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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의지하 (136)화 (136/224)

136화

금하는 신중하게 옆으로 한 걸음 옮겨 앉고는 그에게 상기시켰다.

“전 없는 말 하지 않아요. 양주에서 대인은 제가 지불 못할 걸 분명 아시면서도 배의 임대료를 지불하라고 핍박하셨어요. 또 툭하면 제 은자를 제한다고 하시잖아요.”

육역이 금하를 향해 몸을 기울여 가볍고 부드러운 음성으로 말했다.

“네 이걸 두고 적반하장이라 하지. 그 밤 교두에서 누가 고집을 부려 기어코 내게 은자 두 냥을 요구하였는지 넌 잊어버렸나?”

금하는 회상했지만 여전히 당당했다.

“누가 고집을 부려요. 그분들이 내 매대를 부서트렸고, 저는 그때 사리 판단을 잘 한 거죠. 그래서 대인도 순순히 은자를 주신 거잖아요.”

“내가 그때는 네가 시끄럽게 떠드는 게 싫어서 서둘러 너를 내쫓으려 한 거다.”

육역도 당시 교두의 상황을 떠올리며 웃음을 참지 못했다. 손에 닿는 대로 골패를 만지작거리던 그가 이어서 물었다.

“넌 저들과 오늘 반나절을 보내며 무얼 알아냈느냐?”

그도 육선문의 사건 처리 기법을 얼마쯤은 알고 있었다. 삼법사는 제약이 매우 많아서 육선문의 일 처리도 금의위보다 매우 온화한 편이다. 알아낼 수 있는 일은 절대 윽박지르며 위협하지 않았다. 예를 들면, 금하가 방금 사람들과 친한 척 골패를 한 것처럼, 남의 비위를 맞추며 상대방의 경계심을 내려놓게 하는 것이다.

아마 이번에도 적지 않은 일을 알아냈을 터였다.

“이 일은 안 급하니, 이따가 다시 얘기하고요.”

금하는 퍼뜩 아예가 떠올랐다. 그녀는 서둘러 육역을 데리고 아예의 방으로 가 육역에게 소곤거렸다.

“이 양반이 오늘 거울을 들이받아 깨뜨렸어요. 정말 큰 거울이었는데, 우리 엄마가 계셨으면, 집안 망칠 아들이라며 반드시 다리를 부러뜨리셨을 걸요.”

사람들의 시선을 돌리기 위해, 아예는 잠수와 한방을 쓰고 있었다.

잠수는 이미 바닥의 거울 파편을 깨끗이 청소해 놓았다. 지금 그는 의자에 기대 다리를 탁자에 높이 올린 채 깜빡 잠이 들어있었다.

육역이 문을 두드렸다. 그 소리에 깬 잠수는 놀라 엎어질 뻔하다가 재빨리 달려가 문을 열었다.

“대공자.”

침상의 아예는 계속 깨어있었다. 육역이 온 소리를 듣고는 천천히 고개를 돌렸다. 그는 육역이 뭐라 하기 전 쉰 목소리로 먼저 입을 열었다.

“다른 사람은 모두 나가라 해요!”

“너 정말 끝도 없이 기어오른다?”

잠수가 벌컥 화를 냈으나, 육역은 담담히 분부했다.

“너희는 모두 나가라.”

잠수는 그의 뜻을 거스를 수 없어 아예를 노려보고는 돌아서 나갔다. 금하도 물러 나오며 잊지 않고 문을 꼭꼭 잘 닫았다.

* * *

바깥의 발소리가 멀리 사라지고서야 아예는 천천히 입을 열었다.

“그가 양주에서 당신을 힘들게 하지 않았던 건, 당신을 절강으로 오게 해서 호종헌과 함께 순장시키기 위해섭니다.”

아예가 말한 ‘그’는 당연히 엄세번으로, 육역은 이를 분명히 알아들었다.

“호종헌은 명백히 엄당이다. 그가 왜 호종헌을 없애려 하지?”

“호종헌은 조문화의 사람이고, 그는 조문화를 줄곧 매우 혐오했습니다.”

조문화, 자는 원질, 호는 매촌이다. 자계현 성총마계남 사람으로 가정 8년 진사가 되어 형부의 주사를 제수받는다. 초기 국학에 있을 때, 엄숭이 책임자인 좨주로 삼았는데, 그는 엄숭과 의부의 관계를 맺고, 통정사로 파견되었다.

육역에게는 엄세번이 조문화를 혐오하는 이유가 명확지 않았다.

그건 어쩌면 조문화의 담이 엄숭을 무시할 만큼 커져서, 성상께 몰래 백화주를 보낸 것 때문일 수 있었고, 어쩌면 조문화가 엄세번의 모친에게 여러 방면으로 아첨을 했기 때문일 수도 있다. 또 어쩌면 아무런 이유도 없이 그는 그저 조문화가 눈에 거슬리는 걸 수도 있었다.

“그는 왜 내가 호종헌 편에 섰다고 여기지?”

육역이 물었다.

“몰라요. 하지만 그가 호종헌에게 씌울 죄명은 왜구와의 사통이에요. 당신이 이 일에 조금이라도 언급된다면 바로 죽게 되어있어요.”

육역의 얼굴이 물처럼 깊게 가라앉았다.

성상은 겉보기에는 마치 한마음으로 도를 닦는 사람 같으나, 군왕이 된 이로서 당연히 금기하는 일이 있었다.

하나는 변방의 장수가 조정의 신하와 친분을 맺는 일로 예를 들면 전 재상인 하언 같은 건이었다. 비록 내각의 우두머리인 직위에 있다 해도, 그가 죽이라 말하면, 바로 죽을 수밖에 없었다.

그리고 또 하나는 외적과 결탁하는 일이었다. 이것도 결코 언급되어선 안 될 죄명으로 연루된 자는 온 집안이 재산을 몰수당하고 참형을 당했다.

엄세번의 이 한 수는 확실히 매우 지독한 것으로, 분명 누군가 그 대신 호종헌이 왜구와 왕래한 증거를 수집했을 터였다.

육역은 깊게 숨을 들이켠 후 이어서 물었다.

“그의 주변에 호종헌과 매우 친밀한 이가 있나? 아니면, 왜구와 친밀하거나?”

“한 사람이 있는 건 확실하지만, 나도 이 사람이 대체 어떤 사람인지는 모릅니다.”

아예가 잠깐 사이를 뒀다.

“양주에 있을 때, 이 사람이 왜구 사이에 본모습을 숨기고 끼어들어 있었죠. 동양어를 할 줄 알고 우리에게 잡혔으나, 애석하게 그는 빠져나갔어요. 그때 왜구 섬멸 후, 나는 이 사람이 그의 배에 모습을 드러낸 걸 확인했습니다.”

“넌 그 사람의 용모를 아직 기억하나?”

“만약 보게 된다면, 분명 알아볼 수 있을 겁니다. 참, 원 낭자도 그를 봤어요. 그에게 몇 마디 심문도 했습니다.”

* * *

금하는 방금 돌아온 잠복을 잡아끌고 한쪽으로 가 결산을 했다.

이 투전의 밑천은 잠복의 것으로, 금하는 투전에서 돈을 잃으면, 그의 본전으로 잃게 되는 것이고, 돈을 따게 되면 수익의 반을 나누자고 협상을 잘 해두었다.

“오, 예상외로 땄네요?”

잠복이 동전 전부를 돈주머니 안에 쏟았다. 본전을 제하더라도 동전 3개를 더 벌었다.

금하는 자신의 재운에 매우 만족해하며, 동전 3개를 돈주머니에 조심스레 챙겨 넣었다.

“하늘이 보우하셔서 재운이 통했어요.”

옆에 있던 잠수가 코웃음 쳤다.

“동전 3개? 무얼 일러 ‘미약빈이락, 부이호례자야(*가난하면서도 즐거워하고, 부유하면서도 예를 좋아하는 사람만 못하다.)라고 하는지 이제야 알겠다.”

금하가 뭐라 말대답을 하려는 순간, 육역이 문을 열고 가라앉은 목소리로 부르는 것이 들렸다.

“금하, 내 방으로 와라.”

“아……, 어……, 네.”

육역이 연이어 지시했다.

“잠복, 문방사보를 준비하고, 그리고 양악에게는 술을 깨울 해장탕을 끓여 오게 해.”

“알겠습니다.”

옆에 있던 잠수가 재빨리 몸을 우뚝 세웠다.

“대공자, 저는요?”

육역이 그를 흘끔 보았다.

“넌……, 넌 없으니 자러 가.”

잠수는 갑자기 풀이 팍 죽어 방으로 돌아갔다.

“너 혼자 두 아가씨와 투전을 해도 그만이었는데, 어떻게 순우 동생도 너희와 함께하자고 끌어들였지?”

육역은 방으로 들어가 장포를 벗어 바로 금하에게 던져 주었다.

“제가 순우 아가씨에게 투전할 줄 아냐고 물었어요. 아가씨도 집에서 늘 어머님과 함께 소일거리로 했다고 하더라고요.”

금하는 머리에 뒤집어쓴 육역의 장포를 끌어내리며 불만스러워 했다.

“대인 자제 좀 하실 수 없을까요? 제 앞에서 옷 좀 벗지 마세요.”

육역은 헐렁한 일상의 포를 걸쳤다. 심신이 편해진 다음 순간, 그는 팔을 뻗어 금하를 품속으로 끌어당겼다. 그녀의 어깨 위에 머리가 놓여 뜨거운 숨결은 그녀의 귓가에 닿았다.

“옷을 갈아입는 것도 자제하라 하나? 아니면, 너도 내 앞에서 한 번 갈아입어라. 그럼 우리 둘은 공평해지는 셈이지.”

금하는 얼굴이 온통 빨개져 그를 밀어내고 화를 벌컥 냈다.

“꿈도 크십니다!”

육역이 웃어 보였다.

“좋아, 좋아. 이 일은 후에 다시 자세히 얘기하자. 먼저 말해봐. 너는 오늘 저녁 그 두 아가씨의 신상에서 무얼 알아냈지?”

이 일에 자세한 얘기가 더 필요하던가!

금하는 자신의 얼굴 두께가 사실은 그의 뻔뻔함에 비교가 되지도 않을 거라고 생각했다.

이내 그녀는 순식간에 안색이 엄숙해지고, 태도가 진지해졌다.

“비록 노골적으로 밝히진 않았으나, 저들 둘은 분명 호종헌의 여자들이에요. 그녀 둘은 호가의 가정사를 매우 잘 알고 있습니다. 다만 아쉬운 것은 거의 대부분이 여인 간의 질투와 다툼뿐이었어요……. 오라버니, 호 도독은 자기 여자까지도 이쪽으로 보냈으니, 이건 오라버니에 대한 그의 정성이 깊고 지극하다고 말할 수 있겠죠.”

금하는 육역의 표정을 훔쳐보았다. 그의 표정은 담담했다.

“이어서 계속 말해.”

“집안에 이렇게 많은 여인을 거느릴 수 있고, 게다가 그 여자들의 일상생활과 차림새까지 더하면, 지출이 적지 않을 테죠. 호 총독은 청렴결백한 인물 같은 건 절대 될 순 없고, 깨끗하지도 않아요. 참, 대인 아버님께서 염두에 두셨던 서위, 서 문장에 대해 저도 몇 마디 물었어요. 그는 호종헌에게 지금 가장 총애를 받는 이로, 저 여자들까지도 호종헌의 마음을 차지한 그를 부러워하고 있어요.”

“무슨 말을 했지?”

육역이 차를 따라 그녀에게 밀었다.

금하가 웃으며 말했다.

“이건 그 이야기 중 하나예요. 하루는 호종헌이 수하들을 소집해 회의청에서 군무를 논의했대요. 제삼자는 절대 들어갈 수 없고요. 그런데 누가 이 서 문장이 문도 두드리지 않고 쳐들어가 유유히 한 바퀴 돌고, 또 한마디 말도 하지 않고 나갈 줄 생각이나 했겠어요.”

금하는 손끝으로 핑그르르 한 바퀴 도는 동작을 그려 보였다.

“이걸 만약 다른 사람이 했다면, 벌써 끌려나가 반 죽을 때까지 맞았을 거랍니다. 하지만 호종헌은 그에게 뭐라하긴커녕, 이 일에 대해 전혀 언급하지 않았대요. 그 여자들은 또 이걸 부러워하고 질투하고, 후에 여자들 중 가장 총애받는 이가 한 번 똑같이 해봤는데, 결과는 시위에게 원 입구부터 가로막혀 안에는 한 발자국도 들어가지 못했다네요.”

육역은 그럴 수도 있다고 생각했다.

“사람의 마음을 잡기 위한 방법일 뿐 이상하게 여길 것이 없다.”

금하는 어깨를 으쓱했다.

“바깥 일에 관해선, 저 여자들은 서해, 왕직 등도 잘 몰라요. 다만 제가 단서라고 느끼는 한 가지 일이 있어요. 여자들이 작년 중추절 얘기를 했는데요. 그때 호종헌의 기분이 매우 좋았고, 집안 연회에서 여자들에게 연말에 그녀들을 데리고 보타산에 참배하러 가겠다고 얘기했었대요.”

“작년 중추절?”

육역이 잠시 회상했다.

“왕직은 작년 9월 잡혔다.”

“이 몇 년 동안 왜구의 방해도 있고, 또 보타산은 섬이라 위험을 무릅쓰고 그곳으로 참배하러 간 사람이 거의 없었어요. 그가 이 말을 하고, 또 연말이라 한 것은 적어도 그때는 그가 왜구를 평정하는데 매우 자신이 있었음을 의미해요.”

금하는 의아해하며 얘기를 이어갔다.

“왕직이 붙잡히기 전인데, 그는 어떻게 이런 큰 자신감이 있었을까요?”

여기까지 말하는 사이, 마침 잠복이 문을 두드리고 들어왔다. 쟁반에는 문방사보가 놓여 있었다.

“그 일은 잠시 후 다시 얘기하자.”

육역이 일어나 서탁에 종이를 잘 깔고는 금하에게 물었다.

“넌 육선문에 들어갔으니, 양 포두는 네게 인식한 사람의 얼굴을 초도(*스케치.)하는 것도 분명 가르쳐 줬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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