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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의지하 (153)화 (153/224)

153화

아예는 검은 천 너머로 상관희를 흘끔 바라보았다. 그러나 우연찮게 마주친 그녀의 눈빛에 정신없이 고개를 숙였다.

“제가 찾는 거 도와줄게요!”

금하에 말에 사소가 고개를 저으며 나섰다.

“그들과 붙어 싸운 우리도 알아낼 수 없었다. 넌 따라다니며 방해나 하지 마.”

“오빠, 내가 이래 봬도 훈련받은 포쾌야. 오빠가 알아낼 수 없다고 나까지 알아내지 말란 법은 없지.”

금하는 양악을 향해 돌아섰다.

“심 부인 쪽은 우리 아저씨가 계시니까, 넌 순우 아가씨를 지켜드려.”

양악은 마음을 놓지 못했다.

“조심해라. 알아낸 후에는 저들에게 조용히 알려 주기만 해. 네가 경솔하게 손대지 마.”

사소가 금하를 향해 한 걸음 성큼 다가왔다.

“걱정 마. 내가 쟤 바짝 따라다닐 거야.”

* * *

나루터에 모여든 이들의 수는 예상보다도 많았다. 금하는 우선적으로 노인을 모시고 있거나, 어린아이를 데리고 있는 이들을 제외시켰다.

비록 왜구라 해도 가정을 이루어 살고 있어서 그들 가족 중에도 노인과 어린아이는 있었다. 하지만 집안의 노인과 아이를 데리고 다니며 강도질을 한다는 것은 실로 큰 짐이 아닐 수 없다.

그리고 대부분의 동양인이 늘 지니는 동양도는 매우 길다. 그래서 그녀는 제하고 남은 이들 중 차림이 특별한 사람이 있는지를 세심히 살폈다.

이렇게 찾다 보니 그녀는 매우 짧은 시간 안에 수상쩍은 부분을 발견할 수 있었다.

많은 나무꾼이 강을 건너려는 사람들 사이에 흩어져 섞여 있었다. 그들은 모두 일반 백성의 복장으로 등에는 커다란 장작더미를 지고 있다. 얼핏 보아서는 이상한 곳이 없으나, 자세히 살펴보면 이들 모습은 빈틈이 아주 많았다.

첫째, 만약 피난민이라면 설령 나무를 베었다 해도 임시로 밥을 지을 때 필요할 만큼이면 충분하지, 결코 이렇게 많은 장작을 마련하지는 않을 것이다.

둘째, 강을 건너려면 뱃삯이 필요한데, 강 건너 사는 나무꾼이 굳이 뱃삯까지 주고 강을 건너와 나무를 베지는 않을 것이다.

셋째, 그들은 이 땔감을 결코 팔려고 하지 않았다. 그리고 단단히 지키면서 오가는 사람들이 실수로라도 부딪히면 당장 험악한 눈길로 노려보곤 했다.

고개 숙인 금하는 나무꾼들이 신은 신발을 몰래 살폈다. 이것은 사람들이 소홀히 여겨 가장 쉽게 빈틈이 드러나는 부분으로 과연 그녀의 예상은 틀리지 않았다. 이 나무꾼들이 신은 것은 동양인들이나 신는 발가락이 나누어진 신발이었던 것이다. 이제 동양인이 이 나무꾼들로 변장했다는 사실은 거의 확실해졌다.

그리고 동양도는…….

바로 땔감 안에 숨겨 놓았어!

사소는 성격이 급하다. 금하는 그에게 말하자마자 속내를 드러낼까 걱정이 되었다. 그래서 그녀는 짐짓 단서를 찾지 못한 척 고개를 저으며 상관희의 옆으로 슬금슬금 다가갔다.

금하가 뭐라 하기 전, 사소가 먼저 얘기를 시작했다.

“내가 진즉 이 일은 쉽지 않다고 했지. 저 왜구들은 아주 약삭빨라.”

금하는 짐짓 화가 난 척하며 그를 한 팔로 멀리 밀었다. 사소도 실랑이하지 않고 웃으며 옆으로 옮겨 앉았다. 그러면서도 두 눈은 사람들을 계속 주시하며 사방을 살폈다.

“원 낭자…….”

상관희는 금하를 달래주려 했었다. 그런데 순간, 금하가 매우 낮은 목소리로 입을 열었다.

“상관 언니, 이제 내가 무슨 말을 하든 언니도 고개를 숙이고 한숨을 쉬어야 해요. 적들이 미리 알아채고 도망가지 않게 절대 시선을 들지 마세요.”

듣고 바로는 어리둥절했으나, 상관희는 금하의 말을 빠르게 알아들었다. 그녀는 우선 한숨부터 내쉬었다.

“저 장작더미를 지고 있는 나무꾼들에게 문제가 있어요. 그들의 신발은 발가락이 갈라진 신발이고, 동양인만이 이런 신발을 신어요. 동양도는 저 장작 안에 숨겨있을 가능성이 커요.”

금하는 계속해서 말을 해나갔고, 상관희는 놀라 본능적으로 나무꾼들을 바라보았다. 그래도 다행히 금하의 말이 제때 떠올라 그녀는 낮게 고개를 숙였다. 길고 긴 한숨을 다시 뱉었다.

“제가 세어봤어요. 도합 18명으로 2인이 한 조고, 3조씩 힘을 나눠놓고 자기들끼리도 서로 감시하면서 협력해요.”

금하가 계속 낮은 목소리로 말했다.

“저들 옆에는 일반 백성이 많아요. 당신들이 움직인다면, 꼭 긴장을 풀고 있는 틈을 타 속전속결 해야 해요. 아니면, 무고한 사람들이 휘말릴 가능성이 커져요.”

상관희는 미간을 찡그리고 긴 한숨을 내쉬었다. 이번 한숨은 더는 가짜로 내뱉은 것이 아니었고, 눈앞에 닥친 상황은 정말로 처리가 어려운 일이었다.

“내가 사형들과 상의해 볼게요. 원 낭자도 함께 가는 게 어때요?”

“좋아요.”

금하가 승낙의 말을 하던 그때, 누군가 그녀의 어깨를 툭 쳤다. 돌아보니 아예였다.

아예의 청력은 매우 좋은 데다가 줄곧 이쪽에 주의를 기울이고 있었으니, 방금 금하가 한 말을 그도 전부 들었다.

이때도 그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영문을 몰라 바라보던 금하는 조심스레 떠보듯이 물었다.

“그쪽……, 도 함께 가겠다고요?”

그가 고개를 끄덕였다.

“이분은…….”

상관희는 아예의 움직임이 여전히 원활하지 않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망설임을 눈치챈 아예가 바로 쉰 목소리로 말했다.

“나는 왜구를 상대해 본 적이 있어서 당신들에게 유용할 겁니다.”

그의 음성은 매우 낮았다. 간청이 담긴 어조는 금의위라는 높은 위치에서 부리는 허세와는 거리가 멀었다. 상관희는 저도 모르게 그의 눈을 오래 쳐다보았으나, 그는 더욱 깊게 고개를 숙였다.

“좋아요. 우리 다 함께 가죠.”

상관희가 말했다.

* * *

상관희는 남소림의 우두머리인 대사형 광담에게 우선 지금까지의 상황을 설명했다. 그런 후 금하와 아예를 그에게 소개시켰다.

“대사형, 이 분은 육선문의 포쾌, 원 낭자이고, 그리고 이분은…….”

상관희는 자신이 아예의 성과 이름이 무엇인지 전혀 묻지 않았음을 떠올렸다.

“아금이라 부르시면 됩니다.”

아예가 즉시 대답했다.

“아, 아금, 이분도 왜구와 싸운 경험이 있습니다. 몸에 왜구가 남겨준 선물이 있어 지금은 몸이 살짝 불편해요.”

광담이 그들 둘에게 공수로 인사했다.

“두 분 시주의 의기와 도움에 감사드립니다.”

금하도 재빨리 공수하여 답했다.

“대사형의 말씀이 과하십니다. 남소림의 제자분들이야말로 백성을 진심으로 염려하시어 산을 내려와 왜구와 맞서시니, 세상 사람들의 감탄을 자아내지요. 진정 이것이야말로 부처님의 크나큰 자비라 부를 수 있을 겁니다.”

광담이 웃어 보였다.

“시주의 칭찬이 지나치어 감당키 어렵습니다.”

그들의 대화는 왜구에게 들킬 수 없었다. 광담은 즉시 사제 몇을 경계 담당으로 배치하여 그들의 시야를 가렸다.

그리고 금하는 바로 나뭇가지를 꺾어 왜구가 자리 잡고 있는 곳을 땅 위에 그려 보였다. 동시에 그녀는 낮은 목소리로 입을 열었다.

“이 일에 있어 가장 어려운 부분은 무고한 백성이 쉽게 휘말릴 수 있다는 점입니다. 저들은 모두 18명으로 반드시 동시에 제압해야 해요. 사형들께선 자신 있으신가요?”

이때서야 사소는 금하가 이미 알고 있음에도 전혀 내색하지 않았음을 깨달았다. 제법이네. 그는 저도 모르게 그녀를 흘끔 보았다.

잠시 침음하던 광담이 물었다.

“시주는 방금 그들의 동양도가 장작더미 안에 숨겨져 있을 거라 했소. 그건 확신이 있습니까?”

“제 확신은 8할 정도입니다.”

“그들이 칼을 손에 들 기회를 주지 않는다면, 승산이 더 커질게요.”

“우리는 찾기를 단념하지 않은 척하며 다시 숲에 들어가서 살펴볼 수 있어요.”

상관희가 말했다.

“가장 좋은 건 한 사람이 한 명씩 맡고 신호를 받아 동시에 손을 쓰는 거예요. 이러면 왜구가 서로 도와주고 있다고 해도 도움을 줄 틈이 없습니다. 대사형, 어찌 생각하시나요?”

광담이 고개를 저었다.

“인원이 충분치 않다. 너와 넷째까지 더한다 해도, 우리 측은 15명뿐이야.”

금하가 재빨리 나섰다.

“저도 하나로 칠 수 있어요. 게다가 제겐 함께 할 이가 있는데, 무공이 약하지 않습니다.”

그녀가 생각한 이는 개숙이었다. 개숙의 무공을 고려한다면, 1 대 2도 문제가 되지 않았다.

“저도 있습니다.”

아예가 가라앉은 목소리로 말했다.

“아금이라 하셨지요.”

광담은 그가 걷는 것이 자유스럽지 않음을 이미 파악하고 있었다.

“시주의 몸은 아직 낫지 않았으니 위험은 무릅쓰지 않는 것이 낫습니다.”

“할 수 있습니다.”

아예가 줄곧 옷소매 속에 감췄던 손을 뻗었다. 순간 보기만 해도 끔찍한 손등의 도흔 몇 줄기가 드러났지만, 그는 별다른 동요 없이 천천히 주먹을 쥐어 보였다.

“제 손은 이미 감각을 회복하여 칼을 잡을 수 있습니다.”

주변은 그의 상처 때문인지, 아님 그의 말 때문인지는 모를 짧은 침묵에 빠졌다.

“대사형, 제가 마침 저 혼자 왜구를 상대할 수 있을까 걱정하고 있었습니다. 제가 이분과 함께할게요.”

상관희가 입을 열었다. 어쩌면 동정일 수도, 어쩌면 그녀 자신도 설명치 못할 어떤 원인 때문일 수도 있었는데, 그녀는 왜인지도 모르고, 이유도 없이 그냥 그를 돕고 싶었다.

광담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것도 좋겠다.”

사소가 금하를 바라봤다.

“넌 겉멋만 든 무공으로 왜구에게 거저 이득 보게 하지 말고, 날 돕기나 해.”

“오빠는…….”

금하도 속으로는 자신의 무공이 그들과 비교할 수 없다는 걸 알고 있다. 게다가 다리에는 여전히 상처가 있어 걷는 건 지장 없다 해도 누군가와 싸운다는 것은 여전히 민첩하지 못했다. 그래서 그녀도 더는 논쟁하지 못했다.

사소가 광담에게 말했다.

“제 쪽에는 사 형님도 있습니다. 그도 무공이 약하지 않으니 한 사람 몫은 거뜬히 합니다.”

하지만 금하와 아금은 인원에 넣을 수도 없었다. 광담은 사람 수를 헤아려 보고는 고개를 저었다.

“그래도 두 명이 모자란다.”

“제가 저희 아저씨와 대양을 불러올게요.”

금하의 말에 사소가 먼저 반대했다.

“양악의 무공도 너보다 아주 조금 나을 뿐이라 안 돼. 너희 아저씨는 그 늙은 거지 말하냐? 무공을 할 줄 알아?”

“우리 아저씨의 무공은 혼자 둘을 감당할 수 있는 수준이야. 절대 그분 얕보지 마.”

금하가 고개를 돌려 바라보니 마침 잠수가 되돌아오고 있었다. 그녀의 얼굴에 희색이 드러났다.

“고수가 한 분 더 있죠. 잠깐 기다려 주세요. 제가 저분 불러올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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