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금의지하 (117)화 (117/224)

117화

경성으로 돌아갈 필요가 없는 핑계를 간절히 바라고 있었으니, 이렇게 하늘이 내려주신 좋은 기회를 금하가 어찌 놓칠 수 있을까.

그녀는 서둘러 육역에게 자신의 충심을 열렬히 드러냈다.

“대인. 소관이 필요한 곳이 있는 이상, 소관은 절대 물불을 가리지 않고 사양치 않겠습니다.”

“네 혼인은?”

“소관은 공문의 사람으로, 당연히 국사가 우선입니다.”

그녀의 말은 바르고 엄숙했다. 걸음을 멈춘 육역이 고개를 기울여 그녀를 흘끔 보았다.

“후회하지 않아?”

“절대 후회하지 않습니다.”

금하는 잠시 멈췄다가 한 마디 더 묻지 않을 수 없었다.

“…혹시 절강에 가는 것은 보조금이 있어요?”

* * *

육역이 근처로 오는 것을 본 양악은 급히 일어나 시선을 내리고 예를 올렸다. 옆에 있던 사소는 줄곧 그를 쳐다보지도 않다가 슥 눈썹을 치켜뜨고 육역을 빤히 바라보았다.

왜 이리 와?

육역이 두루마기를 걷어 올리고 그들 곁에 앉았다. 사소는 심지어 육역이 자신의 맞은편에 앉으리라고는 생각지도 못했다.

“앉아라. 격식 차릴 필요 없다.”

엄연한 신분의 구별이 있으니, 양악은 앉을 엄두가 나질 않았다. 그를 흘끔 바라본 육역은 희미하게 미간을 찌푸렸다.

“내게 널 올려다보라 하는 것인가?”

양악이 서둘러 앉자, 지켜보던 사소는 ‘흥’ 소리를 내며 눈을 흘겼다.

금하는 오히려 육역의 분부도 없는데 자발적으로 돌의자에 앉았다. 속으로는 여전히 보조금을 생각하고 있었으니, 매우 기대에 찬 눈으로 육역을 바라보았다.

하지만 육역은 금하는 못 본 체하며 양악을 향해 돌아섰다.

“내가 심 의원에게 물었는데, 양 선배님의 다리는 회복이 매우 빠르다고 한다. 허나 후일 지병으로 재발하는 것을 막으려면, 아직은 잘 요양해야 하고 긴 여로는 피해야 한다지. 그래서 나는 이미 양 선배님을 북진무사로 차출하였다. 너희는 여기서 그분이 제대로 요양하실 것만 생각하면 되고, 육선문의 일은 걱정할 필요가 없다.”

이 말에 양악은 크게 기뻐했다.

“대인의 세심한 배려에 감사드립니다.”

옆에서 얘기를 듣던 사소가 끼어들었다.

“기왕 양주에 머무시게 되었으니, 차라리 우리 집에 가서 계시는 게 어때? 우리 아버지가 벌써 몇 번이나 말씀하셨잖아. 지금은 사건도 다 해결되었고, 너희도 더 조심할 필요는 없지.”

“그게…….”

양악은 여전히 주저했다.

“너무 폐를 끼치는 걸 텐데요. 아무래도 요양을 하시는 입장이라 다들 불편하실 겁니다.”

사소는 크게 손을 휘저었다.

“괜찮아. 양숙께서 우리 아버지와 함께 계시면, 아버지 기분도 좀 나아지시겠지. 네가 날 도와주는 셈 쳐, 안 돼?”

“이건 제게 결정권이 없어요. 아버지께 여쭤봐야 합니다.”

잠시 조용히 듣던 육역이 입을 열었다.

“요양이란 것은 마음의 편안함이 중요하지. 의관은 환자들이 끊임없이 들락날락하여, 당연히 좋은 곳이라 할 수는 없어. 양 선배와 사 방주가 오랜 세월 좋은 친구 사이시니, 나는 소방주의 제안이 합당하다고 생각한다.”

육역이 그의 의견에 동조할 줄은 생각지 못했다. 사소는 어리둥절해져 말도 못 한 채 그를 바라봤다.

“대양, 난 좋은 생각 같아. 대장은 사 가에 머물며 요양하시고, 우리는 함께 절강으로 가는 거야.”

“절강으로 가?”

양악은 단번에 이해하지 못했다.

“육 대인께서는 절강에 공무를 보러 가신대. 나는 따라가 잔심부름할 거야. 너도 함께 가자.”

금하에게는 내심 의도가 있긴 했다. 양악이 양주에 있으면, 아마도 조만간 적란엽이 이미 죽었다는 것을 알게 될 거다. 그래서 그녀는 그가 여길 떠나 있는 게 좋겠다는 생각을 한 터였다.

“육 대인, 보조금도 있죠?”

육역이 그녀를 흘끔 보고는 태연자약한 모습으로 말했다.

“있다. 매월 은자 네 냥.”

“네 냥이요?”

금하가 양악을 향해 계속 눈짓했다.

이 은자를 포기하는 건 엄청난 손해에 바보짓이야!

하지만 진중한 성격의 양악이 그녀를 일깨웠다.

“너 여기서 또 절강까지 간다고? 너희 어머니가 돌아오라고 재촉하시는 거 잊지 마. 역가의 셋째가 널 기다리고 있어.”

금하는 참지 못하고 손을 흔들어 그의 말을 끊었다.

“기다리든 말든 내버려 둬. 도련님은 은자 버는 게 중요해.”

“너희 어머니…….”

“우리 엄마는 대의명분을 잘 아셔. 내가 은자 번다고 하는데, 막으실 리가 없지.”

육역이 아직 옆에 있는 것이 생각나, 금하는 잊지 않고 한 마디를 보탰다.

“하물며 육 대인이 하시는 일 때문인데, 보조금이 없더라도 우리는 의리상 거절할 수 없잖아, 안 그래?”

육역이 고개를 기울여 그녀를 바라보았다. 얼굴에 웃음이 떠오를 듯 말 듯 했다.

“대인 목마르시죠. 제가 차를 끓여 오겠습니다.”

금하는 그를 향해 방글방글 웃었고, 돌아서 부엌을 향해 갔다.

사소는 이 상황을 보며 줄곧 고개를 저었다. 아무리 해도 이해가 되질 않아 양악에게 물었다.

“쟤는 아문에서 늘 저렇게 오락가락 대충 살아? 이 사람 저 사람 아부하면서?”

양악이 웃으며 답했다.

“그렇지는 않아요. 금하는 육선문에서 인기가 꽤 좋아서 저렇게 애쓸 필요는 없죠.”

“쟤가? 인기가 꽤 좋다고?”

사소는 온통 믿을 수 없다는 표정이었다.

“너 날 속이냐? 쟤가 말하는 건 뭐든 편들어 주잖아.”

“진짜예요. 금하는 호떡 주면 야간 순찰을 도와주고요. 밥 한 끼 사주면, 원거리 출장도 대신 가줘요. 다들 금하를 아주 소중히 여기죠.”

이 말에 육역은 비록 말은 하지 않았으나, 누구도 알아차리지 못하게 미간을 찌푸렸다.

사소는 쯧쯧 고개를 저었다.

“저 계집애는 정말 가난하다고 아주 정신줄을 놓았어!”

양악은 웃으며 이어 말했다.

“특히 날씨가 더워지면, 다들 다투어 금하와 야간경비 순찰을 나가려 해요. 윗분들도 회의할 때 쟤 부르길 좋아해요.”

“그건 무슨 이유로?”

사소는 이것도 이해할 수 없었다.

“금하가 유달리 모기를 끌어요. 생각해 봐요. 몹시 뜨거운 여름날에 안에 사람이 가득 있는데, 모기가 아무도 물지 않고, 오직 쟤만 물거든요. 쑥을 7, 8번 태우는 것보다 유용하죠.”

양악이 말하는 사이, 금하의 낭랑한 목소리가 들려왔다.

“대양, 너 또 내 모함하지!”

그녀는 다반을 탁자 위에 놓았다. 먼저 육역에게 한 잔 따라 준 후, 차례대로 사소와 양악을 주고, 마지막으로 자신에게도 한 잔 따랐다.

육역은 찻잔을 들지 않고 그녀를 응시하며 물었다.

“넌 정말 호떡 하나를 위해 야간 순찰을 가나?”

금하는 당연히 그렇다며 고개를 끄덕였고, 연이어 헤헤 웃었다.

“호떡 때문만은 아니고요. 밤이 되어야 대도를 잡을 수 있어서예요. 대인 아시죠. 육선문에서 보통 이름 좀 있는 대도는 모두 현상금이 걸려있어요. 전 매일매일 야간 순찰 나갈 수 있기를 몹시 바란답니다.”

“그렇지. 너만 대단하고, 다른 사람은 모두 바보야.”

사소가 코웃음을 쳤다.

“넌 힘들지 않아?”

“오빠, 그건 도둑이 아니야. 그건 말 그대로 죄다 은자야. 은자를 줍는 일인데 오빠라면 피곤하겠어?”

그녀는 고개를 저었고, 옆에 있던 육역은 미간을 찡그렸다.

“밥 한 끼에 넌 바로 먼 곳으로 출장을 가나?”

“출장은 다 별도의 보조금이 있어요! 제가 또 그렇게 어리석진 않거든요.”

금하는 진지한 시선으로 육역을 바라보고 있었다. 그 의미는 이젠 말하지 않아도 알 수 있었다.

눈부시게 반짝이는 은자를 제가 어떻게 거부하겠어요?

육역은 묵묵히 시선을 돌렸다. 길고 긴 한숨을 슬며시 내쉬었다.

* * *

금하의 예상대로 그녀가 절강으로 간다고 한 것을 양정만은 매우 불쾌해했다. 왜 사전에 자신과 상의하지 않고 제멋대로 육역에게 승낙했는지에 대해 그녀를 거듭 책망했다.

“네 어머니께서 연이어 편지를 보내신 건 바로 네가 빨리 돌아오기를 바라셨기 때문이다. 그쪽에서는 이미 혼사 얘기가 다 끝났는데, 네가 이러면 나는 네 어머니께 어떻게 설명하라는 것이냐?”

양정만이 말했다.

대장, 당사자인 제가 그 혼인을 하고 싶지 않아서 돌아가고 싶지 않은 거예요!

금하는 속으로야 혀를 날름 내밀었지만, 얼굴에는 난처한 모습만 지어 보였다.

“전 이미 육 대인 말씀 받아들였어요. 게다가 우린 현재 북진무사로 차출되었고, 육 대인이 지금은 우리 직속 상관이시잖아요. 상관이 말씀하시는데 제가 어디 거절할 여지나 있나요.”

“내가 분명히 그와 얘기를 했어. 너는 혼사가 이미 정해져 경성으로 돌아가 혼인을 해야 한다고. 그가 어떻게…….”

양정만은 미간을 찡그렸다.

“그분은……, 분명 공무가 중요할 테죠. 어디 혼사 같은 작은 일을 고려하시겠어요.”

금하는 육역 대신 열심히 해명했다.

“게다가 절강의 왜구는 흉하게 날뛰어. 만일 뜻하지 않은 사고라도 생긴다면…….”

양정만이 양악을 향해 돌아서 분부했다.

“네가 금하를 따라가. 이 아이를 잘 감시해!”

양악은 다소 머뭇거렸다.

“하지만 아버지 다리가……. 제가 어떻게 마음 놓고 자리를 비워요.”

“나는 거의 다 나았다. 마음 놓지 못할 게 뭐가 있니.”

양정만은 매우 걱정스러운 시선으로 금하를 바라봤다.

“오히려 쟤가 걱정이야. 넌 꼭 금하를 단단히 지켜봐. 덤벙거려 무슨 일이 생겨선 안 돼.”

그녀는 대장의 말에 줄곧 다른 뜻이 느껴져 기어이 참지 못했다.

“대장, 예전엔 제가 혼자 출장 가는 게 흔히 있는 일이었어요. 어째서 이번에는 이렇게 마음을 놓지 못하세요? 대장은 대체 무얼 걱정하세요?”

양악도 아버지가 사소한 일을 크게 만드는 것 같다고 생각했다.

“맞아요, 아버지. 금하는 혼자 일하러 가는 것도 아니고, 육 대인을 따라가는 거예요. 무슨 일이 생길 리가 없어요.”

“바로 그 때문에……!”

양정만이 그들을 보는 눈빛은 그야말로 바보 둘을 보는 듯했다.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