠소. 이곳은 절이 작아, 귀하 같은 큰 부처를 제대로 모시지 못하여 근래 육 첨사를 섭섭하게 했소. 그래, 육 첨사는 언제 경성으로 돌아갈 생각이시오?”
유대유가 봤을 때, 그는 전방에서 죽기 살기로 싸우고 있는데, 육역은 오히려 뒤에서 은밀한 모함을 해 성상에게 그의 파직을 앞당기라 한 것이니, 당연히 그는 참을 수가 없었다.
“지금까지 저는 줄곧 잠항의 전황을 조사하고 있었고, 성상께는 아직 보고할 겨를이 없었습니다.”
육역은 원래 변명 같은 것을 하던 사람이 아니었다. 그러나 눈앞의 전쟁은 중요하여, 유대유가 자신의 제안을 듣게 하고 싶었다. 그러니 그도 지금은 변명하지 않을 수 없었다.
“성상도 조급하신 겁니다. 이 성지는 사실 그분께서 잠항의 대승을 급히 보시고자 장군께 재촉하는 용도입니다. 장군께서는 지나치게 신경 쓰실 필요가 없으십니다.”
유대유의 침울한 얼굴은 결코 그의 말을 믿지 않는 것이 분명해 보였다.
“육 첨사의 뜻은 이래도 계속 잠항에 남을 거라는 건가?”
“……저도 미력의 힘이나마 도움이 될 수 있기를 바랄 뿐입니다.”
육역이 말했다.
“나는 이미 전력을 다하였지. 나는 아직 군무가 남아 있어서…….”
유대유는 성지를 탁자 위에 무겁게 내려놓았다. 크게 손을 휘저어 육역에게 장막을 나가달라고 손짓했다.
“물러가겠습니다.”
유대유가 대노한 것을 직접 본 육역은 무엇도 그의 귀에 들어가지 않음을 알고 있었다. 그저 속으로 한숨을 내쉬고 물러날 수밖에 없었다.
“대공자, 파직은 그의 일입니다. 저희가 그의 이 좋지 않은 일에 무슨 상관이 있다고 그의 화를 다 받고 계십니까!”
잠복이 육역 대신 분노했다.
“닥쳐라! 네가 언제 이런 말을 입 밖에 낼 만큼 변하였느냐!”
육역의 어조는 깊게 가라앉았다.
잠복은 멍하니 굳어 더는 말하지 못했다. 그와 육역은 비록 주인과 노복의 관계였으나, 그는 어릴 때부터 육부에서 자랐고, 육역과 함께 커 왔다.
무공을 배우는 것, 노는 것 모두 함께 하였으니, 감정의 교감도 매우 두텁다고 할 수 있었다. 육역 또한 그들 앞에서 위세를 부린 적이 없었건만, 오늘처럼 이리 무겁게 질책한 것은 일찍이 한 번도 없던 일이었다.
육역이 그를 단호하게 꾸짖었다.
“무얼 일러 좋지 않은 일이라 하더냐…… 근래 너는 나와 군영에 있었으니, 잠항을 공격하기 위해 관병 사상자가 무수히 많은 것을 분명 보았을 것이다. 아니면 네가 금의위로 오래 있다 보니, 마음속에는 그저 조정 당파 간의 알력과 관리들끼리 서로 싸우는 것만 남아 무엇이 국사에 중요한지 완전히 잊었구나!”
퍽 소리와 함께 잠복이 무릎을 꿇었다.
“대공자, 제가 잘못했습니다!”
“넌 잠수보다 나이가 많고, 나는 지금껏 네가 그보다는 침착하고 사리를 안다고 생각했다. 그런데 언제부터 네 눈에는 나란 대공자만 남아 있고, 육가만이 남아서 다른 것은 전혀 보이지 않게 되었더냐.”
잠복은 몹시 부끄러워 그저 고개만 숙일 뿐이었다.
육역은 잠복의 뉘우치는 모습을 보고는 긴 한숨을 내쉬었다. 손을 내밀어 그를 일으켜 세웠다.
“일어나. 가서 왕 부사를 오시라 하거라. 유 장군은 내 말을 듣지 않으니, 왕 부사가 그에게 전해줄 수 있기를 바랄 뿐이다.”
“소관 바로 가겠습니다.”
잠복이 급하게 왕숭고를 부르러 갔다. 그리고 오래지 않아 왕숭고가 그를 찾아왔다.
비상시기였으므로 두 사람은 인사치레의 허례를 생략한 채 육역이 바로 얘기를 시작했다.
“제게 원래는 유 장군과 상의해야 할 일이 있습니다만, 유감스럽게도 그분이 성상께서 파직시키신 뜻이 저와 관련이 있다고 오해를 하시어, 제 말을 전혀 들으려 하지 않으십니다.”
성상의 뜻, 이것은 왕숭고마저도 피해가지 못했으니, 그가 쓰게 웃었다.
“근래의 매일 전투에 장군은 이미 며칠 잠을 못 주무셨습니다. 정신이 없는 상태에서 막 돌아왔는데, 공교롭게도 회영하자마자 파직의 성지를 받으셨으니, 빗나간 생각을 하시어 육 첨사를 오해하고 원망하신 겁니다. 장군을 대신하여 제가 사죄하니, 부디 양해해주시길 바랍니다.”
“무슨 말씀을요. 저는 왕 부사께 제 대신 해명해 주십사 청하려 했습니다. 어디까지나 전쟁 상황이 매우 긴박하니, 지금은 성을 낼 때가 아니지요.”
육역이 말했다.
“유 장군의 화가 좀 가라앉으시면, 잠항을 어찌 공격하는가에 대하여 저는 그와 얘기를 하고 싶습니다.”
왕숭고는 이 말에 크게 기뻐했다.
“혹시 잠항을 공격할 방법을 생각해 내신 겁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