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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의지하 (129)화 (129/224)

129화

둘러보니 가까운 곳에 식당이 있었다. 육역을 따라 들어가던 금하는 사각 탁자에 앉은 이의 남색 옷을 보고 다가가 웃으며 불렀다.

“소남 도사님!”

고개를 든 남도행이 금하를 보고는 그 또한 웃어 보였다.

“낭자. 오늘 밤은 어젯밤보다 얼굴이 정말 환해 보이는군요.”

남도행은 그 사이 금하 뒤에 육역이 있는 걸 보고, 그들이 서로 맞잡은 손도 보았다. 그가 미소를 지으며 육역을 바라보았다.

“제가 낭자와 인연이 있는 것 같습니다. 괜찮으시면, 함께 앉으시지요.”

그가 일어나 예의를 갖췄다.

금하는 당연히 개의치 않았다. 그러나 육역의 생각이 어떤지 몰라 그에게 눈빛으로 물었다.

육역이 본 남도행은 두 눈이 맑고 투명하고, 행동거지가 강호를 떠도는 보통의 도사 같지가 않았다. 그는 잠시 주저하다가 금하와 시선이 마주치고는 이내 자리에 앉았다.

“도사님께 폐를 끼칩니다.”

옆쪽 긴 걸상 위에 놓인 남도행의 행낭에는 깃발이 달린 가는 대나무 장대 하나가 비스듬히 기대어 있었다. 금하는 고개를 기울여 깃발 위의 글자를 보고는 흥미진진한 어조로 물었다.

“소남 도사님, 점칠 줄 알아요?”

“강호를 떠돌며 밥벌이나 조금 할 뿐이죠.”

남도행이 웃으며 자신의 깃발을 세워서 흔들었다.

“기문둔갑, 자미두수, 사주팔자, 음양오행, 구성풍수……. 제가 전부 조금씩은 할 수 있습니다.”

“그 많은 걸 다 터득하시다니요. 밥벌이를 위해, 진짜 필사적이시네요.”

금하가 놀라워하며 칭찬해 마지않았다.

“무얼요. 낭자에겐 숨기지 않겠습니다만, 의술도 조금 할 줄 알지요. 무좀, 마른버짐, 치질 같은 털어놓기 어려운 병이며, 집안의 고양이나 개가 아파도 제가 모두 볼 수 있습니다.”

금하는 저절로 경건한 마음이 생겼다.

“도사님은 진정 박학다식하시군요. 정말 잘 고치세요? 설마 사기 진료는 아니죠?”

남도행이 느긋한 어조로 담담하게 답했다.

“병은 잘 고치지만, 운명은 고치지 못합니다.”

옆에서 줄곧 한마디도 하지 않던 육역이 이 말을 듣고서야 싱긋 웃으며 물었다.

“운명은 어찌 고쳐야 합니까?”

“운명이란 본질의 병으로 팔괘로(*도가에서 연단할 때 쓴다는 화로.)에 넣고, 오행산으로 눌러 쇳물을 먹고 마시면, 아마 삶의 희망을 얻을 수도 있을 겁니다.”

남도행의 대답은 매우 빨랐다. 마치 그가 이런 질문을 할 거라는 걸 미리 알고 있던 것처럼.

순간 두 사람 눈이 마주쳤다.

육역은 속으로 생각했다.

이 도사는 속된 듯 속되지 않고, 식견 또한 보통 이들과 달라. 가벼이만 볼 순 없군.

금하는 흐흐 음흉하게 웃으며 작은 소리로 말했다.

“소남 도사님, 본인이 큰 사고 치신 거 아세요? 감히 금서를 훔쳐보다니요! 우리가 어떤 사람인지 아시려나요?”

“낭자의 이 시원시원하고 대범한 기개와 공자님의 온몸에 드러난 기품으로 보아, 분명 공문에 계신 분이겠지요.”

남도행의 표정은 태연자약했다.

금하는 그의 칭찬에 매우 기분이 좋았다. 고개를 돌려 빙그레 웃는 얼굴로 육역에게 물었다.

“대인도 제가 시원시원하고 대범한 것 같으세요?”

육역은 잠시 생각했다.

“뻔뻔한 것을 말하는 것이라면, 비교적 정확해.”

“…….”

뾰로통해진 금하가 이를 드러내 보였으나, 육역은 그녀의 머리를 어루만져 아주 수월하게 그녀를 진정시켰다.

“소남 도사님, 점 좀 봐주세요. 앞날을 점쳐 보고 싶어요.”

그녀가 다시 남도행을 향해 돌아섰다.

“전 언제가 돼야 승진하고 월급이 오를 수 있을까요?”

남도행이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잠깐만요. 기문둔갑, 자미두수 그런 것 중에서 뭐가 가장 싸요?”

금하는 마음을 놓지 못하고 물었다.

“낭자는 측자测字라 하는 문자점을 치시죠. 동전 5개면 됩니다.”

동전 5개란다. 그 말에 금하는 순간 기뻐하다가 바로 이어서 다시 고민했다.

“싼 게 비지떡은 아니겠죠?”

“값도 싸고, 물건도 좋습니다. 상도의를 지킨답니다.”

남도행이 봄바람처럼 가볍게 웃었다.

그리하여 주인에게 지필을 가져다 달라고 했다.

금하는 붓을 들고 잠시 주저했다. 그러다 자신이 육선문의 포쾌인 것을 생각하여 종이 위에 바로 ‘포捕’자를 썼다.

그녀가 종이를 남도행에게 밀었다.

“포.”

남도행은 종이 위의 글자를 보고 잠시 생각에 잠겼다.

“捕포, 좌변이 손手, 우변이 보甫라…….”

“어때요? 올해 안에 승진 수가 있나요?”

금하의 관심이 엄청나 옆에서 보는 육역은 웃음을 금치 못했다.

“좌측이 손이군요. 손이란 것은 주먹입니다. 낭자가 하는 일은 사람들과 싸우지 않을 수 없으니 매우 매우 고생스럽습니다. 우측은 보로…….”

남도행이 시선을 들어 그녀를 보고서야 이어서 말했다.

“여기에 물 수水자를 더하면, 포浦입니다. 포라는 것은 물가라는 뜻으로, 물이 가까운 곳에 가서야 생기와 활기가 생길 수 있게 됩니다.”

“잠깐, 잠깐만요!”

금하는 이해할 수 없었다.

“왜 물 수 자를 더해요? 다른 걸 더하면 안 돼요?”

남도행이 웃으며 금하의 손 쪽을 가리켰다. 그녀가 고개 숙여 바라보니 마침 옆에 찻잔이 있었다. 조금 전 그녀가 가져다 마신 것이었다.

“그래서 낭자의 질문인 승진수는 첫째는 누군가와 싸워야 하고, 둘째는 물에 가까운 곳에 있어야 하죠.”

남도행이 이어 말했다.

“물에 가까운 곳? 이건 범위가 너무 넓어요. 우물물인가요? 아니면, 강물? 아니면 바닷물?”

“포浦라 하였으니, 마땅히 강이 바다로 흘러 들어가는 곳이죠.”

금하는 생각해보았다. 이번에 마침 그녀는 연해로 가고 있다. 이거야말로 물에 가까운 곳 아닌가.

이렇게 보면 연내 승진의 가능성이 있다는 말이 되는데?

이런 생각으로 금하는 기쁨이 넘쳐 흘렀다.

이런 표정을 보았으니, 그녀가 무슨 생각을 하고 있는지 육역이 어찌 모를 수 있을까.

그녀의 귓가에 대고 웃으며 말했다.

“이번에 네가 과거급제할 운이 들었구나. 축하한다.”

금하는 기분이 매우 좋아 그가 놀리는 것도 아랑곳하지 않고 어깨를 으쓱거렸다.

“도사님은 기인이네요. 정말 잘 맞히세요. 대인도 문자점 한 번 보세요.”

“나는…….”

그가 아직 주저하는데, 남도행은 이미 붓을 건넸다. 빙긋 웃으며 해보라는 자세를 취했다.

“알았다. 내가 널 따르는 것으로 하지.”

육역이 웃으며 붓을 받아 몇 번의 획으로 글자를 써냈다.

금하가 바라보니 종이 위의 글자는 뜻밖에도 같은 ‘포捕’자였다.

육역은 그녀와 같은 글자를 썼고, 이것은 남도행을 일부러 난처하게 하려는 의도가 다분했다. 아마도 그는 남도행이 여전히 강호의 사기꾼이라고 생각하는 듯했다.

그러나 예상과 달리 글자를 본 남도행은 전혀 당황하지 않았다. 얼굴의 미소 또한 변하지 않았다.

“공자께서 묻고자 하는 건 어느 쪽의 일입니까?”

육역이 잠시 생각에 잠겼다가 그의 두 눈을 똑바로 마주 봤다. 그가 천천히 입을 열었다.

“미경지지未竟之志, 이루지 못한 뜻에 관해 묻지요.”

남도행은 고개를 끄덕이면서도 여전히 글자를 보고 있었다.

“포捕는 좌수우보左手右甫이고, 괘이름 간艮은 손인 수手가 되기도 하니……, 팔괘의 하나인 간괘의 관점으로 보아, 공자가 하시는 일은 해야 할 때면 해야 하고, 그만둬야 할 때면 그만둬야 하고, 말씀하셔야 할 때면 말해야 합니다. 모든 것은 반드시 자제하고 신중하여야 하지요.”

육역이 담담하게 웃었다.

“도사님의 말씀이 맞긴 합니다만, 애매한 부분이 있군요. 해야 할 때면 해야 하고, 그만둬야 할 때면 그만둬야 한다. 이 말은 누구에게라도 다 가능한 말입니다.”

“공자, 너무 앞서가지 마십시오. 다시 우변을 보시죠. 보甫에 수레의 거车가 더해지면, 도울 보辅가 됩니다. 지금 공자께는 공교롭게도 거车가 부족합니다.”

“잠깐만요!”

금하가 의아해하며 끼어들었다.

“방금 도사님께서 제 보에 물 수 자를 더한 것은 제 손 근처에 물이 있어서라 하셨죠. 그런데 왜 이 분 보에는 거를 더해야 하죠? 이분 손 주변에는 아무 물건도 없는데요.”

남도행이 웃으며 말했다.

“이 공자님과 낭자는 다릅니다. 그는 조정의 신하고, 신하란 군주를 보좌하는 이입니다. 그러니 이분은 본래 보辅 자로 점을 쳤어야 했지요. 지금 거车가 부족한 것이야 말로 공자께서 미처 뜻을 이루지 못한 원인입니다.”

육역은 남도행의 말 속에 담긴 다른 뜻을 알아차린 듯 안색이 점점 무겁게 가라앉았다.

육역이 물었다.

“거车란 무엇입니까?”

“파죽지세로 쳐들어갈 수 있고, 일당백을 할 수 있고, 마지막에는…….”

남도행이 잠시 말을 멈췄다. 그리고 웃음을 머금고 이어 말했다.

“장기처럼 거를 버려 장수를 지킬 수 있는 것, 부차적인 것을 버려 중요한 것을 지키는 것, 그것이 수레 거입니다.”

금하는 두 사람의 이 대화를 들어도 무슨 뜻인지 감을 잡을 수 없었다. 다만 두 사람의 표정이 각자 다르다는 것만 알 뿐이었다.

한참이 지나서야 육역이 입을 열었다.

“외람되지만 도사께서는 어디에서 오셨습니까?”

남도행이 그를 바라보며 웃었다. 그의 목소리는 온화했다.

“영태에 있는 방촌산의 사월 삼성동입니다.”

금하는 순간 멍해졌다. 사월 삼성동斜月 三星洞, 여긴 <서유기>의 손오공이 수행하던 곳인데? 이 도사가 금서를 본 것은 그냥저냥 넘어간다 해도, 육역 앞에서 여전히 이런 농담을 하고 있다니.

육역이 그를 가벼이 넘기지 않을까 금하는 걱정이 되었다. 그러나 육역은 그다지 개의치 않았고 이어서 물었다.

“도사께선 어느 분을 스승으로 모시고 계십니까?”

남도행은 답하지 않고 반문했다.

“그럼, 유사하流沙河(*사오정이 살던 백사산. 모래가 흐르는 강과 같다고 하여 유사하라고도 함.) 에는 물이 없고 모래뿐인데, 권염대장(사오정)이 살았다는 것이 이상합니까?”

이 말에 육역은 깊어진 눈빛으로 그를 바라보았다.

육역이 천천히 입을 열었다.

“아마도 재주가 많으신 분인 듯한데, 제게는 연이 없는 것 같아 안타깝습니다.”

남도행이 웃었다. 찻잔 옆에 놓았던 손이 탁자를 무심하고 가볍게 몇 번 두드렸다. 그리고는 그렇게 예사롭지 않은 말은 더는 하지 않았다.

남도행은 손을 내밀어 탁자 위의 ‘포’가 쓰인 두 장의 종이를 집었다. 보고 또 본 후, 금하를 바라보며 웃었다.

“낭자는 나이도 적지 않은데, 혼인의 연분은 묻지 않으십니까?”

“묻고 싶죠.”

금하는 문득 큰일 하나를 깨달았다.

“소남 도사님, 다시 봐주세요.”

그녀는 육역이 쓴 그 ‘포’자를 남도행의 앞에 단정히 놓았다. 그를 향해서 몸을 기울이고 낮은 목소리로 물었다.

“이분 장래의 아내는 누굴까요? 이분 첩을 둘까요? 몇 명의 첩을 들일까요?”

금하가 말을 하자마자, 그는 그녀의 어깨를 당겼다. 그대로 금하를 의자로 다시 끌어와 눌러 앉혔다.

“넌 너무 멀리까지 앞서 나간다.”

육역은 화가 나기도 하고, 우습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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