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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의지하 (118)화 (118/224)

118화

잠시 말을 멈췄던 그가 깊은숨을 들이키고서야 이어 말했다.

“너희는 육 대인을 상대하기 쉽고, 모시기 편한 사람으로 생각하느냐? 만약 그의 신경을 거스른다면, 그는 너희에게 끝까지 책임을 물을 것이야.”

금하는 감히 대답하지는 못하고 속으로만 생각했다.

‘한 상 가득 차린 무도 육 대인은 맛있게 드셨어요. 어찌 보면 모시는 게 오히려 수월했어요. 대장이 이렇게 육 대인을 싫어하는 건, 육병과 관련 있는 건가요? 설마 대장이 금의위였던 그때, 육병과 사이가 나쁘셨어요?’

“아버지, 알겠습니다.”

양악이 습관적으로 고개를 숙이며 알겠다고 말했다. 금하 또한 재빨리 공손한 태도를 취했다.

“저도 잘 알았습니다.”

양정만은 이마를 짚고, 작은 소리로 혼잣말처럼 중얼거렸다.

“정말 잘 알아들은 것이었으면 좋겠구나. 금하야, 넌 돌아가거라. 네 어머니께 어찌 회신할지 잘 생각해 보렴.”

“네.”

금하가 대답하고 밖으로 나갔다. 양악도 따라 나가려는데, 양정만이 그를 불렀다.

“넌 기다려.”

바깥 금하의 발소리가 점점 멀어지는 것을 듣고서야 양정만은 양악에게 무거운 목소리로 입을 열었다.

“내가 왜 네게 금하와 꼭 함께 가라는지, 넌 아느냐?”

양악은 고개를 끄덕이며 솔직하게 말했다.

“금하가 사고 치지 않게 지켜보고, 위험한 곳이 있으면 가지 못하게 할게요.”

“그것뿐만이 아니다. 가장 중요한 것은 그 아이와 육역이 너무 가까워지지 않도록 하는 거야.”

잠시 멈칫했던 양악은 순간 아버지의 말뜻을 알아들었다.

“아버지가 염려하시는 건, 육 대인이 금하를……? 불가능해요. 육 대인이 어떤 신분인데요. 어떻게 금하한테 강제로 그러는 게 가능해요?”

양정만은 양악을 노려 보며 이 아들놈은 주워온 것처럼 멍청하다고 생각했다.

“나는 금하가 함부로 입을 놀릴까 걱정하는 거야. 너도 마찬가지고! 육 대인을 대할 땐 공경만 있어야 한다. 무슨 뜻인지 알겠느냐?”

양악은 아버지 말씀하시는 게 점점 더 주제와 동떨어져 사람을 곤혹스럽게 한다고 생각했다.

“아버지 도대체 무슨 말씀이 하고 싶으신 거예요?”

“공은 공손하고 또 예의가 있는 것이고, 경은 존경은 하되 가까이하지는 않는 것이다.”

양정만은 거듭 강조했다.

“단단히 이 말을 기억해! 금하를 잘 감시해!”

양악은 닭이 모이를 쪼는 것처럼 쉴 새 없이 고개를 끄덕였다.

“참, 아버지. 사가 형제가 아버지께서 사가로 가셔서 요양하는 일을 또 꺼내더라고요. 사숙과 함께 말동무가 되면, 서로 외롭지 않을 거라 말했어요.”

양정만이 잠시 생각하고는 그래도 고개를 저었다.

“나도 결국은 타인이다. 남의 집에 머무는 게 얼마나 폐가 많겠니. 되었다.”

* * *

다음 날 사가에서 큰 가마를 보내온 건 전혀 생각지 못한 일이었다.

가마꾼들은 모두 체격이 우람한 남자들로 사소의 분부 아래 양정만을 곧장 가마에 태웠다. 양정만은 쓴웃음도 짓지 못한 채 사소의 의지를 꺾지 못하여 가마에 올랐다.

그리고 또 며칠이 지난 후, 성상의 명이 내려졌다.

유 상좌와 그 아랫사람 모두 포상이 있었고, 육역은 종5품 진무镇抚로 승진했다.

또 하루가 지나고, 다시 명이 내려왔으니, 육역을 정4품 첨사佥事로 승진시키고, 절강으로 가 순시하게 한다는 내용이었다.

짧디짧은 이틀 사이, 육역은 놀랍게도 세 단계나 연거푸 승진했다. 축하하러 온 양주의 대소 관원들로 하마터면 관역의 문지방이 다 뭉개질 뻔했다. 그러나 아쉽게도 역졸만이 찻물을 대접하고, 육역은 옷자락도 보이지 않았다.

금하는 이 며칠 대부분 시간을 대소 관원이 보낸 선물을 육역을 대신해 돌려주며 보냈다.

육역은 선물을 선별하여 누군가의 선물은 받지 않겠다 결정해 되돌려 보냈다.

그런 까닭에 금하는 온 양주성을 마차를 몰아 몇 번이나 돌고 돌았다. 아마도 말의 장딴지에는 쥐가 났을 것이다.

이제 막 정오가 지난 시각, 그녀는 식사 시간을 생각하며 서둘러 관역으로 돌아왔다. 그런데 마차를 세워두고 관역 후원의 측문을 들어서자마자 누군가에게 다시 잡혀 마차에 올라야 했다.

“대인? 왜 그러세요?”

그녀가 이상하다는 눈빛으로 육역을 바라보았다.

“지난번 심 부인이 네게 준 약, 가지고 있나?”

육역이 먼저 마차로 들어갔다. 발을 내린 후에야 낮은 목소리로 그녀에게 물었다.

금하는 고개를 끄덕였다.

“성 서쪽 문으로 나가자. 너와 만나러 갈 사람이 있어.”

“누구요?”

“도착하면 알아.”

금하는 어리둥절해졌으나 더는 묻지 못했다. 그의 지시에 따라 마차를 성의 서쪽으로 몰아갔고, 끝내는 울창한 죽림 밖에 멈췄다.

이 죽림을 지나가면 심 부인이 살던 그곳이 나타난다. 금하는 연신 의아해졌다.

혹시 심 부인이 돌아오신 건가?

그녀는 육역을 따라 죽림 안으로 들어갔다.

심 부인이 떠날 때 무슨 수를 썼는지 모르지만, 죽림 안에는 원래 있던 뱀들이 거의 사라졌다. 간혹 한두 마리 보이긴 해도, 높은 둥우리 위에서 기세는 팍 꺾인 모습으로 아래쪽 행인은 거들떠보지도 않았다.

그들은 곧장 죽림의 깊은 곳에 이르렀고, 육역은 머뭇거림도 없이 심 부인의 집으로 들어갔다.

금하는 그 뒤를 따랐다. 집 안은 여전히 텅 비어 심 부인이 돌아온 것은 아닌 듯했다. 그런데 안쪽으로 들어가자 대나무 침상 위에 누군가 누워 있는 것이 보였다.

가까이 다가가 자세히 살핀 그녀는 저도 모르게 크게 놀랐다.

“이, 이 사람……, 아예예요?”

육역은 물처럼 깊게 가라앉은 얼굴로 고개를 끄덕였지만, 금하는 믿을 수 없었다.

“어떻게……, 이렇게 변할 수 있죠?”

눈앞 대나무 침상 위에 누워 있는 아예는 육역의 장포를 덮고 있었다. 그는 얼굴 쪽에만도 여러 곳에 상흔이 있었고, 피부는 이미 빨갛게 부어 짓물렀다. 금하가 자세히 구별해 낼 수 없었다면, 그가 아예라는 것은 전혀 알아볼 수가 없을 정도다.

금하는 장포를 살짝 들어 올렸다. 몸에도 많은 상처가 있었고, 전부 얼굴 쪽 상처와 같은 모습으로 짓물렀다. 비록 이미 깨끗이 씻었다고는 하나, 여전히 매우 지독한 모습이어서 똑바로 들여다보기가 어려웠다.

그녀는 미간을 찡그린 채 쭈그리고 앉아 상처들을 자세히 검사했다. 상처는 모두 깊지 않았고, 치명상 같은 건 없었다. 그리고 가장 중요한 것은 상처 부위에 독이 있다는 점이었다.

그를 해한 사람은 그야말로 고의로 그를 가지고 논 것이 분명했다. 몸은 칼자국이 가득하지만 그의 생명을 위협할 치명상은 없다. 일부러 그의 상처가 천천히 짓무르고, 진저리가 날 만큼 고통을 실컷 당하다 죽게 하려는 의도였다.

“이건 동양인 초리검의 독이네요. 대인이 지난번 중독된 독과 같아요. 그런데 이렇게 많은 상처는……, 설마 그가 원수라도 만난 걸까요?”

금하는 이해하기 어려웠다.

“지독하네요.”

그녀는 품속에서 심 부인이 남긴 약을 꺼내어 그에게 발라주려고 했으나, 육역이 막았다.

“내가 해.”

그가 약을 받았다.

“심 부인의 말은 이 약을 먹고 바르라고 한 거지?”

금하는 고개를 끄덕였다.

“맞아요.”

“넌 가서 물을 끓여.”

육역은 그녀를 내보내고 나서야 장포를 걷어 올리고 아예에게 약을 발랐다. 그 사이에도 아예는 계속 의식불명의 상태였다.

금하가 물을 끓여 들어왔을 때, 상처에는 약이 전부 발려 있었다. 금하는 환약을 온수에 넣어 녹였고, 작은 나무 수저로 조금 조금씩 그에게 흘려 넣었다.

할 수 있는 것을 모두 끝낸 후, 금하는 길게 한숨을 내쉬었다.

“대인, 도대체 어떻게 된 일이에요?”

육역의 미간이 깊게 일그러졌다.

“내가 그를 찾았을 때, 이미 이런 상태였다.”

“설마 이 부근에 아직 동양인이 있어요? 지난번에 제대로 토벌 안 된 건가요?”

그녀는 이래저래 추측했지만 확실한 것은 없었다.

“아예의 무공을 생각하면, 동양인 한두 명으로 이렇게까지 다치진 않았겠죠. 대인께서 그를 찾았다고 하셨잖아요. 그동안 계속 찾으셨던 거예요?”

어떤 일에 있어서 그녀는 실로 감이 매우 빨랐고, 어떤 일에서는 또 놀랄 정도로 둔했다.

육역은 그녀를 바라보며 사실대로 얘기했다.

“얼마 전 그와 얘기를 한 적이 있었지. 그 후 나는 그가 금방이라도 곧 나를 찾아올 거라고 여겼으나, 내내 오지 않았어. 그 후 나는 상관희도 그를 찾고 있다는 얘기를 들었다.”

금하는 아예를 흘끔 바라보고는 육역에게 시선을 돌렸다.

“그와 무슨 얘기를 하셨는데요?”

그러나 육역은 더는 말하고 싶어하지 않았다.

“내가 추측한 것은 엄세번이 무언가를 알아차렸고, 그에게 손을 썼다는 거야. 다만 이해할 수 없는 것은 엄세번이 어떻게 동양인의 독을 갖고 있을까, 하는 것이다.”

“설마 그자는 동양인과 결탁한 걸까요?”

금하는 몹시 놀랐다.

“왜구랑 결탁이라니. 그자는 담도 참 크군요!”

육역은 아무 말도 하지 않은 채 대나무 침상 위 의식불명 상태인 아예를 주시했다. 모든 것은 그가 깨어나야 답을 얻을 수 있었다.

턱을 괸 채 아예를 바라보던 금하는 문득 한 가지 일이 떠올랐다.

“대인, 우리 내일 절강으로 가잖아요. 이 사람은 어떡하죠?”

“데려간다.”

육역은 진작에 생각하고 있었다. 엄세번이 비록 양주를 이미 떠났다고 하지만, 이곳에는 여전히 그의 눈과 귀가 있었다. 아예는 절대 이곳에 남겨둘 수 없으니, 데리고 갈 수밖에 없다. 구체적인 사항은 그도 상황에 맞추어 생각해 둔 터였다.

“내일 너는 마차 두 대를 빌려. 그중 한 대는 선물만 싣고, 양악에게 마차를 호송하게 해. 그리고 그때 아예를 그 마차에 숨겨라.”

금하는 빠르게 육역의 말뜻을 알아들었다.

마차 안에는 많은 선물이 있다. 하나만 잃어버려도 번거로운 일이 될 테니, 관계없는 사람들은 혐의를 벗어나기 위해서라도 마차에는 접근하지 않을 것이다. 게다가 양악이 마차를 호송하게 되니, 모든 것이 매우 적당한 조치였다.

“그는……, 이렇게 중상인데요. 죽으면 어쩌죠?”

아예의 몸과 얼굴은 족히 백 군데는 넘는 상처로 빼곡했다. 일전 육역의 상처보다 훨씬 심각한 상태여서 금하는 그가 버틸 수 없을까 걱정이 되었다.

육역은 매우 오래 침묵하고서야 낮은 목소리로 입을 열었다.

“그의 마음에는 원한이 있어. 이런 이들은 반드시 얼마쯤은 보통사람보다 목숨이 더 질기지. 그의 마음에는 또 사모하는 이가 있다. 그녀를 걱정하기에, 그는 죽기엔 미련이 남을 거야.”

금하는 육역의 말을 듣다가 그의 옆모습을 바라보았다. 갑자기 그에게 간절히 묻고 싶어졌다.

그럼 대인의 마음에는 무엇이 있나요?

질문은 그녀의 입안에서만 빙빙 돌고 돌았다. 하지만 끝내 이런 것을 묻기에는 자신과 그의 신분이 다르다는 것이 마음에 걸렸다. 그래서 그녀는 차마 경솔하게 묻지 못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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