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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의지하 (131)화 (131/224)

131화

연이어 다시 며칠이 더 지났다.

설령 금하가 한 말을 들었다고 해도, 아예는 믿는 것으로 보이진 않았고, 그는 여전히 밥 또한 먹지 않으려 했다.

잠수는 북진무사 출신답게 아예를 일으켜서는 목덜미를 움켜쥐고 능숙한 수법으로 그의 입안으로 기어이 미음을 쏟아부었다.

옆에서 보던 금하는 찬탄해 마지않으면서도 줄곧 생각했다.

저 기술은 북진무사 안에서 분명 잡혀 온 이들 입에 독약을 퍼부으며 연습한 걸 거야.

그렇게 그들은 마침내 항주에 도착했다.

하늘에는 천당이 있다면, 땅에는 소주와 항주가 있다는 말이 있다.

항주는 단아하다는 말도, 농염하다는 말도 전부 다 잘 어울리는 서호西湖뿐 아니라, 송수어강, 서호초어, 밀즙화방, 규화계 등등 이름만 들어도 입맛을 다시게 하는 유명 요리도 즐비했다.

만약 예전에 이런 맛있는 음식이 풍부하게 나는 곳에 왔다면, 양악은 필시 마음이 매우 설렜을 터였다. 그러나 지금 그의 마음에는 적란엽이 죽었다는 어두운 현실이 남아있었다. 말수마저 매우 적어졌으니, 요리를 한다는 생각은 더더욱 말할 것도 없었다.

금하는 나날이 과묵해지는 양악을 보며, 그를 데리고 맛있는 요리를 먹으러 다녀야겠다고 생각했다. 어쨌든 이곳은 그가 흥미를 느낄만한 곳이다. 그러니 그에게 일말의 생기는 돌아오게 할 수도 있을 것이다.

먼빛으로 항주 성문이 보일 때, 금하는 참지 못하고 잠수에게 물었다.

“그 댁 대공자께서 항주에 오신 걸 이곳 관료들은 알아요?”

잠수가 삐딱한 시선으로 그녀를 흘겨보았다.

“알면 어떻고, 모르면 또 어때?”

“당연히 다르죠. 만약 알면, 성에 들어가서 마땅히 환영연을 열겠죠. 요리는 분명 품위가 있을 테고.”

금하의 두 눈이 밝은 빛으로 반짝거렸다.

잠수는 흥 콧방귀를 뀌며 그녀에게 일장 훈계를 시작했다.

“너희가 비록 육선문이긴 하나, 지금은 차출되어 온 이상 대공자를 따라야 한단 말이지. 이런 세상 물정 모르는 궁상맞은 꼴은 보이지 마라. 공연히 대공자 체면 깎게 돼.”

금하는 이 말에 거듭 흥흥거리고 비꼬며 말했다.

“어제 족발 구이는 한 접시에 모두 여섯 개였는데 누군지 모르게 단숨에 세 개를 먹어 치우더만. 다른 사람은 근처에 가 보지도 못하게 하였으니, 진정 세상 물정 자아아아아알 아는 사람이구나!”

그녀는 고의로 ‘세상 물정을 잘 안다’에서 ‘잘’이라는 말을 길게 늘였다. 물론 그녀의 말에 잠수의 얼굴은 저도 모르게 벌겋게 달아올랐다.

어제의 족발 구이는 맛도 있고 연해서 그는 멈추지 못한 채 연거푸 그것만 먹고 말았다. 제 몫보다 두 개를 더 먹었는데, 이 계집애가 눈여겨보고 있을 줄은 생각도 못 했다.

진짜 밉살스러워!

금하는 그가 잠자코 찍소리도 못하는 걸 보고는 고개를 끄덕이며 그를 바라보았다.

“그때 오라버니는 왜 대공자 체면 깎을지 모른다는 생각을 못 했을까?”

“너…….”

“너는 무슨 너. 백성에겐 먹는 게 하늘보다 더 중요한 일이라 했고, 맛있는 걸 먹고 싶어 하는 건 창피한 게 아니지.”

금하는 익살스러운 표정을 지어 보였다.

“그 댁 대공자께서도 신경 쓰지 않으시는 걸 오라버니는 꼴사나운 거드름이나 피우고 억지를 부리네!”

그들의 대화 사이, 다각다각 말발굽 소리와 함께 그들은 이미 석판을 밟으며 성문을 넘어섰다.

* * *

성문 밖에는 맞이하러 나오는 대소 관원은커녕, 이렇게 큰 거리였음에도 지나다니는 백성마저 거의 보이지 않았다. 상점은 겨우 절반 정도 열었을 뿐이었다.

항주가 이렇게 적막할 거라고는 미처 생각지 못했다. 어찌 된 이유인지 몰라 다들 매우 의아해했다.

잠복은 육역이 지시하기 전, 그나마 문을 연 대로변의 상점을 찾아 물었다.

“말씀 좀 묻겠소. 이 길에 오가는 이가 이렇게 적은 데, 성에 변고라도 생겼소?”

“오늘 정오 북문 밖에서 왕직 부자를 참수합니다. 다들 거기 구경 갔지요.”

상점 주인이 말했다.

“오후가 지나면 서서히 시끌벅적해질 겁니다.”

왕직!

이 일에 시간을 제대로 맞췄을 거라고는 육역도 생각지 못했다. 순간 멈칫한 그가 바로 말에서 내려 주인에게 다가가 물었다.

“감참관监斩官(*범인 참수를 감독하는 관원.)이 누구인가?”

“그건 제가 모릅니다.”

상점 주인은 그들의 기세가 자못 위엄있는 것을 보고는 소홀히 대할 수가 없었다.

“듣기로는 양절 총독 호 대인, 그리고 어사 왕 대인이라는데. 소인도 자세히는 모릅니다.”

육역이 잠시 생각하고는 빠르게 말에 올랐다.

“가자. 북문으로 간다!”

* * *

이때의 북문은 밀려드는 인파로 꽉 차 몹시도 붐볐다. 죄인 강탈을 막기 위한 관병도 집행대 안팎으로 여러 겹을 세웠다.

왕직은 왜구의 두령으로 해상에서 다년간 밀수를 해오며, 일본 규슈 남부를 점령하여 왕 노릇을 한 이다. 그는 많은 일본인을 끌어모으고, 화총과 전함을 보유하였으니, 가히 해상의 맹주라 할 수 있었다. 그리고 연해 지역에 왜구들이 활개를 치는 것은 이런 밀수꾼들과 밀접한 관련이 있었다.

그런 왕직이 이번에 체포가 되었으니, 양절의 백성들은 모두 박수갈채를 보내며 환호했다. 왜구에게 집과 가족을 잃은 이는 적지 않았고, 이들 모두는 왕직에 대한 원한이 골수에 사무쳤다.

육역 일행이 서둘러 북문에 이르렀을 때, 그들이 본 것은 바로 그 용솟음치는 백성의 민의였다. 왕직에게 퍼붓는 매서운 욕설에 드러난 사무친 한은 보는 이를 매우 두렵게 할 정도였다.

육역은 순우민과 그쪽 일행은 길모퉁이에 자리를 잡게 하고 잠수와 양악에게 지키게 했다. 그는 원래 금하도 남게 하려 했으나, 그녀는 눈 깜짝할 사이 그림자도 찾을 수가 없었다.

“금하는?”

육역이 미간을 찡그렸다.

“원 포쾌는 마차가 서자마자 빠져나갔습니다.”

잠수는 물샐 틈도 없이 밀려든 사람들을 가리키며 불가사의하다며 쯧쯧 혀를 찼다.

“이 계집애는 미꾸라지가 사람이 됐나 봅니다. 이런 곳도 뚫고 들어갈 수 있어요.”

속으로 한숨을 삼킨 육역은 더 이상의 말 없이 잠복에게 앞길을 열라고 눈짓했다.

잠복은 바로 명을 받들어 품속에서 금의위의 요패를 꺼냈다. 애당초 빽빽하게 밀려든 군중은 이 동제 요패를 보고 놀라 분분히 자리를 내줬다.

육역은 군중의 가장 앞으로 천천히 걸어갔다. 그렇게 교수 집행대 몇 장 앞에서야 걸음을 멈췄다.

때는 이미 초여름의 정오가 가까웠고, 해는 교수 집행대 위로 뜨겁게 내리쬐었다.

집행대 사방에 무기를 들고 늘어선 관병은 진용을 엄정히 갖추고 만반의 준비를 한 상태였다. 육역이 눈을 가늘게 뜨고 바라보니, 감참관의 우두머리는 바로 호종헌으로 그의 옆으로 4, 5명이 더 있었다.

그중 관모나 관포도 입지 않은 한 사람이 호종헌의 가장 가까운 곳에 서 있었다. 그 사람은 미간을 잔뜩 찌푸린 것이 기분이 매우 불쾌해 보였다.

호종헌의 얼굴은 깊게 가라앉았다. 교수대 아래 모인 백성들의 욕과 아우성은 거센 파도처럼 일파만파로 번졌으나, 그는 전혀 들은 척도 하지 않았다.

오히려 그는 육역 일행이 교수대 가까이 오는 것을 주의 깊게 바라봤다. 그러나 육역 일행은 관복을 입지 않았고, 이전에도 마주친 적이 없어 상대는 그저 금의위라는 것만 알아볼 수 있을 뿐이었다.

그때, 왕직 부자가 죄수 차로 호송되어 집행대로 보내졌다. 백성들의 분노는 순간 가장 강렬히 들끓어 끊임없이 욕을 퍼부었다. 더 심한 이는 가져온 오물을 왕직 부자의 몸에 투척하는 바람에 망나니가 한때 가까이 다가가는 것도 힘들 정도였다.

오물이 허옇게 센 왕직의 수염과 머리카락을 물들여 악취가 사방으로 퍼졌다. 그는 천천히 고개를 들었고, 주위의 백성을 바라보았다. 그런 후 고개를 돌려 교수대 위의 호종헌을 바라봤다.

왕직은 입술을 짓씹으며 냉소를 흘렸다.

호종헌이 왕직의 눈빛과 마주했으나, 호종헌의 눈빛에 어떤 뜻이 담겼는지는 확실치 않았다. 그는 단지 미간을 잔뜩 찌푸렸을 뿐이었고, 두 사람은 아주 오랫동안 서로를 응시했다.

금하는 육역의 옆까지 인파에 떠밀려 갔다.

“왕직은 무엇 때문에 호 대인을 노려보고 있을까요? 설마 호 대인이 그에게 무사할 거라는 약속이라도 했을까요? 그래서 호 총독의 말에 신용이 없다고 원망하는 걸까요?”

금하의 의문에 육역은 말없이 고개만 저었다.

이미 정오가 되었다. 호종헌은 시선을 돌려 왕직의 경멸 어린 눈빛을 피했다. 이내 그는 참수를 즉시 진행하라는 영패를 꺼내어 교수 집행대 위로 던졌다.

영패가 바닥에 떨어지는 소리가 들린 순간, 주위는 일시에 조용해졌다.

“아버지……!”

왕직의 아들이 애처롭게 울부짖었다.

“아들아, 두려워 마라. 황천길에 아버지가 너와 함께 하마.”

왕직은 말을 하면서도 냉랭한 시선으로 호종헌을 응시했다. 그런 후 시선을 돌려 주위의 백성을 바라보며 큰소리로 외쳤다.

“나 하나 죽이는 건 상관없다. 양절의 백성이 고생할 뿐이지. 내가 죽은 후, 이곳은 반드시 10년 동안 대란이 일어날 것이다!”

왕직이 이 말을 부르짖자마자, 주변 사람들 전부 아우성을 쳐댔다.

이들은 이곳에 오랫동안 터를 잡고 살아왔으며, 왜구의 등쌀에 진저리 날 만큼 고통을 받았다. 그들은 하루빨리 이 왜구의 두목이 참수되기를 간절히 바랐으니, 왕직이 마지막 발악으로 헛소리를 지껄인 것으로 생각할 뿐 이 말을 믿을 리 없었다.

그러나 집행대 한쪽에 앉아 있는 호종헌은 왕직의 이 말에 더욱더 고뇌에 찬 표정이 되었다.

그가 거듭 손을 휘저었다.

“참하라!”

망나니의 도광이 번뜩인 순간, 사람의 머리가 땅에 툭 떨어졌다. 동시에 백성들 사이에서는 환호와 갈채의 함성이 일시에 터졌다.

“일개 왜구 두목이 자기가 죽은 후 양 절강의 백성이 고통스러울 거라며 큰소리를 치다니.”

금하는 이리저리 생각을 굴렸다.

“만약 그가 없었다면, 연해에서 왜구로 인한 재난이 이 정도까지는 아니었겠죠. 그런데도 그는 설마 자신에게 무슨 공이 있다고 생각하는 걸까요?”

육역은 움직이지 않고 그녀에게 낮은 음성으로 입을 열었다.

“호종헌 옆에 있는 저 사람을 잘 보거라.”

“아……, 저 보좌관이요?”

금하는 눈을 가늘게 뜨고 육역이 말한 이를 바라보았다.

상대는 크지 않은 체격에 얼굴빛은 담황색이고, 수염이 가늘고 긴 사람이다. 그의 얼굴에는 지금 분노의 빛이 서렸다.

“그는 결코 일개 보좌관이 아니야. 이름은 서위徐渭(*중국 명대의 문인.), 서 문장이라 불린다.”

육역의 어조는 담담했다.

“당시 내 아버님이 서위를 휘하로 들이려 하셨으나, 그는 거절했다. 그런 그가 호종헌의 휘하로 들어와 있을 줄은 생각지 못했군.”

금하는 놀라며 감탄했다.

“그렇다면 정말 보통사람은 아니겠어요. 대인 아버님마저도 눈에 차지 않은 거잖아요.”

육역이 그녀를 흘끔 보자, 뜨끔한 금하는 서둘러 말을 바로잡았다.

“사실 이런 것도 다 인연이죠. 저 사람이 호 대인과는 때마침 인연이 있던 것도 어쩔 수 없는 일이에요. 대인 아버님께 마음에 두지 마시라 하세요.”

육역이야말로 그녀의 말에 신경 쓰지 않고 이어서 말했다.

“서위는 명성은 없다 해도, 불세출의 천재다. 시서화에 정통하고, 병법 또한…….”

그가 여기까지 말했을 때, 금하는 이미 무언가 짚이는 것이 있어 집행대 위를 바라보았다. 그러나 서위는 이미 호종헌과 그곳을 떠났다.

“왕직을 참할 때, 서위와 호 대인 둘 다 얼굴이 온통 언짢은 표정이었어요.”

서위가 만약 돈과 명예를 좇는 사람이었다면, 그때 육병의 휘하로 들어오라는 제의를 거절할 리가 없었다.

금하는 서위의 화내던 표정을 다시 돌이켜 떠올렸다.

“설마 왕직 이 안건에 드러나지 않은 속사정이 따로 있을까요?”

육역이 그녀를 향해 돌아섰다.

“우리가 이곳에 온 목적이 그것에 있다.”

육역은 고개를 기울여 금하를 보다가 내쳐 손끝으로 그녀의 흐트러진 머리를 귀 뒤로 넘겼다. 그의 손끝이 피부를 스쳐 금하는 살짝 어깨를 움츠렸고, 마주친 시선에 쑥스럽게 웃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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