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금의지하 (138)화 (138/224)

138화

육역이 고개를 저었다.

“넌 남아.”

“저도 검시할 수 있어요.”

금하가 끝내 가고자 하니, 놀란 순우민이 고개를 돌려 그녀를 바라봤다.

“그는 지금 자식을 잃은 아픔을 겪고 있다. 어찌 우리가 검시하는 것을 허락할 수 있겠나.”

육역은 그녀에게 당부했다.

“넌 객잔에 머무르며 내 지시를 기다려라. 말썽일으키는 것은 불허해.”

금하는 어쩔 수 없어 고개를 숙이고 남은 죽을 단번에 먹어치웠다.

육역과 잠복이 떠나고, 또 잠수가 말 먹이를 주러 간 틈을 타 그녀는 양악에게 속삭였다.

“대양, 우리 성 밖에 가 보자.”

양악은 단번에 그녀의 의도를 꿰뚫었다.

“너 그 관이 놓였던 곳에 가 보려는 거지.”

“뭐가 돼도 나는 한 번은 봐야겠어. 이렇게 큰 사건인데.”

금하는 사건 발생지를 보러 가지 못하고 있어서 온몸이 들썩거렸다.

“그 사람들은 관을 놓고 도망갔고, 지금은 분명 잡을 수는 없어. 우리는 가서 단서가 있나, 없나만 보자.”

양악은 여전히 주저했다.

“좋지 않은 생각이야. 육 대인이 방금 네게 분부하셨잖아.”

“가서 한 번만 볼 거야. 나는 말썽 안 부려.”

금하는 그를 재촉했다.

“대양 서둘러. 이 성 밖은 사람들이 끊임없이 들락거려. 늦게 갈수록 단서는 사라진다고.”

양악은 지금껏 그녀에게는 별다른 수가 통하질 않았으니, 어쩔 수 없이 일어서며 당부했다.

“약속한 거다. 한 번만 보고 바로 오는 거야.”

“어디 가려고요.”

순우민이 금하를 막으려 했다.

“괜찮아요. 우리 빨리 돌아올게요.”

금하는 양악을 끌고 나갔고, 두 사람은 문을 나서자마자 바로 그림자도 보이지 않았다.

이제 막 말먹이를 주고 탁자로 돌아온 잠수는 순우민 혼자인 것을 보고는 의아해 물었다.

“순우 아가씨, 그들은요?”

순우민은 사실대로 말할 수밖에 없었다.

“육선문 보잘것없는 포쾌들이 흥, 자기가 무슨 큰 인물이라도 된 줄 알아.”

잠수는 고개를 저으며 계속 흥흥거렸다.

* * *

성문 밖의 관이 놓였던 자리는 스민 선혈 때문에 매우 눈에 띄었고, 일반 백성도 모두 꺼림칙하다며 돌아서 다녔다.

금하는 혈흔 옆에 몸을 웅크리고 앉아 손끝으로 피가 스민 먼지를 찍었다. 세심히 문질러보고는 미간을 찡그렸다.

“이 사람 죽은 지 세 시진을 안 넘겼을 거야.”

양악은 땅 위의 흔적으로 관의 크기를 쟀다.

관은 끝부분에 혈흔이 가장 많았다. 게다가 바닥에는 비교적 깊은 흔적도 남았다. 금하는 주위를 왔다 갔다 하면서 어디서 주웠는지 모를 말굽 편자 하나를 가지고 정신을 집중하여 지면을 관찰했다. 그녀의 몸은 몇 번을 굳은 듯 제자리에 멈췄다가 다시 반쯤 웅크려 앉아 세심히 살펴봤다.

“관은 들어 옮긴 게 아니라 마차에 끌려왔어.”

금하는 바닥의 깊은 흔적을 가리키며 양악에게 말했다.

“혈흔으로 봐서 이렇게 많은 피가 흐르려면, 사람이 죽자마자 끌고 온 게 분명해. 마차를 끌고 온 말의 힘으로 봐선 죽인 곳은 이곳과 거리가 2리를 넘질 않아. 대양, 우리 가 보자.”

양악이 급하게 그녀를 붙들었다.

“그래도 먼저 육 대인께 보고 드리자.”

“2리밖에 안 돼. 우리가 먼저 가서 염탐한 후, 다시 돌아와 보고 드리자. 만일 왜구가 이미 떠나서 그들을 헛걸음하게 하면, 우리가 쓸데없는 일을 했다고 탓할 거야. 우리가 가서 먼저 한번 보자. 그들과 또 싸우지는 않을게.”

양악은 그녀를 어쩔 도리가 없어 다시 한숨을 내쉬었다.

“……또 한 번만 본대지.”

그를 잡아끈 금하는 들고 있던 말굽 편자를 득의양양 흔들었다.

“대양, 너도 바닥을 주의해서 봐. 이륜마차인데, 관을 내려놓을 때, 마차가 뒤로 기울었어. 말도 뻗치다가 뒷편자가 떨어진 거야.”

두 사람은 끊겼다 이어졌다 하는 황톳길 위의 단서를 따라 동남 방향을 향해 곧장 뒤쫓아갔다.

* * *

과연 2리를 못 가서 촌락 하나가 나왔다.

매우 평범한 촌락으로 삼삼오오 밥 짓는 연기가 오르고, 여기저기서 닭이 울고 개가 짖었다. 우물가에서 물 긷는 농민이 있었고, 아이는 길에서 추격 놀이를 하고 있었다. 모든 것이 더없이 평범할 뿐이었다.

“왜구가 여기 있을 것 같지 않다.”

양악이 금하에게 낮은 소리로 말했다.

“길이 엇갈려서 다른 마차를 따라온 건가?”

금하는 미간을 찡그린 채 바닥의 바퀴와 말굽 자국을 연신 살폈다.

“틀릴 리 없어. 분명히 이 마차야.”

바퀴 자국은 마지막에 한 농가로 꺾어 들어갔다. 그녀가 울타리 너머로 바라보니 과연 그 마차가 보였다. 대추색 말 한 필은 마구간에 조용히 머물며 풀을 뜯고 있는데, 예상대로 좌측 뒷발굽에 편자가 없었다.

그때, 방에서 나온 중년의 촌부가 금하와 양악이 안을 두리번거리는 것을 보고는 의아해하며 물었다.

“아가씨, 무슨 일 있어요?”

양악은 이 촌부를 보자, 더욱 실수했다는 생각을 굳혔다. 그는 금하를 끌고 나가며 촌부에게 웃어 보였다.

“별일 아닙니다.”

“아주머니, 편자 하나 주웠는데 이 집 걸까요?”

금하는 가지 않으려고 버티며 촌부에게 웃어 보였다. 하지만 촌부는 어리둥절해 했다.

“편자?”

“네. 이 집 말이 편자를 잃어버렸나 한번 보세요.”

금하는 울타리 밖에서 편자를 들어 보여줬다. 그러나 촌부는 보지도 않고 손을 내저었다.

“우리 집 거 아니에요. 가요.”

“가자, 가자.”

양악도 금하를 끌고 걸었다.

금하는 더는 버티지 않고, 순순히 양악을 따라갔다. 그렇게 그들은 십여 보를 걸은 후에야 속으로 긴 한숨을 삼키고 작은 소리로 입을 열었다.

“대양, 너도 이상한 거 알아차렸지?”

양악은 입술도 움직이지 않고 작은 소리를 냈다.

“네가 물었을 때, 주위의 서너 칸 방 전부 누군가 은밀히 내다보고 있었어. 여긴 완전히 도둑 소굴이야. 우리 빨리 가자.”

“이 마을에는 노약자인 부녀와 아이들 전부 있잖아. 어떻게 이리 많은 왜구가 숨어 있을 수 있어?”

금하는 이해할 수 없었다.

“생각하지 마. 뒤쪽 발걸음 소리 들었냐?”

“7, 8명은 되겠지?”

금하는 여전히 적당한 속도로 걷고 있었으나, 등에서는 한기가 치솟았다. 그녀의 눈앞에서는 촌부 몇이 길 위에서 놀고 있는 아이들을 껴안고 재빨리 도망갔다.

“이건 죽여 입을 막을 태세인 거지? 대양, 우리 싸워, 도망가?”

“돌아가 소식을 알려야 하지.”

시선을 맞춘 두 사람은 서로 통하는 것이 있었다. 동시에 맹렬한 질주를 시작했다.

그러나 몇 장 달리지도 못했는데, 허공을 가른 암기가 정면에서 날아왔다. 두 사람 다 어쩔 수 없이 걸음을 멈췄고, 뒤에서는 이미 몇 사람이 추격해오고 있었다.

금하와 양악은 서로 등을 맞대고 섰다. 앞에는 암기에 뛰어난 자가 3인, 뒤의 7인은 칼을 들고 선 상황이었다.

“또 도망가려고!”

그중 한 사람이 흉악스럽게 소리쳤다.

“죽여!”

“잠깐!”

소두목으로 보이는 이가 그들을 제지하고는 금하 쪽을 향해 소리쳤다.

“너희는 어찌 여길 찾았냐? 관병을 끌어들인 거냐?”

“형님, 관병을 끌어들였든 말든 저들을 죽여야 해요.”

소두목은 한 손을 들었다.

“급한 건 없지. 어쨌든 저들은 도망 못 가니, 우선 정확히 물어라.”

금하는 그들이 말하는 뜻을 곰곰이 따졌다. 자세히 물어본 후 자신들을 풀어주려는 건지, 아니면 자세히 물어본 후 다시 그들을 죽일 거라는 뜻인가?

“아이고, 오해예요! 정말 오해입니다!”

금하는 웃음을 머금은 채 입을 열었다.

“아하, 꼭 피를 좀 봐야 진실을 말하겠다는 거군?”

소두목의 눈짓에 암기를 지닌 자가 손을 한 번 흔들었다. 소매 속에서 강하게 발사된 3개의 암기가 금하와 양악의 상중하 3곳을 향해 날아들었다.

두 사람은 각자 몸을 굴려 피했다. 그런데 몸을 굴리는 순간, 양악의 허리에 묶었던 육선문의 제패가 드러났다. 발견한 소두목이 매섭게 소리쳤다.

“너희는 관청 사람들이었어! 그럼 저들을 더는 봐줄 필요 없다. 죽여!”

“기다려!”

금하는 급하게 소리쳤다.

“너희는 왕직의 복수를 위해 하정을 납치하고 그를 갈가리 찢었다. 설마 호 도독이 너희를 가만둘 거라 생각해! 대군이 당장 도착할 거야!”

그녀의 의도는 그들의 두려움을 자극해 여길 떠나게 하려는 것이다. 그래야 자신과 양악도 빠져나갈 수 있었다.

소두목이 냉랭하게 웃었다.

“호 도독은 하정을 보내던 그 날, 오늘과 같은 상황이 있을 수 있다는 걸 생각했어야 했지. 그가 두목을 죽였는데, 설마 양자가 살아서 돌아갈 거라 생각해!”

호종헌이 하정을 왜구 쪽에 보냈던 거라고?!

금하는 순간 멍해졌다.

“앞으로! 죽여서 돌아가 보고하지 못하게 해야 해!”

소두목이 손을 한 번 휘저었다.

칼을 든 자가 휘두르며 덤볐다. 몸을 숙여 피한 금하는 상대방의 손목을 낚아채 칼을 뺏으려 시도했다.

이들은 무림의 고수가 아니었고, 초식도 장법도 없었다. 그러나 오랫동안 바다에서 생활했던 탓인지 매우 안정적인 하체에 힘도 막대했다. 그러니 오히려 그의 팔꿈치로 가슴에 일격을 당한 금하는 순간 가슴이 턱 막혔다. 하지만 여러 차례 숨을 고르고, 빠르게 상대의 약점을 공격해 그녀는 기어코 칼을 빼앗았다.

양악도 칼을 빼앗고, 발을 날려 두 사람을 걷어찼다. 연이어 재빨리 눈빛을 교환한 금하와 양악은 나란히 소두목을 공격해 들어갔다.

도둑을 잡으려면, 먼저 두목을 잡아야 한다.

소두목을 잡아둔다면, 그들도 신경이 쓰여 뒤로 물러날 가능성이 있었다. 게다가 이렇게 몸을 맞붙인 싸움에서 암기는 오발할 가능성이 크니, 그들도 감히 쉽게 암기를 꺼낼 수 없을 것이다.

두 자루의 칼이 소두목을 점점 조여들었다. 그런데 그 순간, 동양도 한 자루가 옆쪽에서 튀어나왔다. 눈처럼 번쩍이는 칼이 두 사람의 칼을 단단하게 저지시켰다. 지극히 큰 힘이 진동하여 금하는 은근히 손아귀가 아파 왔다.

동양 낭인(*일본 떠돌이 무사.)이야!

동양인에게 앙앙거리며 쏘아대는 소두목의 동양어를 금하와 양악은 한 마디도 알아듣지 못했다. 그런데 소두목이 휘두르는 손을 보고는 칼 든 자는 모두 물러나고, 유독 그 동양인만이 앞으로 나섰다.

“혼자서 우리 둘을 상대하겠다는 거야? 간 키우는 게 습관이 됐구만.”

금하는 이런 동양 낭인들이 어떤 검도를 수련하는지, 연해를 침범하여 얼마나 골칫거리로 날뛰며 판을 치고 있는지 알고 있었다.

양악이 금하만 들을 수 있는 낮은 목소리로 말했다.

“무리하게 맞설 필요 없어. 벗어나는 게 중요해.”

“응.”

두 사람은 자세를 한껏 잡는 척하며 동양 낭인과 응전할 준비를 마쳤다.

칼을 든 동양 낭인은 천천히 몇 걸음 걸었고, 두 사람의 눈빛에 반격할 의지가 전혀 없다는 것을 알아차렸다.

다음 순간, 금하는 아무런 징조도 없이 말 편자를 던져 동양인의 얼굴을 정확히 때렸다. 그리고 그가 영문을 몰라 하는 틈을 타 둘은 빠르게 빠져나왔다.

편자에 맞은 얼굴은 피가 흘렀다. 동양인은 화가 나 와와 소리를 질렀고, 소두목도 화가 치솟았다.

“발사해, 발사!”

허공을 뚫고 맹렬히 날아간 암기 여러 개가 도망가고 있던 금하를 향했다.

예상하고 있던 금하는 한 개를 피하고, 칼로 한 개를 막았다. 그러나 남은 두 개는 다리에 명중되었다.

“헉!”

금하는 아픔에 무릎을 꿇었다. 번뜩이는 시퍼런 칼날의 동양도가 그녀를 향해 떨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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