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49화
두 시진을 넘게 걷고서야 드디어 유가군의 군영에 도착했다. 그런데 유 장군이 아직 병영으로 돌아오지 않았다고 하니, 그들은 막사 밖에서 기다릴 수밖에 없었다.
그렇게 다시 한 시진 가량을 기다리고서야 군포를 입은 구레나룻의 장대한 남자가 큰 걸음으로 군영으로 들어오는 것이 보였다. 그는 중상 입은 병사를 메고 있어 영내의 관병이 나가 중상자를 받았다. 그러고 나서야 그는 성큼 걸음으로 대막사로 향해갔다.
“장군!”
막사 앞에서 기다리던 어린 군사가 서둘러 예의 바르게 그를 불렀다.
음, 하며 대답한 유대유는 그제야 육역과 잠복을 보고는 눈빛이 의아해졌다.
“장군!”
육역과 함께 온 하사관이 급히 유대유에게 다가가 상황을 설명했다. 아울러 품속에서 서신 한 통을 꺼내 그에게 건넸다.
분명 호종헌의 친필 서신이었다. 미간을 찡그린 유대유는 서신을 다 읽고는 시선을 들어 육역을 바라보았다.
“육 첨사, 아, 거……, 아직 식사 못 했겠군. 샹쯔야, 네가 먼저 이분들 모시고 식사를 하여라. 그런 후 알아서 조치해 드려.”
그는 어린 군사에게 지시하고는 다시 육역에게 돌아섰다.
“내가 군무를 처리한 후에 육 첨사를 위한 환영회를 열기로 하지.”
건성으로 말을 마친 그는 바로 대막사로 쑥 들어갔다.
유대유가 육역에게 이리 소홀하자, 그들을 수행한 하사관이 어색하게 해명했다.
“방금 막 큰 전투를 치른 터라, 아마도 유 장군이 매우 지친 모양입니다. 육 대인의 많은 양해를 부탁드립니다……. 저는 바로 돌아가 도독께 보고를 드려야 하니, 먼저 하직을 고하겠습니다!”
육역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렇게 그가 바로 떠나려 할 때였다. 대막사의 장막이 사납게 걷혔고, 유대유가 큰 걸음으로 뛰어나와 한 손으로 그의 멱살을 붙들었다.
“장군, 장군……. 무엇 하시는 겁니까?”
멱살이 잡혀 세차게 끌려온 하사관은 거의 숨도 쉬지 못한 채 다급히 용서를 빌었다.
“약삭빠른 새끼. 얼굴 한 번 비치고 튈 생각이냐!”
유대유의 얼굴은 노기로 가득했다.
“묻겠다. 도독은 대체 언제 병사를 증원할 계획이냐?!”
“장군께서도 모르시는 것이 아니잖습니까. 지금 각지에는 왜환이 빈번하여 필요 인원을 전혀 차출할 수가 없습니다. 며칠 전에는 태주에서 위급함을 알려와 척 장군께서 가까스로 달려가셨지요. 조금 안정이 되면, 도독께서 분명 잠항에 병사 증원을 하실 터이니……, 장군 손 조금만 풀어 저 숨이나 쉬게 해 주십시오.”
유대유는 번뇌하며 손을 놓았다.
“내가 그 말을 반년 가까이 들었어, 병사는 어쩔 건데?”
“도독께서는 밤낮으로 잠항 대승의 소식을 학수고대하시고, 또한 마음은 괴로움으로 가득하십니다. 장군께서 많은 양해를 해 주십시오.”
하사관은 옷을 매만진 후 다시 공수했다.
“소관 먼저 물러가겠습니다!”
유대유는 철뭉치처럼 무겁게 미간을 찌푸린 채 육역은 쳐다보지도 않고 곧장 대막사로 돌아갔다.
지금껏 육역을 따라다니며 일해 왔어도 잠복은 누군가에게 이런 식으로 무시를 당한 적이 없었다. 자연히 그의 얼굴색도 그리 좋지는 않았다.
“두 분은 저와 함께 먼저 식사하러 가시지요.”
샹쯔라고 불린 군사는 나이가 아직 어렸다. 육역이 첨사라는 것만 알 뿐 대체 어떤 신분인지도 정확히 알지 못한 채 그들을 데리고 밥을 먹으러 갔다.
식사도 주방에 시켜 따로 만든 것이 아닌 병사들이 다 함께 먹는 보통의 식사로, 매우 조악해 보였다. 그래도 고기에, 채소에 기본적인 것은 갖춘 것이 그나마 다행이었다.
잠복은 음식을 가리지 않는다. 하지만 육역까지 이런 조악한 음식을 먹게 되니 그도 화가 날 수밖에 없었다. 그러나 육역이 미리 당부한 것이 마음에 걸려 섣불리 화도 내지 못했다.
“우리 아우님은 나이가 많아 보이지 않는데, 어찌 이렇게 유 장군에게 중용이 되었나?”
음식을 몇 입 먹은 육역이 옆에서 시중을 드는 샹쯔에게 온화한 얼굴로 물었다.
샹쯔는 아직은 그래도 아이였다. 장군이 자신을 중용했다는 육역의 말에 기분이 매우 좋아져 가슴을 힘껏 펴고 대답했다.
“대인께 아룁니다. 소관은 이제 그리 어리지는 않습니다.”
육역이 재미있다는 듯 웃으며 그를 바라봤다.
“무슨 띠인가?”
“대인께 아룁니다. 소관은 돼지띠입니다.”
이번에는 잠복도 웃었다.
“겨우 열네 살인데, 어리지 않다고 말하네.”
“대인께 아룁니다. 열네 살도 어리지는 않습니다. 장군께서는 이 년만 더 지나면, 소관이 배에 올라 화승총 쓰는 법을 배울 수 있다고 하셨습니다.”
샹쯔의 얼굴은 빛이 나고 있었다.
육역이 웃으며 물었다.
“그래, 화기火器를 좋아하나?”
샹쯔는 연신 고개를 끄덕였다.
“너희 장군님을 따라 잘 배워라. 장래 좋은 기회가 닿아 신기영(*神机营 명청 시대 화기 군대의 명칭.)에 들어갈 수도 있을 것이다.”
육역이 웃으며 말했으나, 샹쯔는 계속 고개를 저었다.
“소관은 어디도 안 가고, 유 장군님만 따를 겁니다.”
잠복도 웃으며 고개를 저었다.
“확실히 아이는 아이군요.”
그들이 밥을 거의 다 먹을 무렵, 샹쯔는 요리사에게 찬합에 밥과 반찬을 준비해 달라고 청했다.
“장군께서 이제 막 돌아오셔서 아직 식사를 못 하셨습니다.”
잠복이 찬합의 밥과 반찬을 보니 그들이 먹은 것과 다르지 않았다.
“유 장군도 이 식사를 하시나?”
당연히 그렇다며 샹쯔는 고개를 끄덕였다.
육역은 그저 담담히 웃었을 뿐 이상히 여기지 않았다. 오히려 잠복은 유대유가 병사들과 정말로 동고동락할 거라고는 생각지 못했다.
밥을 먹은 후, 샹쯔는 그들을 지낼 곳으로 데려다주었다. 그리고 바로 유대유에게 밥을 가져다주러 종종걸음으로 뛰어갔다.
“저 아이…….”
샹쯔를 향해 고개를 젓던 잠복은 방안을 훑어보고는 다시 또 한숨을 내쉬었다.
“대공자, 밖에 한 바퀴 돌고 오십시오. 제가 먼저 방을 정리해 놓겠으니 그때 오시죠.”
방은 매우 누추하였다. 흙벽에, 방 안에는 간단한 가구뿐 다른 장식물 하나 놓이지 않았다.
그러나 육역이 오히려 아무런 신경도 쓰지 않았다.
“필요 없다. 군에서야 간소한 것이 당연한 것을.”
잠복은 육역이 씻을 물을 동 대야에 담아왔다. 잠수보다 상당히 침착한 성격의 잠복이라 해도 이때만큼은 상당히 화가 치밀었다.
“대공자를 푸대접해서 구석에 밀어 넣다니, 유 장군의 유세 한 번 대단합니다. 따지자면 대공자께서도 그와 품계가 같은데, 그런 대공자 앞에서 무슨 위세를 부린답니까!”
잠수가 길어 온 우물물은 얼음같이 차디찼다. 적신 수건으로 얼굴을 덮으니 한기가 시원하게 스며들어 육역은 이제야 정신이 맑아진 느낌이 들었다.
잠시 후 수건을 걷어낸 그가 입을 열었다.
“사품 품계가 같다고는 하나, 그는 병권을 장악하고 있으니, 나보다 확실히 무게가 있지.”
“그렇다고 이렇게 사람을 무시할 수는 없는 겁니다! 대막사 밖에서 우리 내쫓던 모습 보셨잖아요.”
“넌 유대유의 자료를 다시 펼쳐 보아라.”
잠복의 말에 육역이 한숨을 내쉬었다.
“그가 만약 일 처리를 융통성 있게 하고, 수완과 술수를 잘 부리는 사람이었다면, 이 몇 년 동안 자신과 상관없는 일에 그리 많이 휘말리지도 않았다. 또한, 그렇게 여러 번 고생하고, 말 못 할 손해를 입지도 않았을 테지.”
유대유. 자는 지보, 혹은 손요, 호는 허강으로 복건 진강 사람이다.
가정 14년에 무과에 합격하고, 천호로 임명되어 금문을 지킨다. 가정 21년 도지휘첨사로 관직이 오르고, 가정 35년 잇따른 전공으로 도독첨사, 도독동지에 임명된다.
그러나 그는 영전의 경력과 비교해 관료로서는 안타까운 경험이 훨씬 더 많았다.
유대유는 군사를 통솔할 수 있는 능력을 지녔으나 중용되지 못했다.
초기에는 병부상서 모백온이 그를 매우 마음에 들어 하며 칭찬해 마지않았으나, 그를 기용치는 않았다. 후에 모백온이 그를 선대총독 적붕에게 추천했다. 적붕도 그를 매우 마음에 들어 했으나, 여전히 기용하지 않았다.
후에 왕강경 대첩에서 분명히 그가 승전을 하였는데, 공은 다른 사람에게 돌아갔고, 그는 좌천당했다. 그후 그는 또 호종헌에게 합류했고, 비록 전쟁에 패했으나, 매우 용맹하게 전심을 다했다.
그러나 최후의 결과로 그는 성상에게 세습 백호직에서 면직당하고, 성실히 자신의 본분을 지키라는 명령을 받았다. 그렇지 않으면, 목을 베어 대중에게 본을 보이겠다고……. 결국 가정 14년 이후로 유대유는 관료로서 무수히 많은 고통을 당했으며, 무수한 누명을 썼다고 말할 수밖에 없었다.
“우리에게도 이러는 걸 보면, 이 사람이 관료사회에서 환영받지 못했다는 건 충분히 미루어 짐작할 수 있습니다. 고생하지 않았다고 하면, 도리어 이상하죠.”
잠복이 다시 방을 둘러보았다. 깨끗하다고는 할 수 있으나, 매우 초라한 것도 사실이었다.
“그가 지금 병사를 이끌고 전쟁을 할 수 있다는 것이 저는 신기할 정도입니다.”
“그가 지금 병사를 이끌고 전쟁을 할 수 있는 건, 그에게 확실히 능력이 있기 때문이다.”
육역은 여전히 곱지 않은 시선으로 방을 둘러보고 있는 잠복에게 수건을 던져주었다. 수건을 선반 위에 잘 널어둔 잠복이 돌아서 물었다.
“유대유를 호종헌의 사람이라 할 수 있을까요?”
“누구의 사람도 아닐 것 같다.”
육역이 고개를 기울여 잠시 생각에 잠겼다.
“지금 조정에는 파벌 없는 사람 찾기가 쉽지 않지. 있다면 아마 그 혼자일 것이다. 그의 머릿속은 온통 전쟁뿐으로 파벌 같은 건 그와 전혀 상관이 없어. 생각해 보아라. 왕강경대첩은 그가 장경을 도와준 것뿐인데도 조문화는 그를 장경의 사람으로 판단해 그의 관직을 파면시켰다. 또한 그가 호종헌에게 합류한 것은 그리 오래되지 않았음에도, 조 순무는 유대유가 호종헌의 사람이라고 확정적으로 믿고 있지……. 그는 전장에서 이겼더니 좌천당했고, 졌더니 누명을 썼다. 이런 파벌 싸움에 너는 또 끼겠느냐?”
잠복이 웃어 보였다.
“소관은 자성해 보아도, 유 장군의 불운에는 비교도 될 수가 없군요.”
“너뿐만은 아니지. 나 역시 그 사람이 겪은 불운은 당해내지 못할 거 같다.”
육역이 잠시 말을 멈췄다.
“……그는 무예가 뛰어나고, 형초장검에 정통하다고 한다. 만약 겨뤄볼 기회가 있다면, 즐거운 경험이 될 수 있겠지.”
“잠항을 아직 함락시키지 못한 상황이라 그는 지금 대공자와 겨룰 마음이 없을 듯한데요.”
* * *
유대유는 마음이 없을 뿐 아니라 현실적으로 짬도 낼 수 없었다. 그는 군무로 바빴고, 그들이 도착 후 이틀을 꽉 채워 지내고서야 육역은 부사관의 안내를 받아 군영의 대막사로 들어갈 수 있었다.
“장군, 보고 드립니다. 육 첨사께서 도착하셨습니다.”
부사관이 고개를 숙인 채 밥을 막 퍼넣고 있던 유대유에게 보고했다.
육역은 눈앞에 있는 유대유를 보며 조금 어리둥절해졌다.
처음 왔을 때에는 아무리 장교라 해도 전쟁으로 정신이 없어 겉치레는 전혀 신경 쓰지 못했을 거라고 생각했었다. 그런데 유대유는 지금도 여전히 그날 군영으로 막 돌아왔던 그 차림이었고, 옷에 묻은 화약 연기마저 빠지지 않았다. 갈아입지 못한 옷, 씻지 않은 얼굴, 목덜미를 물들였던 선혈마저도 이미 딱지로 굳은 채 그대로였다.
유대유는 일어서지 않았다. 손을 휘저어 부사관을 나가라 하고, 다시 육역에게 손을 흔들어 앉으라고 하는 것이 지극히 본인 편한 대로였다.
“잠시 기다리시게. 내가 우선 밥을 좀 먹고.”
육역이 말했다.
“편한 대로 하십시오, 장군. 저는 급하지 않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