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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의지하 (145)화 (145/224)

145화

두 사람은 말이 없었다. 서로 눈짓을 교환하나 싶더니, 돌연 힘껏 혀를 깨물었다.

다행히 잠복과 잠수는 다년간 조옥의 경험으로 미리 방비하고 있었다. 신속하게 움직인 그들은 단숨에 출수하여, 흑의인들의 인후부를 움켜쥐고 꼼짝도 못 하게 했다.

“이랬다고 죽으려 해? 참나, 사내대장부라 해줘야 하나. 무공이 좀 떨어져 아쉽구만.”

금하는 쯧쯧 혀를 차며 안타까워했다.

“그래도 이들 무공이 너보다는 조금 강하지.”

육역이 그녀를 의자에 눌러 앉히고는 흑의인을 향해 돌아섰다.

“호 총독을 향한 그대들의 헌신적인 충성심을 나는 높이 평가한다. 다만 그렇다고 하여 너희가 그리 급히 죽으려 할 필요는 없어. 내게 할 말이 있으니, 너희가 호 총독에게 전하라……. 산이 다하고 물이 말라 길이 없는 줄 알았는데, 버드나무 우거지고 꽃이 만발한 마을이 또 있구나.(*막다른 곳에서도 길이 열릴 수 있고, 절망적인 것에서도 희망이 숨어 있음을 의미.)

말을 마친 그가 잠복에게 두 사람을 놓아주라며 눈짓을 했다.

육역이 정말로 그들을 풀어주자, 흑의인은 머뭇거리지도 않고 창문으로 뛰어나갔다.

“이렇게 저들을 놓아주십니까? 너무 봐주시는데요!”

잠수는 분노로 팔팔 뛰었다.

“감히 대공자께 손을 쓰다니, 죽고 싶어 환장한 거잖아요. 호종현은 어르신도 두려워하지 않다니, 간땡이가 부었나 봅니다.”

금하는 좋은 마음으로 그에게 설명해 줬다.

“대인이 만약 여기서 죽었으면, 호종현은 분명 대인의 아버님에게 왜구가 한 짓이라고 말했겠죠. 그 댁 대공자는 장렬하게 순국하셨다고, 그를 항왜의 영웅호걸로 봉해달라고 할지도 몰라요. 그럼 위로금이 분명 적지 않을걸요.”

“그래도 네가 날 대접해주는구나.”

침상에서 급히 달려오느라 금하의 머리는 온통 풀어헤친 채였다. 육역은 그런 그녀의 머리카락을 가지런히 매만져줬다.

잠수는 자신의 대공자인 육역의 이 자연스러운 행동을 보고는 눈이 다 휘둥그레졌다. 어쩔 수 없이 잠복이 손을 뻗어 그의 얼굴을 다른 쪽으로 돌려야 했다.

“네 반응이 이렇게 빠른 걸 평소엔 보질 못했다. 오늘 밤은 어떻게 나보다 일찍 달려왔냐?”

잠수의 방은 잠복의 방보다 이곳에서 멀었다.

“아예가 대공자 방에 누군가 있다고 하더라. 처음에는 믿지 않았는데, 나중에는 이상해서 달려왔지.”

잠복은 차마 믿을 수 없었다.

“그의 청력이 그렇게 좋아?”

그 말에 육역이 말했다.

“다치기 전 아예의 무공은 너희들의 위에 있었으니, 이상하지 않다.”

문밖에서는 순우민의 계집종이 상당히 조심스럽게 조금씩 머리를 내밀었다. 그러다 격자창 위의 혈흔을 보고는 놀라서 벌벌 떨고, 겨우 소리를 낸 목소리도 바들바들 떨었다.

“사람이 죽었어요?”

“아니다.”

육역이 가라앉은 목소리로 분부했다.

“잠복, 저 아이를 데려다줘라. 그들에게 연유를 설명해 주고, 놀라지 말라고 해.”

명령을 받고 나가려던 잠복은 잠수가 그 자리에 멀뚱멀뚱 서 있는 것을 보고는 그도 함께 끌고 나갔다.

* * *

육역의 시선에 금하의 발이 보였다. 신은커녕 버선 하나 신지 않은 그녀의 발은 촛불 아래 드러나 하얗게 눈이 부셨다.

“버선 신을 겨를도 없이 날 보러 달려왔군.”

육역이 금하를 번쩍 안아 침상으로 데려갔다. 이불을 끌어 발을 감싸고는 빙긋 웃으며 그녀를 바라보았다.

“넌 나를 정말 아주 많이 걱정하는 것 같구나.”

“당연하죠……. 그런데요, 대인이 대체 뭘 찾으셨기에 호 도독이 대인을 꼭 죽여야 한다고 압박을 받은 걸까요?”

금하는 그의 얼굴을 제게로 끌어당겼다.

“날 속여선 안 되고, 숨겨서도 안 돼요. 대인이 방금 밖에서 돌아오신 걸 내가 모를 거라 생각지 마요. 돌아오자마자 바로 방 안에 있던 흑의인을 맞닥뜨렸잖아요.”

“말해 봐. 내가 어디서 흔적을 드러냈지?”

“신발 바닥에 푸른 이끼와 이슬이 묻었어요. 창틀을 다시 보세요. 그리고 바닥도…….”

금하가 창문을 가리키며 손짓했다.

“대인은 창문으로 뛰어 들어왔고, 몸을 미끄러뜨려 기습을 피했어요. 그런 후에 다시 한 바퀴 돌았고……. 안 봐도 뻔한 거예요.”

“아, 정말 감탄할 수밖에 없어.”

육역은 칭찬을 아끼지 않으며 몸을 기울여 다가왔다. 그러는 김에 그녀에게 입도 맞췄다.

그에게 입맞춤을 당하자 금하의 머릿속은 조금씩 흐릿해지기 시작하고, 또 뭔가 아직 제대로 해결되지 않았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내 그녀는 맹렬히 그를 밀어내고는 버럭 화를 냈다.

“잠시만요. 내가 호 도독이 왜 대인을 죽이려 하냐고 물었는데, 아직 답하지 않았어요……. 내게 미인계 쓰지 마요!”

금하가 이 일을 계속 걱정하고 있을 줄은 생각지 못했다. 육역은 입술을 다물고 고개를 기울여 그녀를 바라봤다.

“미색을 앞에 두고도 꽤나 신념이 굳건하군. 원 포쾌의 연내 승진이 유망한 듯한데?”

육역이 계속 딴소리만 하고 있으니, 금하는 그가 자신에게 고의로 감추고 있다는 생각이 물씬 들었다.

그녀는 속상한 표정으로 미간을 찡그렸다.

“흠. 내가 그렇게 당신한테 믿음을 주지 못해요? 내게는 말해 줄 수 없어요?”

“그런 게 아니야.”

한숨을 내쉰 육역이 오늘 밤 왕양 씨를 만난 일을 털어놓았다. 단지 남도행의 신분을 숨겼을 뿐이었다.

금하는 한참을 듣고는 다시 또 한참 생각했다. 사실 이 일은 몹시도 혼란스럽게 엉켜 있어 누구도 섣불리 판단하기 어려운 일이었다.

“네 생각은 어때?”

육역이 늘 그렇듯이 그녀의 의견을 물었다.

“왕양 씨는 호 도독이 왕직을 뭍으로 유인해 그를 체포했다고 했어요. 이건 호 도독이 계략을 썼고, 아울러 왜구와는 오히려 내통하지 않았다는 걸 설명해요. 그러나 왕직이 체포된 후에도 호 도독이 여전히 그 집에 물건을 보냈다는 건 정말 의심스러워요. 설마 이 일이 서로 한바탕 오해한 건 아니겠죠? 그가 왕직을 풀어주려 했다면 그땐 확실히 그가 왜구와 내통한 게 분명하거든요.”

금하는 여전히 골똘히 생각에 잠겨 입을 열었다.

“그런데 제가 다시 생각해 보니 호 도독은 어쩌면 왜구를 진정시키려고 그랬을 수도 있어요. 그렇지 않았다면, 그들은 하정에게 진작에 손을 썼을 거고요. 그래서 거짓으로 그들 고부에게 잘 대해주는 척도 한 거고. 그렇다면 호 도독은 여전히 왜구와 내통한 건 아닌데요…….”

금하는 마른침을 꿀꺽 삼키며 심하게 엉킨 상황을 분석해내려고 했다.

“그러나 가장 중요한 한 가지는 오늘 밤 호 도독이 사람을 보내 대인을 암살하려 했다는 거예요. 분명 마음속에 켕기는 무언가가 있는 거고, 이것이야말로 그가 왜구와 내통한 걸 의미하는 거죠!”

“그건 모르는 일이다. 바람이 없어도 겹겹이 파도가 일 수 있듯이, 관료 사회에선 아무 일 없는데도 공연한 시비가 일어날 수 있어. 어쩌면 그가 나를 오해해 자기 자신을 지키느라 선수를 쳤을 가능성도 있다.”

육역이 담담하게 설명했다.

금하가 의심 담긴 눈빛으로 그를 응시했다.

“저는 왜 대인이 그의 편에서 말하는 것 같죠? 생각해 봐요. 하정은 그가 직접 모해봉 쪽으로 보냈고, 그는 또 사람을 보내 왕직의 가족을 죽이려 했어요. 게다가 지금은 대인까지 죽이려 했죠. 적어도 왜구와 내통한다는 의심에 있어선 이런 거듭된 일들이 절대적으로 그에게 문제가 있다고 증명할 수 있어요.”

“이 사건은 증거가 부족해서 경솔하게 결정할 수 없다. 다시 자세한 조사가 필요해.”

육역은 공무를 처리하는 듯한 냉정한 어조로 말했다.

그때, 갑자기 문밖에서 문 두드리는 소리가 들렸다. 바로 심 부인의 목소리가 이어졌다.

“금하, 안에 있니?”

“……저 있어요!”

금하는 이불을 걷고 재빨리 바닥으로 내려와 문을 열려고 했다. 그러나 육역이 막았고, 그는 자신이 문을 열었다.

심 부인이 금하의 신발을 들고 입구에 서 있었다. 육역은 보지도 않고 그 앞에 선 채 따끔한 말투로 나무랐다.

“금하야, 넌 아가씨가 아가씨답게 행동해야지. 한밤중에 남자의 방에 머무는 건 예의에 어긋나는 일이야. 빨리 나오거라.”

“아, 네…….”

금하는 조금 놀라 굳었다.

오히려 육역이 매우 차분한 표정으로 금하에게 신발을 가져다주었다.

금하는 의문이 가득한 얼굴로 신발을 신고, 심 부인의 뒤를 따라 얌전히 방으로 돌아갔다.

금하를 보낸 후 육역은 문을 닫았다.

보내는 것이 아쉬우면서도 또 은근히 안도의 한숨이 새어 나오기도 했다. 금하가 더 머물렀다면, 철저히 따지고 들었을 텐데, 그때 그는 정말 어떻게 대답해야 할지 알 수 없었을 것이다.

* * *

다음날 이른 아침, 양악이 흰죽을 담아 금하에게 가져다주며 물었다.

“어젯밤에 무슨 일이 있었어?”

만두를 먹고 있던 금하는 한편으로 의아해했다.

“넌 무슨 잠을 죽은 것처럼 자. 어젯밤에 그리 난리법석이었는데, 정말 전혀 몰라?”

양악은 매우 침울해했다.

“나도 진작 소리는 들었어. 가려고 하는데, 네 아저씨한테 깔렸잖냐. 그분 말씀이 육 대인이 대처할 수 있으니, 내가 쓸데없이 낄 일이 없으시다네. 무슨 말로도 나를 못 가게 하시더라. 그분 무공이 그리 대단하고 힘도 세신데, 어디 내가 상대가 되냐. 깔려서 움직이지도 못했다.”

“우리 아저씨가 정말 총명하신 걸 생각 못 했네. 볼 필요도 없이 육 대인이 분명 별일 없을 거라 알고 계시다니.”

금하는 감탄의 말 몇 마디를 던졌다.

양악이 다시 물었다.

“대체 무슨 일이 있었는데?”

금하가 양악의 귓가에 가까이 다가가 얘기를 하려는 순간, 문득 점원이 시동 하나를 데리고 들어오는 것이 보였다.

“저는 호 도독의 명을 받들어 이 물건을 육 대인께 바치려고 왔습니다. 아울러 육 대인께 담소를 나누시러 부로 오시길 청합니다.”

“호 도독!”

금하는 눈을 가늘게 뜨고 의심스러운 눈빛으로 시동을 살폈다.

호종헌은 어젯밤 그리 소란스럽게 큰 싸움을 벌여 놓고, 오늘 아침 아무 일 없던 듯 사람을 보내왔다. 게다가 육역에게 얘기를 하러 부로 와달라고 하다니, 그는 정말 다른 이들 모두를 바보 멍청이로 여기는 건가.

앞으로 나서 시동을 맞이한 잠복이 만약을 위해 먼저 상자를 열어보고는 눈살을 찌푸리며 가까스로 뚜껑을 닫았다.

“대공자, 호 도독이 사람을 보내 담소를 나누러 부에 와주십사 청했습니다. 별도로 보내온 것이 있는데…….”

잠복이 말을 잠깐 멈춘 사이, 육역이 문을 열었다. 그는 잠복 옆에 있는 시동이 넓적하고 긴 상자를 들고 있는 것에 시선을 두었다.

잠복은 상자 안의 물건이 무엇인지 알고 있었고, 그는 즉시 상자를 열어서 육역에게 보였다.

상자 안에는 두 개의 장검이 있었다. 또한 피가 뚝뚝 떨어지는 두 개의 팔이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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