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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의지하 (156)화 (156/224)

156화

“그녀는 나를 위해 왜구의 손에 목숨을 잃었어요.”

생사의 갈림길. 순우민은 벽아가 자신의 몸으로 그녀를 숨겨주었던 것을 똑똑히 기억했다.

“그랬군요.”

표정을 단정히 한 금하도 무덤 앞에서 절을 했다.

“약해 보이기만 했던 벽아 낭자에게 이런 의기가 있을 줄은 생각지 못했어요. 저도 매우 감복했어요.”

순우민은 천천히 일어나 주위를 다시 한번 둘러보았다. 어디에도 할멈의 모습이 보이지 않았다.

비록 적당한 때는 아니었지만, 금하는 그래도 순우민이 알고 있어야 한다고 생각했다.

“할멈이 보이지 않아요. 우리가 사방을 찾아봐도 종적을 찾을 수 없었어요. 내 기억이 틀리지 않으면, 아가씨가 가지고 왔던 귀중품 보따리가 할멈 쪽에 있었어요. 아마 아가씨한테 사고가 생겼다고 여긴 것 같고, 그때는 또 매우 혼란스러웠으니…….”

할멈은 귀중품을 갖고 홀로 도망을 친 것이다. 순우민은 잠시 침묵했지만, 책망의 기색은 전혀 보이지 않았다.

“그분이 아무 일 없으면 됐어요. 물건은 모두 별것 아니에요.”

이런 큰 혼란 속에서 누구나 이런 도량을 가질 수 있는 것은 아니다. 예전 금하는 순우민을 그저 성격 좋은 부잣집 따님으로만 생각했었다. 그러나 지금은 금하도 그녀에 대해 진정 높이 평가할 수밖에 없었다.

날은 이미 조금씩 어두워지기 시작했다. 나룻배에 앉은 금하는 배가 천천히 나루터를 떠나는 것을 바라보고 있었다.

“뭐 생각하냐?”

금하는 홀로 선미에 앉아 있었다. 그녀는 옷자락이 물에 젖는 것도 신경 쓰지 않을 만큼 정신이 나갔다. 다가온 잠수를 보며 금하는 한숨을 내쉬었다.

“소원을 빌었어요. 육 대인과 잠복 오라버니는 이런 일을 겪지 않기를…….”

“걱정 마라. 너 아니어도 그들은 겪을 일 없어.”

잠수의 조소에 금하는 언짢은 기색으로 그를 흘겨보고는 다시 근심에 빠졌다.

“물건을 얼마나 잃어버렸는지 자세히 점검해 봤어요? 은자는 얼마나 남았어요?”

조금 전의 그 대혼란 통에 그들이 나무 아래 놓아두었던 은량 보따리도 온데간데없이 사라졌다. 잠수가 마차를 팔아 이제 막 받아온 은자까지도 한꺼번에 사라진 것이다.

아무래도 누군가 혼란한 틈을 타 훔쳤을 텐데, 난민이 그렇게 많았으니 찾을 길이 없었다.

그러나 잠수는 지금도 은자가 얼마나 남았는지는 언급도 없이 그저 무표정한 얼굴로 말했다.

“순우 아가씨의 백부님이 신하성에 계셔. 게다가 큰 부호이신데, 우리를 홀대하진 않으실 거야……. 대공자와 우리 형이 올 때까지 기다리면 돼.”

“그냥 얻어먹고 있겠다고요?”

금하는 부끄럽다고 생각지는 않았으나 그래도 걱정은 되었다.

“우리한테는 부상자도 두 명이 있고, 아……. 이럼 정말 우리는 오래 있지 못할 수도 있어요.”

“정 안 되면 관역으로 가.”

“우리 아저씨와 이모는 관가 사람이 아니고, 상관 언니와 사소 오빠도 관가 사람이 아니에요. 관역에 저들을 어떻게 묵게 해요?”

금하는 잠수의 생각이 그다지 적당하지 않다고 생각했으나, 그는 흥 하며 비웃었다.

“금의위가 하는 일에 누가 감히 토를 달아?”

“너무 제멋대로네, 잠수 오라버니.”

금하가 쯧쯧 혀를 찼다.

“우리 육선문은 이렇게 억지 쓰며 일하진 않아요.”

* * *

해가 조금씩 지고 있었다. 강물 위에는 혼탁한 물결이 끊임없이 밀려와 뱃전을 두드렸다.

강을 건너 멀지 않은 곳이 신하성이었다. 성에 들어온 금하 일행은 순우민을 먼저 그녀의 백부댁으로 데려다주었다.

잠수는 금하와 양악 두 사람은 가진 것이 쥐뿔도 없다는 것, 다른 이들은 그에게 물어보기 어려워한다는 것도 알고 있었다. 그리고 그에게 남은 은자는 지금 그리 많지 않았다.

만약 이렇게 많은 인원이 객잔에 묵는다면 확실히 지출이 너무 커진다. 관역에 묵는 건 아예 때문에 또 불편했다. 그래서 그는 순우민의 백부댁에서 대공자와 잠복이 돌아올 때까지 며칠 빌붙을 생각을 하고 있었다.

날은 이미 저물었다. 몇 개의 거리를 돌고 돌아서야 그들은 순우민의 백부댁에 도착할 수 있었다. 양악이 나아가 문을 두드렸고, 한참을 기다리고서야 늙은 할아범이 나와 문을 열었다.

“서 할아범.”

순우민이 나서서 예의 바르게 그를 불렀다.

금하는 반쯤 열린 문으로 안을 들여다보았다. 그런데 집안은 어두컴컴하기만 할 뿐 이곳에 사는 가족은 없어 보여 은근히 느낌이 좋지 않았다.

눈이 침침한 서 할아범은 등롱을 들고 한참이나 순우민을 살피고서야 그녀를 알아보았다.

“아……, 둘째 아가씨이시군요?”

“네. 대고모님께서 제를 지내러 절 보내주셨어요. 백부님과 백모님 집에 계시죠?”

순우민이 물었다.

“아가씨, 상황이 좋지 않을 때 오셨군요. 지금은 곳곳에 왜구가 들끓는 것이 예년과 비교할 수가 없어요. 며칠 전에 어디에서 온 정보인지 모르지만, 왜구가 신하성을 공격할 거라고들 했습니다. 어르신은 이곳이 실로 불안하다 여기시어 온 가족이 상산으로 가 지내신다고 하셨죠. 태평해진 후에야 다시 오실 겁니다.”

백부 일가가 이미 떠났다고!

크게 놀란 순우민은 한순간 어찌해야 좋을지 알 수 없었다.

“신하성은 척 장군의 군대가 주둔하는 곳으로 성내의 질서가 정연하지 않습니까? 그런데도 어째서 피난을 갑니까?”

금하의 의아한 물음에 서 할아범이 답했다.

“작년 왕직이 체포되어 옥에 들어간 후부터 나빠졌지요. 왜구는 사납게 날뛰고, 며칠에 한 번씩 왜구가 공격할 거라는 소리를 들으면 사람의 마음이란 어쩔 수 없이 조마조마해집니다. 어르신도 별수가 없으셨습니다.”

서 할아범이 보기에 금하는 어떻게 봐도 계집종 같진 않았고, 양악과 잠수는 당연히 무사의 모습이었다. 또 계단 아래쪽에는 상관희를 등에 업은 사소에, 검은 사로 얼굴을 가린 아예에, 그리고 꾀죄죄한 개숙이 심 부인과 함께 서 있는 것이 보였다.

서 할아범은 일행에 대한 미심쩍음으로 생겨 묻지 않을 수 없었다.

“둘째 아가씨는 계집종 안 데리고 오셨어요? 할멈은요? 이분들은 또 누구십니까?”

순우민은 도중에 왜구를 만나 계집종이 죽고, 할멈은 실종된 일을 말할 수밖에 없었다. 금하와 양악 등의 신분까지도 사실대로 그에게 말했다.

잠수는 이 할아범이 그들을 문밖에서 거절할까 걱정이 되어 나서서 금의위의 요패를 내밀었다. 그리고 육역이 노부인의 분부를 받들어 순우민을 고향으로 데려다준 거라고 일부러 언급하기도 했다.

서 할아범은 그들이 관가 사람에 금의위도 있다는 걸 알고는 갑자기 매우 친절해졌다.

“지금은 어르신께서 집에 계시지 않으시죠. 아가씨가 여기 계시기엔 적당치 않습니다만, 서쪽에 별원이 하나 있습니다. 아가씨께서 괜찮으시면, 좀 치운 후 우선은 여러분들께서 머무실 수 있을 겁니다. 단지 그 별원이 한동안 방치되었지요. 물건은 다 갖춰있긴 하나, 부릴 이들이 없습니다. 내일 제가 아가씨 대신 사람들을 부르겠습니다.”

“아니요, 필요 없습니다.”

잠수가 급히 나서서 제지했다.

“저희 쪽이 오히려 상관없는 사람들이 있는 것에 익숙하지 않습니다. 바쁜 일도 없으니, 우리가 알아서 지내면 됩니다.”

하인을 부르려면, 은자를 써야 한다. 지금 줄일 수 있다면 조금이라도 줄여야 했다.

서 할아범이 재빨리 말했다.

“죄송합니다. 제가 관가 분들의 금기를 몰랐습니다. 저는 지금 바로 가서 별원의 열쇠를 가져오겠으니, 여러분은 잠시 기다리시지요.”

그는 돌아서 안으로 들어가 열쇠를 찾았다.

대문 밖, 금하는 잠수를 흘겨보고 있었다.

“빨래할 줄 알아요, 아니면 밥할 줄 알아요?”

“……대체 무슨 말이 하고 싶은데?”

“빤한 일이잖아요. 별원에는 하인이 없고, 모든 일은 우리가 직접 해야 하죠. 작게는 물을 끓여 차를 따르는 것에서 크게는 빨래하고, 밥 짓는 것 모두 우리 중 누군가 해야 한다는 거예요.”

금하의 말은 차분했다.

“우리 이모와 아저씨는 우리가 청한 귀빈이니 그분들께 일을 하시라고는 당연히 할 수 없고요. 그리고 부상자 둘도 일을 할 수 없어요. 남은 건 우리 몇인데, 이리되었으니 오라버니가 남자라 해도 어쨌든 일을 분담해야 해요.”

“너희 육선문은 싹수 좀 있을 수 없냐? 어떻게 종일 생각하는 게 전부 그런 보잘것없는 일뿐이야?”

잠수의 말이 끝나기 전, 순우민이 수줍어하며 나섰다.

“원 낭자, 나는 무얼 하면 좋을까요?”

금하는 순간 어리둥절해졌고, 바로 잠수는 그녀에게 매섭게 눈을 부라렸다.

“순우 아가씨, 쟤가 하는 헛소리는 듣지 마세요. 아가씨께 어떻게 일을 하시라 해요?”

급하게 수습한 잠수가 금하에게 힘껏 눈치를 줬다.

“헛소리했다고 아가씨한테 설명 좀 해.”

“아……, 그게, 난 바느질 쪽은 순우 아가씨가 맡을 수 있다고 생각해요. 아가씨는 여자가 하는 일을 잘 배우셨어요. 지난번 제가 수놓은 걸 보았는데 상당히 예뻤거든요.”

금하는 순우민의 용기를 북돋워 줬다.

순우민은 자신도 미력이나마 보탤 수 있게 되자, 바로 마음이 많이 놓여 금하에게 웃음으로 답했다.

하지만 잠수는 금하가 순우민에게 뭔가 시킬 거라고는 감히 생각지도 못했다. 설령 대공자가 그녀에게 마음을 주고 있다고는 하나 그녀는 보잘것없는 포쾌의 신분일 뿐이니, 실로 그의 마음은 불쾌하기 짝이 없었다.

“남에게 지시할 줄만 알지? 너는 무슨 일을 할 건데?”

잠수가 퉁명스럽게 금하에게 물었으나, 그녀는 한껏 여유 있는 표정으로 답했다.

“급할 게 뭐 있어요. 할 일 다 정하고 여러분이 하지 못 하는 일이 있으면 전부 제가 할게요.”

“허풍을 떨어요!”

잠수는 코웃음 쳤다.

양악은 옆에서 웃고 있을 뿐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곧 열쇠를 가져온 서 할아범은 그들 일행을 별원으로 안내했다.

“이쪽으로 오시지요.”

문을 열고 들어선 그가 등을 켜고 별원 곳곳을 그들에게 보여줬다. 그리고 그들이 적절히 자리잡는 것을 보고서야 내일 일상 물품을 가져오겠다고 말하며 돌아갔다.

* * *

오늘은 상관희를 놀라게 하고, 그녀의 다리도 다치게 했다. 그건 아예를 자책하게 하고, 부끄러움을 느끼게 하여, 그는 길에서도 상관희와는 일부러 거리를 두었다. 그저 그녀가 사소의 등에 업힌 뒷모습을 말없이 바라보며 따랐을 뿐이었다.

그리고 지금. 상관희가 동쪽 곁채로 배정되자, 그는 홀로 서쪽 곁채로 향했다.

“아……, 아금, 어디 가요? 아금은 여기 써요.”

금하가 그를 불러 옆쪽의 동쪽 곁채를 가리켰다.

“아니. 나는 저쪽에서 지낼 거야.”

“여기서 지내는 게 우리 이모가 당신들 살펴보는 것도 편해요. 그분을 양쪽 끝에서 끝으로 뛰어다니시게 할 순 없잖아요.”

금하의 말이 계속 이어졌다.

“게다가 순우 아가씨가 이미 그쪽 곁채로 갔어요. 동쪽 곁채가 햇볕이 좋아서 양기가 충분하고 병을 치료하기에 좋다고 하시며, 특별히 당신들에게 머물라 했어요. 기왕 순우 낭자의 호의인데 거절하면 안 된다고 봐요. 여기도 아가씨 덕으로 들어온 건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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