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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의지하 (154)화 (154/224)

154화

마차를 좋은 가격에 팔기는커녕, 거의 거저먹기로 처리해 버려서 잠수는 괴로워하던 중이었다. 그런 데다가 나무 아래서 얌전히 기다리라 했던 금하는 곳곳을 어슬렁거리고 있으니, 그는 저도 모르게 불끈 화가 치솟았다. 금하가 그 앞으로 오자마자, 잠수는 제가 먼저 화를 내 버렸다.

“내가 너희는 나무 아래서 기다리라 하지 않았어? 너 이렇게 여기저기 쑤시고 다니다가 만일 무슨 일이라도 생기면, 나는 대공자께 뭐라고 말씀드리냐!”

금하는 그의 심기가 좋지 않다는 것을 알아차렸다. 평상시였다면 그녀도 분명 두세 마디 말로 반박해 그가 말을 못 하게 막았을 것이나, 지금은 그에게 부탁해야 하니 웃는 얼굴을 할 수밖에 없었다.

“그러게. 내가 너무 경솔했어요.”

금하의 표정은 진실해 보였다. 그러니 잠수는 어안이 벙벙했다. 금하와 알게 된 이후로 이렇게 그녀에게 그의 말이 잘 통한 적은 처음이었다.

“너……, 귀신한테 홀렸냐?”

“오라버니는 무슨 말을 그렇게 해요.”

금하는 그를 끌고 사람들이 있는 쪽으로 갔다.

“남소림사의 광담 대사형께서 오라버니를 매우 흠모하신대요. 그래서 내게 한번 만나볼 수 있게 해 달라고 하셨어요.”

그녀는 개숙을 함께 데리고 가는 것도 잊지 않았다.

“날 흠모한다고? 그건 좀 곤란한데.”

잠수는 남소림의 무승들을 보고도 그들이 왜 자신을 만나고 싶어 하는지 이해하지 못했다.

잠수와 개숙이 광담 앞에 도착하고, 왜구가 들을 수 없는 것이 확실해지고서야 금하는 계획한 일을 그들에게 설명했다.

재능이 있으면 대담해진다는 말이 있듯이 개숙은 당연히 거부하지 않아 호탕하게 웃었다.

“너 이 계집애가 살금살금 뭔가 하면 꼭 좋은 일이 아니란 걸 알고 있었다니까.”

“이 일은…….”

잠수는 육역의 말이 생각나 조금 망설였다. 대공자는 떠나기 전 그에게 많은 이를 안전하게 잘 보호하라고, 다른 문제가 일어나지 않게 하라고 여러 번이나 당부했었다.

“오라버니 무공이 그리도 훌륭한데, 혼자 왜구 하나 상대하는 건 분명 문제 되지 않잖아요?”

금하는 잠수의 망설임이 왜구 상대를 걱정하는 것이라고 잘못 이해했다.

옆에 있던 사소도 냉랭하게 흥 비웃었다.

“역시 금의위로군. 그들은 조정의 역적만 잡을 생각뿐이지, 왜란이 자기들과 무슨 상관이겠어.”

“넷째야, 함부로 말하면 안 돼.”

광담이 잠수의 곤란한 기색을 알아차렸다.

“아마도 시주께 어려운 사정이 있으시겠지요. 괜찮습니다.”

이때, 줄곧 경계를 담당하던 무승이 급히 달려왔다.

“대사형, 강 위에 나룻배 몇 척이 더 생겼습니다.”

광담이 먼 곳을 바라보니, 과연 나룻배 두세 척이 더 많아졌다. 그러나 역시 작은 배로 아마 이곳에 난민이 너무 많아져서 관부가 특별히 어선을 보내 건너는 것을 도와주라고 한 것일 터였다.

사소가 급히 말했다.

“대사형, 더 기다릴 수 없습니다!”

상관희도 미간을 찌푸렸다.

“만일 그들이 강을 건너 종적을 감추면, 그땐 얼마나 많은 백성이 피해를 입을지도 몰라요!”

“안 돼. 지금은 인원이 부족해서 움직이게 되면, 무고한 백성이 휘말린다.”

광담은 여전히 고개를 저었다.

“노인과 아이가 너무 많아. 속전속결로 끝낼 자신이 없으면, 움직일 수 없어!”

“대사형!”

강 위의 배를 바라보던 사소는 급해 죽을 것 같았다.

잠수는 옆에서 사람들의 모습을 바라보며 잠시 머뭇거렸다. 그러나 그도 기어이 결연히 나섰다.

“저도 하나 치십시오!”

“와, 고마워요!”

금하는 기뻐했고, 광담은 그에게 공수하며 인사했다.

“시주의 도움에 대단히 감사합니다!”

양악은 상황을 들은 후 두말도 하지 않았다. 금하를 얌전히 나무 아래 데려다 놓고는 그가 그녀를 대신해 나섰다.

“대양, 나는…….”

금하는 무슨 말이라도 해보려 했으나, 옆에서 심 부인마저 단호한 말로 못 박았다.

“다리 아직 제대로 걷지 못하잖아. 네가 다시 제멋대로 굴면, 나는 널 더 위중하게 만들어 버릴 거야. 믿든 안 믿든 맘대로 해.”

“이모…….”

금하는 그들 둘의 의지를 꺾을 수 없어 적절히 타협할 수밖에 없었다.

“좋아요, 좋아. 얌전히 기다리고 있을게요.”

한순간 모든 일이 예정대로 준비되었다. 광담의 휘파람 소리를 신호로 삼아, 일제히 움직여 왜구를 제압하기로 약속을 정한 것이다.

금하는 참여할 수 없었다. 그래서 나무에 기댄 채 소매로 땀을 닦는 척하면서도 사실 길을 오가는 사람과 말의 상황을 관찰하고 있었다.

사소, 양악, 개숙과 무승 몇이 한패가 되었고, 그들은 꾸물거리며 강에서 거리가 가장 가까운 왜구 쪽으로 다가갔다. 그 중 개숙의 몸가짐이 가장 태연한 것이 그는 걸으며 양악과 웃고 떠들기까지 했다.

상관희, 아예, 그리고 광담 대사형이 인솔한 사형제들이 한패가 됐다. 아예는 시종 침묵하였고, 상관희와는 일정한 거리를 유지하며 동쪽 나무 아래의 왜구를 향해 가고 있었다.

마지막 한패는 잠수와 나머지 무승으로 그들은 서쪽의 왜구를 책임지고 있었다.

차 반 잔을 마실 시간이 지나지 않아 개숙 일행은 이미 전부 자리를 잡았다. 각자 자신이 주시하고 있는 왜구와 매우 가까운 거리로, 이삼 초식 안으로 적을 제압할 수 있는 거리를 확보한 것이다.

개숙은 여유롭게 나무에 기대 강을 바라보다가 꽤나 흥이나 시를 읊었다.

“장강은 동으로 흐르고, 파도는 험히 일어 천고의 풍운아들을 전부 쓸어 가는구나. 옛 요새의 서쪽은 사람들이 말하기를……, 음음…….”

개숙이 양악에게 다음 구절을 이으라고 눈짓을 했다. 어리둥절하던 양악

“…… 사람, 사람들이 말하기를 그곳은 삼국시대 주유의 적벽이라 하지. 높게 솟은 바위는 허공을 뚫고, 성난 파도는 절벽을 할퀴어 수없이 많은 파도를 일으킨다네…….(*염노교 <적벽회고> 중에서.)

개숙은 매우 도취해 듣고 있다가 양악의 뒤를 이어받으라는 뜻으로 사소를 지목했다.

그러나 사소는 지금 전신이 팽팽하게 당긴 활시위같이 긴장하고 있었다. 그런 그가 시를 읊을 심정이 어찌 들겠나.

그가 미간을 찌푸리며 손을 내저었다.

“여기가 장강도 아니고, 무슨 시를 읊어요.”

개숙이 흥, 하며 꾸짖었다.

“이 자식아, 잘도 흥을 깨지.”

대사를 눈앞에 두고 어찌 이런 쓸데없는 소리만 줄줄 늘어놓는 늙은이를 만났던가.

사소는 두통이 극에 달했다.

멀리서 보고 있던 금하는 이런 모습에 오히려 마음을 놓았다. 개숙이 이렇게 사담으로 떠들고 있으니, 근처의 왜구는 분명 그들의 진정한 의도를 알아차리지 못할 터였다.

오히려 걱정되는 것은 서쪽으로 간 이들이었다. 그중의 몇몇 젊은 무승은 그들의 속내를 숨기려 하지도 않아 날카로운 눈빛으로 위장한 나무꾼을 수시로 주시하는 중이다.

그러니 서편의 나무꾼은 벌써 안절부절못하는 기색이 보였다. 남들이 볼 수 없게 잘 묶어 둔 장작더미로 손을 뻗는 이도 있는 것이 마치 언제라도 칼을 뽑아 상대하려는 듯했다.

금하는 걱정스러운 시선으로 광담 일행도 바라보았다.

그들 또한 이미 적당히 자리를 잡았다. 그리고 광담은 조금도 지체하지 않았다. 한 손으로 장곤(*긴 막대처럼 생긴 무기.)을 꽉 움켜쥐고 있던 그는 다른 한쪽 손가락을 오므린 입술에 댔다. 바로 새가 지저귀는 것 같은 부드럽고 긴 휘파람이 울리기 시작했다.

나무에 기댄 채 한가로이 시를 읊던 개숙은 눈 깜짝할 사이 이미 한 발로 나무꾼 옆쪽의 장작더미를 발로 차 날려버렸다. 땔감은 정신없이 흩어지고, 그 안에 숨겼던 동양도 한 자루가 허공에서 바닥으로 둔중하게 떨어졌다.

왜구는 상대하기 위해 일어나려 했으나, 개숙은 왜구의 울대뼈에 일격을 날렸다. 뼈 바스러지는 소리가 왜구의 목구멍에서 끽끽 소리 내며 울리고, 믿을 수 없을 만큼 빠르게 그는 바로 쓰러져 버렸다.

상관희는 왜구의 경계심을 낮추기 위해 원래는 그들과 등을 돌리고 서 있었다. 그러다 즉시 맹렬히 돌아선 그녀는 양쪽 옆구리에 숨겼던 쌍도를 꺼내 들었다. 도광에 눈도 못 뜨던 상대는 찰나 이미 생명이 스러져갔다.

잠수의 수춘도는 여전히 허리춤에 있었건만, 그는 어느새 빼어 든 3촌 길이의 짧은 단도를 기척 하나 없이 왜구의 등에 찔러넣었다. 단발마의 비명 한 번 지르지 못한 채 왜구는 그 자리에 픽 쓰러졌다.

사소와 양악 쪽도 가장 가까이 있던 왜구를 시원스럽게 제압했다.

뜻하지 않은 일이 발생한 것은 바로 서쪽의 왜구들로 처음부터 몇몇 젊은 무승의 눈빛이 그들에게 경계심을 일으켰던 것이다.

일이 시작된 후, 무승의 공격을 재빨리 피한 네 명의 왜구는 칼을 들고 싸우며 도망치고 있었다.

군중은 술렁거렸다. 이들은 왜적의 해악을 누구보다 잘 알고 있어 동양인에 대한 공포 또한 말로 표현할 수가 없었다. 당장 눈앞에 일어난 상황에 분분히 일어나 사방으로 흩어지니, 일대는 누구도 감당키 힘든 혼란이 일어났다. 돕기 위해 달려가려던 광담 등도 한순간 백성들에게 앞이 가로막혔다.

남소림의 무승들은 최근 왜구에게 연이어 대승을 거두어 연해에서는 명성이 매우 높았다. 그 쓴맛을 톡톡히 본 왜구들은 자신들이 그들의 적수가 아니라는 것을 알고 있고, 붙어 싸울 때도 줄곧 도망갈 기회를 노리고 있었다.

바로 그들이 원하던 대로 백성들은 허둥거렸다. 이때를 틈탄 그들은 아무 부녀자나 잡아채 여자의 목덜미에 동양도를 겨누고 무승을 협박하며 후퇴하고 있었다.

그들이 여자를 해칠까 두려워한 것이다. 한순간 제자리에서 멈춘 무승들은 그들이 여자를 끌고 가는 것을 빤히 눈뜨고 지켜볼 수밖에 없었다.

금하 일행은 그들과 멀지 않은 곳에 앉아 있었다. 옆에는 말 세 마리가 묶여 있었는데, 왜구들은 그 말을 목표로 여자를 끌고 이쪽으로 빠르게 오고 있었다.

문득 금하는 그들의 의도를 알아차렸다. 재빨리 말의 고삐를 풀어준 그녀는 사나운 채찍질로 말을 놀라게 했다. 당연히 말은 나는 듯이 도망가 버렸다.

이제 근처에 더이상 말은 없었다. 상황파악을 한 왜구는 버럭 성을 내며 여자를 밀치고 빠르게 말의 뒤를 쫓았다. 그런데 이들 왜구가 나무 뒤에 숨어있던 순우민과 계집종을 공교롭게도 정면으로 맞닥뜨릴 거라고 누가 상상이나 했을까.

왜구는 생각해 볼 것도 없이 칼을 휘둘렀다. 눈부신 도광이 번쩍한 순간, 순우민과 계집종 둘 다 땅으로 쓰러졌다.

소스라치게 놀란 금하가 뛰어나가려 했다. 그러나 뜻밖에도 심 부인이 그녀를 죽어라고 잡고 있었다.

이때 뒤에서는 무승이 쫓아 왔고, 상관희와 광담도 다른 방향에서 뛰어와 바로 왜구의 진로를 막았다.

길이 막힌 왜구는 길길이 날뛰었다. 가장 취약한 곳으로 포위를 뚫으려는 생각에 무지막지한 동양도는 상관희를 찔러 들어갔고, 아예가 그 앞으로 나서서 칼을 막았다.

그때였다. 예상치 못한 순간 동양도에 삿갓이 들춰지고, 흉터 가득한 얼굴이 드러난 것은…….

아무리 견문 넓은 상관희라지만, 갑자기 드러난 아예의 얼굴에는 어쩔 수 없었다. 그녀는 저도 모르게 놀라 그 자리에 멍하니 굳었고, 순간 틈을 본 왜구가 그녀의 다리에 검을 날렸다.

“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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