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0화
금하는 희미하게 찡그린 육역의 눈과 정면으로 마주쳤다.
“대인?!”
“네가 왜 여기 있어?”
루선에서 그녀를 만났다는 것에 대해, 육역은 다소 충격을 받은 듯했다.
금하는 사실대로 털어놨다.
“제가 성으로 돌아갈 때, 성문 입구에서 고경의 부하 둘을 만났어요. 그들이 저를 보고자 하시는 대인이 있다며 저를 여기로 보냈죠. 그런데 본인들은 배에 타지 않더라고요.”
다행이다. 그녀 스스로 무모하게 뛰어든 것이 아니야.
육역은 속으로 한숨을 돌렸다. 그러나 이곳의 주인이 그녀를 오라 한 것이 대체 무슨 의도인지 몰라 그는 저도 모르게 다시 눈썹을 치켜올렸다.
“대인, 이 사람 인형 좀 보세요. 그걸 엄청 닮았죠……. 분명히 그거예요.”
금하가 그의 소매를 잡아당겼고, 육역은 당연히 그녀가 말하고 싶은 것이 무엇인지 알고 있었다.
이 사람 인형은 만든 솜씨와 장치로 보아 ‘애별리’보다 더욱 정교하고 세밀했다. 그러나 이곡동공异曲同工(*연주하는 곡은 다르지만 그 절묘함은 거의 같음을 뜻함.), 결국은 같은 이의 손에서 만들어진 것이었다.
육역은 속으로 한숨을 내쉬었다. 금하의 손에서 소매를 빼낸 대신 자신의 손으로 그녀의 것을 단단히 감쌌다.
그녀의 손은 서늘했고, 미미하지만 땀까지 배어났다.
놀란 거구나.
육역이 고개 숙여 금하를 슬쩍 보니, 그녀는 사람 인형을 뚫어지게 바라보며 입술을 힘껏 깨물고 있었다.
바로 이때, 그동안 조용히 서 있던 사람 인형이 갑자기 움직였다. 앞을 향해 한바탕 돌진하고는 이내 찰칵찰칵 거리며 왔던 길을 따라 뒤로 돌아나갔다. 동시에 몇 겹으로 늘어졌던 선실의 장막도 순서대로 위로 올라가기 시작했다.
금하는 고개를 들어 선실의 꼭대기 쪽을 바라보았다. 어디서 제어하는지는 모르지만, 둥근 관이 제각기 천천히 회전하며 휘장을 말아 올리고 있었다.
선실의 앞쪽에서도 한꺼번에 많은 사람이 쏟아져 들어왔는데, 모두 맨발의 소녀들이었다. 사뿐사뿐 걷는 한 줌도 안 되는 발목은 섬세하고 깨끗하여 송이송이 여린 작은 꽃이 꽃망울을 터트린 것 같았다.
그렇게 마지막에서야 한 사람이 느린 걸음으로 그들에게 걸어왔다.
* * *
“소관 좌시랑 엄 대인을 뵙습니다.”
육역이 그 사람을 향해 몸을 굽혀 예를 올렸다.
좌시랑 엄 대인……? 엄세번!
넋이 나갔던 금하 또한 가까스로 정신을 차려 황급히 예를 올렸다.
“……소관 엄 대인을 뵙습니다.”
엄세번의 어조는 온화했다.
“너무 예의를 차릴 필요는 없지. 언연言渊, 자네가 사람을 통해 보내온 추응도를 내가 감정해 봤는데, 확실히 진품이야. 구경 그 자식이 몰래 숨겨놓았을 줄은 생각지도 못했군. 어쩐지 내가 몇 년을 찾아도 못 찾는다 했다……. 왜 아직 자리 안내를 안 하느냐!”
그의 뒷말은 시녀들에게 하는 말이었다.
이내 시녀가 홍목으로 만든 반원형 의자 두 개를 옮겨와 육역과 금하에게 앉으라 했다. 엄세번 또한 부드러운 방석이 깔린 태사의에 기대어 앉았다.
원래 이 객실은 텅 비어 아무것도 없었다. 하지만 시녀들이 한 바퀴 지나간 후에는 차탁 위에 따뜻한 차와 각종 다과 등이 놓였다. 이 일련의 과정이 진행되는 동안, 주변에는 미세한 잡음조차 나지 않았다.
금하는 차를 마시는 척하며 엄세번을 슬그머니 바라보며 자세히 살폈다.
엄세번은 경성 안에서 모르는 사람이 없는 인물이었다. 그런데 오랫동안 경성에 살던 그녀도 양주에 와서야 그를 처음 보았다.
경성의 소문에 의하면, 엄세번은 생긴 것이 흰 피부에 살이 쪄 목이 짧은 뚱뚱보였다.
지금 금하가 보기엔 피부가 희고 깨끗한 것은 사실로 그 옆에 선 시녀의 피부보다 더욱 희었다. 하지만 체격은 육역보다 약간 작으나, 균형이 잡혀있어 키 작은 뚱보라고는 도저히 말할 수 없었고, 피둥피둥 살이 쪘다는 등의 풍문과는 더욱 거리가 있었다.
그는 외눈이라는 장애가 있었다. 두 눈은 비록 모두 뜨고 있으나, 오른쪽 눈이 왼쪽 눈보다 혼탁해 보였고, 게다가 눈알은 한결같이 한 곳으로 고정이 된 듯하여 무척 기이한 곳이 있었다.
“어린 아가씨, 내 눈을 보고 싶으면 조금 더 가까이 와서 봐도 돼.”
태연자약하게 차를 마시던 엄세번이 왼쪽 눈으로 금하를 흘끔 봤다.
금하는 황급히 시선을 거두고 고개를 숙였다.
“천만의 말씀입니다, 대인.”
그녀를 거들떠보지도 않던 육역이 엄세번을 향해 말했다.
“이 아이는 육선문의 어린 포쾌일 뿐으로 행동거지가 거칠고, 또 세상 물정 같은 걸 겪은 적이 없지요. 이 자리에선 눈에 많이 거슬리니, 배에서 내려보내는 것이 어떠신지요?”
이 말에 엄세번이 웃었다.
“이런, 급한 일이 아니네. 이 어린 아가씨는 비록 다듬어지지 않았지만, 그래도 재미가 좀 있어. 내가 듣기론 아가씨가 사건조사에 매우 능력이 있다지……. 어린 아가씨, 이리 와.”
일어선 금하는 조심스럽게 두어 걸음만 나아갔고, 엄세번과 네, 다섯 발자국 떨어진 곳에서 멈춰 움직이지 않았다.
“대인, 분부가 있으십니까?”
“내 오늘 이 모습과 차림새로 보아……, 너는 무엇을 알아낼 수 있느냐?”
그가 눈을 가늘게 뜨고 미소를 지었다. 흥미가 철철 넘치는 얼굴로 그는 심지어 자신의 포까지 일부러 위로 걷어 보였다.
“내가 신발도 보여주마.”
“…….”
순간 그녀는 당황했다. 설마하니 엄세번이 그녀에게 자기 자신을 분석해보라 나올 줄은 상상도 못 했던 것이다.
물론 엄세번의 신분과 성정을 감안한다 해도, 그의 앞에서 대체 어느 선까지 얘기할 수 있고, 할 수 없는지 그녀는 도무지 갈피를 잡을 수가 없었다.
그때, 육역이 옆에서 웃으며 끼어들었다.
“대인, 이 아이가 대인 앞에 서서 다리까지 떨고 있는 걸 보시죠. 속으로는 어찌 될까 몰라 두려워하고 있는데, 어디 조리 정연한 말을 할 수 있겠습니까.”
금하는 바로 그의 말을 따라 멋쩍은 모습을 만들어 보였다.
“소관, 소관이 어찌 대인을 피의자와 동일시할 수 있을까요. 저는 도저히 할 수 없는 일입니다.”
엄세번이 잠시 생각하더니, 그 곁의 시녀를 가리켰다.
“그럼 얘! 이 여자에 대해 말해봐라. 더는 거절할 수 없다.”
금하는 엄세번이 가리킨 시녀를 바라봤다. 그녀는 나이가 16세를 넘기지 않은 것으로 보였고, 맑은 눈동자와 하얀 이로 생긴 것이 매우 예뻤다.
“자세히 볼 수 있도록 저 아가씨의 곁으로 가.”
엄세번이 시녀를 밀었다. 그런데 그의 손이 시녀의 몸에 닿았을 때, 금하는 시녀의 얼굴에 순간 스친 긴장과 등이 뻣뻣하게 굳은 것을 놓치지 않았다. 분명 그녀는 엄세번을 아주 많이 두려워했고, 그가 닿는 모든 순간이 그녀에게는 매우 고통인 것이 확실했다.
그 시녀는 금하의 앞으로 다가왔다. 엄세번을 등진 시녀의 작은 사슴 같은 커다란 눈에는 감추지 못한 당황이 드러났다.
그리고 금하는 자신이 이 시녀의 몸에서 어떤 비밀이라도 알아낸다면, 아마 그녀는 그것으로 중벌을 받을 수도 있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소매로 반쯤 가려진 아래로 그녀의 새하얀 손목 위에는 옅은 흔적이 몇 군데 남았다. 이건 그녀의 두 손이 누군가에게 묶였었다는 것을 뜻하는 것이다.
시녀가 옷을 벗어 볼 수 있다면, 금하는 아마 그녀의 몸에서 더 많은 흔적을 찾을 수 있을 것이고, 그럼 시녀가 대체 어떤 학대를 받고 있는지도 알아낼 수 있었다.
그러나 금하는 지금 시녀의 눈을 보고 있을 뿐, 다른 건 무엇 하나 그녀에게 묻지 못했다. 다른 요구를 한다는 건 더욱 불가능한 일로, 그녀는 그저 시녀의 손을 잡아 손바닥과 손가락을 세심히 만져보고, 또 들어서 냄새를 맡아볼 뿐이었다.
“어떠한가? 뭘 알아냈지?”
엄세번이 물었다.
금하는 조용히 숨을 들이켰다. 속으로는 이미 어찌 말을 할지 생각을 굳히고 있던 중이다.
“이 아가씨는 다도에 재능이 있고, 자수나 옷 마름 등의 일은 조금 부족하지요. 최근 그녀는 아마 무슨 일에 실수했을 겁니다. 화로를 엎은 것일 수도 있고, 진귀한 다완을 깨뜨렸을 수도 있는데, 그 때문에 벌을 받았습니다. 그리고 또, 그녀가 머무는 선실의 창문은 아마도 화장대의 우측에 있을 것입니다.”
또한 그녀는 오른손을 다쳤을 테죠.
금하는 마지막 말은 입 밖에 내지 않았다. 벌을 받은 일 또한 일부러 틀리게 말했다. 그러자 다 들은 엄세번은 시녀를 물러나게 한 후, 깊은 흥미가 담긴 눈빛으로 물었다.
“그래, 넌 어찌 그런 걸 알아냈지?”
“하는 일이 다르면, 손 모양도 달라집니다. 특히 손바닥의 굳은살이 생긴 자리는 손가락의 굳은살과도 구분이 됩니다.”
금하는 사실대로 전했다.
“수낭绣娘은 항상 바늘을 사용해, 그녀들은 엄지와 식지의 손가락 끝에 단단한 굳은살이 박이죠. 이건 무예인들의 손에 못이 박이는 것과도 같은 이치입니다. 이 아가씨의 엄지와 식지에는 굳은살이 없습니다. 그래서 저는 그녀가 바느질을 그리 오래 한 적이 없다고 판단할 수 있었습니다.”
“다도에 재능이 있다는 것은?”
“그녀의 옷소매에는 색으로 보아 찻물이 든 곳이 보입니다. 또한 그녀의 손 등에는 데인 상처가 있어 미미하게 불그스름합니다. 물론 이건 그녀가 부엌에서 일을 도울 때 데인 것일 수도 있습니다.”
잠깐 말을 멈춘 금하는 숨을 훅 들이키고, 계속 말을 이었다.
“그래서 저는 손에 남은 냄새를 자세히 맡아 보았지만, 그건 은은한 다향으로 부엌의 기름, 비린내, 파 마늘 같은 잡내가 아니었습니다.”
엄세번은 매우 만족스러운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벌을 받은 일은 어찌 아느냐고 물을 필요가 없지. 분명히 손목 위의 상흔 때문이겠지?”
엄세번이 ‘손목 위의 상흔’이라 말할 때, 그 시녀는 긴장하여 꿀꺽 침을 삼켰다. 그리고 금하는 확신할 수 있었다. 시녀는 매우 놀라고 당황하여 얇디얇은 봄옷 아래의 솜털이 전부 곤두섰을 것이다.
“대인 영명하십니다.”
금하가 정중하게 말했다.
“마지막으로 말해봐라. 넌 어떻게 창이 화장대의 우측에 있다는 걸 알았느냐.”
엄세번이 다완을 옆쪽으로 건네자, 그 시녀가 황급히 몸을 굽혀 받았다.
“이 아가씨 오른쪽의 귀밑머리는 한 올도 흐트러짐이 없이 왼쪽 귀밑머리보다 훨씬 단정하고 바르지요. 이 계절에는 창밖의 빛으로 단장할 때, 종종 이런 일이 일어나곤 합니다.”
엄세번이 칭찬의 뜻이 가득한 눈빛으로 그녀를 바라봤다.
“이 아이들이 창으로 들어온 빛으로 치장을 했다라……. 이 부분은 내가 전혀 생각하지 못했군.”
육역은 옆에서 내내 조용히 듣고 있었다. 그는 시선이 간혹 금하를 향했을 뿐, 그다지 흥미도 없어 보였다.
“언연, 이번 육선문과 공동으로 처리한 사건은 이 어린 아가씨가 옆에 있어 분명 아주 재미가 있었겠어.”
엄세번이 육역을 향해 돌아서 웃었고, 육역 또한 옅게 웃어 보였다.
“그만저만합니다만, 가끔 상당히 귀찮을 때가 있긴 하지요.”
“여인이란 말야. 귀찮아야 하지. 안 귀찮으면 어찌 여인이라 부르나.”
엄세번이 하하하 웃기 시작했다. 손을 내저어 금하에게 돌아가 앉으라 일렀다.
엄세번의 웃음은 가슴까지 진동하며 울렸다. 또한 둔중하고 답답하게 울리는 소리는 그가 속에 무언가를 숨기고 있는 것 같은 기분이 들게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