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금의지하 (109)화 (109/224)

109화

“무슨 일이야?”

양악은 그가 어젯밤 겪은 일을 처음부터 끝까지 자세하게 설명한 후, 긴장한 눈빛으로 금하를 응시했다.

“넌 이 일이 진짜라고 생각해? 내가 깨어났을 땐 강변이었어. 그래서 난 이게 꿈이라 생각하긴 했지만.”

금하는 줄곧 그를 멍하니 쳐다보고만 있었다.

아예는 적란엽의 시신을 버리기 전 경악스럽게도 양악을 겁주러 온 거다. 그건 금하가 꿈에도 생각지 못한 일이었다.

그녀는 저도 모르게 고개를 돌려 육역을 바라보았다. 그는 별다른 내색을 하지 않았기에, 그의 표정에서 무언가 기대하긴 어려웠다.

한참 후에야 금하는 난처해 하며 입을 열었다.

“분명 꿈일 거야. 별일 아니겠지. 꿈은 모두 반대잖아.”

양악은 매우 곤혹스러워했다.

“내가 나중에 기억나는 대로 그 골목을 따라 가봤어. 근데 끝까지 가봐도 아무것도 없었거든. 설마 정말 꿈일까?”

“아마 네가 적 낭자를 너무 걱정해서 그럴 거야. 뭐더라, 낮에 생각한 것은 밤에 꿈으로 나타난다잖아. 그래서 그랬겠지.”

금하는 그를 위로했고, 잠시 지켜보던 육역은 고개를 저으며 그길로 가버렸다.

양악은 그 자리에 서서 넋이 나갔다. 금하도 지금은 양악을 어쩔 방법이 없어 그저 그와 함께 서 있었다. 한참 후, 양악이 또 그녀를 보고는 탐문하듯 물었다.

“너도 정말 꿈이라고 생각하지?”

제 발이 아무리 저려도 금하는 연신 고개를 끄덕였다.

“응. 그렇게 생각해!”

양악이 깊게 숨을 들이켜고는 돌아서 걸어갔다.

그 뒤에서 금하는 속으로 한숨을 돌렸지만 걱정은 더욱 깊어졌다.

……이렇게 일이 복잡해지고, 뒤처리가 어려운데도 시신을 ‘애별리’에 놓았어. 그 목적이 오직 양악을 겁주기 위해서 뿐일까.

아니, 이건 분명 경고였다. 양악을 향해 적란엽에게 관심을 두지 말라 경고하는 것이다. 그러나 적란엽은 분명히 말한 적이 있다. ‘그’가 자신을 데려가길 원치 않는다고…….

내가 가질 생각은 없지만, 그렇다고 남이 손대게도 두진 않는다?

금하는 미간을 찡그린 채 이 모든 것의 배후 조종자는 분명 괴팍한 성격임이 틀림없다고 생각했다.

그 사람은 ‘애별리’라는 이런 극단적인 형구를 그녀에게 여러 번이나 보게 했다.

그는 도대체 무슨 말을 하고 싶은 걸까? 단지 나를 갖고 놀기 위해서였을까?

그날 저녁, 금하는 잊지 않고 심 부인이 빌려준 옷을 깨끗이 빨았다.

다음 날 그녀는 그늘에서 말린 옷을 꼼꼼하게 개고 잘 싸서는 말에 박차를 가해 심 부인이 사는 곳으로 서둘러 달려갔다.

그러나 이미 집은 사람이 떠나고 없는 빈집이었다.

그녀는 텅 빈 집에 서 있었다. 이곳에서는 짧디짧은 하룻밤을 보냈을 뿐이건만, 왜 그런지 모르게 마음은 섭섭함이 가시지 않았다.

어제는 이곳에서 개숙, 심 부인과 이야기로 웃음꽃을 피웠다. 그런데 지금은 언제가 되어야 서로 만날 수 있을지도 알 수가 없었다. 어쩌면 심 부인 같은 이런 뛰어난 고수는 다시 만날 일도 없을지 모른다.

그녀는 느린 걸음으로 걸어 육역이 치료받던 방으로 갔다. 그가 누웠던 침상이 보여 금하는 저도 모르게 얼굴을 붉혔다.

다시 그녀는 방안을 훑었다. 대나무 침상 옆에는 작은 탁자가 있었고, 그 위에는 백자통이 놓였다. 아무것도 없이 텅 빈 집안. 그런데 백자로 된 작은 통은 유달리 시선을 끄는 것이 고의로 남겨둔 것이 분명해 보였다.

금하가 급히 열어보니, 안에는 환약이 들었다. 그리고 작게 말린 종이도 있었다.

“하나를 둘로 나누어 밖에 바르고 복용하면, 동양인의 기이한 독을 해독할 수 있다.”

뜻밖에도 심 부인은 그녀가 다시 돌아올 것을 미리 예측하고 있었다. 그래서 특별히 이렇게 그녀에게 해독약을 남겼을 터였다.

순간 금하의 가슴에서 뜨거운 것이 솟구쳤다. 두 눈이 축축해지는 것이 느껴져 그녀는 숨을 몇 번 힘껏 들이쉬고야 진정이 되었다.

금하는 백자로 된 작은 통을 잘 챙겼다. 또한 집 안팎으로 다시 한번 살폈지만, 다른 것은 발견한 것이 없다. 깨끗한 것을 매우 좋아하는 심 부인답게 사람은 떠났어도 집은 여전히 깔끔하여 구석구석 조그마한 먼지 한 톨도 남지 않았다.

이런 그녀가 어떻게 개숙을 알게 되고, 또 어떻게 참된 벗으로 친분을 맺게 됐을까? 금하에겐 참으로 이해하기 어려운 일이었다.

금하는 말을 달려 성으로 돌아왔고, 그녀가 성문에 도착하자마자, 금의위 두 사람이 그녀의 말을 막아섰다. 그녀가 알기로 이 두 사람은 고경의 부하로 품계를 따진다면, 보잘것없는 포쾌인 그녀보다 당연히 높았다.

금하는 바로 말에서 내려 예를 갖췄다.

“원 포쾌, 우리와 함께 대인 한 분을 뵈러 갑시다.”

그들 두 사람의 말투는 매우 예의가 발랐고, 거들먹거리지도 않았다.

금하는 순간 멈칫했다.

“누구를 뵙죠?”

“더 묻지 말고, 가면 압니다.”

말 위에 오른 두 사람은 그녀를 데리고 계속 길을 달려 성 밖의 나루터에 도착했다. 즉시 말을 맡긴 그들은 작은 배에 올랐다. 사공은 한마디 말도 하지 않고 노만 저을 뿐으로 당연히 사공 역시 그들의 사람이었다.

금하는 다시 몇 마디 물었다. 하지만 이 두 사람의 입은 매우 무거워 그 대인의 신분을 누설할 만한 얘기는 한마디도 하지 않았다.

오래지 않아 그 밤 육역이 그녀에게 보라고 했던 그 루선이 보이기 시작했다. 배는 조용히 호수 가운데 머물러 있었고, 작은 배는 물결을 헤치며, 루선을 향해 나아가고 있었다.

‘그’다! 경성에서 온 거물!

육역을 발아래 두고 밟고 싶어 한다는 ‘그’는 도대체 어떤 자일까.

금하도 어쩔 수 없이 호기심이 깊이 생겼다.

작은 배는 바로 루선의 옆쪽으로 닿았다. 그런데 금하는 굵은 줄사다리에 올랐건만, 금의위 두 사람은 배에 오르지 않고, 다시 작은 배를 노 저어 떠났다. 뜻밖에도 그녀를 혼자 여기 남겨둔 것이다.

“당신들…….”

금하는 굵은 줄사다리를 꼭 쥐고 고함을 질렀으나 대답은 돌아오지 않았다.

하, 그래. 생각 못 했던 문제가 생기면, 까짓것 물속으로 뛰어들지. 내 수영 실력으로 물가까지도 문제 될 것 없잖아.

이렇게 생각하다 보니, 그녀는 두려울 게 사라져 줄사다리를 따라 계속 위로 기어 올라갔다.

이상한 것은 이 굵은 줄사다리가 갑판에서 내려온 것이 아니라, 루선의 3층 쪽에서 내려왔다는 점이었다. 그녀는 난간을 넘어서까지 쭉 기어 올라갔고, 결국은 마지막 3층 갑판에 몸을 돌려 내려섰다.

그렇게 디딘 발밑이 부드러워 금하는 고개 숙여 바라보았다. 바닥은 전부 털이 보슬보슬한 회서 (*灰鼠 친칠라.)가죽으로, 그녀의 시선이 닿는 갑판에는 작은 조각이 빽빽하게 이어진 회서 가죽으로 전부 깔려 있었다.

비록 털가죽 제품이 관외关外(*산해관 동쪽 혹은 가욕관 서쪽 일대의 지방, 주로 관동을 칭함.)에서 한창 유행이라지만, 관내의 가격도 여전히 만만치는 않았다. 지금 그녀가 발밑에 밟고 있는 회서 가죽 한 장의 가격은 여차하면 한 가정의 1년 치 쓸 돈과 맞먹을 만했다.

“정말 집안 망칠 물건이지.”

금하는 속으로 연신 혀를 내둘렀다.

회서 가죽을 밟으며 들어간 선실 안쪽은 아주 고요했다. 사실 배 전체 또한 상당히 조용하여 발소리 하나 들리지 않았는데, 그건 아마도 바닥에 깔린 털가죽 때문인 것 같았다.

금하는 조심스럽게 앞으로 나아갔다. 여러 겹으로 겹쳐 내려온 장막 때문에 원래 채광이 그다지 좋지 않은 선실은 점점 더 어두워졌다.

“누구 있어요?”

금하는 슬쩍 사방을 둘러 보며 입을 열었다. 그러나 대답하는 이는 없었다.

짧은 정적이 흐른 후, 어딘가에서 ‘탁탁탁’하는 부싯돌 부딪치는 소리가 들렸다. 그리고 바로 뒤이어 장막의 깊숙한 안쪽에서 불빛이 타올랐다.

밝은 빛 속, 사람의 그림자가 장막 위로 어른거려 금하는 그 사람이 하는 행동을 또렷하게 볼 수 있었다. 그가 머리에서 비녀를 뽑아 등의 심지를 돋우자 불빛은 훨씬 밝게 타올랐다.

“소관, 대인을 뵙습니다.”

금하의 낭랑한 목소리가 울렸다.

여전히 그 그림자는 대답 없이 머리에 비녀를 다시 꽂았고, 앞쪽의 탁자 위에서 찻주전자를 들어 차를 따르기 시작했다. 그 찻물을 따라 담담한 차향이 실내에 퍼졌다.

금하는 다시 낭랑한 목소리로 말했다.

“소관, 대인을 뵙습니다.”

그는 여전히 그녀를 상관하지도 않은 채, 느릿느릿 차만 따르고 있었다.

무언가 의심이 든 금하가 장막을 사이에 두고 자세히 살폈다. 확실히 이 사람에게는 설명할 수 없는 기괴함이 느껴진다.

그때 마침 장막이 걷혔다. 그런데 다가가 상황을 살피려는 금하보다 그가 오히려 먼저 일어섰다.

그는 일어섰을 뿐 아니라, 손에는 자신이 따른 차 한 잔을 들고 있었다. 찰칵찰칵하는 소리와 함께 탁자를 돈 그가 그녀를 향해 곧장 다가왔다. 장막은 그가 가는 곳마다 둘로 나뉘어 양쪽으로 갈라졌다.

그가 제자리에 있을 때와 달리 걷기 시작하자 금하는 소스라치게 놀랐다. 걸어오는 그 사람의 모습은 걷는 것이 아니라 마치 귀신처럼 떠다니는 것 같아 사람을 두렵게 했다. 저도 모르게 그녀는 뒤를 흘끔 보아 퇴로가 아직 확보된 것을 확인해야 했다.

드디어 금하의 앞에 드리워졌던 마지막 장막이 열렸다. 그 사람은 그녀의 앞으로 미끄러지듯 다가와 그녀의 눈앞에 한 치의 오차도 없이 찻물을 받쳐 올렸다.

―― 차를 든 손은 동과 철로 만든 것으로 정교한 관절은 실제 사람의 손뼈처럼 구부러지고 원활히 움직였다. 찻잔은 그에게 단단히 집혀 조금도 흔들림이 없었다.

이건 가짜 사람이야!

그가 머리를 살짝 숙이고 있어서, 금하 또한 고개 숙여 그의 얼굴을 살폈다.

반들반들하고 깨끗한 빛이 나는 얼굴은 도자용 흙으로 구워 만든 것으로 그것은 매우 정교하고 섬세했다.

이렇게 사람을 닮은 정교한 인형은 처음 보았다. 금하는 정신을 놓을 만큼 자세히 살피며 찻잔은 아예 받을 생각을 하지도 못했다. 그때 동철로 된 인형의 손이 별안간 찻잔을 놓았다.

순간 펄펄 끓는 찻물이 바닥으로 튀었다. 퍼뜩 고개를 든 인형의 새카만 눈이 정확히 금하를 향하자, 그녀는 놀라 비틀거리며 뒤로 한 걸음 물러섰다.

그때 누군가 뒤에서 그녀를 꽉 잡았다.

깜짝 놀란 금하는 고개를 홱 돌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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