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3화
이건 그녀의 탓이 아니었다. 엄세번의 이 배는 정말 괴상망측하여 그녀는 내내 경계해야 했고, 아무것도 먹을 수가 없었다. 그렇게 사경 (*새벽 1-3시.)이 지나 새벽까지 왔으니, 배가 고파 뱃속에서는 꼬르륵 소리가 나는 것이 당연한 게 아닌가.
“내가 저들에게 먹을 것을 가져오라 하마.”
육역이 일어나려 했지만, 금하에게 붙들렸다. 그녀는 매우 긴장하여 손가락으로 그리는 것에도 힘이 잔뜩 들어갔다.
‘그들이 음식에다 뭔가 섞을 수 있어요.’
육역 또한 손으로 써 대답했다.
‘연근산도 다 먹었으면서 뭘 또 겁내?’
육역은 그녀의 손에 글을 써두고 반쯤 몸을 일으켜 침상 기둥 옆의 방울 줄을 당겼다.
“먹고 싶은 게 있어?”
그가 물었다. 뭐라 해도 육역이 옆에 있으니, 금하의 담도 커졌나 보다. 그녀는 눈이 초롱초롱해져서 답했다.
‘뭐든 다 돼요?’
고개를 끄덕인 육역은 뭐든지 한번 말해 보라는 뜻이 담긴 눈빛으로 바라봤다.
‘전 먹고 싶은 게……, 면이요! 우육면!’
그녀는 꽤나 흥분해 있었다.
이때 시녀가 문을 두드리고 들어왔다. 육역이 우육면 하나를 가져오라고 시키자, 대답한 시녀는 잠시 후, 정말로 뜨끈뜨끈한 우육면을 들고 와 탁자에 놓았다.
금하는 놀라 감탄했다.
‘주방에선 계속 우육탕을 준비해 두고 있나 봐요. 정말 편하다.’
한바탕 칭찬을 하고서야 그녀는 뒤늦게 문제가 있다는 걸 깨달았다. 연근산을 마신 탓에 그녀는 아예 조금도 몸을 움직일 수가 없었다.
팔도 들어 올리지 못하면서, 어떻게 면을 먹지?
금하가 근심하는 사이, 육역은 이미 그녀를 안아 일으키고, 등을 기대어 앉혀 놓았다. 그리고 바로 면 그릇을 들어 젓가락으로 면발을 감아 후후 불어 열기를 식혔다.
“입 벌려. 멍하니 뭐해?”
“…….”
지금은 아무리 더 좋은 방법이 없다고 해도, 육역의 존귀한 신분을 생각한다면 그에게 이걸 먹여달라고 할 수는 없는 일이다.
금하는 배고픔을 애써 참았다.
‘그냥 우선 놔두세요. 제가 움직일 수 있으면 그때 먹을게요.’
“빨리. 팔 아프다.”
그의 어조는 의심할 여지도 없이 단호했다.
이때 금하는 정말 후회가 극에 달했다.
아, 진작 이럴 줄 알았으면, 대추떡이나 계화떡으로 달라고 할걸. 아니, 차라리 딱딱한 찐빵이라도 괜찮잖아. 왜 굳이 면을 먹고 싶다고 해서 이런 난처한 상황을 스스로 만드냐!
“입 벌려라!”
그가 그녀를 꼼짝도 없이 바라보니, 금하는 입을 벌릴 수밖에 없었다.
“맛이 어때?”
그의 물음에 그녀는 고개를 끄덕였다.
‘좋아요.’
하지만 하고 싶던 다른 말은 하지 않았다.
그녀가 큰 이후로 어머니도 그녀에게 먹여 준 적이 없었다. 지금 육역이 이렇게 그녀에게 먹여 주는 것이 금하는 조금 어색하면서도, 어린 시절로 돌아간 것 같아 마음 깊은 곳이 몽실몽실 따스해졌다.
육역은 천천히 먹여 주고, 금하도 천천히 면을 씹어 넘겼다. 그렇게 어느새 향이 진한 우육면 한 그릇은 벌써 바닥을 보였다.
‘연근산의 효과는 길지 않아. 한숨 자고 깨면 약효는 아마 사라질 거다.’
육역은 그녀를 처음처럼 자리에 눕혔다. 자신도 똑같이 옆에 누워 그녀의 손에 글을 써 말했다.
- 이런 곳에서…….
금하는 원래 하고 싶던 말이 있었다.
- 이렇게 함께 누워 있는데.
하지만 조금 머뭇거리던 그녀는 말하지 않았다.
- 제가 어떻게 잘 수 있어요.
육역은 더는 다른 말 없이 그녀의 손을 자신의 손으로 지그시 감쌌다.
대인 손은 이상할 만큼 따뜻해. 아마 열이 나서 그런가 봐.
금하는 내일 성으로 돌아간 후, 꼭 잊지 않고 심 부인의 처방대로 약을 지어 그에게 마시게 할 거라고, 생각했다.
음, 그리고……. 금하는 지치고 피곤하여 작게 하품했다.
그다음에…….
하지만 이제 그다음은 없었다. 그녀는 곤한 잠에 들었다.
옆에서 들리는 평온하고 고른 숨소리에 육역은 돌아서 그녀를 바라봤다.
이 배 위에서,
그자의 시선 안에 있음에도,
모든 것이 그를 혐오스럽게 하는 것은 아니라고, 육역은 생각했다.
* * *
다음날 이른 아침, 금하가 깨어났을 때, 약 기운은 이미 가신 상태였다.
하선하여 성으로 돌아갈 준비를 하던 두 사람에게 시녀는 주인님은 아직 휴식 중이라 배웅할 수 없다며, 두 사람을 보낼 작은 배가 이미 준비됐다고 말했다.
작은 배는 좌우로 흔들거리며 루선을 떠났다.
선실에 앉은 금하는 다른 일이 생기지 않았음에 속으로 안도의 한숨을 삼켰다. 그때 육역이 상당히 자연스럽게 그녀에게 기대어 어깨 위에 머리를 놓았다.
멈칫한 금하는 그가 아직 열이 나는 걸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문득 들었다. 자연스레 만져 본 그의 이마는 여전히 뜨거운 것이 역시 아직은 열이 나고 있었다.
밤새 열이 났었으니, 그는 분명 견디기가 몹시 힘들 터였다.
금하는 차마 육역이 기댄 몸을 움직이지 못했다. 대신 손만 움직여 선실의 발을 내려 호수에서 불어오는 바람을 막았다.
* * *
작은 배는 수로를 따라 성으로 들어와 관역에서 거리가 가장 가까운 나루터 기슭에 닿았다. 배에서 내린 금하는 우선 처방전대로 약을 지은 후에야 관역으로 돌아와 서둘러 약을 달였다.
그 시각, 흰 비둘기 한 마리가 육역의 창가에서 구구구, 구구구 하며 왔다 갔다 하고 있었다. 모습을 보아선 이미 한참을 기다린 것 같았다.
비둘기를 안아 든 육역은 예전대로 비둘기 다리의 작은 대나무 통을 풀었다. 그런 후 비둘기를 대나무 새장에 풀어 놓고, 깨끗한 물과 먹이를 먹였다. 그렇게 마지막에야 대나무 통 안의 종이를 꺼냈다.
위에 쓰인 필적을 알아본 그는 양미간을 찌푸렸다. 서신은 아버지가 쓰신 것이었다.
육병이 다른 이에게 시키지 않고, 직접 글을 썼다는 것은 이 일이 상당히 중요하다는 의미였다.
육역은 아버지의 서신을 바로 읽기 시작했다.
절강 순무이자 총독인 호종현은 왜구의 수령인 왕직을 죽이지 말아 달라고 반복적으로 상서를 올렸다. 그로 인해 뇌물을 받고 왜구를 비호 방임하였다고 탄핵당했지. 성상께서는 이에 대해 적당히 넘기지 않겠다며 이 일을 철저히 조사하라고 밀령을 내리셨다.
허나 이 일은 다소 문제가 있다. 호종현이 파면되어 감옥에 들어가면, 절동浙东과 절서浙西, 양절两浙에는 분명 대혼란이 일어날 것이다.
너는 최대한 빨리 양주의 사건을 매듭짓고, 절강으로 가서 전권을 책임지고 이 사건을 철저히 조사하거라.
아버지가 비록 명확하게 말하진 않으셨다고 해도, 자식이 되어 글자에 담긴 뜻을 어찌 모를 수 있을까.
다행인 것은 양주의 이 사건은 이미 끝이 가까워지고 있었다.
깊이 숨을 들이켠 육역은 종이 위의 호종현이라는 세 글자를 다시 바라봤다.
호종현, 자는 여정, 호는 매림으로 명의 남직이南直隶 (*명대 경부(京府)에 직속되어 있던 지구. 북경에 직속되어 있던 지구를 ‘北直隶’, 남경에 직속되어 있던 지구를 ‘南直隶’라고 함.)인 휘주부 적계현 사람이다. 진사 출신으로 조정에 나아가 먼저 익도지현, 여요지현에 임명되었고, 후에 어사순안선부로서 대동 등의 변경 요충지를 방어하며 군기를 정돈하고, 변방을 견고히 했다. 그리고 후에 절강순안감찰어사에 임명되어 떠나기 전 맹세문을 썼다.
“내가 이번 직무를 맡음에, 왜구 수령 왕직, 서해를 붙잡지 않고, 동남을 안정시키지 않으면, 다시 경성으로 돌아오지 않을 것을 맹세한다.”
조문화의 강력한 추천으로 병부좌시랑 겸 도찰원좌첨도어사로 승진하였고, 또한 절강총독 직무를 더하게 되어, 절강, 남직이와 복건 등의 병무를 총감독하고, 강남, 강북, 절강 등의 성에 대군을 파견할 수 있게 된다.
* * *
금하가 탕약을 들고 들어왔을 때, 육역은 마침 서신을 촛불에 올려 태우고 있었다.
“대인, 약 드세요.”
육역은 금하가 탁자에 놓은 사발을 들어 대충 후우 불고는 단번에 약을 다 마셔버렸다. 그녀는 그가 미간을 내내 찡그리고 있는 것을 유심히 보고는 방금 태운 서신이 그다지 좋지 않은 소식이거나, 약이 너무 써서 그런가, 나름 짐작을 했다.
“아.”
약사발을 놓고도 육역은 여전히 무언가 생각하는 모습이었다. 그런 후 고개를 돌려 그녀에게 분부했다.
“아예는 우리가 모든 정황을 알아차렸다는 것을 몰라. 이건 얻기 힘든 기회지. 넌 절대 그의 앞에선 우리가 알았다는 이 사실을 드러내선 안 된다. 모든 것은 평소와 같아야 해.”
금하는 바로 그의 말을 이해했다.
“아쉽게도 아예 그자는 말수가 정말 없어요. 그자의 입으로 뭔가를 듣는 건 쉽지 않아 보여요.”
“뱀을 잡으면, 세 치 아래 있는 급소를 치라고 했지. 그의 급소를 찾으면 처리하기가 쉬워.”
육역이 담담하게 말했다.
“그의 급소…….”
금하는 지난번 왜구를 만났을 때를 다시 떠올렸다. 그때 아예는 상관희를 감싸며 자신이 암기에 대신 맞았다.
“그는 상관 언니를 매우 아끼고 있는데, 거짓으로 그러는 것 같진 않아요.”
“거짓인지의 여부는 시험해 보면 안다.”
금하는 문득 한 가지 일이 생각나 품속에서 작은 도자기통을 꺼냈다.
“이건 심 부인이 제게 남기신 건데, 왜구의 암기 독을 치료할 수 있다고 해요. 대인께서 다음에 상관 언니를 만나면, 몇 알 주셔도 괜찮아요.”
“왜 직접 주지 않고?”
육역의 물음에 금하는 풀 죽은 목소리로 답했다.
“적 낭자의 일로, 언니는 제가 자신을 속였다고 생각해요. 아마도 더는 절 믿을 리 없겠죠. 하지만 대인의 신분으로는 당연히 언니를 속일 거라 생각하지 않을 거예요.”
“그거야 모를 일이다. 사람을 속이고, 안 속이고는 사실 신분과 아무런 관계가 없어.”
웃으며 말하던 육역이 갑자기 옷을 벗고 요대를 풀기 시작했다. 금하는 뜻밖의 모습에 멍하니 그를 바라보고 있었다.
“뭐 하고 있어. 옷상자에서 옷을 꺼내 와.”
그는 고개 숙여 몇 군데 냄새를 맡고는 미간을 찡그렸다.
“술 냄새가 진동하는군. 어쩐지 머리가 어지럽고 무거웠어.”
“머리가 어지럽고 무거운 건 지금 열이 나기 때문이에요.”
금하는 옷상자로 가서 그의 옷가지를 살폈다. 그런데 고개를 돌린 순간, 가장 안에 입는 속옷까지 모두 벗어버린 육역이 보였다.
금하의 얼굴이 단번에 확 달아올라 붉게 물들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