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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의지하 (146)화 (146/224)

146화

그건 어젯밤 육역을 습격한 흑의인의 팔이라는 것을 결코 모를 수 없는 일이었다.

미간을 찌푸린 육역은 잠복에게 상자를 닫으라고 눈짓하고, 시동에게는 한숨 쉬며 말했다.

“그들은 어제 내가 직접 놓아준 것인데 호 도독이 이렇게까지 할 필요가 있던가.“

호종헌이 어젯밤 사람을 보내 그를 죽이려 한 것은 분명 조문화의 좌천 소식을 들은 후, 일이 급해지고 아마 그의 존재가 자신에게 불리할까 급한 마음에 섣불리 행동했을 터. 더불어 지금 또 수하의 팔을 잘라 화해를 청하는 것은 그가 이전의 일들을 따지지 않기를 바라는 것일 터였다.

아마도 하정이 참혹하게 죽고, 조문화는 좌천되고, 조정의 탄핵 상소는 눈처럼 쌓이고……, 이런 일들이 호종헌의 마음을 이미 상당히 혼란스럽게 했을 것이다.

“호 도독께서는 원래 그 두 사람의 머리를 보내려 하셨으나, 서 사부께서 육 대인은 도량이 넓으신 분으로 그들을 풀어준 이상, 분명 그들이 목숨으로 사죄하는 걸 원치 않으실 거라 하셨습니다.”

상자를 든 시동이 말했다.

“서 사부?”

육역의 눈썹이 희미하게 치켜 올라갔다.

“예, 서위 서 문장입니다.”

육역이 살짝 침음하고는 고개를 끄덕였다.

“좋다. 내가 너와 가겠다.”

잠복은 마음을 놓을 수 없었다.

“대공자, 제가 잠수와 수행하겠습니다.”

“필요 없다. 기왕 약속장소로 가기로 했으니, 나는 호 도독을 믿겠다.”

육역이 손짓하여 거절하고는 안으로 들어가 옷을 갈아입었다.

하늘빛 외출복을 입은 육역이 내당으로 오자 금하는 불안한 어조로 그에게 말했다.

“정말 그 댁에 가려고요? 대인, 우리가 한 말 잊지 마세요.”

육역이 그녀의 말을 막았다.

“괜찮다. 내게도 수가 있어.”

“제가 함께 갈까요?”

“네 다리는 아직 낫지 않았어. 호 도독 앞에서 절룩거리는 건 지나친 실례야.”

육역은 빙긋 웃고서는 돌아서 떠났다. 불안한 눈빛으로 그의 뒷모습을 보던 금하는 힘없이 입술을 깨물었다.

* * *

일전 하정의 조문으로 육역은 이미 호부胡府에 온 적이 있었다. 그러나 그땐 외당에서 차 한 잔 마실 동안 머무르다 나왔을 뿐이었다. 오늘은 시동이 그를 안으로 인도해 후원까지 이르렀다.

때는 바야흐로 초여름이 성큼 다가왔다. 화원에 있는 여러 그루의 석류나무가 한창 꽃이 피는 계절로 석류꽃은 불처럼 타오르고 있었다.

굳은 얼굴로 뒷짐을 쥐고 선 호종헌은 어디를 보고 있는지 알 수 없었다. 그의 옆에는 서위가 돌 탁자에 앉아서 손으로는 찻잔을 어루만지고 있었다. 그 역시 아무 말이 없었고, 줄곧 정신이 나간 듯 멍한 표정이었다.

그때 발소리를 듣고 돌아선 호종헌은 시종 뒤의 육역을 보고는 안색이 다소 누그러들었다. 어젯밤의 일로 인해, 그는 육역이 오지 않으려 할까 줄곧 염려 중이었다. 그런데 지금 육역이 이렇게 왔으니, 이 일은 아직 대화를 나눌 여지가 남았다는 뜻이 아닐까.

서위도 육역이 온 것을 보았다. 어젯밤의 일을 겪고도 그가 대담하게 혼자 온 것을 보고는 그의 눈빛에는 육역에 대한 호의가 한층 짙어졌다.

“언연.”

호종헌이 웃음 서린 얼굴로 성큼 걸어와 그를 맞았다.

“자네가 와줘서 좋다네. 나는 자네가 어젯밤의 일로 나를 오해하여, 오려 하지 않을까 염려했지.”

육역이 웃으며 말했다.

“오해를 한 것인데, 소관이 어찌 마음에 두겠습니까.”

“역시 대장부야! 자고로 영웅은 젊을 때부터 알아볼 수 있다지. 자네가 이리도 큰 도량이니, 우리 이런 늙은이들을 감탄밖에 할 수가 없지, 감탄할 수밖에 없어!”

호종헌은 그의 어깨를 힘껏 두드리고 앉으라고 청했다.

그러나 육역은 바로 앉지 않고, 줄곧 옆에 조용히 서 있는 서위를 향해 돌아서 예를 갖췄다.

“이분은 사람들이 청등거사라 칭하는 서위 서 사부가 맞으시지요?”

서위가 당당하고 자연스러운 언행으로 답례를 했다.

“문장이 육 대인을 뵙습니다.”

“선생님의 존함은 오래전부터 들어 왔습니다. 오늘 만나 뵙게 된 것은 언연의 행운입니다.”

“황송할 따름입니다.”

오히려 호종헌은 육역이 서위를 이렇게 존중할 줄 생각지 못했다. 즉시 그들을 앉으라 하고는 차를 들고 온 가복 전부 물리고, 후원에는 누구의 출입도 허락지 않았다.

가복마저 모두 물러나자, 육역은 호종헌이 이제 본론으로 들어갈 거라는 것을 알았다. 그런데 먼저 운을 뗀 것은 오히려 서위였다.

서위가 물었다.

“육 대인께서 오늘 홀로 오신 것은 당연히 도독을 믿으셨기 때문이겠지요. 그럼 우리의 대화도 숨길 필요 없이 바로 단도직입, 본론에 들어가겠습니다. 어젯밤 육 대인께서 저들에게 전하신 그 말, ‘산이 다하고 물이 말라 길이 없는 줄 알았는데, 버드나무 우거지고 꽃이 만발한 마을이 또 있구나.’, 는 무슨 뜻이십니까?”

육역은 문득 웃었을 뿐 결코 명확하게 말하지는 않았다.

“저는 조문화 좌천 건과 지금 또 조정의 많은 이들이 왜구에게 뇌물을 받고, 내통한다는 등등의 이유로 호 대인을 탄핵한 것으로 인해, 호 대인의 심경이 필시 낙담스러우실 거라 생각했습니다. 그래서 저는 그들을 통해 위로의 말씀을 전한 것입니다.”

육역이 자신에 대해 여전히 미심쩍은 부분이 있어 사실대로 말하려 하지 않는다는 것을 호종헌은 알아차렸다. 그예 그는 솔직하게 말했다.

“나는 언연 자네가 이번 양절에 중요한 안건 조사의 무거운 책임을 지고 온 것을 알지. 그건 바로 내가 대체 왜구와 내통을 했는지, 안 했는지, 이를 확실히 조사해야 하는 건이야, 맞지?”

“직책이 있어 자세히 밝히지 못하니, 대인께서 양해해주십시오.”

“내게 양해를 구할 필요는 없지. 자네는 오늘 기꺼이 혼자 왔으니, 나는 자네에게 더는 숨기지 않겠네.”

호종헌이 손을 휘저었다.

“문장, 자네 우리가 이 몇 년 심혈을 기울여서 계획한 것 모두를 언연에게 말해주게. 우리가 대관절 왜구와 내통을 했는지, 안 했는지는 언연의 결정에 달렸네.”

연신 고개를 끄덕이던 서위는 앞에 두었던 양절의 해안방비도를 펼쳐 육역에게 보였다.

“육 대인도 아시겠지만, 태조 연간부터 연해에는 때때로 왜구가 출현했지요. 하지만 큰 문제로는 번지지 않았으나, 왜란은 최근 몇 년 사이로 점점 더 심해졌습니다. 이건 왜란의 배후에 그들을 통제하고 있는 두 사람이 있었기 때문입니다. 그중 하나인 서해는 작년에 우리가 덫을 놓아 투항시켰는데, 결국 물에 투신해 자살했습니다. 그리고 나머지 하나가 바로 왕직입니다.”

서위가 잠시 사이를 두었다가 다시 얘기를 시작했다.

“왕직은 서해와는 다릅니다. 그는 해상에서 다년간 노선주로 불리며 존경을 받았고, 수십 개의 해상세력을 그의 세력으로 끌어들였지요.”

서위의 손가락이 지도상의 몇 군데를 찍었다.

“이들 세력은 동양인을 중심으로 삼아 연해 어민, 서반아(*스페인.)인, 포도아(*포르투갈.)인을 포함하고 있습니다. 왕직이 그곳에 건재하는 한은 그런대로 그들이 고분고분하도록 다룰 수 있으나, 왕직을 죽이면 그들이 통제력을 잃어 더욱 골치 아파지게 됩니다.”

서위의 말은 계속 이어졌다.

“저는 도독과 오랫동안 이 부분을 고민했습니다. 그래서 왕직을 뭍으로 유인한 후, 그들을 장악하고 해상세력을 제어해 왜란을 평정할 계획을 꾸밀 수밖에 없었지요. 하지만 결과는…….”

여기까지 말한 서위는 긴 한숨을 내쉰 후 다시 이어 말했다.

“이 대사가 거의 성공할 때 즈음, 중간에 끼어든 어사 왕본고가 왕직을 잡아 감옥에 넣은 겁니다. 그 후의 일은 육 대인께서도 모두 알고 계실 겁니다.”

그후의 일로 온 조정이 시끌벅적하였으니, 육역 또한 모를 리 없었다.

왕직이 잡힌 후, 조정에는 죽이라는 상소가 빗발쳤다. 그러나 호종헌 홀로 왕직에게는 왜구를 묶어 둘 수 있는 힘이 있다며 그를 죽이지 말아 달라는 상소를 올렸다.

하지만 안타깝게도 이에 의견을 함께하는 이가 없었고, 오히려 관료들은 호종헌이 왕직을 제멋대로 날뛰게 내버려 둔 것은 틀림없이 내막이 있을 거라며 질책하였으니, 육역이 명을 받아 이곳으로 조사를 하러온 이유 역시 여기에 있었다.

육역은 문득 왕직이 죽기 전 했던 말이 떠올랐다.

‘나 하나 죽이는 건 상관없다. 양절의 백성이 고생할 뿐이지. 내가 죽은 후, 이곳은 반드시 10년 동안 대란이 일어날 것이다!’

조각처럼 흩어졌던 모든 일이 하나하나 맞춰져 이미 온전한 진상이 육역의 앞에 놓였다. 그리고 그는 호종헌이 결코 거짓말을 한 적이 없음을 분명히 깨달았다.

“하정을 모해봉 쪽으로 보낸 것은 왕직의 요구였습니까?”

하정의 얘기를 꺼내는 것은 호종헌의 아픈 곳을 찌르는 것이다. 육역의 물음에 그는 눈을 꾹 감고는 어쩔 수 없이 고개를 끄덕였다.

“……내가 그 아이를 죽인 것이지.”

서위가 나서서 매섭게 말했다.

“왕직은 의심이 매우 심합니다. 도독께서는 이 몇 년 그를 뭍으로 유인하려고 모든 힘을 다하셨는데, 잃은 것이 어찌 하정 한 사람뿐이겠습니까. 돼지같이 미련한 저 왕본고가 아니었다면, 일이 이 지경까지 이르지도 않았을 겁니다! 도독께서 심혈을 기울인 다년간의 일들이 하루아침에 무너진 겁니다.”

육역은 고개를 숙이고 해안방비도를 보고 있었다. 잠시 말이 없던 그가 입을 열었다.

“제가 군에 한번 가 볼 수 있겠습니까?”

호종헌이 육역의 의도를 헤아리고 있는데, 서위는 이미 그의 뜻을 알아들었다.

“육 대인께서는 왜구의 상황을 더 깊이 알아보고, 그 후에 조정에 보고하시려는 겁니까?”

서위가 말했다.

“그렇습니다. 비록 호 도독께서 왕직 때문에 여러 해 애를 쓰셨다지만, 유력한 증거가 없다면, 조정 사람들은 여전히 도독을 오해하겠지요. 게다가 성상께도 상세한 보고를 올려야 합니다.”

호종헌이 고개를 끄덕였다.

“어렵지 않은 일이네. 내 수하인 유대유(*명나라 시대 항왜 명장.)가 지금 잠항에서 모해봉과 대치 중이지. 자네가 관심이 있다면, 잠항으로 갈 수 있네. 언제 떠나려는가?”

“빠를수록 좋습니다.”

“내일 일찍 내가 함께 갈 사람을 보내겠네.”

“좋습니다. 감사합니다, 도독.”

그러나 호종헌의 깊은 수심은 가시지 않았다.

“자네가 어려운 상황에서도 일을 공정하게 처리해주니, 나는 매우 감격했네. 그러나 내가 염려하는 것은……, 경성의 저 언관들은 아마 탄핵을 멈추지 않을 것이고, 나는 조정에 도와줄 이가 없다네. 성상께서 소인의 말만을 일방적으로 믿으실까 두려워.”

육역이 살짝 웃었다.

“도독의 말씀에는 어긋남이 조금 있지요. 성상께서 그들을 믿으셨다면, 제게 가 보라 하시지 않으셨을 겁니다.”

“소위 외로운 새는 울기가 어렵다 하지. 조정에 기댈 이가 아무도 없다는 건 결국 장기적인 해결책이 아니라는 말일세.”

육역의 표정은 웃을 듯 말듯 미묘해졌다.

“도독께서 하시고자 하는 말씀은……?”

“엄숭 엄 대인 쪽이…….”

호종헌이 말을 꺼내려는 순간, 육역이 그를 막았다. 그러고 이내 품속에서 초상화 한 장을 꺼내어 호종헌에게 보였다.

“도독께선 이 사람을 아십니까?”

“라문룡!”

호종헌은 단번에 그 사람을 알아보았다.

“도독의 수하였습니까?”

“배반한 놈일세. 원래는 날 도와 서해에게 접근하였는데, 후에 그는 돌연 왜구와 함께 굴러먹더군.”

호종헌의 어조는 매서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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