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6화
“내가 예의 없는 말을 해? 형이 그때 못 들어서 그래. 원 포쾌가 전적으로 날 욕하고 있던 거야.”
잠수는 형의 말을 인정하지 않았다. 그를 흘끔 본 금하는 그다지 신경도 쓰지 않고 잠복만 상대했다.
“잠 오라버니, 호의는 감사히 받을게요. 전 어젯밤의 일 벌써 잊었으니, 다시 얘기하지 않아도 돼요.”
“원 포쾌는 역시 성격이 좋군요.”
잠복은 다시 잠수를 향했다.
“넌 네가 남들과 비교할 수도 없을 만큼 얼마나 속이 좁은지 좀 돌이켜 봐라.”
친형에게 욕을 먹는 것이 잠수에게는 이미 오랜 버릇이 된 듯했다. 그는 별다른 대꾸도 하지 않고 죽을 담았을 뿐이었다.
금하는 하엽협을 집었다. 습관적으로 안쪽에 요리를 빵빵하게 채워 넣으니, 육협막(*肉夹馍중국식 햄버거.)과 아주 그럴싸하게 비슷해졌다. 그렇게 그녀가 젓가락을 놓고 이제 먹으려는 순간, 옆에서 불쑥 나온 손 하나가 하엽협을 가져가 버렸다.
“어라.”
금하는 순간 격노했다.
음식을 빼앗기는 것은 금하의 일평생 세 가지 커다란 한恨 중의 하나였다. 물론 남은 두 개의 한은 아직 비어 있으나, 그건 훗날을 위해 남겨둔 것이다.
그러나 금하는 옆으로 다가온 사람을 보자마자, 지금 막 화륵 타오른 기세가 저도 모르게 순간 깡그리 사라졌다.
육역은 여유로운 모습으로 하엽협을 먹으며 양악에게 물었다.
“이곳에 훈제고기가 있나? 편으로 썰어 한 접시 내어주게.”
대답한 양악이 일어나 부엌으로 갔고, 육역은 일어나려 하는 잠복과 잠수를 제지하고는 자연스럽게 양악의 자리에 앉았다. 바로 금하의 옆으로, 그는 잠복, 잠수와 오늘 가야 할 일정과 길에서 휴식할 곳 등의 얘기를 나눴다.
그리고 금하 이쪽은……, 이유는 모르지만, 금하는 그가 자신의 옆에 앉자마자 위부터 아래까지 온몸이 어색해지고, 어젯밤의 일이 다시 떠올랐다. 얼굴마저 뜨거운 기운이 확확 올라 금하는 그들이 무슨 얘기를 하고 있는지도 전혀 들리지 않았다.
“어젯밤 잠은 잘 잤나?”
육역이 금하를 향해 돌아서 한담하듯 물었다. 그러나 금하는 한참이 걸려서야 그가 자신에게 말하고 있다는 것을 알아차렸다.
“네?”
“내가 물었다. 어젯밤 잠은 잘 잤나?”
육역이 매우 인내심 있게 다시 한번 물었다.
“잘 잤어요.”
금하가 보기에 육역의 표정은 마치 어젯밤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은 것처럼 매우 평온하고 좋아 보였다. 바로 그녀는 걱정과 의심이 생겼다.
“대인은요? 그러니까……, 잘 주무셨어요?”
“잘 못 잤어. 머리가 몽롱한 것이 아마 비를 맞아 그렇겠지.”
정말 병이 원인이었던 거야?
금하는 탐색하듯 넌지시 물었다.
“머리가 몽롱하세요? 그럼 어젯밤 일도 잘 기억나지 않고요?”
“무슨 일?”
육역이 솔직담백한 표정으로 그녀에게 물었다.
“무슨 중요한 일이 있었나?”
“아니요, 아니요. 그렇게 중요하지 않아요. 제가 그냥 한 번 여쭤봤어요.”
슬며시 이를 악문 금하는 만두를 집어 입에 물고는 바로 뛰어나왔다.
* * *
밥을 다 먹은 이들은 각자의 방으로 돌아가 행장을 꾸렸다. 금하는 작은 짐을 들고 풀이 축 처져서 아래층으로 내려가려고 했다. 그런데 누군가 그녀를 불러 세웠다.
“내 선추(*선추扇坠 부채 손잡이에 단 장식.) 를 찾을 수가 없다. 네가 와서 찾아봐라.”
육역이 방문 앞에 서서 한 마디 외치고는 순식간에 다시 들어갔다. 그러니 금하는 거절할 여지도 없었고, 이리저리 둘러 봐도 자기 외에는 사람이 없었다.
그녀는 말없이 한숨을 내쉬었다.
선추?
금하는 무거운 걸음을 끌며 그의 방으로 가면서도 속으로는 은근히 투덜거렸다.
지금껏 부채 쓰는 것을 보지 못했는데, 선추는 어디에서 튀어나온 거야?
육역의 방에 들어서자마자, 그의 모습은 채 보지도 못했을 때였다. 갑자기 등 뒤의 방문이 닫히는 소리가 들렸다. 그녀가 미처 반응하기 전 뜨거운 열기가 압박하며 가까워졌다.
그녀의 온몸은 이미 육역의 품속으로 끌려 들어갔고, 그의 입술이 무겁게 그녀의 것을 짓눌렀다. 강한 힘이 동반된 약탈자의 입술은 몹시 뜨겁고 타는 듯이 강렬했다. 어젯밤의 온화한 부드러움과는 완전히 달랐다.
그녀의 허리는 그에게 바짝 끌어당겨 졌다. 등 뒤는 문이 받치고 있었고, 작은 짐은 언젠지 모르게 바닥에 떨어졌다.
금하는 생각하는 것이 거의 불가능했다. 두 손이 본능적으로 그의 어깨를 꼭 붙들었다. 그리고 육역은 점점 더 아찔하게 그녀에게 바짝 붙었다. 옷감 하나 너머로 그녀는 그의 몸 근육이 팽팽하게 긴장한 것을 느낄 수 있었다.
한참이 지나 금하의 두 다리가 나른하게 힘이 빠지고, 헐떡이며 숨도 쉬지 못할 때가 되어서야 육역은 그녀를 살짝 풀어주었다. 그녀의 입술 위에 자잘한 입맞춤을 퍼부은 입술이 귓가로 옮겨왔다. 그곳에도 입맞춤한 그의 목소리는 낮게 가라앉았다.
“네가 아침에 내가 중요한 일을 잊었을까 걱정한 게 이건가?”
가슴이 북이 울리듯 고동치는 것이 채 가라앉지 않았다. 금하는 살짝 숨을 헐떡거리면서도 빠뜨리지 않고 고개를 저었다.
“그럼 무슨 일이지?”
“그건 바로…….”
그가 그녀와 이렇게 가까이 붙어 있으니, 그녀는 그의 숨결과 열기까지 또렷이 느낄 수 있었다. 그것이 금하를 매우 야릇하고 간지럽게 하고, 머리마저도 온통 멍멍하게 했다. 그래서 금하는 우선 육역을 조금 거리 있게 떨어뜨려 놓고서야 깊게 숨을 들이켤 수 있었다.
“어제 대인이 하신 말씀, 정말이에요?”
“어떤 말?”
“매우 중요한 그 말이요!”
그를 응시하던 금하가 의심의 눈빛을 빛냈다.
“잊을 리 없어요. 전 알고 있었어요. 대인 역시 저랑 단순히 재미나 보려고…….”
육역은 그녀의 말을 중간에서 끊었다.
“나는 너와 혼인할 거야.”
금하는 멍하니 굳었다. 한참이 지나서야 음, 소리를 내고서야 천천히 입을 열었다.
“아가씨들한테 늘 이렇게 말해요?”
“네가 처음이야.”
육역은 금하를 위해 어쩔 수 없이 이야기를 이어갔다.
“그래서 나도 말을 한 후 이렇게 될 줄은 생각지 못했다. 네가 지금 내 얼굴을 주물러보지 않는 건 내가 완전히 얼굴을 바꿔 버렸다고 생각해서인가?”
금하는 시선을 들고 입술을 깨물며 그를 뚫어지게 주시했다. 다음 순간 그의 말과 달리 다시 손을 내밀어 어제 했던 대로 그의 얼굴을 주물렀다. 하지만 육역은 이번엔 그대로 두지 않고, 그 또한 그녀의 손을 잡았다.
그의 손힘은 원래부터 그녀보다 셌다. 단지 그녀의 손을 잡았을 뿐인데도, 금하는 아프다며 꺄아 거리는 바람에 그는 손을 놓을 수밖에 없었다.
“넌 왜 내 말을 그대로 믿으려 하지 않아?”
육역은 또다시 물을 수밖에 없었다.
“당연히 안 믿죠!”
금하의 말은 상당히 의욕이 없었다.
“저한테 좋은 점이 많다는 건 제가 알고, 절 아내로 맞으려는 사람도 많아요. 역가 셋째, 사가 오빠……. 하지만, 하지만……, 대인은 정말 제 어디가 좋으셨어요?”
육역은 웃음 서린 눈빛으로 그녀를 바라보다 생각하는 모습을 만들었다.
“그 점에 대해선 나도 잘 생각해 볼 시간이 필요하겠군. 시간을 좀 줘.”
“됐어요. 감정에 관련된 건 원래 얼떨떨한 거예요. 대인도 깊게 생각하실 필요 없어요.”
금하는 속으로 걱정하고 있었다. 만일 그가 곰곰이 생각하다가 오히려 그녀의 좋은 점이 가련할 정도로 적다고 생각하면, 자신은 돌로 제 발등을 찍는 것이 아닌가.
육역은 그녀의 조언을 잘 알아들었다는 듯 고개를 끄덕이고는 반문했다.
“내가 가진 좋은 점을 넌 알아보았나?”
거론하지 않으면, 그래도 잊고 있을 수 있었지만, 이렇게 얘기를 꺼내니 금하는 더욱 의기소침해졌다.
“당연하죠. 대인 집안은 대대로 벼슬을 하셨고, 돈과 권세를 다 가지고 있어요. 대인 아버님은 높은 지위에 계시고, 대인도 지금 4품 관원이잖아요.”
금하가 무의식적으로 말한 것들은 그녀가 늘 마음에 걸려 하던 것이었다. 그와는 절대 이뤄질 수 없을 거라고 생각한 원인은 육역의 지위와 명예가 너무도 높다는 데 있었다.
세상 사람들 눈에는 이런 것들은 당연히 육역이 가진 장점이었으나, 그녀의 마음속에서는 두 사람을 가로막는 높은 벽일 뿐이었다.
“만약 장래의 어느 날 가세가 기울게 되면, 네가 말한 좋은 점들은 모두 사라지게 되지.”
육역의 담담한 말에 금하는 진지하게 답했다.
“그럴 리가요. 제가 따져봤는데요. 대인 집안은 육백 년 전부터 벼슬을 시작하여 세상이 바뀌는 걸 여러 번 겪어오셨죠. 그런데도 선조들은 모두 한 자리씩 하실 수 있으셨어요. 이건 정말 보통사람이 아닌 거죠. 보통 약삭빠르지 않고는 할 수 없어요.”
“……칭찬인가? 내 조상에 대한?”
“…….”
육역은 깊은숨을 쉬었다. 그녀와 계속 이렇게 별 얘기를 다 하다 보면, 8백 년 전 일까지 거슬러 올라갈 수도 있다.
고개 숙인 그가 짐짓 소매를 매만지는 척하며 담담히 말했다.
“내 말은 다 했다. 너도 좋든 싫든 무슨 말이든 해야 해. 내게 시집올 테야?”
“전 당연히……!”
더 생각할 것도 없이 바로 말하려던 금하는 잠시 뜸을 들였다. 시선을 치켜떠 육역을 슬쩍 보고는 쑥스러움에 얼굴을 붉혔다.
“……그럴게요.”
그러나 이내 다른 것이 생각나 다시 기운이 쳐졌다.
“하지만 대인 아버님은 분명 허락할 리 없으세요. 우리 둘은 안 돼요.”
육역은 그녀의 앞부분 말만 들었다. 그녀를 향해 웃는 눈에는 환한 빛이 번졌다.
“네가 동의하면 된다. 다른 일은 네가 신경 쓸 필요 없어.”
“정말이요?”
“혼인은 대사인데, 어찌 장난으로 해.”
금하는 그의 옷소매를 꽉 틀어쥐었다.
“대인, 진짜 정말이죠?”
“설마 네가 방금 장난으로 청혼을 허락했던 거야?”
육역이 미간을 찡그린 채 그녀를 바라보았다.
“당연히 아니에요! 전 어젯밤 생각에 생각을 거듭했는데…….”
금하의 말은 매우 신중했다.
“마음으로 바라고 있었어요. 대인께 시집갈 수 있다면, 정말 정말 기쁠 거라고.”
그녀의 이런 진심 어린 말을 듣게 되니, 육역의 마음속에 존재하던 불확실한 것들까지 모두 연기처럼 사라졌다. 일시에 마음은 가벼워지고 입가에는 웃음이 넘쳐흘렀다.
동시에 그는 농담도 놓치지 않았다.
“너도 나를 마음에 둔 게 하루 이틀이 아니란 걸 알고 있었지. 이제 정말 네 소원을 이루었구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