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금의지하 (122)화 (122/224)

122화

“대인, 제가 대인께 알려드려야 할 일이 하나 있어요.”

금하의 태도는 엄숙하고 진지했다.

“대양이 말씀드렸는지 모르겠는데요. 순우 낭자가 데려온 마부 두 명이 이상합니다.”

“뭐가 이상하지?”

들어보니 이 일이다. 육역은 흥미가 좀 떨어져 담담하게 물었다.

“저 두 사람은 모두 무예인에다가 무공이 약하지 않아요. 오늘 저와 함께 마차를 민 그 사람의 내공은 분명 저보다 월등히 강해요. 사실 일반적으로 집 지키는 무사 같지가 않습니다.”

“그럼. 넌 저들이 어떤 사람일 것 같나?”

금하는 미간을 찡그리고 불안해했다.

“그게 확실하진 않지만, 아예처럼 엄세번의 사람일 수도 있지 않을까요?”

육역이 한숨을 내쉬었다. 잠시 침묵한 후에야 입을 열었다.

“내가 그들을 지켜보겠다. 그런데 너는 온종일 이 생각을 하고 있었나?”

“당연하죠. 전 생각하면 할수록 그들이 정말 의심스러웠어요. 대인 꼭 조심하셔야 합니다.”

금하는 말을 다 마치고 나서야 뒤늦게 육역의 손에 탕 한 그릇이 들린 것을 알아차렸다.

“이건 생강탕이에요?”

“음.”

육역이 고개를 끄덕였다.

“대인께서 특별히 제게 생강탕을 가져오셨군요. 정말 이리도 친절하시다니. 소관이 무슨 덕으로 이렇게…….”

기쁨으로 가득 찬 금하는 겸손의 말을 하며 생강탕을 받으려 했다. 그런데 육역은 바로 손을 뒤로 물렸다.

순간, 그녀의 눈이 당황하여 커졌다. 혼란스러운 마음을 숨기느라, 그녀는 육역이 장난스레 보인 미소를 조금도 눈치채지 못했다.

“이건 네게 주는 것이 아니야. 네가 나 대신 순우 낭자에게 가져가라. 그녀는 아가씨이고, 나는 그녀의 방에 들어가기가 쉽지 않아.”

육역이 분부했다.

“빨리 가져다줘. 생강탕은 뜨거울 때 마시는 게 좋지.”

“……소관, 명에 따르겠습니다.”

다 같은 아가씨였다. 그러나 신분과 지위는 달라서 이렇게 하늘과 땅 사이 같은 엄청난 차이가 있었다.

금하는 속으로 한숨을 삼켰다. 반쯤 젖은 머리를 되는대로 집어 올리고, 바로 육역이 손에 든 그릇을 받았다.

그렇게 금하가 순우 낭자에게 생강탕을 가져다주고 다시 돌아왔을 때, 육역은 이미 떠나있었다. 대신 뜨거운 김이 솔솔 오르는 생강탕이 그녀의 탁자 위에 잘 놓였다.

그녀는 순간 정신이 멍해져 생각했다.

아마 양악이 보낸 거겠지.

“그래도 내 편이 최고네.”

그녀는 이렇게 생각했지만, 자신도 모르게 한숨을 내쉬고, 입술을 깨물었다.

* * *

객잔은 보는 눈이 많았다. 주인에게 특별히 요청해 선물과 아예를 태운 마차를 창고에 넣었다지만, 양악은 여전히 마음이 놓이지 않아 재빨리 밥을 먹은 후 창고로 달려갔다.

만약 아예가 여전히 정신이 없는 상태라면 몰래 업고 위로 올라가 육 대인에게 의원을 불러달라고 청할 생각을 갖고 있었다.

양악은 마차의 발을 걷었고, 아예를 숨기느라 일부러 옮겨놓은 선물상자 몇 개를 제자리로 옮겼다. 그리고 그가 그를 다시 봤을 때였다.

언제부터인지 눈을 뜬 아예가 꼼짝도 하지 않은 채 마차의 천장을 뚫어지라 보고 있었다. 눈조차 깜빡이지 않았다.

“깼구나!”

기뻐하는 양악의 목소리를 듣고도 한참이 지나서야 아예는 그의 얼굴로 천천히 시선을 옮겼다. 잠시 바라본 그가 냉랭하게 웃었다.

아예의 얼굴 상처는 이제 흉터로 남았다. 웃자마자 흉터는 피부를 잡아당겨 그의 얼굴은 더할 수 없이 괴이해 보였다.

그래도 양악은 대수롭지 않은 표정으로 그를 위로했다.

“다친 상처는 대체로 아물었어. 지금은 매우 가려울 테지만, 걱정하지 않아도 돼. 다시 며칠만 참으면 딱지도 다 떨어지고, 그럼 별일 없어.”

“너…….”

아예는 힘겹게 꽉 잠긴 목소리로 소리를 냈다.

그 모습을 본 양악이 우선 그를 재빨리 부축해 일으켰고, 맑은 물을 마시게 했다. 그러나 목을 축였다 해도, 아예 눈빛 속의 냉랭한 비웃음은 조금도 사라지지 않았다.

“네가 날 구했냐? 넌 내가 뭘 했는지 알아?”

양악이 영문 모르는 시선으로 그를 바라봤다.

“그 밤 골목 안의 일, 넌 설마 다 잊었냐?”

아예는 냉랭한 시선으로 그를 바라보고 있었고, 순간 양악의 안색이 확 변했다.

“무슨 소릴 하는 거야? 무슨 골목? 무슨 일?”

“설마 다 잊었어? 적란엽, 애별리, 너 전부 기억 못 해?”

양악의 얼굴은 혈색이 전부 빠져 하얗게 바랬다. 뚫어지게 그를 노려보며, 믿을 수 없다는 어조로 천천히 물었다.

“네 말은 그게 꿈이 아니다? 정말이야?”

아예가 크게 웃었다. 얼굴의 상흔은 그럴수록 더욱 흉측하게 비틀렸다.

“당연히 꿈이 아니지. 그건 내가 힘들게 준비한 거야. 바로 네가 적란엽이 ‘애별리’ 품속에서 죽는 걸 보게 하려고! 넌 어떻게 그걸 속 편히 꿈이라 생각한 거냐?”

“그녀가 죽었어?!”

양악은 한순간 숨조차 턱 막혀 버렸다.

“그녀가 정말로 죽었어? 그게 꿈이 아니야?”

이번에는 아예가 살짝 얼이 빠졌다.

육역이 적란엽의 금장식을 찾았다던 그때부터, 그는 자신이 적란엽을 죽인 일이 모두 발각됐다고 생각했을 뿐, 양악이 전혀 사정을 모를 거라고는 생각지 못했다.

“그녀가 왜 죽어? 누가 그녀를 죽였는데? 너야? 너야!”

양악의 표정과 행동에는 이미 광기가 드러났다. 그에게는 아예가 다쳤다는 사실도 더는 상관없었다.

“너!”

양악이 두 손으로 아예의 옷깃을 꽉 움켜쥐었다. 거대한 힘은 아예를 거의 질식시킬 것 같았고, 그는 헐떡이며 힘들게 숨을 쉬었다.

아예가 말조차 하지 못하는 것을 보고서야 양악은 살짝 힘을 풀고 난폭하게 말했다.

“빨리 말해! 빨리 말하라고!”

아예는 차갑게 웃었다.

“진정한 살인범은 너 자신이야!”

아예의 말이 끝나기 무서웠다. 양악은 아예의 머리에 연거푸 주먹을 날렸고, 바로 그는 눈앞이 캄캄해졌다. 얼굴의 상흔 몇 개도 터져 선혈이 뚝뚝 흐르는 것이 더욱더 두려운 모습으로 변했다.

“말해! 도대체 누구야!”

양악은 분노해 울부짖었다.

“하하……, 네가 만약 그 여자를 보내겠다고 고집하지 않았다면, 아마도 죽기까진 안 했겠지.”

아예는 입가의 피를 마시며 차갑게 웃었다.

“너는 그 여자가 누구의 사람인지 제대로 알지도 못하면서 간 크게도 그 여잘 보냈어.”

“그래, 그 여자가 누구의 사람이야? 말해!”

아예는 흐흐 웃을 뿐 입을 꼭 다물고 말하지 않았다.

가슴에 분노가 가득 찬 양악은 다시 그를 ‘퍽퍽’ 두 번 때렸다.

“말해! 그 여자가 누구의 사람이야? 도대체 누가 그 여자를 죽였어!”

“네가 굳이 이럴 필요는 없잖아. 사실 그 여자도 그렇게 고통스럽지 않았거든.”

아예의 얼굴은 온통 피로 덮였다. 그는 웃으며 자신의 손을 천천히 내밀어 목덜미 쪽을 확 조르는 자세를 취했다.

“여인의 목뼈는 매우 약해서 가볍게 쥐기만 해도 바스러져.”

“네가 그 여자를 죽였어!”

양악은 아무런 생각도 할 수가 없었다. 두 눈은 충혈됐고, 두 손으로는 그의 목을 졸랐다. 전신의 힘을 다해 필사적으로 꽉 눌렀다.

“대양!”

금하가 언젠지 모르게 마차 안으로 뛰어들었다. 맨손으로 양악의 팔뚝 급소를 쳐 그의 손을 강제로 풀어냈다.

“너 미쳤니? 네가 포쾌란 걸 잊지 마. 어떻게 네 맘대로 사람을 죽이려 해!”

양악의 손에서 빠져나온 아예는 축 늘어져 옆으로 쓰러졌다. 주체할 수 없는 기침이 연이어 터졌다.

“저놈이 적란엽을 죽였어! 저놈이 그녀를 죽였어!”

양악이 상처 입은 야수처럼 울부짖었다.

“내가 그녀를 본 그 밤은 꿈이 아니야! 꿈이 아니라고! 그녀가 정말 죽었어!”

마침내 양악도 알아 버렸어!

금하는 그 자리에 얼어붙었다. 어떻게 그를 위로해야 할지, 무슨 말을 해야 할지도 알 수 없었다.

그 순간, 양악은 그녀의 표정을 보고는 일시에 모든 것을 깨달았다.

“넌 이미 알고 있었어?”

금하는 지독히도 어렵사리 고개를 끄덕였다.

“언제 알았어?”

“……네가 내게 꿈속에서 그녀가 골목에서 죽은 걸 봤다고 말한 그 날, 나는 이미 알고 있었어.”

양악은 깊게 숨을 들이키고는 꼼짝도 하지 않고 그녀를 응시했다. 눈빛에는 비통한 상심이, 분노가, 실망 같은 수많은 감정이 어지럽게 뒤엉켰다.

“왜 나한테 얘기 안 했어?”

그가 분노했다.

“네가 이렇게 변할까 두려워서……. 네게 어떻게 이야기를 해줘야 할지 알 수가 없었어.”

금하 역시 어쩔 수 없었다는 감정으로 가득했다.

“이 일은 얽힌 게 너무 많아서 나도 차마 얘기할 수 없었어. 나는…….”

“네, 네가 어떻게 이럴 수가……. 넌 분명히 알잖아. 분명히 알고 있잖아, 나는 그녀에게…….”

양악의 눈에서 굴러떨어진 눈물은 델 만큼 뜨거웠다.

“네가 어떻게 나를 속여! 어떻게!”

“잘못했어, 대양. 내가 잘못했어.”

금하는 간절한 시선으로 그를 바라봤다.

양악은 한참 동안 침묵했다. 더는 그녀를 상대하지 않고, 대신 그는 아예를 향해 시선을 돌렸다. 그를 향해 다가가며 손은 이미 장화 쪽에 꽂아 휴대하던 비수를 뽑았다.

“대양, 안 돼!”

금하가 다급하게 외쳤다.

“나는 그녀를 위해 아무것도 해주지 못했어. 남은 건 이것뿐이야!”

양악의 음성은 낮게 가라앉았다.

“저놈이 그녀를 죽였어!”

“대양, 넌 그를 죽여선 안 돼! 정말 안 돼!”

아예는 틀림없이 숨겨진 비밀을 많이 알고 있을 터였다.

금하는 급한 마음에 손을 뻗어 양악의 비수를 빼앗으려 했다. 그러나 그는 단단히 움켜쥐고 조금도 놓으려 하지 않았다.

두 사람 사이에는 번쩍거리는 비수의 칼날이 놓였다. 매끈한 칼날 위에는 무심하고 냉담한 아예의 얼굴이 설핏 비쳤다.

“대양, 네가 포쾌란 걸 잊지 마. 어떻게 사사로이 사람을 죽여!”

금하는 비수를 빼앗을 수 없어 간절한 말로 양악에게 충고했다.

“아니. 난 저자가 적 낭자를 죽였다는 것만 알아!”

두 눈이 붉어진 양악이 사나운 맹수처럼 소리쳤다. 원래 금하보다 강하던 그가 더욱 맹렬하게 힘을 써 비수를 빼앗았다.

“대양!”

금하는 비수를 빼앗을 수 없어 제 몸으로 아예를 감쌀 수밖에 없었다.

그런데 바로 이때, 마차의 옆 판이 누군가의 맹렬한 힘에 억지로 떼어졌다. 마차 밖에 있던 한 사람이 낮고 힘 있는 장풍을 날려 양악의 등을 내리쳤다.

그는 바로 금하가 한창 의심하던 마부 중의 한 사람이었다.

“대양 조심해!”

금하가 미친 듯이 소리쳤다.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