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32화
머잖아 왕직 부자의 시신이 끌려가고, 집행대 또한 깨끗한 물을 차례로 부으며 청소가 시작됐다. 둘러싸고 구경하던 백성들도 점차 흩어지고, 육역 일행도 마차 쪽으로 돌아왔다.
오랫동안 규중에만 있던 순우민이 언제 이런 장면을 본 적이 있었을까.
비록 자신의 눈으로 직접 형 집행을 보지 않았다 해도, 주위의 소리만으로도 마음은 불안에 떨어야 했으니, 그녀는 마차에서 조금도 움직이려 하지 않았다.
순우민은 육역이 돌아오는 소리를 듣고서야 서둘러 발을 걷고 마차에서 내렸다. 그녀는 긴장한 목소리로 물었다.
“사람은 죽었어요?”
육역이 고개를 끄덕였다. 바라보던 순우민의 얼굴은 온통 창백해졌다.
“놀랐구나.”
순우민이 서둘러 고개를 저었다.
“괜찮아요.”
“우선 순우 낭자에게 뭔가 드시게 해서 놀란 마음을 위로하는 게 가장 좋을 듯해요.”
옆에 있던 금하가 좋은 뜻으로 제의했지만, 잠수는 이해할 수 없다며 바로 타박을 줬다.
“방금 목 베는 걸 봐 놓고, 넌 어떻게 먹는 것만 생각하냐?”
금하를 향해 돌아선 육역이 웃을 듯 말 듯 한 표정으로 물었다.
“배고픈가?”
“저는 놀라면, 유달리 쉽게 배가 고파요.”
금하의 얼굴은 진지함이 가득하여 질문할 여지를 주지 않았다.
“저는 순우 낭자도 아마 마찬가지일 거라고 생각했어요.”
“너는 사람들이 모두 너 같다고 생각하는군.”
육역이 한 마디 던져 그녀를 놀렸다.
“가자. 우선 밥을 먹고 머물 곳을 찾자.”
금하가 빙그레 웃으며 마차로 뛰어오르려 할 때였다. 그녀의 시야에 매우 익숙한 모습이 번개처럼 스쳤다.
매우 큰 키, 장대하고 단단한 몸.
금하는 돌아서 뚫어지게 한 곳을 바라봤다.
저게 사소가 아니면 또 누구겠어?
오안방을 떠난 후 사소는 다시 수염을 길렀다. 짧은 침 같은 수염이 한올 한올 사방으로 제각기 기세 있게 뻗쳤다.
사소와 함께 상관희도 있었는데, 그녀는 여전히 뛰어나게 아름답고 기품이 있었다.
그들 외에 체구가 우람한 이가 또 한 사람 있었다. 그는 검은 삿갓을 깊숙이 눌러 써서 생김새는 잘 보이지 않았다.
상관희까지 알아본 금하는 사소를 본 것보다 더욱 기뻐하여 소리를 높여 불렀다.
“상관 언니도 오셨군요!”
맑고 듣기 좋은 목소리가 마차 안으로 전해졌다.
물론 아예가 듣지 못할 리가 없었다. 온몸을 바르르 떤 그가 귀를 쫑긋 세운 채 바깥의 동정에 귀를 기울였다.
“원 낭자.”
상관희가 금하를 향해 온화하고 부드럽게 웃어 보였다. 뒤이어 육역을 향해서는 공수하며 인사를 했다.
양악도 다가와 그들과 공수하며 인사를 나눴다.
* * *
많은 이들의 떠들썩하고 잡다한 소리 속에서도, 아예는 그녀의 목소리를 거리낌 하나 없이 구분할 수 있었다. 짧디짧은 몇 마디의 말도 그에게는 천둥소리와 같고, 맹렬한 불길에 휩싸이는 것 같고, 대해 속으로 완전히 빠져드는 것 같아 그의 머리속은 다른 것을 전혀 생각할 수 없었다.
마차의 벽으로 가로막혀 있을 뿐 두 사람 사이의 거리는 이렇게 가까웠다. 이생에선 더는 그녀를 볼 수 없을 거라 생각했건만, 그가 죽음만을 생각하는 이때, 그녀의 목소리를 들을 수 있다니. 이건 결코 그가 생각해 본 적이 없는 일이었다.
금하를 보고 기뻐하던 사소는 육역이 옆에 있는 것을 보고는 바로 기분이 언짢아졌다.
그가 걸걸한 목소리로 입을 열었다.
“우리보다 먼저 떠났잖아. 왜 이제야 도착해?”
“도중에 큰비를 만나고, 길도 무너지고, 또…….”
금하는 순우민이 동행했기에 그녀를 배려하느라 여정이 많이 늦어졌다고 말하기에는 상황이 곤란했다.
“뭐라 한마디로 말할 순 없네. 그쪽은? 유난히 활기차 보이는데?”
“우리 쪽도 내내 느긋해 하다가 가흥嘉兴에 막 도착해서 왜구를 만났어. 그때부터 그들을 계속 쫓아오다가 어제서야 성 밖에서 해치워버렸다. 그 참에 왜구 두목이 어떻게 생겼나도 겸사겸사 보러왔던 거야.”
사소의 어조는 자신감이 넘쳤다.
“왜구를 계속 뒤쫓았어? 듣는 것만으로도 엄청 늠름하고 대단해!”
금하가 밝게 웃으며 말했다.
“오빠, 우리 처음 봤을 때, 내가 오빠한테 대협이라 부른 거 기억해? 역시 그때부터 대협의 풍모가 있었어.”
금하의 말에 사소의 기분은 매우 좋아졌다.
옆에 있던 육역이 금하를 흘끔 쳐다보았다. 아무 말도 하지 않던 그는 옆에서 줄곧 침묵을 지키는 검은 삿갓인을 바라보더니, 돌연 담담한 어조로 입을 열었다.
“자네 다리 상처는 이미 회복이 거의 된 것 같군.”
이 말에 멈칫한 그 사람이 삿갓을 벗었다. 경직된 목소리에는 경계심이 깔렸다.
“육 대인, 안녕하셨습니까?”
이 사람은 바로 사수죽이었다. 그때 육역이 그의 다리뼈를 한 발로 걷어차 부러뜨리던 순간이 뇌리에 콱 박혔으니, 설령 후에 육역이 그를 고의로 놓아줬다 해도, 사수죽은 여전히 육역에게 경계심이 강했다.
그러나 육역은 그를 오히려 칭찬하는 마음이었다.
“자네가 저들과 함께 왜구를 막고 있다고? 그러고 보니, 그때 배 위에서 생신 선물을 강탈한 것이 국경의 백성을 위함이라 했었지. 자네는 역시 진정이었군. 나 또한 존경을 표하네.”
그에게 이런 칭찬을 듣자니, 사수죽은 오히려 마음이 편치 않고 겸연쩍어졌다.
“육 대인 과분한 말씀입니다.”
“기왕 모두 구면이니, 마침 잘 됐어요. 함께 밥 먹으러 가요.”
금하가 열정적으로 말했으나, 상관희가 부드럽게 거절했다.
“절의 사형들이 멀지 않은 곳에서 기다리고 계셔서 그럴 수가 없어요. 우리는 그들과 만나서 곧 항주를 떠날 거예요.”
“참, 양주를 떠날 때, 아예가 행방불명이었다고 기억하는데요. 그는 찾았나요?”
“아직이요.”
금하가 일부러 물어본 소리에 상관희가 한숨을 쉬며 답했다.
“우리 아버지가 계속 찾고 계세요. 여러분들은 관청 사람이니, 만약 그의 행방을 찾게 되면, 제게 반드시 말씀해주세요.”
“그야 당연하죠. 그도 만약 언니가 여기 있는 걸 안다면, 아마도 달려와 언니를 도와줄 걸요.”
“그가 만약 여기 있다면…….”
상관희는 마치 정신이 나간 것처럼 멍해 있다가 잠시 후 탄식과 슬픔이 섞인 어조로 입을 열었다.
“그가 있다면 좋았겠죠.”
마차 안의 아예도 이 말을 들었다. 그는 손으로 마차 벽을 단단히 붙들었고, 고통이 가득한 두 눈을 꽉 감았다.
금하는 조금 실망한 어조로 말을 꺼냈다.
“아, 바로 가야 해요? 그럼 이후 언니는 어디로 찾으러 가야 하죠?”
“지금은 왜구가 도처에서 도망 다니고 있어서, 우리도 거주가 일정하지 않아요. 절의 사형들만 따라다니고 있어요.”
상관희가 웃으며 말했다.
“아마도 어느 날 우린 또 만나겠죠. 그럼 이만!”
사소, 사수죽도 공수를 하고 작별했다.
금하는 그들 세 사람이 사람들 사이로 사라지는 것을 보고 있었다. 늠름하고 거칠 것 없는 그들의 모습을 보다 보니, 문득 자신이 사는 게 매우 답답하다고 느껴졌다.
“모두 멀리 갔는데, 아직도 보고 있나.”
육역의 어조는 가벼웠다.
“그렇게 아쉬워?”
금하는 원대한 뜻으로 마음이 격해져서 저도 모르게 탄식했다.
“저도 왜구와 싸우러 가고 싶어요. 얼마나 통쾌할까요!”
육역이 고개를 끄덕이며 찬성의 뜻을 표했다.
“네 무공이 비록 어설프긴 하나, 스님들의 취사병이 되는 것은 가능하지. 그들은 무로 세 끼 다 먹는다 해도 분명 싫어하진 않을 거야.”
“…….”
금하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설핏 웃은 육역이 그녀의 머리를 짧은 순간 쓰다듬었다.
* * *
수양버들을 날린 상쾌한 바람이 객잔의 열린 창문을 넘어와 얼굴을 가벼이 스쳤다.
금하는 심신이 편한 상태로 창가에 엎드려 서호 위의 작은 배들을 바라보았다. 방금 먹은 맛좋은 요리를 돌이켜 음미하니, 천당이라는 이름이 붙은 항주는 과연 명불허전이라고 감탄하지 않을 수 없었다.
그다음 그녀는 가볍게 돌아서 침상에 누운 사람을 바라봤다.
“만약 계속 먹으려 하지 않으면, 하던 대로 난 바로 잠수를 부르러 갈 거야.”
그녀의 말이 채 끝나기도 전, 퉁명스러운 아예의 목소리가 들렸다.
“미음은 안 먹어. 밥을 먹을 거다.”
“오, 마침내 철이 들었구나. 너 이제 내가 너 속이지 않은 거 알았겠지.”
금하의 웃음에 뒤이어 아예는 계속 무뚝뚝하게 말했다.
“의원을 불러줘. 나는 계속 이렇게 누워 있고 싶지 않아.”
“좋아. 내가 육 대인께 말씀드릴게.”
금하는 매우 시원시원하게 대답했다.
“네가 그에게 전해. 내 몸을 원래의 상태로 돌려줄 수만 있다면, 나는 내가 아는 것을 모두 그에게 말하겠다고.”
아예의 눈빛에는 냉기가 서렸다.
“그가 반죽음 상태인 날 여기까지 끌고 온 건 이걸 얻으려던 거 아냐?”
“넌 도대체 무얼 알고 있어? 좀 들어보자.”
아예가 차가운 눈으로 매우 궁금해하는 그녀를 노려봤다.
“육 대인 말고 다른 사람에게는 말할 수 없어.”
“너도 진짜 답답하다. 너 이번 실종됐을 때, 오안방에 너 찾는다고 온 성을 뒤진 이가 있기나 했냐?”
금하는 그에게 적절한 자극을 줬고, 그러고서야 고개를 저으며 문을 나섰다.
* * *
금하는 방으로 들어서자마자 황홀한 진홍색에 눈이 부셨다. 육역은 지금 막 비어복으로 갈아입었고, 그가 왜 이 관포로 갈아입었는지 몰라 그녀는 그 자리에서 멍하니 서서 바라보았다.
“때맞춰 잘 왔다. 날 도와 조대绦带(*견사로 짜 여러 가닥으로 땋은 장식 띠.)를 묶어라.”
육역은 스스럼없이 그녀를 불렀다.
“아…….”
옷에 달린 조대 한쪽을 든 금하는 육역의 뒤로 돌아가 그의 허리에 끈을 세심하게 잘 묶었다.
그런데 끈을 다 묶자마자, 돌아선 육역이 두 손으로 그녀의 허리를 둘러 가둔 채 단단히 당겨 안았다.
그의 미간이 살짝 찌푸려졌다.
“이 여정 내내 나는 분명히 좋은 음식으로 잘 먹이고, 매끼도 빠뜨리지 않았는데, 어째서 조금도 살이 붙지 않아?”
금하가 그의 손을 풀어놓고, 공손한 모습을 만들어 보였다.
“소관 대인을 위해 매일 충심으로 전심전력을 다 하니, 매우 몸을 상한 것이지요.”
“그래서?”
육역은 웃음을 머금은 채 그녀의 다음 말을 기다렸다.
“대인께서 매일 야참을 추가해 보시는 것도 괜찮을 듯합니다.”
금하는 성실하게 제의했지만, 육역은 웃음을 참을 수가 없었다. 그가 무언가 말을 하려는 순간, 문밖에서 잠복이 공손하게 말하는 것이 들렸다.
“대공자, 호 총독이 가마를 보내 모시러 왔습니다. 제가 그들에게 우선 객잔 밖에서 기다리라 하였습니다.”
“알았다.”
“호종헌? 그가 대인이 항주에 오신 걸 알았어요?”
“우린 이미 밥을 먹었고, 또한 이곳에 머물고 있지. 그런데도 그가 아직 모른다면, 이 양절 총독은 맡지 않는 것이 차라리 낫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