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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의지하 (152)화 (152/224)

152화

“마셔.”

양악이 다가와 금하에게 수낭을 건넸고, 순우민도 떡을 먹는 것을 보며 웃었다.

“정말 변변치 않은 것인데, 순우 아가씨도 익숙해졌나 봐요?”

“씹을수록 고소해요. 솜씨 정말 좋으세요.”

“아가씨의 과찬이시군요. 앞에 내놓을 만큼은 아닙니다.”

양악의 겸손의 말에 순우민은 웃어 보였다.

그들이 멈춰 있는 숲의 멀지 않은 곳에 그들처럼 쉬고 있는 이들이 있었다. 떡을 먹던 금하가 흘끔거리며 그들을 몇 번 훑었다. 그녀는 표정으로 전혀 드러내지 않은 채 개숙의 마차를 향해 어슬렁어슬렁 걸음을 옮겼다.

“아저씨, 이모는 왜 바람 쐬러 안 내려오세요?”

개숙의 기분은 썩 좋아 보이지 않았다.

“아직도 너 줄 옷 바느질한다. 마차가 요동을 쳐서 바늘이 몇 번이나 손을 찔렀는데도 그만두질 않네.”

개숙이 말을 하자마자 마차의 발 안에서 심 부인의 음성이 들려왔다.

“그 말 믿지 마. 나는 쉬고 싶지 않아서 심심풀이로 바느질을 한 것뿐이야.”

금하가 마차의 발을 걷어 올렸다.

“이모, 배고프세요? 제가 먹을 것 좀 가져올까요?”

“괜찮아. 대양이 마차에 마른 식량을 넉넉히 넣어줘서 굶지는 않고 있어.”

심 부인은 바늘을 쉬지 않고 움직이면서도 금하를 흘끗 보며 웃었다.

“잊지 말고 저녁에 와서 입어 봐. 아마 잘 맞을 거야.”

심 부인이 들고 있는 연자주색의 저고리는 벌써 제대로 모양을 갖췄다.

“이모, 너무 급하게 그러지 마시고, 눈 좀 쉬어가며 하세요.”

심 부인에게 당부한 금하는 마차의 발을 내려놓고는 개숙을 한쪽으로 끌어당겼다.

“아저씨, 저쪽 사람들 보셨어요?”

그녀는 살짝 턱을 들었다.

개숙은 고개도 돌릴 필요 없이 그녀가 말하는 것이 어떤 사람들인지 알고 있었다.

“진작 보았는데, 모두 피난 나온 이들이야. 지금 연해 왜구가 흉악하게 날뛰니, 고향을 등지는 건 아주 흔한 일이다.”

“이 혼란의 틈을 타 한몫 챙기려는 사람도 분명 있어요. 아저씨는 우리 이모 때문이라도 더 조심하세요.”

“걱정 마라. 내가 여기 있는 한 누구도 함부로 할 순 없다.”

* * *

휴식을 끝낸 일행은 다시 길을 떠났다.

관도는 앞으로 갈수록 사람이 더욱 많아졌다. 그들 대다수는 자녀를 데리고 나왔거나, 노인과 아이를 건사해야 하는 이들이었고, 외발 수레를 밀거나 짐수레를 끌며 온 집안 전부가 짐을 싸 들고 나온 모습이었다.

잠수가 알아본 바에 따르면 왜구는 지금 한창 녕해宁海를 공격 중이었다. 이 백성들은 그곳에서 피난을 나와, 이 중 많은 이들이 신하성을 향해 가고 있었다.

“양절 전부가 이리 혼란스러울 줄은 생각도 못 했어.”

끌채 위에 앉은 금하는 시선이 닿는 멀리까지 바라보았다. 앞쪽의 관도는 빽빽하게 들어찬 사람들로 인파의 제일 앞쪽은 보이지도 않았다.

마차는 사람들을 헤치며 어렵게 앞으로 나아가 오후가 되어서야 겨우 나루터에 도착했다. 그런데 나루터의 상황을 본 금하는 급하게 헙, 숨을 들이켤 수밖에 없었다.

―― 사람이 바다의 파도처럼 밀려들었고, 강은 오히려 둑이 되었다. 사람의 물결이 그 강으로 만든 둑 앞에서 저지당해 위로 아래로 쓸려갔다 쓸려오는 상황이었다.

강변 나무 그늘에 가득 들어앉은 사람들은 누군가를 기다리거나 나룻배를 기다리고 있었다.

나무 아래는 사람이 있고, 나무 위에서는 매미가 울었다. 나무의 몸통에는 말을 남기거나, 사람을 찾는 등의 벽보가 가득 붙어있다가 풀기가 약해지면 종이는 나무 몸통을 따라 바닥으로 뚝뚝 떨어져 내렸다. 하얗게 빛나는 종이와 매미의 울음소리는 사람의 관자놀이를 날카롭게 찔러 들어 지끈지끈 자극했다.

이런 장면은 금하는 말할 것도 없고, 개숙조차도 본 적이 없었다.

“뱃사공이 있긴 해?”

금하는 끌채 위에 서서 강변을 멀리 바라봤다. 그녀를 따라 양악도 손 그늘을 만들어 먼 곳을 조망했다.

“이렇게 많은 이가 강을 건너려 하잖아. 배가 있다 해도 내일은 돼야 할 거야. 게다가 우리는 마차가 있어서 큰 배를 구해야 건널 수 있어.”

금하가 강 쪽을 바라보니, 배 한두 척만이 강을 오가고 있었다. 게다가 전부 작은 배여서 마차를 싣는 것은 매우 힘들어 보였다. 분명 마차는 건널 수 없을 것이다.

정보를 알아본다며 나루터로 비집고 들어간 잠수는 반나절이나 지나 겨우 돌아왔다. 그의 미간은 마치 쇳덩이가 붙은 것처럼 잔뜩 굳었다.

“군에서 군량과 마초를 긴급하게 할당하는 바람에 배를 거의 다 징발했다는군. 여기 남은 건 작은 배 두 척뿐이고……, 듣기론 다른 나루터도 마찬가지래.”

“그럼 여기서 기다릴 수밖에 없어요.”

금하는 해야 할 일을 생각하고 있었다.

“먼저 쉴 곳을 찾은 후 마차를 팔아요. 맞은편 기슭에 도착한 후, 다시 마차를 빌리는 거예요.”

신하성으로 가려면 꼭 강을 건너야 했다. 잠수도 별다른 수가 없어 순우민과 그쪽 일행을 전부 마차에서 내리게 하고는 나무 그늘을 찾아 쉬게 했다. 그리고 양악은 심 부인과 개숙도 마차에서 내리게 했다.

아예는 이제 스스로 몇 걸음을 걸을 수는 있었다. 하지만 상흔이 남은 얼굴은 매우 무서워 보였으니, 금하는 검은 천이 드리워진 모자를 그의 머리에 씌웠다.

여러 번의 왕복 끝에 마차 위의 행장도 모두 옮겼다.

“다들 여기서 좀 기다리시죠.”

마차에서 말을 떼어 낸 잠수는 사람들을 나무 아래 모아 두고, 자신은 마차 매입자를 찾으러 나갔다.

“아가씨, 물 좀 드세요.”

수낭에서 물을 따른 계집종이 장미수 한 방울을 섞어 순우민에게 건넸다. 동시에 그녀는 불안한 눈빛으로 아예를 몇 번 흘끔거렸다. 그는 지금 검은 옷으로 온몸을 꼭꼭 싸맨 채 근처에 앉아 있었다.

순우민이 언제 이런 피난의 광경을 보거나, 생각이라도 해본 적이 있던가. 물을 받아 한 모금 마신 그녀는 살짝 겁먹은 시선으로 여전히 주위를 흘끔거렸다.

이미 큰 혼란을 겪어본 적 있는 심 부인만이 다른 일은 별 신경도 쓰지 않고 바느질에만 몰두하고 있었다. 개숙도 어디서 났는지 모를 파초잎으로 연신 그녀에게 부채질을 해줬다. 부채질은 가볍지도, 무겁지도, 급하지도, 느리지도 않았고, 바람이 약하면 그녀가 더울까, 바람이 세면 또 그녀가 귀찮을까 개숙은 오로지 그것만 걱정했다.

금하는 성격상 가만히 있을 수 없었다. 나무 그늘 아래에서 시원한 바람을 쐬면서도 굵은 나무줄기에 붙은 벽보를 하나하나 읽기 시작했다.

[둘째 동생, 나 먼저 강을 건넌다. 얼른 따라오길 바라.]

[무아, 형은 북으로 돌아가기로 했다. 동생은 몸조심해.]

어떤 벽보는 잘 붙어있지 못하고 아래로 떨어져 사람들의 시선을 끌지 못했다. 숲에는 벽보를 보고 붙이는 이들이 한두 명이 아닌지라, 벽보가 붙은 나무는 줄지어 서 있어 마치 공동묘지의 비문을 읽는 것 같았다.

“금하야.”

양악의 조용한 부름에 금하는 고개를 돌려 그가 눈짓하는 방향을 바라봤다.

회색 승려복을 입고 긴 봉을 든 십여 명의 스님이 나루터 쪽으로 빠르게 다가왔다. 그들 뒤로는 익숙한 이들의 모습도 보였다.

“상관 언니다! 저분들은 분명 남소림의 무승武僧들일 거야.”

이곳에서 그들을 만날 수 있을 거라고는 생각지 못했으니, 금하의 놀람과 기쁨은 유달리 커졌다.

물론 ‘상관’이라는 두 글자를 들은 아예의 몸은 삽시간에 굳어 뻣뻣해졌다. 늘어진 검은 천을 통해 상관희의 모습을 똑똑히 보면서도 그는 도저히 믿을 수가 없었다.

아예는 분명 알고 있었다. 지금 자신의 이런 모습으로는 상관희의 앞에 선다 해도 그녀는 그를 알아보지 못한다. 하지만 그는 즉시 다른 쪽으로 돌아앉아 피했다. 그녀를 바라볼 엄두가 감히 나질 않았다.

그러는 사이, 금하는 상관희와 사소를 향해 빠르게 뛰어가 그들을 반겼다.

“상관 언니!”

상관희와 사소도 예상치 못한 만남에 놀랐다. 금하를 알아본 사소가 상관희보다 성큼 걸음으로 앞서와 미간을 찌푸렸다.

“왜 여기 있어? 너도 피난 나왔냐?”

“우리는 아가씨 한 분을 신하성으로 모셔다드리고 있지.”

금하는 그에게 뒤쪽 순우민을 보라고 눈짓했다.

양악도 다가와 그들에게 공수했다. 건성으로 답례하던 사소는 더욱 심하게 미간을 찡그렸고 어조 또한 좋지 않았다.

“여긴 위험해. 너희 빨리 가라.”

“오빠, 갈 수가 없잖아. 배 기다리고 있는걸.”

상관희의 미간도 동시에 일그러졌다.

“오빠네도 강 건너려고? 지금은 배 두 척만 오가고 있어서 기다려야 해.”

상관희는 고개를 저으며 낮은 음성으로 말했다.

“여긴 왜구가 있어요.”

이 말에 정신이 번쩍 든 금하가 사소를 바라봤다. 그 또한 동의의 뜻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우리가 계속 쫓고 있는 중이에요. 지금 그들은 신분을 숨기고 변장하여 사람들 속에 숨어있을 가능성이 매우 커요. 여긴 아주 위험하니, 여러분은 당장 떠나는 게 좋아요.”

상관희의 목소리는 낮게 가라앉았다.

“그들이 분장으로 속인다 해도 언니네는 구분해낼 수 있죠?”

금하는 양악과 시선을 교환하며 낮은 음성으로 물었다.

상관희가 고개를 저었다.

“우리는 오는 길에 그들이 죽인 사람들을 보았는데, 옷이 모두 벗겨졌어요. 그래서 그들이 이미 난민 속에 섞여 있다는 걸 추측했을 뿐, 동양인의 외모는 우리와 다르지 않아서 분간하기가 어려워요. 저희 사형들도 매우 우려하고 계십니다.”

이때 무승들은 사방으로 흩어져 천천히 돌아다니고 있었다. 그들은 주변 피난민들이 입고 있는 옷을 예리한 눈빛으로 살폈으나 왜인을 알아볼 수는 없었다. 얼굴로 알아내는 것은 실로 어려워 몇 번이나 훑어보아도 성과는 없었다.

“넌 어떤 놈이냐?”

얼굴을 가린 아예는 한쪽에 앉아 있었다. 그를 본 사소가 아예를 잡아당기며 물었다.

“왜 얼굴을 가리고 있어?”

아예는 그의 손아귀를 벗어나려고 했으나 내력이 완전히 회복되지 않아 그럴 수 없었다. 게다가 사소의 손은 강철 집게 같이 단단하여 움직일 수조차 없었다. 상관희는 바로 옆에 있었고, 아예는 긴장으로 마음이 더욱 초조하고 불안해졌다.

금하가 급히 나서서 상황을 설명했다.

“오빠, 그 사람 괴롭히지 마. 우리와 함께 가는 금의위야. 얼굴에 상처가 있어서 남이 보는 거 싫어해.”

사소는 이제야 손을 놓고 어리둥절해졌다.

“금의위?”

“이 사람도 왜구한테 부상을 입었어. 몸과 얼굴에 수도 없는 칼을 맞고, 천만다행으로 목숨을 건진 거야.”

금하가 보충하여 설명했다.

이 말에 상관희는 아예를 조금 더 바라볼 수밖에 없었다. 그가 전신을 꼭꼭 싸매고 있는 것은 아마도 자격지심이 생겨 남이 자신을 보기 원치 않는 마음 때문이리라. 상관희는 상대에게 연민을 느끼며 가볍게 한숨을 내쉬었다.

“왜구는 지나치게 악독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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