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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의지하 (108)화 (108/224)

108화

“아.”

금하는 순간 놀랐고, 개숙은 더 크게 놀랐다.

“자네 어디로 가려고?”

그가 다급하게 물었다.

심 부인은 대나무 젓가락을 내려놓고, 손수건으로 가볍게 입술을 닦았다.

“육 오라버니는 이곳의 규율을 아시죠. 지금 여기 온 이들은 관가 사람들이에요. 앞으론 지금까지와 같은 평온을 장담키 어려워요.”

“그럴 리가요. 제가 장담할 수 있어요.”

“나는 당신들을 탓하는 게 아니에요.”

금하가 얼른 나섰지만, 심 부인은 금하를 막아 더는 말하지 못하게 했다.

“육 오라버니가 당신들을 데려온 이상, 그건 우리가 만날 인연이 있었다는 걸 뜻해요. 하지만 그렇다고 해도 내게는 나만의 규율이 있어서 나는 여기서 더 살아갈 수가 없어요.”

심 부인의 성정을 아는 개숙은 한탄하며 괴로워했다.

“전부 내 잘못이오. 내가 정말 그래선 안 됐는데. 근데 자네 어디로 가려고?”

“여러 해 동안 고향에 돌아가지 않았어요. 이젠 돌아갈 때도 되었다고 생각해요.”

금하를 바라보는 심 부인의 눈빛은 마치 끊임없이 옛일을 생각하는 듯했다.

“이 옷깃의 구름문양 역시 언니가 수놓은 건데…….”

생각을 해보던 개숙이 미간을 찌푸렸다.

“근데 자네 고향에 아직 누가 있어? 게다가 이 몇 해 그쪽은 전부 태평하질 못해. 아녀자인 자네 혼자…….”

“육 오라버니, 이 시절에 정말로 태평한 곳이 어디에 있나요?”

심 부인이 싱긋 웃었다.

“전 어차피 혼자라서 어디든 똑같아요.”

이 말에 개숙은 어떻게 대답해야 할지 몰라 한동안 침묵을 지켰다. 하지만 얼굴은 온통 애타는 간절함으로 가득했다.

금하는 탁자 밑에서 개숙의 발을 연신 몇 번 걷어찼지만, 마치 흙이나 나무로 만든 인형처럼 끝까지 그는 반응하지 않았다.

“나는 짐을 꾸려야 하니, 이 식사를 마치면 당신들은 가요. 내가 처방전을 써서 줄게요. 이후 그가 열이 날 때면, 탕약을 달여서 그에게 먹여요.”

금하는 할 수 없이 고개를 끄덕였지만, 문득 산속의 뱀이 생각나 저도 모르게 걱정이 되었다.

“부인 가시면, 저 뱀들은 어떡해요?”

“주변 마을 사람들이 매년 정기적으로 들짐승을 숲에 몰아넣어 먹이를 줄 거예요. 그리고 나도 뱀을 통제할 수 있는 약의 처방전을 그들에게 나눠줬어요. 뱀을 쫓을 수 있고, 뱀독을 해독할 수 있죠.”

심 부인은 이미 주도면밀하게 계획을 세워놓아 여길 떠나겠다는 뜻이 확고해 보였다. 그래서 금하는 심 부인에게 왜 꼭 떠나려는지 다시 묻기 어려웠고, 묵묵히 고개를 숙인 채 밥을 먹을 수밖에 없었다.

* * *

금하는 죽과 두 가지 반찬이 놓인 나무 쟁반을 들고 다시 육역의 방으로 돌아왔다.

“대인, 일어나 조금이라도 드세요.”

그녀가 탁자 위에 쟁반을 놓고 그에게 말했다.

“우선 천천히 드시고 계세요. 저는 성으로 돌아가 마차를 빌려 모시러 올게요.”

육역은 원래 마음이 답답하고 몹시 우울했었다. 그런데 언뜻 본 금하의 표정이 그보다 오히려 더 우울해 보이지 않나.

그가 저도 모르게 입을 열었다.

“왜? 누가 네게 눈치를 주었나?”

“아니요.”

잠시 망설이던 금하는 그래도 사실대로 말했다.

“심 부인이 이사 가신대요. 머잖아 곧 떠나실 거예요.”

육역은 감이 매우 예리했다.

“우리가 원인이야?”

금하는 고개를 끄덕이며 그에게 자신이 짐작한 것을 말했다.

“그분 혼자 여기 은거한 것은 필시 말 못 할 사정이 있어서겠죠. 지금 우리가 갑자기 쳐들어왔고, 게다가 관가 사람이니, 그분은……, 전 차마 그분의 정체는 조사할 수 없을 것 같아요. 대인도 하지 않으실 거죠?”

육역은 잠시 침음하고는 가라앉은 음성으로 말했다.

“할 거야.”

“대인…….”

금하는 괴로워하며 한숨을 쉬었다.

“그분이 한사코 떠난다고 하시는 건 뭐라 할 수 없는 일이에요. 아저씨는 당신이 부인을 떠나게 했다며 죽을 만큼 후회하고 계세요.”

“설령 심 부인이 떠난다 해도, 난 그녀의 진짜 신분을 밝혀낼 수 있어. 밝혀내야 하고.”

육역의 어조는 담담했다.

“대인! 왜 이렇게 바짝 몰아붙이려 하세요? 어쨌든 그분은 대인의 목숨을 구했으니, 생명의 은인인 셈이잖아요.”

금하는 화도 좀 나기 시작하여 목소리가 커졌다.

“그렇기 때문에 나는 더욱 그분의 속사정을 제대로 조사해 알고 있어야 해. 그래야 앞으로 그분이 정말로 어려운 상황에 처했을 때, 나도 미약한 힘이나마 보탤 수 있어.”

육역의 말에 금하는 멍하니 굳었다.

“역시 대인 생각이 깊으시네요.”

금하도 그 사이 무언가 생각이 난 듯 허리춤에서 돈주머니를 꺼냈다. 허나 주머니 안에서는 꺼내고 또 꺼내도 모두 합쳐 동전 4, 5개가 나왔을 뿐으로, 그녀는 번뇌로 미간을 찡그려야 했다.

그런데 그녀가 이렇게 궁한 것을 보고, 어쩐지 육역의 기분은 좋아진 듯했다. 그가 놀리는 어조로 말했다.

“넌 그 동전 몇 개로 마차를 빌려 오려 했나?”

“마차는 관역에 가서 준비하니, 돈 쓸 필요 없죠.”

금하는 동전을 한 개 한 개 세어 보았다.

“심 부인이 길을 떠나면, 분명 돈이 들어갈 일이 많을 거예요. 제 생각엔…….”

“그래서 너도 동전 몇 개 내놓으려고?”

육역은 흥 소리를 냈고, 금하는 계속하여 상당한 고민에 빠졌다.

“하, 진즉 알았으면, 은자를 좀 가지고 있었을 텐데요.”

“내게 있다.”

육역이 그녀에게 자신의 장포를 가져오도록 눈짓하며 가볍게 나무랐다.

“몸에 동전 몇 개만 지니고 다니다 만약 문제가 생겨 임시변통이라도 해야 하면, 그땐 어떡할 거야? 밥값도 모자라겠다.”

훈계를 받아도 마땅히 반박할 말은 없었다. 금하는 멋쩍게 수긍하며 그에게 장포를 건네주었다.

육역은 은자와 몇 장의 은표를 꺼냈다. 무언가 생각하던 그는 은표 한 장을 집어 금하에게 건넸다.

“가져가 심 부인께 드려.”

은표의 금액을 보던 금하는 한참이나 우아, 소리로 감탄했고, 그 와중 육역을 칭찬하는 것도 물론 잊지 않았다.

“대인! 정말 의리를 중하게 여기시는군요! 진짜 좋아요! 돈이 있으니…….”

방을 나갈 때까지도 그녀의 중얼거림은 끝나지 않았다.

육역은 금하가 대체 어떤 방법으로 심 부인이 은표를 받게 했는지 모른다. 다만 그녀가 웃음꽃이 활짝 핀 얼굴로 돌아온 것을 보았고, 심 부인이 그녀에게 거절의 말을 하기란 그리 쉽지 않았을 거라 생각했을 뿐이었다.

지금은 육역이 걷는 데 문제가 없어 금하도 마차를 빌리러 갈 필요가 없었다. 일어나 옷을 잘 챙겨 입고 죽을 먹은 후, 심 부인과 개숙에게 작별인사를 했다. 그리고 둘은 함께 죽림을 나왔다.

이곳은 성의 외곽이라, 성으로 돌아가려면 아직 한참을 걸어가야 했다.

평소라면 당연히 아무런 상관이 없었으나, 금하는 그가 부상을 입은 몸이기에 체력이 버티지 못할까 봐 걱정했다. 만약 무리하여 가다가 갑자기 곤두박질쳐 쓰러지기라도 하면 큰일이 아닌가.

그래서 그녀는 지나가는 마차를 세워 성까지 타고 가자고 몇 차례나 건의했지만, 육역은 전부 거부했다.

왜 고집이시지.

육역을 이해할 수 없는 금하와 달리 그는 이렇게 천천히 걷는 걸 즐기는 듯했다.

한참 후, 드디어 성문이 보일 때였다. 금하는 이때서야 돌연 한 가지 일이 떠올랐다.

적란엽이 이미 죽었다고 양악에게 말해줘야 하나?

양악의 우직한 성격으로 보면, 이 일은 그에게 분명 큰 타격이 될 것이다.

금하는 당연히 말하고 싶지 않았다. 그러나 양악은 적란엽이 고소에 있다고 철석같이 믿고 있고, 분명 그녀를 보러 갈 방법을 강구할 것이다. 결코 끝까지 그를 속일 수는 없을 터였다. 게다가 상관희 쪽은…….

맞아, 아예도 있었어!

금하는 육역을 불안한 표정으로 바라봤다.

“대인, 아예 그자에 관해 상관희는 아직 사정을 모르죠?”

“급한 일이 아니다.”

육역이 조용하게 말했다.

“상관희는 아예를 매우 깊이 신임해서 아예에게 문제가 있다는 자체를 아마 믿지 않을 게다. 내가 충고하는데, 넌 섶을 지고 불로 들어가지 마라.”

섶을 지고 불로 들어가다.

금하는 그가 가리키는 바가 무엇인지 매우 잘 알았다. 일단 아예는 자신의 정체가 발각되면, 아마 그녀를 살려두지는 않을 것이다.

“그럼 이일은 어떻게 해야 할까요? 오안방이 운하 수리자금인 관은을 운반한 일에 그도 관계가 있을까요?”

아예도 이 안에 연루된 이상, 금하는 운하 수리자금의 실종 사건은 그렇게 간단한 것이 아니라고 생각했다.

육역이 담담한 시선으로 그녀를 슬쩍 보았다.

“머지않았다.”

금하는 육역의 말을 이해할 수 없었다.

“무엇이 머지않았어요?”

“물이 빠져야 바닥의 돌이 드러나고, 사건의 진상도 나타나겠지. 그 십만 냥 설화은의 행방도 머지않았다.”

육역은 더는 설명하려 하지 않고 곧장 그녀를 지나쳐 성문을 향해 갔다.

* * *

관역으로 돌아와 이제 막 작은 원으로 들어갔을 때였다. 금하가 제일 먼저 본 것은 양악이 완전히 혼이 나가 계단에 앉아 있는 모습이었다.

“대양?”

금하가 불안한 마음으로 부르자, 그녀의 목소리를 알아들은 양악이 시선을 들었다. 이내 일어난 그가 빠르게 다가왔다.

“너 어디 갔었어? 사람들이 너 어젯밤에 아예 안 돌아왔다고 하더라.”

“응. 성 밖에서 문제가 생겨서 거기서 묵었어.”

모든 일을 설명하기에는 확실히 번거로웠다. 게다가 그중에는 금하가 말하고 싶지 않은 일도 있어 그녀는 대충 얼버무렸다.

육역이 그런 그녀를 흘끔 보았고, 양악은 그제야 육역을 알아보고는 급하게 예를 올렸다. 그러나 긴장한 얼굴색은 감출 수 없었다.

“너 왜 그래?”

“아. 내가 어젯밤 기이한 일을 경험했어.”

금하가 이상하다며 묻자, 대답하는 양악의 말투에는 두려움이 묻어났다.

“모든 일이 너무 기괴해서, 난 정말 꿈인지, 생시인지 모르겠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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