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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의지하 (130)화 (130/224)

130화

“이건 제가 당연히 자세하게 물어야 하는 거예요.”

금하는 혼잣말처럼 중얼거렸다.

“만일 대인이 많은 처첩을 염두에 두고 계시면…….”

“무슨 많은 처첩이야. 내가 언제 염두에 뒀다고…….”

육역은 살짝 화가 났다.

“두 분, 두 분.”

남도행이 재빨리 원만한 수습을 위해 나섰다.

“제가 보기에 이 공자께선 미색에 연연하는 분이 아닌 듯하니, 낭자는 걱정할 필요가 없어요. 이럽시다. 문자점 외에, 제가 여러분께 한 쌍의 인연석을 더 드리지요. 어떻습니까?”

남도행이 지니고 있던 행낭에서 붉은 명주실로 엮은 무늬가 알록달록한 작은 돌을 꺼냈다.

선물인 이상, 금하는 빙긋 웃으며 받아들고는 자세히 보았다. 이래저래 보아도 엮여 있는 작은 돌은 매우 평범했다. 육역은 손에 들고 감상할 뿐 가타부타 말이 없었다.

“용도가 뭐예요?”

금하가 물었다.

“하찮은 돌로 보지 마십시오. 이래 봬도 송월의 월하노인 사당에서 첫 제를 올릴 때 앞에 있던 겁니다.”

남도행이 웃으며 설명했다.

“연인이 부부로 맺어지도록 보호해 줄 수 있죠.”

금하가 육역을 흘끔 보니, 그도 그녀를 힐끔 보았다.

“도사님이 이리 좋은 말씀을 하시잖아. 네가 받으면 되지, 왜 날 봐?”

“그러게요. 우리 엄마가 늘 말씀하셨죠. 대추가 있든 없든 장대로 3번은 때려보라고요.”

그건 어떤 일은 자신이 있든 없든 반드시 직접 시험해 보아야 성공을 알 수 있다는 뜻이었다.

“그럼 전 받을게요. 정말 영험할지도 몰라요.”

금하가 남도행을 향해 웃어 보였다.

“감사합니다, 소남 도사님.”

그녀는 품속에서 동전 5개를 꺼냈고, 남도행과의 작별을 아쉬워하며 그에게 주었다.

그때 마침 점원이 남도행이 주문한 여행용 음식을 잘 싸서 가져왔다. 남도행은 동전을 챙기고, 행낭도 잘 정리하고는 일어나 육역과 금하에게 이별을 고했다. 그러고는 바로 재빠르게 자리를 떴다.

“어때요? 저 사람 이상한 것 같아요?”

“넌 어때?”

금하의 물음에 육역은 반문했다. 그녀도 자세히 돌이켜 생각하기 시작했다.

“도포는 반쯤 낡아 희게 바랬고, 장화는 닳아서 보풀이 일어났어요. 상투 묶은 머리는 한 올의 흐트러짐도 없죠. 그는 진짜 도사거나, 적어도 한참 동안은 진짜 도사 노릇을 해 왔어요. 그렇지 않으면, 옷과 신발이 저렇게 몸에 딱 어울리지 않아요. 다만 그의 말과 행동이 확실히 여러 면에서 기이하긴 해요.”

그 말끝에 금하는 어젯밤 남도행이 방울을 낚싯줄에 묶었던 일을 육역에게 얘기했다.

금하의 말을 들으며 육역은 생각에 몰입했다. 그때 문득 금하가 무언가 갑자기 깨달아 내뱉은 ‘아’ 소리가 들렸다.

“알았어요. 사월 삼성동은 바로 ‘심心’이라는 글자예요. 그는 심학 문하생이었구나. 어쩐지 행동이 남다르다 했어요.”

금하는 자신이 이해한 것을 설명했다.

심학은 유가의 한 학파로, 명나라 왕수인이 창건했다. 그들은 ‘심즉시리心则是理, 마음이 곧 이치이다.’와 지행합일을 강조하여 송나라 주희의 성리학과 대립했다.

“넌 심학 문하생 가운데 누굴 알아?”

육역이 그녀에게 물었다.

“알긴요. 당 대인, 서 대인이 심학과 조금 관계있는 것 같다 정도 들었을 뿐이죠. 그리고 경성 안에서 늘 벌거벗은 몸으로 온 대로를 다 휘젓고 돌아다니는 사람이 있어요. 아문에 잡아 오면 꼭 자기는 심학 문하생이라고 말해요. 그들은 마음이 하고 싶은 대로 따라 한다는데, 그와 정상적인 얘기를 할 방법이 전혀 없어서 곤장 한 판 때릴 수밖에 없죠.”

금하는 고개를 저으며 탄식했고, 육역은 이마를 짚고 있다가 한참 후에 또 그녀에게 물었다.

“어젯밤 남도행을 만난 일을 다른 사람에게 말했나?”

금하는 고개를 저었다.

“아니요.”

“좋아. 그에 관한 일을 더는 다른 이에게 얘기하지 말아라. 양악에게도 말하지 마.”

육역이 가라앉은 음성으로 말했다. 의혹 가득한 눈빛으로 금하가 그를 바라보자, 육역은 설핏 웃으며 엄지 손끝으로 그녀의 볼을 가볍게 쓸었다.

“이유는 우선 묻지 마. 차후 내가 제대로 정황을 알게 되면 네게도 말해주마.”

그가 이렇게 말한 이상, 금하 역시 이유를 묻지 않고, 고개를 끄덕였다.

“하나만 물을게요.”

그녀는 마음을 놓지 못한 채 인연석을 들었다.

“이 물건은 받아도 되는 걸까요?”

육역이 살짝 웃었다.

“당연하지.”

금하는 흐뭇해하며 인연석을 요대에 묶었다. 그런데 육역은 인연석을 품속에 넣었다.

“누가 볼까 그래요?”

그 모습을 본 금하가 그를 놀렸다.

“위풍당당 금의위 정사품 첨사의 대단한 인재가 인연을 구하는 돌을 달고 다닌다니. 사람들이 비웃을까 걱정하죠?”

육역이 장포를 가지런히 매만지며 담담하게 말했다.

“내가 누군가와 싸워야 할 때, 부주의하여 부서질까를 걱정하는 거지.”

“…….”

그가 이렇게 아끼고 소중히 여기는 마음을 지녔을 거라고는 미처 생각지 못했다. 인연석을 소중히 아끼는 것은 당연히 그녀와의 이 연분을 소중히 아낀다는 것이다.

금하는 문득 자신의 마음이 그보다 못했다는 것을 깨달아 부끄럽게 웃었다. 그러며 자신의 인연석도 품속에 잘 넣었다. 육역이 그런 그녀의 머리를 살짝 쓰다듬으며 웃었다.

* * *

그 밤, 모든 이가 잠이 들고, 한밤중까지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았다.

삼경이 이제 막 지나 사방이 고요해지자, 육역은 소리 없이 객실의 창을 열었다. 몸을 날려 뛰어올라 어둠 속으로 숨어들었다.

그는 높낮이가 제각각인 산세를 따라 한 길로 나는 듯 빠르게 스쳐 지났다. 그렇게 현음관 산 아래의 냇가 서덜에 도착했다.

달빛이 서리처럼 내리는 가운데, 반 낡은 남빛 단삼을 입은 이가 그를 등지고 있었다. 낚싯대는 변함없이 냇물에 드리운 채였다.

육역은 느린 걸음으로 다가갔다. 한마디도 하지 않고, 그 또한 어두운 시냇물을 바라보았다.

한참이 지나서야 남빛 단삼을 입은 이가 고개를 돌렸다. 바로 남도행이었다.

그가 웃으며 육역을 바라봤다.

“육 대인께선 제가 여기 있는 것을 어찌 아셨습니까?”

“자네의 손이 찻물 근처를 세 번 두드렸으니, 내게 삼경이 지나 물가 근처로 오라는 뜻이었겠지.”

육역의 어조는 담담했다.

“금하는 자네가 냇가에서 방울로 낚시하고 있다고 말하더군. 그래서 나는 이 물가가 우물가가 아닌 냇가일 거로 예상했지.”

그 말에 남도행이 살짝 웃었다. 깨달은 바가 있는 듯 뒤돌아 표정을 엄숙히 하고, 의관을 정리했다.

남도행이 육역에게 공수하며 말했다.

“소생, 하심은何心隐의 명을 받들어 대인께 조그마한 힘이나마 보태고자 왔습니다. 여기 서신입니다.”

그가 품속에서 봉인한 서신 한 통을 꺼내 육역에게 전했다.

육역이 어렴풋이 짐작했던 대로 역시 하심은이었다.

유사하에 물이 없으나, 권염대장은 있다. 하河 자에서 없다고 한 물 수水 변을 없애고, 사람 인人 변을 세워 더하면, 바로 ‘하何’ 자가 된다.

그런 짐작에도 육역에겐 그다지 큰 확신은 서지 않았다.

육역은 바로 서신을 펼쳐 읽었고, 다 읽은 후에야 남도행을 바라봤다.

“자네는 하심은이 자네에게 왜 나를 만나라 했는지 아는가?”

육역이 묻고, 남도행이 답했다.

“당연히 아니까 온 겁니다. 저는 어려서부터 도관에서 수행했습니다. 부모님이 안 계셔서 걱정할 거리가 없을 뿐 아니라, 다른 인연 또한 엮인 것이 없습니다.”

육역은 생각에 잠겼다.

“궁으로 들어가는 일은 준비에 시간이 걸리네. 성상께서는 타고난 성품이 의심이 많으시지. 사람 하나가 비어야 다른 하나를 채워 넣을 수 있어.”

“소인은 조용히 대인의 안배를 기다리겠습니다.”

“자네……, 먼저 내게 말한 거车는 자네 자신을 가리킨 건가?”

육역은 남도행의 말들을 계속 기억하고 있었다.

남도행은 답하지 않고 웃으며 반문했다.

“대인께선 소인이 가능할 것 같으십니까?”

육역은 답하지 않았다. 시냇물을 바라보며 길게 한숨을 내쉬었을 뿐이었다.

“자네가 기꺼이 내 거가 되기로 한 이상, 일당백 파죽지세로 쳐들어가게. 그러면 나는 당연히 자네를 보호하기 위해 주도면밀하게 전심을 다 하겠네.”

“육 대인께서는 오해하신 부분이 좀 있습니다.”

남도행이 정색하여 그의 말을 끊었다.

“이 일이 순조로우려면, 어떤 누구도 연루되어선 안 됩니다. 그렇지 않으면, 반드시 엄세번에게 꼬투리를 잡히고 상황이 역전되지요. 대인 절대로 작은 것으로 인해, 큰 것을 잃으시면 안 됩니다.”

그가 말하는 바를 육역이 어찌 모를까. 잠시 침묵하고는 바로 담담한 어조로 입을 열었다.

“자네가 그렇게 생각하니 다행이군.”

남도행이 몸을 굽히고 옆에 있던 낚싯대를 집었다. 그는 낚싯줄 달린 낚싯대마저 시원스럽게 냇물 속에 집어 던졌다. 시냇물에 낚싯대가 빠지는 소리가 들리고, 잠시 후에는 평온하게 흐르는 물소리로 돌아갔다.

* * *

육역은 왔던 대로 되밟아 객잔으로 돌아왔다. 침상 한구석에 금하가 몸을 최대한 웅크린 채 자고 있었다.

육역은 불편해 보이는 금하를 가운데로 끌어오려다가 그대로 움직임을 멈췄다.

항상 악몽에 시달리는 모습만 봤었다. 팔에 자상을 입고 돌아온 그 험악하던 밤, 그리고 그가 죽다가 살아났던 죽림의 그 아침 설핏 들던 잠에서도 금하의 꿈은 항상 편하지 않았다.

오늘의 잠은 그래도 편안한 듯 그녀는 미간을 찡그리지 않는다.

한참을 바라보던 그가 그대로 옆으로 몸을 뉘었다. 무의식중에 품으로 파고드는 금하를 살짝 안고 육역은 옅은 한숨을 내쉬었다. 눈을 감았지만, 잠이 올 것 같지 않았다.

그가 다시 눈을 떴을 때, 그의 옆자리는 비어 있었다. 어슴푸레한 새벽빛이 창을 넘어 들어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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