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3화
등 뒤에서 강한 바람을 느낀 양악은 옆으로 피하려 했지만 이미 늦었다. 등을 거듭 얻어맞고는 피를 토했다.
금하는 양악이 기습당한 것을 본 이상 더는 아예를 생각할 겨를이 없었다. 손 닿는 대로 근처의 선물상자를 움켜쥐어 마부를 내리쳤다. 곧바로 그녀는 몸을 굽혀 마차 밖으로 빠져나가, 연환장으로 마부를 직접 공격해 들어갔다.
그녀는 원래 양악을 찾으러 왔었으니, 무기도 몸에 지니지 않았다. 게다가 마부의 중후한 내공과는 비교할 수 없을 만큼 그녀의 내력은 한계가 있었다. 이렇게 그와 맞붙는 것은 도저히 승산 없는 일로 오래지 않아 금하는 매우 버거워졌다.
“대양! 빨리 가, 가서 육 대인께 보고해!”
그녀가 양악에게 급히 말했다.
양악이 나가려는 순간, 문 쪽에서 한 사람이 더 들어왔다. 바로 또 다른 마부였다.
“잠수, 멈춰!”
그가 소리쳤다.
지금 금하와 한창 싸우고 있던 마부가 바로 잠수였다. 그는 장풍으로 금하를 몇 보 물러나게 한 뒤에야 행동을 멈추고 차가운 어조로 입을 열었다.
“저들이 방금 마차의 사람을 죽이려 했어.”
금하는 듣자마자 정신이 멍해졌다.
설마 이들이 아예를 보호하고 있었어?
문 앞의 마부는 금하와 양악을 훑어보았다.
“당신 둘은 그를 왜 죽이려 했습니까?”
“그게 말야, 잠복.”
잠수가 조금 더 명확하게 설명했다.
“남자는 죽이려 하고, 여자는 막으려 했어. 하지만 막기엔 역부족이라 내가 나선 거야.”
금하는 다친 양악을 부축한 채 분노했다.
“당신들은 대체 누굽니까?”
잠복과 잠수가 서로 시선을 마주쳤다. 잠시 후, 잠복이 품속에서 제패 하나를 꺼내어 금하에게 내보였다.
―― 윗면에서 새겨진 글자가 순간 눈으로 확 들어왔다. 그것은 ‘금锦’자 였다.
“당신들 금의위야?”
깜짝 놀란 금하는 뒤이어 더욱 한탄하며 괴로워했다.
이제 생각해 보니, 그들은 걸음걸이, 말하는 말투로 단서를 전부 드러내고 있었다. 평소의 그녀라면 당연히 벌써 알아봤어야 했던 것이다.
“당신들 경성에서 온 겁니까? 육 대인이 당신들을 알아요?”
“우리는 대공자의 명으로, 비밀리에 보호하고 있었습니다.”
대공자, 이건 당연히 육역을 가리키는 것이었다.
금하는 머릿속으로 상황을 헤아렸다.
그들이 육역을 대공자라 부른다 함은 금의위 내의 상하 관계뿐 아니라 분명 육가와의 관계도 밀접할 터였다.
육역은 이 일을 그녀에게 빈틈없이 숨겼다.
어쩌면 이 두 사람에게 날 몰래 감시하라 했을지도 몰라. 대인은 여전히 날 믿지 못하는 것일 테지.
잠복의 말투는 공무를 처리하는 것처럼 사무적이었다.
“나는 당신들이 육선문의 사람인 걸 압니다. 잠시 대공자의 아래로 차출되었으니, 원래 우린 서로 난처할 일이 없어야 했죠. 그러나 당신 옆의 저 포쾌가 사람을 죽이려 했고, 나는 저 사람을 반드시 대공자께 데리고 가서 그분의 말씀을 들어야 합니다.”
“대양은, 양 포쾌는 마음에 둔 사람이 아예의 손에 죽어서 일시적으로 격분했어요. 그래서 아예를 죽이려 했던 거예요.”
“제가 대공자께 보고하겠습니다.”
잠복이 잠수를 향해 돌아섰다.
“이 사람이 여기 있는 건 안전하지 않아. 넌 그를 아무도 모르게 네 방으로 옮겨.”
잠수가 고개를 끄덕였다.
말을 끝낸 잠복이 다가와 양악을 붙잡으려 했으나 양악은 뿌리쳤다.
“내 스스로 갈 거요.”
양악의 얼굴에는 표정이 없었다. 옆에서 잠수는 차갑게 흥 콧방귀를 뀌었고, 잠복은 여전히 감정의 변화 없이 담담하게 말했다.
“그게 당연히 더 좋습니다.”
“대양, 너 괜찮아?”
금하는 방금 피를 토한 그가 매우 걱정되었다.
양악은 고개를 저을 뿐 입을 열지 않았다. 그는 곧장 문을 나섰고, 잠복이 그 뒤를 따랐다. 금하 또한 잠시 망설였지만, 마음이 놓이지 않아 결국은 빠른 걸음으로 따라나섰다.
잠복은 양악을 데리고 빠르게 모퉁이를 돌았다. 그리고 급하게 계단을 오르던 금하는 때마침 식사를 위해 아래층으로 내려오던 순우민과 정면으로 마주쳤다. 그녀의 곁에는 시중드는 계집종도 둘이 있었다.
금하를 본 순간, 순우민은 얼굴빛이 하얗게 질려 말도 제대로 하지 못했다.
“순우 낭자, 괜찮아요?”
금하는 좋은 마음으로 물으며 다가갔다. 그러나 곁에 있던 계집종이 황급히 순우민을 감싸고 기겁한 목소리로 금하를 책망했다.
“다, 당신 얼른 저리 가요! 온몸이 피투성이잖아요!”
금하의 옷은 언제인지 모르게 많은 혈흔이 묻어 더러워져 있었다. 얼룩덜룩한 모습은 확실히 두려워 보이기도 했다.
뒤늦게 알아차린 금하가 생각을 돌이키니, 이건 분명 양악이 피를 토할 때 묻은 것이었다.
“이건 내가 아니라…….”
그녀의 말이 끝나기 전, 순우민은 몸이 축 늘어진 채 이미 의식을 잃었다. 다급해진 계집종은 금하에게 말할 새도 없이 순우민을 부축해 급히 방으로 돌아갔다.
순우 낭자는 피를 보면 현기증을 느끼는 병증이 있었구나.
금하는 양심의 가책을 다소 느끼며 이마를 짚었다. 그러나 지금은 신경 쓸 여력이 없었다.
그녀는 육역의 방으로 계속 걸어갔고, 잠수가 그 방에서 나오는 것을 보았다. 잠수는 바로 문을 닫고 방문 밖에 서 있었다.
이건 말할 필요도 없이 육역이 결코 누구에게도 방해받고 싶어 하지 않는다는 뜻이다.
금하는 벽에 잠시 기대어 생각했다.
대장의 체면을 봐서라도, 게다가 아예도 멀쩡히 살아있으니 육역은 양악에게 지나치게 모질진 않을 것이다.
그래서 금하는 먼저 방으로 돌아가 옷을 갈아입었다. 그녀에겐 갈아입을 옷이 두 벌뿐이었는데, 둘 다 젖고 더러워졌다. 금하는 한참을 주저하다가 어쩔 수 없이 심 부인이 빌려주었던 치마저고리를 꺼내어 갈아입었다.
그 이후, 금하는 불안한 마음으로 안절부절못하여 한참을 방에서 기다렸다. 벽을 사이에 둔 이웃 방에서 소리가 들리자, 그녀는 대양이 돌아왔다는 생각으로 급하게 달려갔다.
“대양…….”
그녀가 이제 막 문을 밀고 들어가려는데, 안쪽에서 ‘찰칵’하는 소리가 들리며 양악이 문을 잠갔다.
“대양, 너 아직 나한테 화났어?”
금하는 옅게 한숨을 쉬며 괴로운 어조로 입을 열었다. 안쪽에서 양악의 우울한 목소리가 들렸다.
“가! 그냥 내버려 둬.”
양악의 평소 성격은 온화하고 무던하다. 그러나 그는 고집불통 외곬으로 그가 만약 진짜로 화가 나면, 양정만마저도 그에게 강요할 수 없었다. 그저 그의 마음이 풀어지길 기다려 얘기하는 수밖에는 별도리가 없었다.
당장 금하도 더는 달래지 못했다.
“그럼 너 혼자 있어. 하지만……, 절대 터무니없는 생각은 하지 마!”
방안에서 더는 소리가 들리지 않았다.
금하는 천천히 자신의 방으로 돌아왔다. 탁자 앞에 우두커니 앉아 있지만, 무엇을 해야 할지 몰랐다. 그저 귀를 쫑긋 세우고 이웃 방의 소리를 신경 쓸 뿐이었다. 그녀는 양악이 해결할 수 없는 문제로 고민하다가 어느 순간 자해를 저지를까 두려워졌다.
아마 차 한잔 마실 시간이 흐른 것 같았다. 누군가 그녀의 문을 두드려 금하는 맥없는 목소리로 말했다.
“누구예요. 문 안 잠겼으니, 들어와요.”
들어온 이는 잠수로 그의 얼굴은 여전히 차갑게 굳어 관짝과 다를 게 없었다.
“대공자께서 오라신다.”
그는 명령하는 어조마저 상당히 고압적이었다.
금하는 원래 기분이 좋지 않은 데다가 그가 관료의 허세까지 부리자, 잔잔하게 가라앉았던 화가 일시에 일어났다.
그녀가 조금도 몸을 움직이지 않고 물었다.
“제게 무슨 일이 있어 찾으십니까?”
금하가 이런 모습에는 잠수 또한 톡톡히 화가 일었다.
“대공자께서 너를 찾으시는데, 당연히 일이 있지. 넌 보잘것없는 하급 관리면서 무슨 쓸데없는 질문이 이렇게 많아?”
“나는 어디까지나 육선문의 사람이고 잠시 차출되어 온 것뿐인데, 왜 물을 수가 없죠?”
그녀가 차갑게 흥 소리를 냈다.
“까짓거, 가서 날 하극상으로 위쪽에 찌르기라도 하던지!”
“너 진짜 싹수없구나! 네가 방금 올라올 때, 순우 아가씨를 놀라 기절시킨 거 알아? 순우 아가씨가 어떤 신분인데. 넌 이 한 가지 죄목만으로도 대공자 앞에서 뼈도 못 추려!”
잠수는 화가 머리끝까지 치밀어 그녀에게 호통쳤다.
그런데 ‘펑’ 소리가 나고, 금하가 오히려 책상을 치고 일어섰다. 그녀의 목소리는 잠수만큼 우렁찼다.
“낭자는 피를 보고 현기증을 느낀 것뿐인데, 그게 무슨 대수야! 네가 방금 양악을 때려서 내 형제는 입에서 피를 토했어. 난 이거에 대해서는 아직 너랑 따지지도 않았다! 넌 양악의 아버지가 누군지 알아? 그분은 육선문의 명성이 자자한 포두야. 넌 이 한 가지 죄목만으로도 육선문에서 뼈도 못 추려!”
“너, 너…….”
잠수는 화가 나 한순간 무슨 말을 해야 할지 말도 나오지 않았다.
“너는 무슨 너야!”
금하 또한 화가 채 가시지 않았다.
“너도 명색이 남자면서, 나한테만 큰소리치지. 내가 만만하게 보여? 물러터진 사람이라고 골랐어? 한번 잡아 봐, 내가 네 손 안 터트리나 보라고!”
이리 해도 가슴 속 답답함이 쉽게 가라앉지 않았다. 그녀는 잠수와 함께 같은 공간에 있고 싶지 않아 밖으로 나갔다. 그런데 하필 입구 쪽에서 육역과 맞부딪혔다.
그가 문밖에 얼마나 오래 서 있었는지, 과연 얼마나 들었는지는 모른다.
금하는 순간 정신이 멍했다. 속은 억울함과 화가 뒤섞여 복잡해졌다. 그와 시선이 마주치고, 당황한 얼굴로 한순간 무슨 말을 해야 할지 몰라 하는데, 등 뒤에서 잠수가 지극히 공손하게 부르는 말이 들렸다.
“대공자.”
그랬다. 그는 이들의 대공자이고, 자신은 그저 관계없는 사람에 불과할 뿐이다.
금하는 목을 꼿꼿이 세우고, 육역에게 간단명료하게 얘기했다.
“가서 하극상으로 위에 보고하시죠! 저는 더는 참지 않겠습니다!”
한바탕 쏟아낸 그녀는 쿵쿵쿵 소리를 내며 계단을 내려가 육역의 시야에서 사라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