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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의지하 (119)화 (119/224)

119화

저녁 무렵까지 줄곧 아예를 지켜보았으나, 그는 나아지는 기색도 보이지 않아 금하의 마음은 다소 초조해졌다.

오늘 저녁은 사백리가 그녀와 양악을 위해 특별히 천행연(*践行宴 송별연.)을 준비했기에 그녀가 만약 가지 않으면, 사백리의 호의를 저버리게 된다. 그것은 사실 적절치 못한 일이었다.

금하는 몇 번이나 망설이다가 육역에게 이유를 설명할 수밖에 없었다.

“그가 네게 송별연을 열어 준다고?”

대나무 의자에 비스듬히 기대있던 육역이 미미하게 눈썹을 들어올렸다.

“흠. 정말로 너를 며느리로 생각하나?”

“그럴 리가요. 그분은 대장 체면을 봐서 그러시는 거죠.”

금하는 육역의 말투가 어딘지 이상하다고 느꼈으나, 대체 어디가 이상한지는 또 꼬집어 말할 수가 없었다.

육역은 그녀를 신경도 쓰지 않은 채 본인 스스로 계속 말했다.

“아마도 그는 마음이 쓰여서 사소에게 너와 함께 가라 하고 싶을 거야. 이거야말로 그의 진정한 의도겠지. 아마 양 선배도 매우 바라던 바일 것이고.”

“그럴 리가요.”

“불가능한 것만은 아니야.”

육역이 흥, 소리를 내며 그녀를 흘끔 봤다.

“이 두 건의 혼사에서 너는 대체 어느 집을 택할 것이냐?”

“어느 집도 전 선택하지 않을 겁니다. 사소 쪽은 제가 그에게 분명하게 다 말해뒀어요.”

금하가 재빨리 말했다.

“이 같은 일을 네가 분명히 말해둘 수 있다는 게 이상한 일이지.”

그의 어조는 퉁명스러웠다.

“정말인데요. 정말 분명히 설명했어요.”

순식간에 하늘이 무겁고 어두워졌다. 금하는 연회에 제시간에 닿지 못할 거라는 생각에 마음이 매우 다급해졌다.

“대인, 저 가도 될까요? 돌아올 때 먹을 거 많이 싸 올게요, 네? 뭐 좋아하세요?”

“알아서 해라.”

육역은 마지못해 손을 내저어 그녀를 가라고 했다.

* * *

이 밤, 사부의 상황은 금하가 처음 예상한 것과 사뭇 다르게 흘렀다.

사백리는 원래 가까운 이들만 불러 금하와 양악의 송별연을 열어줄 생각이었다. 그런데 생각지도 못하게 정오쯤 사소가 편지 한 통을 받았다. 그것은 스승에게 온 서신으로 동문수학한 사소와 상관희는 남소림사의 속가제자였다.

지금은 절강에 왜구가 횡행하여, 백성이 안심하고 살아갈 수가 없다. 이에 절강 총독인 호종현이 산으로 들어가 소림사 방장方丈을 알현하였고 방장은 제자를 내려보내 백성을 보호하게 하니, 이를 속칭 ‘소림승병’이라 한다. 이와 동시에 방장은 여러 속가제자에게도 서신을 보내, 그들도 절강으로 와 함께 왜구와 맞서 싸울 것을 요청한 것이다.

사소는 도착한 서신을 보자마자 가만히 앉아 있질 못했다. 급하게 상관희를 불러 서신을 그녀에게 보라고 내밀었다.

그러나 상관희는 보고서도 다른 말 없이 한 마디 물었을 뿐이었다.

“어르신은 아셔?”

사소는 번뇌로 미간을 찡그렸다.

“나는 우선 누나와 이 일을 상의하고 싶었어. 내가 돌아와 얼마 되지 않았다고, 아버지는 분명 허락하지 않으시겠지. 누나는 또 당주라 방의 업무도 놓을 수가 없으니, 아버지가 승낙하실 리는 더욱 없어.”

“가든 안 가든 그것과는 별도로 어르신께 전부 말씀드려야 해.”

상관희가 그에게 말했다.

“3년 전처럼 말씀드리지 않고 떠난다 하자. 넌 어르신이 두 번째도 버티실 수 있을 것 같아?”

“……알았어.”

사소는 그녀의 뜻을 알아들었다.

“내가 아버지를 뵐게.”

사백리는 서신을 보는 내내 안색이 무거웠다. 그는 명확한 태도 같은 것은 드러내지 않고, 가복에게 상관희의 아버지인 상관원룡을 집으로 모셔오라고 분부했을 뿐이었다.

사부로 온 상관원룡이 사백리의 내실로 들어가자마자 문은 꽉 잠겼다. 그들이 무엇을 상의하고 있는지는 알 수 없었다.

두 후손은 어른들이 대체 무얼 하려고 하시는지 알 수도 없이 바깥의 응접실에서 기다릴 수밖에 없었다. 상관희는 그런대로 견딜 만했지만, 사소는 좌불안석이었다.

“처음부터 내가 누나 말 듣지 말았어야 했어. 봐. 누나 아버지도 부르셨잖아.”

그는 더욱 걱정했다.

“두 분 함께 계시면서 분명 우리를 어떻게 단단히 감시할까 논의 중이시겠지. 우릴 그분들 허리에 묶어 두고 어디도 못 가게 하는 게 가장 좋은 방법이야. 저분들 시름 더는 데도 제일이고.“

마침 양악이 양정만을 부축해 응접실로 들어섰다. 사소의 원망을 들은 그가 이유를 똑똑히 물은 후, 길게 탄식했다.

“양숙, 왜 한숨을 쉬세요?”

상관희가 물었다. 양정만은 그들과 양악을 차례로 바라보며 쓰게 웃었다.

“부모가 하는 모든 일은 자식을 위한 것이다. 너희는 지금 아직 젊은 나이인데, 어찌 또 이해할 수 있겠니. 장래 너희에게도 아이가 생기면 알게 될 게다.”

“장래의 일은 장래에 다시 말하죠.”

사소가 양정만의 앞까지 다가갔다.

“양숙은 우리 아버지와 오랫동안 좋은 형제로 지내셨죠. 양숙께서 말씀 좀 해주세요. 그럼 우리 아버지가 절강에 가게 해주지 않으실까요?”

“부모가 되어 어떤 이가 자기 자식을 위험한 곳으로 보낼 수 있겠니? 게다가 그리도 먼 곳으로 가야 하는데.”

양정만의 대답에 사소의 말에는 실망감이 가득했다.

“그건 허락하실 리 없다는 거네요.”

양정만이 가볍게 한숨을 쉬었다. 그가 다시 뭔가 얘기를 하려는 그때, 사백리와 상관원룡이 밖으로 나왔다.

“아버지!”

“아버지.”

사소와 상관희는 재빨리 앞으로 나아가 그들을 맞았다.

사백리는 사소는 못 본 체하고, 바로 양정만에게 다가가 웃으며 말했다.

“오늘 밤 아이들을 위한 송별회를 잘 마무리하고, 우리 오랜 형제들도 술 한 번 마셔봅시다.”

“아버지, 아버지.”

사소는 사백리의 옆으로 쫓아갔다.

“먼저 말씀 좀 해주세요. 자꾸 제가 궁금하게만 하지 마시고요, 예?”

사백리가 고개를 돌려 그에게 눈을 부릅떴다.

“이 녀석아, 뭐가 급해. 내가 언제 널 가지 못하게 했니!”

“아버지, 왜 억지를 쓰세요! 저는 요즘…….”

상관희가 초조해하는 사소를 막으며 고개를 저었다. 말을 채 끝내지도 못한 그에게 더는 말하지 말라며 눈짓했다.

그를 본 상관원룡이 상관희를 곁으로 불러 물었다.

“희아야, 네 생각은 어떻니?”

상관희는 사실대로 말했다.

“스승의 명이시니, 저는 도리상 거절할 수 없습니다. 다만 방의 업무를 이어받을 사람이 없어요. 제 걱정은 이것뿐입니다.”

사백리가 듣고는 사소를 향해 퉁명스럽게 말했다.

“넌 상관 당주를 좀 보고 배우거라.”

“누나가 뭘요.”

사소는 아버지가 자신을 왜 마음에 안 들어 하시는지 이해할 수 없었다.

“저도 방을 걱정해요. 하지만 일이란 것은 늘 중요한 것과 덜 중요한 것, 급하냐, 급하지 않냐의 구분이 있잖아요.”

“넌 그냥 말을 하지 마. 네가 말만 하면, 난 머리가 다 쑤셔.”

사백리가 아들의 말을 끊었다. 이미 술자리 준비가 다 된 것을 확인했는데, 유독 금하의 모습이 보이지 않았다.

그가 양정만에게 말했다.

“금하 그 아이는 아가씨가 어째 이렇게 바빠서 아직까지도 오지 않습니까?”

“기다리지 마시고, 우리 먼저 시작하지요.”

양정만이 말했다.

“어떻게 그럽니까. 오늘은 아이들 송별을 위한 건데요. 조금 기다리지요.”

그런 말을 하고 있는데, 금하게 급하게 들어왔다. 양정만이 그녀를 몇 마디 가볍게 질책하고, 금하는 모인 이들에게 급히 잘못을 사죄했다.

* * *

모든 이가 한꺼번에 자리에 앉았다.

금하는 이전에 상관원룡을 만난 적이 없었다. 오늘 송별연에 그도 청했을 거라고는 생각지 못하여, 이상하게 여길 수밖에 없었다.

그녀는 다시 주위 사람의 면면을 살폈다. 사소는 감정을 숨길 수 없는 사람으로, 비록 말은 하지 않았으나 얼굴 표정으로 울적한 기분이 역력히 드러났다. 사백리 역시 억지로 기운은 내고 있으나, 미간의 주름에는 감출 수 없는 근심이 잔뜩 서렸다.

“무슨 일이야?”

그녀가 낮은 목소리로 양악에게 묻고, 그는 여차여차하다며 그녀에게 한바탕 상황을 설명했다.

금하는 쯧쯧 혀를 차며 속으로 생각했다.

절강 총독 호종현이 머리를 정말 잘 썼네. 왜구는 연해에서 도망 다니는 중이고, 아문의 관차들로는 분명 버티기 힘이 들 거야. 소림사 스님들을 하산시켜 왜구와 싸우게 하는 이 방법이야말로 진정 기발한 묘수가 아냐?

“사소는 집을 나간 3년 만에 돌아와 아직 한 달이 되지 않았어. 사 어르신이 어딜 다시 떠나게 두시겠어.”

양악이 낮은 목소리로 그녀에게 귓속말했다.

“이걸 일러 나라에 충성하고 부모에게 효도를 다 하는 이 둘을 전부 잘하긴 힘들다고 하는 것이지.”

금하는 탄식했다.

“아무리 생각해 봐도 우리 어머니가 대의명분을 깊이 이해하신다니까.”

식탁 위에는 요리가 가득했다. 그러나 어른들이 젓가락을 움직이지 않으니, 아랫사람인 그들 또한 조금도 움직일 수 없었다.

점심을 먹지 못한 금하는 배가 고프다 못해 빈속에서 꼬르륵꼬르륵 천둥소리가 났다. 볼 수 있지만 먹을 수는 없으니, 그녀에게는 진정 더할 수 없이 큰 고통이었다.

그때, 사백리가 가복에게 술을 따르라고 지시했고, 양정만은 술을 마실 수 없으니 차로 대신했다.

“오늘은 원래 양악과 금하 두 아이의 송별 자리였습니다.”

술잔을 든 사백리의 표정은 엄숙했다.

“그런데 제가 조금 전 서신 한 통을 받았는데, 절강의 왜구가 사방으로 도망쳐다니고, 백성은 의지할 곳 없이 떠돈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소아와 희아의 은사께서 아이들에게 절강으로 와 함께 왜구에 맞서 싸우자고 하셨습니다. 나와 상관 형님은 조금 전 상의하길, 저 두 아이에게 절강으로 가라 하여…….”

“아버지!”

사소는 사백리가 승낙할 줄은 생각지 못했다. 뜻밖의 이 말에 그는 놀람과 기쁨이 교차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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