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금의지하 (134)화 (134/224)

134화

그가 하는 말에 따르면, 육역이 이 일을 이미 알고 있다는 뜻이다.

잠수는 어리둥절해졌다.

대공자께서 이미 동의한 거면, 또 어째야 좋지?

게다가 상대방은 양절의 총독으로 어찌 되었건 노여움을 살 수는 없는 일이었다.

그가 얼떨떨 하는 사이, 두건을 쓴 이는 이미 사람들을 데리고 깔끔히 물러났다. 그러나 물건들과 가마 두 대는 남기고 떠났다.

“가마 안에 누구 있어요?”

금하는 확실히 호기심이 강했다. 바닥에 놓인 궤와 찬합 등을 돌아서 다가가 그녀는 가마의 발을 걷으려 했다. 그런데 손가락이 가마의 발에 닿는 그 순간, 그 발은 오히려 안에서 올라갔다.

담홍색의 옷을 입은 여자가 가마에서 사뿐사뿐 걸어 나와 여러 사람을 향해 웃어 보였다. 이 여인은 꽃도 부끄러워할 정도의 아름다운 교태가 있었다. 또 다른 가마에서는 정향색의 옷을 입은 여자가 나왔다. 그녀 역시 낭창한 허리의 아름다운 미녀였다.

“당……, 당신들은 또 누구요?”

잠수가 미간을 찌푸리며 물었다.

“저는 령령이옵니다.”

“저는 사사이옵니다. 저희는 육 대인의 수발을 들러 왔습니다.”

두 사람이 똑같이 말하는 것이 목소리마저 계곡의 꾀꼬리처럼 듣기 좋았다.

“당신들 빨리 돌아가요. 우리 대공자께서는 당신들이 필요치 않으십니다.”

잠수는 평소 여자들의 치근거림을 못 견뎌 했다. 하물며 이렇게 연약한 여자들이라 욕도 할 수 없고, 때리지도 못하니, 그는 더욱 머리가 아팠다.

“저희 둘은 이미 보내진 이상 육 대인의 사람이지요. 오라버님께서는 저희에게 어디로 돌아가라시는 건가요? 설마 저희에게 길에서 노숙이라도 하라는 말씀입니까?”

령령이 일부러 연약한 모습을 드러내 보였다.

그 사이 두 사람은 이미 알아서 안쪽으로 향했다. 잠수가 급히 그 앞을 막았다.

“대공자께서 동의하지 않으셔서 당신 둘은 들어갈 수 없습니다.”

그가 무뚝뚝하게 말했다.

“오라버니 마음 씀씀이가 참 야박하시네요. 우리를 들어가게 못 하시면, 여기서 벌이라도 서라는 말인가요?”

사사가 성을 내기도 하고, 탓을 하기도 하며 입을 열었다.

잠수 또한 그녀들은 무시한 채 무표정하게 말했다.

“어쨌든 들어갈 수 없어요.”

그들 세 사람의 다툼은 해결될 기미가 보이지 않으니, 정자 안에서 보고 있던 금하는 바로 웃음이 터질 것 같았다.

이리 클 때까지 순우민이 이렇게 교태로 충만한 여자를 본 적이 있던가. 궁금하지 않으면 거짓말이었으니, 그녀는 두 눈을 크게 뜬 채 그들을 바라보고 있었다.

오직 양악만이 미간을 찌푸렸다. 그가 금하의 귓가에 낮은 소리로 말했다.

“아예가 여기 있잖아. 저 두 사람이 정말 머문다고 들어오면, 매우 번거로워져.”

“알아. 그래서 잠수가 그들을 못 들어오게 하는 거야.”

바로 령령의 손이 잠수의 어깨를 잡으려고 했다. 하지만 잠수는 평생 여자에게 손을 대 본 적이 없던 남자라 힘을 쓰기 어려웠다. 몸을 피할 수밖에 없었고, 그를 보던 금하가 당장 고개를 저었다.

그녀는 목소리를 가다듬어 큰 소리로 불렀다.

“언니들, 그와 실랑이할 필요가 뭐가 있어요. 이리와 앉아서 차 한잔하는 게 어때요?”

령령과 사사가 고개를 돌려 그녀를 바라봤다. 금하가 어떤 위치인지 알 수가 없어서 두 사람 다 어리둥절해 했다.

경성의 홍등가는 종종 사건이 일어나면 그 단서가 가장 많은 곳으로 꼽힌다. 포쾌라는 직업상 금하는 기녀들이 있는 곳을 오가는 것이 일상이었다. 그러니 이런 여자들을 대하는 일이야 그녀에게는 더욱 식은 죽 먹기일 수밖에.

바로 금하는 웃으며 다가가 령령의 팔을 끌어당겼다.

“언니는 아직 저 사람 혼자 결정할 수 없는 걸 모르는구나. 육 대인이 돌아와 뭐라 하실까 걱정하는 거죠. 언니들이 저분을 한 번 봐줘요. 육 대인이 돌아오시면, 설마 못 들어가겠어요?”

잠수는 그녀의 말에 계속 흥흥거렸다. 그래도 다행히 금하가 그를 궁지에서 벗어나게 해주려는 것은 알고 있어서 더이상의 말은 하지 않았다.

령령이 살짝 생각해 보다가 뾰로통해서는 잠수를 흘끔 보았다. 그러다 결국은 그를 놓아주고 사사와 함께 금하를 따라 정자로 들어왔다.

“대양, 얼른 언니들에게 새로운 차 좀 끓여다 줘.”

금하가 그에게 눈짓을 보냈다. 알아들은 양악이 웃으며 정자를 나갔다.

령령을 따라 앉은 사사가 금하를 보고, 또 불안한 표정으로 앉아 있는 순우민을 보다가 웃음을 머금고 물었다.

“두 아가씨는 어찌 불러야 할까요?”

금하는 그녀들에게 순우민을 소개했다.

“이분은 육 대인의 사촌 여동생, 순우 아가씨예요.”

순우민이 언제 이런 여자들을 만난 적이 있던가. 무슨 말을 해야 할지 몰라 그녀는 어색하게 여자들에게 웃어 보였다.

“저는 성이 원으로 육 대인의 수하입니다. 자질구레한 일을 하러 뛰어다니죠.”

금하는 그들이 말할 틈을 주지 않고 시선을 돌렸다. 령령의 옷소매를 잡아끌며 칭찬을 시작했다.

“언니 옷은 정말 예쁘군요. 감촉도 부드럽고 매끄러운데, 색도 선명하고요. 언니를 꽃보다 더 아름답게 받쳐줘요.”

조금 떨어진 모퉁이에서 잠수는 벽에 등을 기대고 있었다. 금하와 두 여자가 신나게 떠드는 것을 듣고 있다가 저도 모르게 미간을 잔뜩 찡그렸다. 때마침 양악이 다반을 들고 오자, 그를 붙잡아 퉁명스럽게 말했다.

“너희는……, 저 두 년은 딱 봐도 제대로 된 집안 출신이 아니잖아. 너희는 저걸 잘 보이려고 비위를 맞추고 있냐. 육선문도 어쨌든 관청인데, 너희도 하는 일에 모양새는 갖춰야 할 거 아냐!”

양악은 다반을 꽉 잡고 미간을 찡그리며 말했다.

“너 찻물 엎게 하지 마라. 저들이 제대로 된 집안 출신이 아닌 걸 알았으면, 저들을 어떻게 다뤄야 하는지도 알아야 하잖아. 이번 조사하려는 이는 호 총독이고, 저들은 또 호 총독의 사람이야. 금하가 이렇게 심혈을 기울이는 건 저들 입에서 무슨 말이든 끌어내려는 게 아니냐, 그걸 몰라?”

잠수는 살짝 얼이 빠졌으면서도 고집을 세웠다.

“보잘것없는 기녀 둘이 무얼 알아? 시간 낭비할 필요 없이 내쫓으면 깔끔한걸.”

양악은 원래 마음이 넉넉한 사람이다. 그러나 요즘은 적란엽의 일 때문에 마음이 줄곧 울적하여, 말하는 것도 그다지 친절하지 않았다. 그는 당장 무뚝뚝하게 말했다.

“쫓으려면 네가 가서 쫓아. 지금껏 저들 피해 숨어 있던 게 누구야? 만약 너한테 그런 능력이 있었으면, 금하도 저런 애쓸 필요 없었어.”

“너…….”

잠수는 목을 꼿꼿이 세웠다. 수긍하지 않고 맞받아 반격하려고 했으나, 양악은 이미 다반을 들고 가버린 후였다.

“좋아. 내가 저 계집애가 뭘 알아내는지 꼭 보겠어. 힘만 들고 헛수고지. 흥!”

그는 차갑게 흥 하고는 부엌에 들러 달인 약을 들고 아예의 방으로 갔다.

방에 들어서자마자, 잠수는 아예가 또 바닥에 굴러떨어진 것을 발견했다.

“너 굴러떨어지는 거 맛 들였냐, 아니면 왜 매번 이래?”

그는 고개를 저으며 약사발을 탁자에 내려놓고 서두름 없이 아예를 부축했다.

“약 먹어라. 네가 바닥서 먹는다면, 나야 상관없고, 재미만 있지. 이 어르신 힘들게 하지 마라.”

아예는 어렵게 침대 난간을 짚고 몸을 지탱해 보려고 애를 썼다. 그러나 온몸의 힘이 다 빠져 아주 조금 일어나다가 결국에는 맥이 다해 쓰러질 수밖에 없었다.

“거울, 거울을 보고 싶어.”

아예가 잠긴 목소리로 말했다.

잠수의 눈앞에 있는 그는 보이는 모든 곳에 칼자국이 가득 했다. 사람의 모습이라는 것도 겨우 구분할 수 있을 상황이라 아무리 북진무사에서 보고 들은 것이 많은 잠수라도 견딜 수 없는 부분이 있을 정도였다.

잠수가 거친 어조로 소리쳤다.

“사내대장부가 무슨 거울을 봐. 계집년도 아니고. 네가 움직일 수 있을 때 직접 찾아. 이몸께선 네 심부름 같은 건 안 해.”

“거울을 보여줘! 나는 봐야겠어.”

아예는 반복해서 말하며, 눈을 아래에서 위로 치켜떠 그를 죽일 듯이 노려봤다.

“이몸께 시키지 말라 했잖아, 못 들었냐!”

“거울을 봐야겠어. 거울을 보여줘…….”

순우민이 그를 보고 놀라 주저앉았을 때부터, 아예의 마음에는 어렴풋한 불안이 생겨났다.

내 얼굴이 대체 어떻게, 얼마나 상한 거야? 만약 언제고 당주가 날 만나면, 순우민처럼 매우 질겁하여 날 보는 것이 아닐까?

그가 쉬지 않고 반복하는 단조로운 말은 초조와 불안에 휩싸인 것이었다. 잠수는 화가 욱하고 치밀어 그를 끌고 부축하며 방 안의 화장대 앞으로 갔다. 거울을 똑바로 그 앞에 대줬다.

“봐! 봐, 네가 봐! 보고 후회하지나 마.”

아예는 거울 속 사람을 바라보며 오래도록 말을 하지 못했다.

그는 자신의 얼굴 상처를 만져보고 싶었다. 그러나 손조차 들어 올릴 힘도 없었다.

그의 표정을 본 잠수는 그래도 타이르며 말했다.

“어쨌든 거울은 내 강요가 아니라 너 스스로 본 거다. 남자가 말야. 얼굴에 상처 몇 개 있다고 사실 무슨 큰일도 아니잖아. 여자도 아니고 말야, 어? 여자야 시집 못 갈까 걱정이지, 남자 놈이 장가를 못 갈까 봐 걱정하는 거냐?”

그러나 아예는 무언가 결심을 한 듯 온 힘을 다해 맹렬히 앞으로 돌진했다.

잠수는 원래 그를 반은 끌고 반은 부축하여 온 것만으로도 힘이 부쳤다. 그런데 갑자기 그가 이렇게 발버둥 치니 온몸이 중심을 잃고 그를 따라 앞으로 넘어졌다.

두 사람은 동시에 거울에 펑 소리와 함께 부딪혔고, 그 뒤로는 쨍하는 소리만 들렸다. 거울이 바닥에 부딪혀 부서지며 파편이 사방으로 촤르르 튀었다.

* * *

이때 금하는 여자들과 호 총독의 성격에 관해 얘기하는 중이었다. 그런데 아예의 방에서 쨍하는 소리와 뒤이어 유리가 바닥에 촤르르 떨어지는 소리가 들렸다. 하도 큰 소리라 그녀가 아무렇지 않은 척하기도 힘이 들었다.

순우민 또한 이 소리를 듣게 되니, 무슨 일이 일어났는지도 모른 채 조금 전 그 괴상한 사람이 소란을 벌였을까, 걱정이 들어 마음이 무섭고 불안해졌다.

령령과 사사도 당연히 들었으니 의아해했다.

“누가 실수로 물건을 놓쳤나 봐요?”

“그러게요.”

금하는 급히 말을 이어받았다.

“아마도 방금 언니들을 막은 그분일 테죠. 매우 덜렁대거든요. 제가 가볼게요. 귀한 물건 부수지 않았기를……. 맞다. 제가 보니까 언니들 옷에 놓은 수가 매우 참신하고 절묘해요. 순우 아가씨도 자수를 잘 하는데, 두 분께서 가르쳐 주시면 좋을 것 같아요.”

그녀는 말을 하며 순우민에게 슬그머니 눈짓했다. 순우민은 자신에게 여자들을 상대하라는 금하의 뜻을 이해했으나, 그녀는 지금껏 이런 일을 해 본 적이 없었다. 지금도 반나절 함께 앉아 그들이 말하는 것을 들었을 뿐이니, 당장은 어찌해야 할지 전혀 몰랐다.

금하는 성큼성큼 걸어 이곳을 빠져나갔고, 남은 순우민은 홀로 령령과 사사를 상대하고 있었다.

“나는……, 나는 사실 수를 잘 못 놓아요.”

순우민은 가늘고 여린 목소리로 심사숙고하여 말을 골랐다.

“항주의 자수가 유명하다는 건 천하가 알고 있죠. 두 분 언니께서 많이 가르쳐 주세요. 이건 내가 놓은 꽃 모양인데, 잘 놓지 못했어요.”

그녀는 자신이 들고 다니던 손수건을 들었다. 그 손수건의 모서리에는 옥란화 몇 송이가 수 놓여있었다.

령령과 사사 이 두 여인은 처음 순우민을 보자마자, 그녀가 대가댁 규수인 것을 알아보았다. 그런데 또 육 대인의 사촌 여동생이자 대부호 출신임을 알게 되었으니, 속으로는 그녀가 자신들을 무시할까 걱정했었다.

그러나 지금 순우민은 먼저 얘길 건네고, 그녀들을 예의 있게 대하면서도 결코 가벼이 보지도 않았다. 게다가 그녀는 육역의 사촌 동생이기까지 하니, 두 사람은 본래부터 가까워지려는 마음이 있었다. 바로 손수건을 받아 그녀와 대화를 나누는 것이 조금의 서먹함도 찾을 수 없었다.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