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50화
유대유는 정말 더는 그를 신경 쓰지 않았다. 밥과 반찬 전부를 입에 쓸어 넣듯이 삼키는 기세는 3년은 밥 구경도 못 해본 사람 같았다.
육역은 시선 둘 곳을 찾지 못해 억지로 시선을 내려뜨렸다. 그러나 그가 밥을 먹는 소리가 여전히 들려 사람을 꽤나 곤란하게 했다.
그래도 이 과정이 길지는 않아 잠시 후 막사 안은 조용해졌다. 식기를 한쪽으로 밀어둔 유대유가 옷소매로 아무렇게나 입술을 닦으며 육역에게 어색하게 웃어 보였다.
“우스운 모습을 보였군! 우리 군에서 전쟁하는 사람들은 다음 밥에 대한 기약이 없으니, 음식을 천천히 먹는 습관을 가질 수가 없다네. 지금은 날이 따뜻해져서 그런대로 견딜 만한데, 날이라도 추우면, 양고기 밥은 솥에서 나오자마자 새하얗게 양 기름이 굳어버리거든. 그럼 밥 먹는 게 밀랍을 씹는 것보다 더 고생스러워져.”
육역이 담담하게 웃었다.
“예전에 관외(*산해관 동쪽.)로 갔을 때, 저도 그 맛을 보았습니다.”
유대유는 육역을 줄곧 경성에 사는 부잣집 자제로 여겼다. 그가 관외에 가보았을 거라고 생각지 않아 잠시 말을 멈춘 채 그를 바라보았다.
“호 도독께서 서신에 어찌 설명하셨는지 모르지만,”
육역도 그를 보며 말을 이었다.
“제가 재주는 없으나, 이번에 군으로 왔으니, 미약한 힘이나마 도울 수 있기를 바라고 있습니다.”
유대유는 하하 억지로 두어 번 웃었다.
“육 첨사는 귀인이오. 도독께서도 당부한 바가 있으셨지. 이런 것들…….”
그는 손가락으로 탁자 가까이에 있는 작은 청화 항아리를 가리켰다. 안에는 각종 작전지도, 권종 등이 빽빽하게 꽂혀 있었다. 그런 후 그의 손가락은 다시 탁자 뒤의 책꽂이를 가리켰다. 그곳에도 자료며 전황보도, 명령에 관한 서류 등이 층층이 쌓여 있었다.
“도독께서 내게 육 첨사에게 협조하라고 하셨는데, 당연히 명령을 어길 수야 없지. 주산에 온 이후의 작전 자료는 모두 여기 있네. 육 첨사가 세밀히 살펴보길 바라네.”
바로 일어선 유대유가 잠시 생각을 하더니 다시 이어서 말했다.
“육 첨사도 관심이 있으면, 내일 작전 회의에 참관할 수 있도록 내가 사람을 보내겠네.”
육역이 입을 열려는 순간, 유대유는 이미 일어나 그에게 공수했다.
“육 첨사는 천천히 감찰하시고, 나는 군무가 있어서 배에 올라가 봐야 하네. 함께 있을 수 없음을 양해 바라네.”
“……장군 편한 대로 하십시오.”
육역은 그리 말할 수밖에 없었다.
유대유는 한마디 말도 더 하지 않았다. 성큼 걸음으로 막사를 나가 샹쯔에게 육역을 잘 살피라는 눈짓을 했다.
대막사 안, 육역은 씁쓸히 웃었다. 어쩌면 호종헌의 편지가 도움보다는 오히려 방해가 되었을지도 모른다. 유대유는 그가 감찰을 하러 온 것이라 생각하는 것이 분명해 보였다.
육역은 일어나 작은 청화 항아리에서 두루마리 지도 하나를 손 가는 대로 뽑았다. 탁자 위에 펼쳐놓고, 자세히 살피기 시작했다.
* * *
다음날 새벽, 대막사로 돌아온 유대유는 의자에 기대어 달게 자고 있는 샹쯔를 즉시 흔들어 깨웠다.
“장, 장군님 돌아오셨어요.”
샹쯔는 잠에 취해 게슴츠레한 눈을 비비며 사방을 둘러 보았다.
“육 첨사는요?”
유대유가 미간을 찡그렸다.
“넌 어째 사람 하나도 제대로 지켜보지 못하냐?”
“저는 줄곧 지켜보고 있었습니다. 육 첨사께서는 밤새 여기 계셨어요. 나중에 제가…….”
샹쯔가 괴로워하며 말했다.
“아마도 제가 너무 피곤하여 잠이 들었나 봅니다.”
“그가 밤새 여기 있었다고?”
“그럼요. 그분이 왜군의 작전상황을 최대한 빨리 알고 싶으셔서 밤새 이것들을 보셨다고 말씀하셨어요. 제가 돌아가 쉬시라 권했는데, 그분은 피곤하지 않다는 말만 하셨어요.”
샹쯔가 이어 말했다.
“제가 그분 방에 가서 한 번 볼까요? 어쩌면 이미 돌아가 쉬고 계실지 몰라요.”
유대유는 탁자 쪽으로 다가가 천천히 탁자 위를 훑었다. 위에는 권종 자료가 많이 나와 있었으나 어지럽게 흐트러져 있지는 않았다. 그리고 가장 윗면에는 잠항의 해전도가 놓였다.
“그가 네게 무언가 물은 것이 있더냐?”
“묻긴 하셨으나, 전부 사소한 일이었습니다. 제가 몇 살인지, 고향이 어디인지 물으셨고, 저는 사실대로 말씀드렸습니다.”
샹쯔는 유대유의 안색을 유심히 살폈다.
“장군, 말해선 안 되었나요?”
“그리고 다른 것은?”
“다른 것…….”
샹쯔는 애써 회상했으나 끝내 고개를 저었다.
“없습니다.”
유대유는 잠시 생각에 잠겼다. 육역이 어디까지나 금의위란 것을 생각하면, 무언가를 알아내려 해도 아마 솔직하게 말하진 않을 것이다.
* * *
방으로 돌아온 육역은 하룻밤을 새운 탓에 피곤하긴 했으나, 잠기운은 전혀 없었다.
하룻밤을 지새워 검토한 자료에 의하면, 잠항의 상황은 그의 예상보다 더 엉망이었다.
잠항은 산길이 험난하고 좁았다. 지형은 복잡하여 지키기는 쉬우나, 공격은 어렵다. 게다가 모해봉은 궁지에 몰린 짐승이 되어 싸우니 생사란 것은 애초에 염두에 두지 않았다.
이에 더해 봄철에 새로운 왜구가 적지 않게 잠항으로 증원되었으니, 모든 전황은 명군에게 극히 불리했다.
분명 호종헌 쪽에서 유대유에게 가하는 압박도 매우 강했을 터였다. 그렇지 않다면, 유대유가 저 좁은 길을 걸어 왜군을 공격하는 모험은 하지 않았을 것이다.
잠복이 그에게 조금이라도 쉴 것을 권유했으나, 육역의 머릿속은 시종 해안방비도에 대한 생각으로 가득 차 있었다.
찬물로 세수를 하여 피로를 날린 그는 옷을 갈아입으면서도 생각을 멈추지 않았다.
잠항 주변을 둘러볼 수 있는 가장 좋은 방법은 배로 한번 가보는 것이었다. 땅 위의 싸움이 이렇게 어려운 상황이니, 만약 바다에서 공격한다면, 어쩌면 전환점이 될 수도 있는 일이었다.
두 사람은 그 길로 군영으로 갔다. 육역은 설령 비어복을 입지 않고 일상복 차림이었으나, 여전히 주위 관병의 곁눈질을 받았다.
사람들이 금의위를 좋아하지 않는다는 사실은 그도 본래부터 알고 있었다. 그런데 관병의 눈빛은 백성의 눈빛과 다른 점이 있었다. 그들은 혐오감을 노골적으로 드러냈고, 일부러 피하지도 않았다.
그들이 군영의 문 가까이 갔을 때였다.
멀리서 금의위의 비어복을 입은 이들이 탄 말이 날듯이 달려오는 것이 보였다. 이내 군영의 문 앞에서 말을 내린 우두머리가 부사관에게 통보하라 이르고, 유대유는 재빨리 뛰어와 성지를 받았다.
“……절강총병 유대유는 작전이 순조롭지 못하였다. 1개월의 기한으로 반드시 잠항을 손에 넣으라! 기한이 되어도 손에 넣지 못하면, 총병부터 그 이하까지 전부 면직하고 처벌받게 될 것이다!”
금의위가 큰 소리로 성지를 읽어갔다.
“신, 성지를 받들겠습니다.”
유대유가 성지를 받았다. 원래 검던 그의 얼굴이 서리같이 하얗게 질려 버렸다.
성지를 선포한 금의위는 육역을 보지 못했고, 오래 머무르지도 않았다. 유대유의 어깨를 두드리며 알아서 잘 하라는 인사치레의 말을 몇 마디하고는 다시 말에 올라 빠르게 떠났다.
“장군…….”
유 대유는 제자리에 움직이지도 않고 한참이나 서 있었다. 그를 본 샹쯔가 조심스레 불렀다.
순간 성지를 움켜쥔 유대유가 두통이 끊이지 않는 이마를 문지르며 명령했다.
“다들 불러라. 유격 장군 이상 모두 다 불러!”
“존명!”
샹쯔는 급하게 달려나갔다.
“총병부터 그 이하까지 전부 면직하고 처벌받게 될 것이다…….”
오히려 잠복이 놀라 숨을 들이켰다.
“성상께서 정말로 매우 성이 나셨나 봅니다.”
육역은 속으로 한숨을 삼켰다.
“지금은 너도 알겠지. 호 도독이 내게 왜 잠항으로 가볼 것을 제의했는지.”
잠복은 생각을 더듬어보았다.
“잠항 전투는 이미 너무 오래 끌었기에 조정에선 말과 글로써 이를 성토하는 이가 매우 많았고, 성상께서도 이미 참을성을 잃으셨다는 것을 호 도독은 진작 알고 있었군요.”
잠복은 옅은 한숨을 쉬었다가 다시 말을 이었다.
“그는 대공자를 이곳으로 보내 잠항을 공격하지 못하는 데는 절대 왜군과 사통한 것이 아니라 분명 이유가 있다고 보여주고 싶었던 겁니다. 그는 우리가 그를 위해 유리한 말을 해 주길 바라는 걸까요?”
“물론 그것이 하나의 이유겠으나, 또 하나가 더 있지.”
육역이 소리를 낮추어 말했다.
“지금 성상께서 이리도 분노하셨거늘, 우리 몇 마디로 가라앉힐 수 있는 문제가 절대 아니다. 잠항을 함락시키지 못하면, 이 죄는 누군가 짊어지어야 해.”
이 말에 잠복은 얼이 빠졌다. 그러다 돌연 확연히 깨달은 것이 있어 목소리를 낮췄다.
“유대유는 사람을 대하는 것이 능숙지 못합니다. 게다가 지금은 전세가 긴박하여 그는 대인의 심사를 거스를 가능성이 매우 크죠. 이 사람이야말로 혼자 다 뒤집어쓸 최적의 인선이었던 겁니다.”
육역이 가볍게 한숨을 내쉬었다.
“그게 바로 관료의 세계다. 유대유는 비록 훌륭한 장수이나, 호종헌의 입장에서 자신의 감투나 생명과 비교하면 당연히 아무것도 아닐 수 있지.”
이때 때마침 성지를 움켜쥐었던 유대유가 돌아서며 멀리 있는 육역을 보았다. 비록 그는 무표정한 얼굴이었지만 깊어진 눈빛에 드러난 것은 군 감찰을 위해 온 것이 분명해 보이는 이 금의위를 향한 감출 수 없는 혐오였다.
“저는 해로로 잠항을 둘러보려 합니다. 장군께서 배를 내어주실 수 있으신지요?”
육역이 느린 걸음으로 유대유의 앞에 이르렀다. 그는 짐짓 아무것도 모른다는 표정으로 웃어 보였다.
“장군께서 동행이 가능하면, 당연히 더욱 좋습니다.”
유대유는 방금 성지를 받았다. 지금의 그는 인사치레의 웃는 얼굴조차 만들어내지 못하여 무뚝뚝하게 말했다.
“나는 곧 회의가 있다네. 육 첨사가 바다로 나가겠다면, 배를 내어주겠네. 샹쯔에게 따르라 하지.”
“감사합니다, 장군.”
육역도 강요하지 않았다.
미미하게 고개를 끄덕이던 유대유가 자리를 뜨려고 하다가 돌연 고개를 돌려 묵직한 목소리로 말했다.
“해상에는 도적이 많으니, 육 첨사 몸조심하시고……, 우리에게 민폐는 끼치지 말길 바라오!”
“장군 걱정이 지나치십니다.”
가벼운 웃음으로 응대한 육역을 뒤로 하고, 유대유는 사납게 돌아서 성큼성큼 걸어 떠났다.
옆에 있던 잠복은 이번에야말로 잔뜩 화가 나 씩씩댔다.
“뭘 두고 우리에게 민폐를 끼치지 말라는 건가요?”
“좋은 쪽으로 생각하면, 유 장군의 말은 매우 직설적이라서 우리는 그가 속으로 무슨 생각을 하고 있는지 생각할 필요가 없다.”
육역이 잠복의 어깨를 두드렸다.
“대공자께서는 어떻게 생각하시는 겁니까?”
“전투가 아직 끝나지 않았다. 관료 세계의 일은 잠시 넣어두자꾸나.”
육역은 여전히 담담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