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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의지하 (120)화 (120/224)

120화

사백리가 그에게 눈을 부릅떴다.

“허, 이 정도로 기뻐하다니, 집에서 멀리멀리 떠나길 그리도 바랐더냐?”

“전 아버지께서 절 절강에 보내실 거라고 정말 생각지 못했어요. 진짜 그러실 거죠?”

“왜구에 맞서 싸우는 것은 국가의 대의이다. 하물며 스승의 명이신데, 원래부터 거스를 수 없었다.”

사백리가 탄식했다.

“설마 네 성격을 내가 아직도 모르겠니? 억지로 너를 집에 잡아두고 있다 하나, 너도 안정을 찾지 못하니, 조만간 사달이 벌어질 수도 있어. 차라리 널 내보내는 것이 낫지.”

이때, 상관희가 미간을 찡그리며 말했다.

“방의 사무는 어째야 좋을까요?”

“내가 네 아버지와 상의했단다. 우리 늙은이들이 다시 나와 돌봐야겠지.”

사백리가 하하 웃었다.

“팔다리가 한창때와는 비교할 수는 없으나, 다행히 아직 움직일 수는 있어.”

“아버지.”

상관희는 죄송스런 마음이 가득 담긴 얼굴로 상관원룡을 바라봤다.

“방의 일이 좀 번잡해요. 저는 어르신들께서 지나치게 신경 쓰실까 걱정입니다.”

상관원룡이 웃었다.

“우리 착한 희아, 네 덕분에 아버지는 몇 년을 집에서 한가롭고 편안한 생활을 누렸잖니. 이제는 몸 좀 풀어줄 때도 되었다.”

사백리도 웃으며 말했다.

“그러게요. 우리가 잠시 세상일을 멀리했다고 자식들에게 오히려 무시당하는군요. 보세요. 양형의 두 아이는 정말 단정하고 예의가 바르죠. 아주 기특합니다.”

칭찬을 들은 금하와 양악은 슬그머니 웃었다.

바로 양정만이 웃으며 대화를 이어 갔다.

“이리되니 좋군요. 내일 이 아이들을 함께 출발시키면, 가는 길에서도 서로 잘 챙겨줄 겁니다.”

이 말에 금하의 심장이 덜컥 내려앉았다.

마차에는 아예가 있었다. 상관희와 동행하게 되어 혹여라도 그녀에게 발각된다면, 그때는 정말 감당하기 힘든 일이 벌어질 수도 있었다.

금하가 어떻게 이 상황을 피해야 하나 고민하고 있는데, 마침 사소의 말이 들렸다.

“양숙, 제가 양숙 의견을 무시하는 게 아니라요. 동행하면 서로 살펴 줄 수는 있지만, 육역 그자는 관가 사람이에요. 듣기로 지금은 벌써 4품 첨사로 올랐다더군요. 저희는 강호인이고, 그와의 동행은 사실 여러모로 불편한 게 많아요.”

이미 사수죽은 구해냈다 해도, 사소의 마음속에는 육역에 대한 반감이 줄곧 맺혀 있었다.

상관희도 난처한 어조로 말했다.

“방 내의 사무는 인계가 필요합니다. 최대한 빠르게 한다 해도 하루 이틀 후에야 출발할 수 있어요. 내일은 시간이 안 될 거예요.”

양정만이 웃었다.

“나는 그저 한마디 한 것뿐이니, 신경 쓸 필요 없다. 얼마든지 편한 대로 하면 돼.”

그들이 이렇게 말하는 걸 듣고서야 금하는 속으로 안도의 숨을 내쉬었다.

모든 일이 결정되었다. 사소는 절강으로 간다는 것과 또 많은 사형제들과 왜구에 맞서 싸울 수 있다는 생각에 속이 다 통쾌해졌다. 그는 술을 많이 마셨고, 또 듣기 좋은 말로 사백리의 비위를 맞춰 그를 기쁘게 했다.

사백리 또한 아들이 작심하고 듣기 좋은 말을 한다는 것을 알면서도 기분이 상당히 좋았다.

이 부자 둘의 말다툼이 사라져 분위기 자체가 매우 편안해졌다. 그러니 이번 송별연은 주인과 손님 모두 즐거운 자리가 될 수 있었다.

사소와 사백리는 술을 매우 많이 마셨고, 연회가 파한 후 일찍 쉬러 들어갔다.

상관희는 상관원룡을 모시고 돌아갔고, 양악도 아버지를 모시고 쉬러 방으로 돌아갔다.

* * *

금하는 내일의 일이 걱정되기도 하고, 양정만의 눈치도 보여서, 술은 설주 두 모금을 마셨을 뿐이었다.

연회가 파한 후, 그녀는 부엌으로 가 먹을 것을 정갈하게 싸줄 수 있는지 공손히 물었다. 그러고 급하게 사부를 나서 죽림으로 달려갔다.

이제는 익숙해진 죽림을 통과한 그녀는 빠른 걸음으로 통나무 집으로 들어갔다. 그리고 문을 들어선 그 순간, 그녀는 발소리를 가만가만 죽였다.

방 안은 콩알만큼 작은 등불만 타오를 뿐 조용하기 이를 데 없었다. 그리고 아예는 그녀가 떠날 때와 똑같은 모습으로 여전히 대나무 침상 위에 누워 조금도 움직이지 않았다.

금하의 시선이 창문에 기대어 앉아 있는 육역에게 멎었다. 팔을 괴고 손으로 이마를 받친 그는 눈을 감고 있는 모습이 정신 수양을 하는 것 같기도 하고, 또 이미 잠이 든 것 같기도 했다.

“대인?”

그녀는 탐색하듯 넌지시 한 번 불렀다.

농밀한 고요 속, 그는 미동도 하지 않았다. 눈썹 한 올조차 흔들리지 않았다.

그녀는 조심스럽게 찬합을 탁자에 놓고, 입술을 깨물며 난처한 시선으로 육역을 바라봤다.

찬합 안의 음식은 뜨거울 때 먹어야 맛있다. 그러나 그는 매우 피곤해 보였다.

깨워야 하나?

촛불은 희미하게 타오르고 있었고, 그녀는 저도 모르는 사이 육역의 앞으로 다가갔다. 그의 속눈썹이 몇 개인지까지 정확히 셀 수 있을 만큼 가까워졌다.

하얀 얼굴에 그린 듯 선명한 눈썹, 그리고 이마를 바치고 있는 길고 섬세한 손, 그 아래로 날카롭게 뻗은 콧날, 그리고……, 그녀의 시선이 무심한 척 그의 입술에 닿았다.

금하는 저도 모르게 심장이 덜컥 내려앉았고, 마른 침을 삼켰다.

그녀가 멍하니 바라보던 사이, 어느새 그가 느릿하게 눈을 떴다.

마주친 두 개의 눈은 닿을 듯 매우 가까웠다. 금하는 놀라 눈이 커졌지만, 그 자리에 못 박힌 것처럼 꼼짝도 하지 못했다.

“……날 훔쳐보던 중인가?”

아마도 잠에서 이제 막 깼기 때문일 터. 그의 목소리에는 나른함이 희미하게 묻어났다.

금하는 급하게 몸을 똑바로 세웠고, 그와의 거리를 벌렸다.

“아닌데요.”

뚱한 목소리로 대답한 금하가 바로 말을 돌렸다.

“대인, 제가 음식을 가져왔어요. 뜨거울 때 드세요. 식은 건 속에 좋지 않아요.”

육역이 그녀를 흘끔 보았다.

“술 냄새가 난다. 사가에서 제대로 먹고 마셨군.”

금하는 제 발이 저려 입술을 다문 채 가볍게 웃었다.

“오늘 저녁은 다들 매우 즐거워했어요. 전 두어 모금 마셨을 뿐, 대장이 계셔서 많이 마시지도 못했어요.”

육역은 일어서 먼저 대나무 침상 위의 아예를 살폈다. 그가 여전한 것을 보고서야 나른하게 몸을 쭉 폈다.

“다들 매우 즐거웠다라. 무슨 좋은 일이 있나?”

그의 어조가 좋지 않았다.

“사소와 상관희가 절강으로 가 왜구에 맞서 싸워달라는 스승의 편지를 받았어요. 사 어르신도 동의하셔서, 사소가 좋아 죽으려 했죠. 어르신께 얼마나 듣기 좋은 말을 많이 하던지, 아마 지난 십수 년간 못 해 드린 좋은 말은 다 해 드렸을걸요. 어르신도 좋아서 어쩔 줄 몰라 하셨어요.”

금하는 웃으며 말했다.

“그래서 두 사람 다 술을 많이 마셨죠.”

육역이 그녀를 곁눈질했다.

“너도 상당히 즐거워 보인다?”

금하는 육역이 한 이 말의 의미를 신중하게 따지고 또 따졌다.

대체 무슨 의미실까.

그리하여 그녀는 말과 태도를 단정히 했다.

“안 그래요. 저는 대인이 식사 못 하신 것만 내내 걱정했어요. 얼굴은 웃고 있어도 사실 속이 엄청 탔죠.”

그녀가 한 말이 반드시 솔직한 말이라고는 할 수 없다. 그것을 육역은 분명히 알고 있으나, 금하 스스로 이 말을 하자, 육역은 그래도 상당히 기분이 좋아졌다. 그녀를 잠시 주시하던 그는 결국 웃음을 참지 못했다.

금하 역시 그와 함께 하하 웃으며 찬합을 열어 먹을 것을 꺼냈다.

육역은 겨우 두 입가량 먹고는 무언가 생각이 난 듯 물었다.

“사소 그들이 설마 우리와 동행하나?”

“아니요. 상관 당주가 방의 사무를 아직 확실히 인계하지 않았대요. 그들은 하루 이틀 더 있어야 출발할 수 있을 거예요.”

육역은 이러고서야 더는 그 얘길 하지 않았다.

그런데 ‘상관 당주’, 이 소리가 들린 순간, 대나무 침상 위에서 혼수상태로 누워 있는 아예의 손가락이 미미하게 움직였다는 것은 누구도 알아차리지 못했다.

“대인은 상관 당주에게…….”

금하는 머리를 갸우뚱하여 육역을 바라보며 호기심을 품고 물었다.

“정말 다른 생각 없으세요?”

육역은 젓가락으로 고기 완자를 집어 그녀의 입안에 바로 넣고는 미간을 찌푸렸다.

“너는 내가 그녀에게 어떤 생각을 가져야 한다고 생각하나?”

금하는 씹으며 생각하고, 또 생각해 보며 씹다가 그에게 이 상황을 분석해주었다.

“상관 당주는 비록 강호인이지만, 용모나 성격을 따지면 모든 것이 대단한 여인이죠. 대인이 만약 그녀가 마음에 들지 않는다거나, 조금도 마음이 끌리지 않는다고 말씀하시면요. 그건 조금 억지스러운 일이에요.”

“내가 억지를 부린다고?”

육역은 순간 미간을 찡그렸고, 금하는 서둘러 그를 달랬다.

“이 고기 완자 정말 맛있게 튀겨졌어요. 드셔보세요……. 대인, 설마 이미 정혼하셨어요?”

“넌 내가 너 같다고 착각하는군.”

육역은 퉁명스럽게 바로 그녀의 말을 막았다.

그러니 오늘은 이 화제가 적당치 않아 보여 금하는 눈치 있게 화제를 돌렸다.

“절강으로 가는 길은 소주부를 경유해서 가흥부 쪽으로 가나요?”

“아니. 먼저 의흥으로 가. 의흥에서 호주부로 간다.”

육역이 그녀의 말을 잘랐다.

금하는 그의 말에 순간 어리둥절해졌다.

“먼저 의흥으로 가요?”

“음. 내 외조모께서 율양에 계셔. 가는 길에 그 어른을 뵐 거야.”

“아……, 이해했어요. 그럼 소관은 먼저 성으로 돌아가 마차를 준비하겠습니다.”

* * *

다음날, 금하는 양정만에게 작별 인사 후 마차에 오르고서야 양악에게 아예의 일을 알렸다. 그러나 아직은 적란엽의 죽음을 그에게 숨겨야 했다. 그러기에 차마 자세히는 말하지 못하고, 아예가 누군가에게 다쳐 중상을 입었다고만 했을 뿐이었다.

양악은 이해할 수 없었다.

“왜 그를 상관 당주에게 넘기지 않아? 데리고 절강 가서 뭘 하려고?”

“그가 중독된 건 동양인의 독이야. 육 대인은 그가 깨면 일의 진상을 묻고 싶으시겠지.”

금하는 모호하게 대답했다.

“육 대인 하시는 일에 우리가 더 물어볼 여지가 어디 있겠어.”

양악은 내내 얼떨떨했다. 마차 안으로 들어가 아예의 얼굴이 원래의 모습을 찾아볼 수 없을 만큼 망가진 것을 보고 놀랐으나, 다행히 그는 본분을 지키는 데 익숙해 더는 묻지 않았다.

이렇게 남쪽으로 내내 가다가 진강镇江을 건넜다. 그곳을 거쳐 다시 율양에 이르렀고, 이틀 후 의흥에 도착했다.

그 이틀 동안 양악은 아예의 약을 갈아주었다. 그에게 찔끔찔끔이라도 죽과 탕을 먹였으나, 아예는 정신이 들지 않고 계속 혼수상태였다. 그래도 다행인 것은 상처는 이제 천천히 아물어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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