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59화
아침을 다 먹었는데도 개숙은 보이지 않았다. 그러나 그는 본래부터 번개같이 나타났다 구름처럼 사라지는 인물이라 사람들도 이상히 여기지 않았다. 그가 시내를 한 바퀴 돌고 반나절 정도 지나면 돌아올 거라고 짐작했을 뿐이었다.
심 부인은 밥을 먹자마자 금하를 불렀고, 손수건 몇 장을 가져와 그녀에게 자수를 가르쳐 주겠다고 말했다. 금하는 깜짝 놀라 빠져나갈 무수한 핑곗거리를 댔지만, 전부 심 부인에게 속내를 들켜서 기어이 그녀는 온순하게 의자에 앉아야 했다.
“자수는 시작일 뿐이고, 다음으로 나는 네게 옷 재단을 가르쳐 줄 거야.”
심 부인이 바늘과 실을 그녀에게 건넸다.
“자, 실을 꿰어 봐.”
금하는 답답해했다.
“이모, 전 포쾌예요. 자수대도(*육소봉전기 소설 속 인물로 도둑이자 다른 신분이 포쾌.)가 될 것도 아니고요. 이건 배워도 쓸 곳이 없어요.”
“옷이 찢어졌는데, 너는 수선하지 않을 거야?”
“대양이 있잖아요.”
금하가 당연하다는 듯 말했다.
“아니면, 대양에게 가르쳐 주세요.”
심 부인은 미간을 찡그린 채 그녀를 바라봤다.
“장래 너도 부군이 생길 거고, 부군의 옷이 뜯어졌는데도, 넌 설마 양악에게 수선하라 할 테야? 넌 부군께 옷 한 벌도 만들어 주지 않을 거고?”
“……이모, 너무 멀리까지 생각하시는데요. 게다가 거리에는 옷 만드는 집들도 있어요. 안 되면 은자 주고 그들에게 옷을 만들라고 하면 되죠.”
“옷 만드는 가게서 짓는 것이 네가 직접 짓는 것과 같을 수 있니?”
심 부인은 조금도 물러서지 않고 그녀를 응시하며 말했다.
“빨리 실을 꿰거라. 오늘은 우선 간단한 걸 가르쳐 주마. 손수건 가장자리를 수 놓으면 돼.”
“한 쪽이 아니라 네 쪽 다 요?”
금하는 그 손수건을 이리저리 살펴보며 끝까지 버텼다.
“그리고 이 손수건은 너무 커요. 조금 작은 건 없을까요?”
심 부인이 유감스럽다는 눈빛으로 고개를 기울여 그녀를 보았다. 무슨 말을 하려는데, 그때 양악의 목소리가 들렸다.
“금하야, 네 아저씨가 아직 뜰에 서 계시는데, 식사하시라 불러도 대답을 안 하셔. 너 대체 그분께 무슨 얘기를 한 거야? 지금 꼭 귀신에 홀린 것 같다.”
양악의 말에 금하는 마치 대사면이라도 받은 것처럼 실과 바늘을 놓고 벌떡 일어섰다.
“제가 가볼게요!”
“그가 어쩌길래?”
개숙이 귀신에게 홀렸다는 말에 심 부인도 걱정이 되어 따라가 보았다.
뜰에 도착해 보니, 과연 양악이 말한 대로였다. 개숙은 조금 전 금하와 얘기하던 그 모퉁이에 여전히 서 있었다. 그대로의 자세, 어딘가를 응시하는 눈은 조금도 움직이지 않았다.
잠수, 순우민, 사소 전부 나와 개숙을 둘러싸고 있었다. 아예까지 나왔으니, 다리가 불편해 침상에서 내려올 수가 없는 상관희를 제외하고, 결국은 전부 다 온 것이었다.
금하가 사람들을 헤치고 나서서 습관적으로 손을 내밀어 그의 호흡을 확인했다. 그런 후 돌아서 사람들을 안심시켰다.
“괜찮아요. 아직 숨은 쉬세요.”
“쓸데 없는 소리. 내가 진작 확인했어.”
잠수가 말했다. 뒤이어 순우민이 추측한 바를 말했다.
“부정한 물건에 뭔가 씌이신 게 아닐까요? 내가 할머님께 들은 적이 있는데, 어떤 고택에는 항상 신선이 된 여우가 있대요.”
“그럴 리는 없어요. 우리 아저씨 무공이 얼마나 높은데 여우가 감히 어떻게 그분 몸에 씌어요.”
금하는 개숙의 모습을 세심히 살피면서도 줄곧 미심쩍어했다.
“내가 불러도 한참을 대답하지 않으셔. 전혀 듣지 못하시는 것 같아.”
양악이 걱정으로 미간을 찡그렸다.
“나는 감히 이분 건드리지 못한다. 공력이 높으신데, 만일 체내의 진기가 이리저리 돌아다니다가 잘못해서 주화입마하시면 어떡해.”
“강호에는 점혈 무공이 있다고 들었어. 사람의 혈도를 찍으면, 움직이지 못하게 할 수 있는 거지. 누구한테 점혈을 당하신 거 아닌가?”
언제인지 모르게 사소도 튀어나와 흥미진진해하며 추측했다.
그때, 아무 소리도 없이 가만히 있던 심 부인이 사람들을 헤치고 나왔다. 그리고는 개숙의 왼손을 들어 그의 식지 손가락 끝에 바로 침 한 대를 꽂았다.
“아, 아야!”
개숙은 악악 소리를 지르며 정신이 돌아왔다. 눈이 휘둥그레져 자신을 둘러싸고 구경하는 사람들을 어리둥절 바라봤다.
“너희 나 둘러싸고 뭐하냐. 원숭이 구경하고 있는 것 같잖아.”
그가 별일 없자, 안도의 숨을 내쉰 심 부인은 바늘을 챙기고 다시 방으로 돌아갔다.
“금하는 빨리 와서 계속 자수 연습해.”
“바로 갈게요!”
금하는 입으로 대답했지만, 발은 전혀 움직이지 않은 채 개숙의 옷소매를 꽉 쥐었다.
“아저씨, 보셨죠! 자수도 해야 해요! 대체 우리 이모를 언제 아내로 맞으실 거예요?”
흩어지려 하던 사람들도 이 말에 또 분분히 걸음을 멈췄다.
개숙은 머리를 긁적거리며 수심에 잠겼다.
“내가 방금 이 생각을 하고 있었거든. 나야 당연히 매우 열망하던 것이지. 하지만 저니가 어떻게 생각하는지를 몰라. 만일 저니의 감정을 상하게 해서 이후 나를 상대하지 않으면, 또 어떡한다니?”
“우리 이모가 아저씨께 그리 잘하시는데, 분명 이모도 원하시겠죠.”
금하는 열심히 그의 용기를 북돋웠다.
개숙은 머리를 딸랑이처럼 흔들며 매우 자신감이 없어 했다.
“저니가 내게 잘해주는 건 내가 예전에 자신을 도와줬다고 생각하기 때문이야. 너도 알잖니. 네 이모는 그때 시집을 가지 않았음에도 지금껏 망문과부로 지내왔단다. 이건 저니가 마음으로 늘 옛사람을 기억하고 있다는 걸 설명하는 것이야.”
“그럴 수 없어요. 이모는 그 사람을 아마 한 번도 본 적이 없었을 텐데, 어떻게 늘 기억하고 있어요.”
금하는 연신 고개를 저었다. 그녀는 돌아서 사람들에게도 물었다.
“다들 우리 이모가 아저씨한테 잘하신다고 생각하죠?”
모인 이들이 닭이 모이라도 쪼는 것같이 일제히 같은 모습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보세요!”
이미 계획이 다 서 있던 금하는 개숙의 어깨를 토닥거렸다.
“가보세요!”
“안 돼, 안 돼…… 너희 같은 어린 녀석들은 아무것도 모른다! 만일 저니를 화나게 하면, 나는 어떡하냐? 내 남은 생은 어떡해?”
개숙이 그들을 쫓아냈다.
“너희는 계속 여기 서 있으면 허리도 안 아프냐, 가! 가! 빨리 가!”
금하도 이제 별 도리가 없었다.
“이건 어떨까요. 아저씨가 차마 입을 열지 못하시니, 제가 대신 가서 이모의 의중을 좀 떠볼게요, 네?”
개숙은 기대의 눈빛으로 그녀를 바라봤다. 말은 하지 않았지만, 두 눈은 번쩍번쩍 생기가 있고, 희망, 기대, 고대 같은 것들이 담뿍 담겼다.
“좋아요. 아저씨는 더 말할 필요가 없이 제게 맡겨두세요!”
* * *
“이모, 우리 아저씨 어떤 거 같아요?”
금하는 얌전하게 손수건의 가장자리에 수를 놓으면서도 심 부인의 표정을 슬쩍슬쩍 보았다.
동시에 지붕에 엎드려 엿듣고 있던 개숙도 숨을 죽인 채 심 부인의 대답을 기다렸다.
“좋은 사람이지.”
심 부인의 대답은 지극히 간단했고, 바로 이어 금하가 놓은 자수를 가리켰다.
“바늘이 여기서부터 위쪽으로 나와서…… 그래, 바로 이렇게…….”
지붕에 함께 엎드린 사소와 잠수는 동정의 눈길로 개숙을 바라봤다.
금하는 바늘 몇 땀을 놓고는 이어서 물었다.
“아저씨가 이모를 아내로 맞고 싶어 하세요. 이모는 어떠세요?”
이 말에 개숙은 지붕에서 굴러떨어질 뻔하고, 속은 온통 쓰라림으로 가득했다.
금하 저 녀석은 의중 떠본다고 얘기해 놓고, 어떻게 직접 대놓고 물어봐? 다음에 다시는 네 녀석을 믿나 봐라!
심 부인은 한순간 멍해 있다가, 매우 빠르게 평소의 표정으로 돌아가 담담하게 물었다.
“그가 네게 물어보라 한 거니?”
“네. 이모도 우리 아저씨 배짱이 어떤지 아시잖아요. 이 문제에 대해선 그분은 생각만 해도 혼이 홀딱 나가시나 봐요. 정말 불쌍해 보이셨거든요. 그래서 대신 여쭤보는 거예요.”
저 녀석이 지금 날 팔고 있잖아!
개숙의 손안에서 청기와 조각이 소리 없이 가루가 되고, 그는 원망으로 이를 부득부득 갈았다.
옆에서 눈 빤히 뜨고 지켜 보던 잠수와 사소는 개숙의 내공이 이리 심후하리라고는 생각도 못했다. 서로 눈빛을 교환한 둘은 찍소리도 하지 못했다.
“왜 본인이 안 왔어?”
심 부인이 물었다.
“어떻게 그러시겠어요. 이모 감정상하게 하실까, 자신을 상대하지 않을까 얼마나 두려워하는데요.”
금하는 하고 있던 바느질을 멈추고 조금 더 진지하게 말했다.
“이모, 솔직히 말하면 우리 아저씨는 좀 더러운 거 빼고는 결점이 없으세요. 문무 둘 다 잘하시고, 이모께 온통 푹 빠져있으시고.”
“너 이번에는 그의 중재인이 된 거야?”
심 부인이 눈썹을 치켜 세웠다.
“아저씨가 어떤 분인지는 저보다 이모께서 더 잘 아시죠. 제가 중재인이 된다고 무슨 소용이 있어요.”
심 부인이 말없이 빙긋 웃자, 금하는 계속 물어야 했다.
“그럼 이모는 대체 어떠신 거예요? 하실 거예요?”
심 부인은 한참이나 말이 없었으니, 지붕 위의 개숙은 숨도 쉬지 못한 채 그녀의 대답을 기다리고 있었다.
금하가 그녀가 대답하지 않을 거라고 생각할 만큼 오래 지나고서야 심 부인이 작은 목소리로 탄식했다.
“네가 한 그 말들을 나는 계속 그가 물어주길 기다리고 있었어.”
한참이나 얼이 빠져 있던 개숙이 작은 소리로 사소에게 물었다.
“무슨 뜻이냐? 한다야, 아니면 하지 않는다야?”
잠시 망설이던 사소가 겨우 말했다.
“아저씨가 직접 가서 물으면 알지 않을까요?”
“저리 가!”
개숙이 이어서 잠수에게 물었다.
“무슨 뜻이냐?”
잠수는 잠시 침음하고, 신중하게 분석했다.
“그분 말씀의 요점은 사실 ‘계속’이라는 두 글자에 있습니다. 다시 말해 그분은 오랫동안 그분에 대한 선배님의 마음을 알고 있었다는 거죠. 그래서 두 가지의 가능성이 있는데요. 하나는 그분이 이제 이런 관계 다 드러내고, 선배와 혼인을 하시길 바라시는 거죠.”
개숙의 얼굴이 행복한 감정으로 가득해졌다.
잠수의 말이 계속 이어졌다.
“…… 다른 측면은 그분이 말할 때 한숨을 쉬셨죠. 그건 그분이 선배님과 분수에 맞지 않는다는 생각을 하지 말라고 정확히 얘기하고 싶다는 뜻입니다. 말과 행동은 적당히 정도를 유지하고, 도를 넘어서는 안 된다는 뜻이었죠.”
개숙의 안색이 좋지 않게 변했다.
“반나절을 얘기해 놓고도 말하지 않은 거랑 똑같아. 너희 둘 다 전혀 쓸모 없는 자식들이야!”
개숙은 큰 파리 같은 그들 둘을 쫓아 버렸다. 그도 조용히 지붕 기와를 복원하고는 몸을 훌쩍 날려 뛰어내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