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42화
그는 사실대로 말할 수밖에 없었다.
“심 부인은……, 복건 영천 사람으로 원래의 성은 임이었다. 6대째 의료에 종사한 집안으로 심 부인은 임가의 막내딸이고, 아가씨 때 이름은 임로우林鹭羽였지. 십몇 년 전 심단과 정혼하였고, 채 시집을 가기 전 심단에게 사고가 생겼다.”
“심단은 어떤 사람인데요?”
“심단은 기억하지 못해도, 심련은 기억할 거야. 심단은 그의 동생이다.”
“심련!”
금하는 상당히 놀랐지만 어느 정도 이해도 되었다.
“심련은 엄숭에게 죽고, 두 아들까지도 전부 죽었죠. 이런 상황이라면, 그 동생도 도망치지 못한 건가요? 그럼 심 부인이 망문과부……. 아뇨, 이건 아닌 거 같아요. 오라버니 말대로라면 심 부인은 시집가지 않았고, 그럼 친정에 살고 있어야 해요……. 설마 심 부인의 친정도 연루되었어요?”
육역이 길게 한숨을 내쉬었다.
“그 일은 저분의 친정까지 연루될 정도는 아니었다. 다만 심 부인의 친정에 언니가 하나 있는데, 그 언니의 부군이 하장청夏长青이다.”
“하장청?”
금하는 이 이름이 어딘지 익숙하단 생각이 들었다.
“하장청은 하언의 장자야.”
전대 재상 하언의 아들이라……, 금하는 이제 완전히 이해할 수 있었다.
모함으로 저잣거리에서 기시되고, 멸문당한 전대 재상인 하언, 그리고 그의 아들 하장청.
“엎어진 둥지에는 성한 알이 없다 하지. 하언이 죽은 후, 임가도 재산을 몰수당했어. 당시 임로우는 외가댁에 머무는 바람에 이 화를 피했다고 해.”
육역이 금하를 바라봤다.
“그래서 심 부인이 너를 기꺼이 구해주신 것만으로도 나는 더없이 감사한다. 그분을 더는 난처하게 하고 싶지 않아.”
“정말 심 부인의 이력이 이처럼 순탄치 못할 줄은 생각도 못 했어요.”
금하는 가볍게 한숨을 쉬었다.
“그런데요. 심 부인은 왜 또 갑자기 남으시겠다고 했을까요?”
육역이 고개를 저었다.
“나도 잘 모르겠다. 설마 네 그 감언이설에 넘어가신 건가?”
“감언이설……. 에이, 그건 설찬연화(*말하는 것이 화려하고 아름다움을 비유하는 말.)라고 하는 거죠, 오라버니.”
금하는 으, 하며 이를 물었다.
“설득하느라 내 입술이 모두 닳을 뻔했다고요!”
그때 밖에서 매우 급하게 돌아온 잠복이 육역에게 보고를 올렸다.
“대공자, 관에서 병사를 보냈으나, 촌락 사람들은 이미 전부 도망갔고, 몇 리를 추격하여 겨우 노인과 어린아이, 부녀자만 붙잡았습니다.”
육역이 고개를 끄덕였다.
“호 도독도 친히 하정이 지해(*갈가리 찢어짐.)되었던 방을 찾았습니다. 흉기는 무딘 낫 한 자루였습니다.”
잠복이 한숨을 내쉬고 말을 이었다.
“……산채로 잘렸습니다. 아마도 하정은 적잖은 고통을 받았을 겁니다. 듣기로 호 도독이 돌아가는 길에 말 등에서 곤두박질쳐 부로 실려 갔다 합니다.”
“지금은?”
“제가 알아보았는데, 급통공심이라고, 극도의 초조와 슬픔을 느껴서 생긴 병이랍니다. 그래도 도독은 이미 깨어났고, 다른 곳은 큰 이상이 없다 합니다.”
금하는 이해할 수 없었다.
“진즉 오늘 같은 날이 있을 거라 알고 있었으면서, 도독은 왜 하정을 보냈을까요? 왕직을 참할 때, 도독은 하정이 죽을 거라는 걸 분명 알았을 거예요.”
육역은 어제 호종헌의 표정을 회상했다. 어쩐지 그는 그를 본 처음부터 마지막까지 근심이 태산같이 쌓인 모습이었다. 도독과 떠들썩한 술자리를 하고, 가무를 감상할 때도 그는 틀림없이 하정이 죽었다는 소식이 언제 전해질지 줄곧 근심하고 있었을 것이다.
“하정이 언제 그쪽으로 보내졌는지는 자세히 알아봤느냐?”
잠복이 고개를 끄덕였다.
“작년 중추절 전입니다. 하정은 주산舟山으로 갔고, 당시 왕직의 양자인 모해봉이 바로 주산에 있었습니다. 그 후, 하정은 다시 돌아오지 않았습니다.”
“작년 중추절!”
금하가 육역에게 상기시켰다.
“어젯밤 두 아가씨가 이미 얘기한 거네요. 작년 중추절에 호종헌의 기분이 매우 좋았고, 연말에 그녀들을 데리고 보타산에 가겠다고 했다고요. 설마 이 일과 관계있을까요?”
육역은 말이 없었다. 흘끗 용마루 쪽을 시선으로 훑던 그는 검은 그림자가 순간 번쩍하고 사라진 것을 보고는 담담하게 웃어 보였다.
“날이 늦었으니, 모두 가서 쉬어라.”
그의 말에 잠복이 공손하게 물러갔다.
돌아선 금하도 폴짝폴짝 뛰어 돌아가는데, 몇 걸음 걷지 않아 온몸이 허공으로 번쩍 들렸다. 이미 육역에게 가볍게 안긴 후였다.
“난 방에 안 가요. 아예 보러 갈 거예요!”
그녀는 자신이 가고자 하는 방향을 손짓했다.
“그는 침을 맞느라, 옷을 전부 벗었어.”
금하는 그의 말을 이해할 수 없었다.
“괜찮아요. 나는 상관없어요.”
“나는 상관있어.”
당당한 사내대장부에 금의위 4품 첨사가 뜻밖에도 이렇게 고리타분하다니.
금하는 그를 이해시키기 위해 입이 닳도록 설명할 수밖에 없었다. 그녀는 포쾌가 된 이후로 옷 입지 않은 남자는 다래끼가 날 수도 없을 만큼 무수히 보았고, 죽은 거 산 거 다 보아도 전혀 아무렇지 않았다고.
그러나 결과적으로는 육역의 미간 찡그림만 더욱더 심해졌고, 그가 그녀에게 한 마디 물었을 뿐이었다.
“만약 옷을 입지 않은 여자가 내 앞에 서 있다면, 내가 봐야 할까? 아니면 보지 않아야 할까?”
“당연히 보면 안 되죠! 눈병 날 거예요!”
금하의 어조는 호되면서도 반듯했다.
“지금이라도 네가 알았으면 됐다.”
육역은 즐거워하며 방을 향해 걸어갔다.
* * *
심 부인이 방으로 돌아올 때까지, 금하는 자신은 봐도 된다는데, 그는 왜 보면 안 된다고 했는지에 대한 이치를 탐구하느라 계속 고민 중이었다. 하지만 이리저리 머리를 굴려 봐도 해답은 나오지 않았다.
“이모, 고생 많으셨어요. 제가 다리 두드려 드릴까요? 족탕이라도 하시겠어요?”
심 부인이 일어서려는 금하를 막았다.
“넌 거기 앉아 움직이지 마. 내게 잘해주는 건 네가 얌전히 쉬어서 상처에 다시 손대게 할 일을 안 만드는 거야. 그게 더 번거롭단다.”
금하는 어쩔 수 없이 움직이지 않고 빙그레 웃었다.
“역시 우리 이모가 절 아끼신다니까요.”
“넌 진짜 말은 듣기 좋게 잘하는구나.”
손을 씻은 심 부인은 화장대 앞에 앉았다. 섬세하게 틀어 올린 머리를 풀고, 머리를 천천히 빗어 내리는 그녀의 모습을 금하는 침상에 기댄 채 바라보고 있었다.
“이모 머릿결은 정말 비단 같이 좋아요.”
“네 나이가 올해 몇이지?”
심 부인이 머리를 빗어 내리며 그녀에게 물었다.
“열여섯이요.”
금하는 헤헤하며 웃었다.
“우리 엄마가 매일 저 시집보내려고 엄청 신경 쓰세요.”
“급한 성격을 보니, 여름 생이지? 그래서 금하今夏라 부르고.”
“그럴 수도 있어요.”
“그럴 수도 있다?”
고개 돌린 심 부인이 복잡한 눈빛으로 그녀를 바라봤다.
“설마 자신이 언제 태어났는지 몰라?”
“전 우리 엄마가 시설에서 데려오셨어요. 그래서 태어난 정확한 날짜는 저도 몰라요.”
금하는 있는 그대로 말했다.
“아.”
심 부인은 다시 앞으로 돌아섰다. 금하를 보지 않고 연신 빗질만 해대던 그녀는 한참이 지나고서야 무심한 듯 물었다.
“그때 널 데려오신 거야? 몇 살이었는데?”
“가정 이십팔 년이니까 제가 아마 서너 살 되었을걸요.”
금하는 옛일을 회상하며 웃어 보였다.
“엄마가 말씀하셨죠. 시설의 어린아이 중 제가 가장 잘 먹는 것을 보고 엄마는 분명 저 아이라면 잘 키울 수 있을 것 같아서 데려오셨대요.”
심 부인은 들고 있던 나무 빗을 저도 모르게 꽉 쥐었다. 날카로운 빗 끝이 살을 깊이 찌르는 것도 모른 채 그녀는 꼼짝도 하지 않았다. 차마 돌아보지도 못하건만, 호흡은 걷잡을 수 없이 빨라졌다.
“이모, 왜 그러세요?”
금하가 물었다.
깊게 숨을 들이켠 심 부인은 차분한 어조로 대답하려 안간힘을 썼다.
“별일 아니야. 그냥 네가 불쌍한 고아였을 줄은 생각 못 해서 그래.”
“불쌍하진 않았어요.”
금하는 또 웃어 보였다.
“살던 그 골목 아이들 중 제가 가장 싸움을 잘했어요. 누구도 제게 손끝 하나 댈 수 없었죠. 우리 엄마만 빼고요.”
그녀는 행복이 가득한 얼굴로 골목 대장이던 어린 시절을 회상했다. 심 부인은 조용하게 돌아서 그런 그녀를 바라보고 있었다. 눈빛이 더없이 따스해졌다.
* * *
“완두콩 떡에 빨간 점을 찍었네, 장님이 먹고 눈을 뜨고, 절름발이가 먹고 목발 버리고, 대머리가 먹고 머리털 나고, 귀머거리가 먹고 들을 수 있고…….”
영은사 앞에는 아이들 몇이 노래를 부르며 놀고 있었다.
그 옆으로 회색 저고리를 입은 귀밑머리 하얀 부인이 자신보다 더 노쇠하고 백발 성성한 노부인을 부축하여 지나갔다.
백발 노부인의 눈동자는 흐릿했고, 쥐고 있는 대지팡이는 돌계단을 짚을 때마다 덜덜 떨었다. 이미 노인의 눈은 길조차 구분할 수 없어 회색 저고리의 부인에게 전부 의지해 길을 가고 있었다. 매우 깨끗한 옷을 입은 두 사람은 비틀거리는 걸음으로 천천히 돌계단을 올랐다.
영은사에 도착한 회색 저고리의 부인이 어린 동자승을 찾았다.
“작은 스님, 제 남편을 위해 불공을 드리는 일로 큰 스님을 뵙고 싶습니다.”
어린 동자승이 두 손을 합장하고 예를 올렸다.
“두 분 시주님, 제 스승님과 여러 사숙께서는 며칠 전부터 절에 계시지 않습니다. 두 시주께선 다른 날 다시 오시지요.”
백발 노부인이 실망하며 물었다.
“스님은 언제 돌아오십니까?”
“잠항의 관병 사상자가 천이 넘었습니다. 사부와 사숙께서는 그곳에 망령을 제도하러 가셨으니, 빨리는 돌아오지 못하실 겁니다.”
“잠항…….”
백발 노부인이 입안으로 중얼거리며 회색 저고리의 부인에게 물었다.
“누구니. 누가 잠항에 있더냐.”
“소봉小峰이요. 소봉이 잠항에 있어요.”
회색 저고리의 부인이 한숨을 내쉬었다.
“걔도 죽겠구나. 죽었어, 죽었어. 전부 다들 죽겠구나.”
백발 노부인은 웅얼거리며 몸을 돌렸다. 들고 있던 대지팡이를 부들부들 떨며 땅을 짚었다.
어린 동자승은 이 두 부인의 가족도 군에 있겠거니 생각했을 뿐이었다.
지금 왜구는 온통 활개를 치고 있고, 군의 사상자는 매우 많았다. 아마 이 사람들도 가족의 안위를 걱정하고 있을 터였다.
한숨을 내쉰 동자승은 돌아서 안으로 들어갔다. 이내 하던 대로 목탁을 앞에 두고 꿇어앉아 중얼중얼 경을 읽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