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51화
두 사람이 군영 입구에서 한참을 기다리고서야 샹쯔가 헐레벌떡 뛰어왔다.
“장군께서 대인께 대복선(*복건, 절강성 연해에서 건조된 선박으로 선수가 뾰족하고, 선미가 넓다.)에 오르시라 말씀하셨습니다.”
샹쯔가 그에게 들고 있던 영패를 보여주고 또 한 마디 보충했다.
“이건 진짜 장군님의 기함(*사령관이나 지휘관이 타고 있는 군함.)입니다. 그분이 대인을 정말 귀빈 대우하시는 걸 잘 아셔야 합니다.”
육역이 웃어 보였다.
“그렇다면 너희 장군님께 더욱 감사해야겠다.”
대복선에는 관병 백이십여 명, 대불랑기(*대포의 일종.)8기, 조총 이십 문, 신기전 일백 자루, 분통화기 30자루, 화통 30자루가 배치되었다.
육역이 갑판을 둘러보니, 유대유가 군을 엄중히 다스린다는 것이 쉽게 눈에 들어왔다. 화기는 조총의 총통 안까지 세심히 닦았을 만큼 모두 깨끗이 닦여 있었고, 탄약화약고는 관리가 엄격해 일장 내로는 관계없는 이의 접근을 금지했다.
샹쯔가 영패를 들어 명령을 내리자, 대복선은 천천히 군항을 빠져나갔다.
이날은 날씨가 쾌청하고 좋았다. 바다 위에는 시야를 가로막는 안개가 끼지 않아 멀지 않은 잠항도 볼 수 있었다.
그곳의 항구는 삼각형 모양으로 해안방비도에 그려진 것과 같았다. 그리고 해안방비도에서 볼 수 없던 것은 항구 양쪽이 천연의 석벽으로 막혀 있다는 점으로, 멀리서도 석벽 위에 설치한 포를 확인할 수 있었다.
육역은 보자마자 깨닫고 말았다. 해로를 통해 잠항을 공격한다는 것은 육로보다 더 어려울 수 있음을.
“너희 장군께서 해로로는 몇 차례 공격하셨지?”
그가 옆에 있던 조총수에게 물었다.
“주산에 온 후로 해로로 대, 여섯 차례 공격했습니다.”
조총수가 답했다.
“그러나 잠항의 항구는 종심(*앞뒤로 늘어선 대형·진지 따위의 전방에서 후방까지의 거리를 이르는 군사 용어.)이 매우 길어 배가 한 번 들어오게 되면, 삼면의 협공을 받게 됩니다. 그래서 화포에 맞은 배 여러 척이 가라앉았습니다.”
육역은 정신을 집중해 잠항을 아주 오래 바라보았다. 그런 후 돌아서 분통화기수에게 물었다.
“분통화기는 배 위에서 사정거리가 가장 멀 테지. 얼마나 멀리 갈 수 있나?”
“대략 십 수장일 겁니다.”
“십 수장, 그럼 잠항 안의 왜선을 공격할 수 있겠군.”
“그렇습니다. 하지만 분통화기의 살상력은 한계가 있습니다. 왜선의 돛만 태울 수 있을 뿐, 적을 물리치고 승리를 거두기는 부족합니다. 만약 왜선이 해상에 있어 배가 불타기 시작하면, 그들은 어쩔 수 없이 바다로 뛰어내리지만, 배가 항구에 있으면, 그들은 뭍으로 올라가 불을 끄면 됩니다.”
분통화기수도 걱정이 많았다.
“왜선을 끌어낼 수 있다면 좋겠지만, 애석하게도 그들은 매우 교활합니다. 무슨 수를 써서 도발해도 전부 항구에 움츠리고 있을 뿐이었죠.”
“그랬군.”
육역이 줄곧 뒤에 있던 샹쯔를 향해 돌아섰다.
“그래서 너희 장군께서 이후엔 육로로 진격할 수밖에 없으셨던 건가?”
“장군님도 방법이 없으셨어요. 배가 여러 척이나 가라앉았거든요. 위쪽에서 내려온 은자는 또 매우 적어 화기 보충하기에도 모자라니, 전함 건조는 말할 것도 없죠.”
해로는 싸울 방법이 없고, 육로 역시 싸울 수가 없는데, 성상께서는 면직시키고, 처벌하려고 한다. 육역마저도 생각하면 머리가 아프건만, 이 지경까지 몰린 유대유는 어깨의 짐이 보통 무거운 것이 아닐 것이다.
* * *
같은 시각, 군영 대막사의 유대유는 이제 확실히 막다른 길에 이르렀다. 그는 참장과 유격장군들을 불러놓고, 체면을 챙길 여유도 없이 성지를 꺼내어 한 글자도 놓치지 않고 읽어 내렸다.
“……총병부터 그 이하까지 전부 면직하고 처벌받게 될 것이다!”
마지막 문구를 읽은 후, 장수들은 서로 얼굴만 쳐다볼 뿐 누구도 입을 열지 못했다. 모든 이가 머릿속에 검은 구름이 가득 든 것처럼 암담해졌다.
성지를 챙긴 유대유는 부하 장수들을 바라봤다. 그들이 무엇이든 말하기를 기다리는 듯했으나, 한참이 지나도 말을 하는 이가 없어 어쩔 수 없이 그가 입을 열었다.
“성상의 뜻을 자네들도 전부 알겠지. 자네들도 잠항의 상황을 훤히 알 것이고……. 말해 봐. 좋은 방법이 있다면, 누구든 말할 수 있다. 잠항을 공격할 수만 있다면!”
장수들은 고개를 숙였고, 사방 아무 소리도 들리지 않았다.
한참이 지나서야 유격 장군 하나가 주저하며 입을 열었다.
“장군…….”
“방법이 있구나, 말해!”
유대유가 그를 격려했다.
“방법이 있는 게 아니고요. 소장이 생각해 봤는데, 우리 영내에 육 첨사가 와 있잖습니까? 듣기로 그는 육병의 아들이라죠. 성상께서 육병을 매우 마음에 들어 하시니, 우리가 육 첨사에게 우리 말 좀 잘해 달라고 청할 수 있지 않을까요……. 말을 잘해 달라는 게 아니라, 사실대로 말해달라는 것이죠. 성상께 기한을 수개월 더 늦춰 주십사, 우리 이곳의 상황을 성상께 말씀드리는 것이죠.”
유대유는 미간을 문지르며 퉁명스럽게 반문했다.
“그가 성상과 친분이 있는 것이지, 우리와 친분은 없잖아. 자넨 무얼 믿고 그에게 우리를 도와 말을 해 달라고 하나? 물건이라도 준 건가? 은자는 전부 화기 사는 데 써버려서 쓸 게 없을 테고. 그에게 조총을 준 거야, 아니면 화통을 준 거야?”
유격 장군은 그의 말에 말문이 막혀 한숨만 쉬었다.
“또! 또 다른 방법은 없어?”
유대유가 나머지 사람들을 바라보았다.
그때, 부사 왕숭고가 미간을 찡그리며 말했다.
“장군, 우린 이미 수차례 공격을 감행했습니다. 잠항의 지세로는 그저 사람으로 조금씩 조금씩 앞으로 옮겨가며 저 왜구와의 대치 거리를 메꾸는 수 외에는 전혀 다른 방법이 없습니다.”
장수들 전부 말이 없었다. 유대유도 왕숭고의 말이 현실에 제일 잘 맞는 말이라는 걸 알고 있었다. 아니, 현실은 오히려 이 말보다 훨씬 잔혹했다. 유가군의 현재 병력으로는 병사들이 기꺼이 목숨을 바쳐 앞으로 나아간다 해도, 그렇게 해서는 한 달이라는 기간 안으로 잠항을 공격하지 못할 뿐 아니라, 병사 전부의 목숨을 날릴 판이었다.
유대유는 지도상으로 지척에 있는 잠항을 바라보며 거듭 주먹을 내려쳤다.
“아직 한 달이 남아 있으니, 우리는 연이어 공격한다! 그러나 절대 형제들을 헛되이 목숨을 잃게 할 수 없다. 자네들은 돌아가 각자 상세한 작전계획의 초안을 세워 내일 일찍 내게 가져와라. 누가 세운 작전계획이라도 잠항을 공격할 수 있다면, 그는 대공신이 되는 것이지. 나는 그를 위해 공에 대한 상을 청할 것이다!”
“소장, 명을 받들겠습니다!”
장수들이 떠나고, 왕숭고 한 사람이 홀로 남았다.
왕숭고는 여러 해 유대유를 따랐고, 그를 따라 수많은 전쟁에 출전하여 유대유의 성격에 관해서는 자연히 다른 이보다 이해하는 부분이 많았다.
“장군, 전쟁이 잇따라 계속되면, 우리도 퇴로를 생각해야 합니다.”
왕숭고가 조언했다.
“공격할 수 없는 건 공격할 수 없는 이유가 있고, 끝내는 성상께 알려드려야 하지요. 우리가 계속 윗분들 대신 누명을 쓸 수는 없습니다.”
“무엇을 말하고 싶은 건지 자네도 솔직히 말해 봐.”
유대유가 그를 바라봤다.
“저 육 첨사가 지금 이때 잠항으로 온 건 절대 공교롭다 생각할 것이 아닙니다. 장군, 더 깊이 생각해 보십시오.”
“나도 진작 고심했어!”
유대유가 품속에서 호종헌의 친필 서신을 꺼냈다.
“봐라. 도독이 이 편지에 대고 말한 건 죄다 우리가 그를 어찌어찌 대해야 하는지 그런 것들이다. 하나도 빠짐없이 전부 고하고, 그를 부처로 생각해 제물을 바치라는 거잖아. 좋아. 할 수 있는 건 내가 다 했어. 이 작전 자료를 그가 보고 싶다고 하면, 전부 보여주겠어. 오늘 아침 그가 바다로 나가 한 번 둘러보겠다고 해서, 나는 대복선을 타라고 내줬다. 자네가 말해 봐, 내가 뭘 더 할 수 있나……. 내 전 재산을 다 합쳐도 은자 이십 량이 안 되는데, 두 손 모아 공손히 받친다고 해서, 그의 눈에나 찰까? 내가 계집으로라도 변해 그와 밤이라도 보내러 가야 하느냔 말이다!”
호종헌의 친필 서신을 다 본 왕숭고는 유대유가 격분하여 말하는 걸 듣고 저도 모르게 쓰게 웃었다.
“아니면, 이따 제가 기회를 보아 육 첨사와 밥을 먹으며 그의 의사를 좀 떠보겠습니다. 장군께서 말하기 불편하신 말들은 제가 다소 나을 수도 있습니다.”
그의 말에 유대유는 한숨을 내쉬었다. 허리춤에서 부스러기 은전 몇 개를 꺼내서는 그의 손에 쥐여주었다.
“음식 점검 좀 해. 먹기도 전에 업신여김당하지 말고.”
“이 정도 은자는 저도 있습니다. 넣어두십시오.”
왕숭고가 웃으며 은자를 되돌려줬다. 그리고는 그가 꺼내든 은자를 계속 떠안길까 염려돼 서둘러 나갔다.
* * *
한편, 금하 일행은 남쪽을 향해 이틀을 갔다. 심 부인의 보살핌 아래, 금하는 이제 예전처럼 걸을 수 있었고, 아예도 천천히 몇 보는 걸을 수 있었다. 그의 내공 또한 점차 회복하는 중이었다.
이날 잠시 쉴 때, 금하는 잠수 옆으로 다가가 부드러운 어조로 말을 걸었다.
“오라버니, 지도 좀 볼 수 있어요?”
잠수는 의심 살 행동을 피해 3장이나 멀리 비켜나 연속으로 말을 내뱉었다.
“지도 없어, 없어……, 없어!”
“객잔에서 출발 전에, 잠복이 분명 오라버니한테 지도 준 걸 내가 다 보았어요.”
금하는 사실을 밝히며 그를 놀렸다.
“사내대장부가 이렇게 쩨쩨하면 장가도 못가요.”
“너…….”
잠수가 지도를 품속에서 꺼내 퉁퉁거렸다. 그녀에게 주고서도 혼잣말로 중얼거렸다.
“정말 모르겠다. 대공자는 네 어디가 좋다고 하시는 거냐.”
금하는 또 유달리 귀가 예민했으니, 지도를 받고는 득의양양하게 고개를 저었다.
“대인은 당연히 내 어디든 다 좋다고 하시죠. 오라버니 안목을 어찌 대인과 비교하겠어요?”
잠수는 말로는 그녀를 당해낼 수 없어 냉랭하게 굳은 얼굴로 물을 가지러 갔다.
이 지도는 금의위 내부에서 쓰는 지도로 육선문 것과 비교하면 훨씬 정교하고 자세했다. 하천 하나, 강 하나 모두 눈에 확연히 들어왔고, 눈에 띄지 않는 촌락까지 전부 주석을 달았다.
금하는 지도를 손에 넣자마자 나무 그늘에 앉아 세세히 살피기 시작했다.
―― 잠항의 위치, 신하성의 위치, 그리고 항주성의 위치까지.
그녀는 육역이 잠항에 벌써 도착했을지에 대해서도 속으로 헤아려 보았다. 그때, 계집종을 물린 순우민이 홀로 금하 옆으로 다가와 부드러운 목소리로 물었다.
“원 낭자, 우리 지금 어디쯤 가고 있어요?”
“여기예요.”
금하는 순우민 곁으로 더 붙어 손가락으로 지도를 찍어 보여주었다.
“앞으로 더 가서 강을 건너야 해요. 신하성은 여기…….”
순우민은 그녀의 손끝을 따라 시선을 옮기며 고개를 끄덕였다.
“관도는 길이 좋아서 이틀 정도면 도착할 거예요.”
지도를 챙겨 넣던 금하는 품속에서 금황색의 둥근 구운 떡도 꺼내 순우민에게 건넸다.
“맛보세요. 대양의 솜씨로 구운 건 바깥에서 파는 떡보다 훨씬 맛있어요.”
“고마워요.”
함께 지내는 날들이 길어지면서 순우민도 그들과 많이 익숙해지고, 이젠 서먹할 일도 없었다. 금하가 건넨 떡을 자연스레 받아든 그녀는 조금씩 베어 먹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