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금의지하 (106)화 (106/224)

106화

“소관도 대인 말씀이 맞다고 생각합니다. 다만, 원 포쾌는 오안방 소방주와 이전부터 친밀했었죠. 게다가 그 사람은 사소라는 이름까지 도용했으니, 이 일은 오안방과도 관련이 있을지 모릅니다.”

육역이 그를 바라보며 이어 말했다.

“그럴 가능성도 있지. 그때 거리에는 사람이 많았다. 의관에 심부름을 온 생선 파는 청년에 대해선 분명 누군가 기억할 수도 있으니, 너희는 여기부터 시작해. 도화림의 그 사람은 내가 얼굴을 잘 보지 못했다. 체격은……, 자네와 비슷하군. 경공이 매우 능한 자야, 자네도 주의하게.”

“소관 잘 알았습니다.”

“그리고. 만약 본 사건과 연결되게 되면, 자네들도 모두 조심하게. 육선문 그들처럼 멍청하게 속지 말고.”

육역의 어조는 담담했다.

“금의위는 결코 체면을 잃을 수 없어.”

“소관 잘 알겠습니다.”

“가보게……. 아, 잠깐. 듣자니 양주는 설주가 매우 유명하다지. 자네가 주방에 일러 한 주전자 가져오게 해.”

육역이 소매 속에서 은자를 꺼내 건넸다.

“내가 어젯밤 잠을 제대로 못 잤네. 술을 좀 마시고 일찍 쉬려고 하니, 밤에 자네들이 다시 올 필요는 없네.”

고경은 은자를 받지 않고, 웃으며 사양했다.

“대인께서는 저희를 너무 소원히 대하십니다. 설주 한 단지일 뿐인데, 어찌 대인의 은자를 쓸 수 있겠습니까. 제가 주제넘게 추천하자면, 정신의 안정을 위해서라면, 그래도 과실주의 효과가 훨씬 좋습니다. 제집에 뜯지 않은 것이 한 단지 있으니, 대인께서 괜찮으시면 제가 바로 맛보시도록 가져오겠습니다.”

육역도 더는 사양치 않고, 고경을 향해 웃어 보였다.

“그렇다니 잘 되었군. 수고를 끼치겠네.”

“대인 무슨 말씀을요. 일찍이 대인을 모시고 싶었으나, 평소에 기회가 없어 근심하고 있었습니다.”

웃으며 물러났던 고경은 오래 걸리지 않아 과연 두 단지의 술을 가져왔다. 한 단지는 과일주이고, 나머지 한 단지는 설주였다.

“이 술이 경성의 좋은 술과 비교할 수 없을까 걱정입니다. 재미 삼아 드시다가 맞지 않으시면 버리십시오. 제가 따로 양주 이곳의 풍미라고 할 수 있는 설주도 준비했습니다.”

고경 외에 부엌에서도 안줏거리를 가져왔는데, 평소보다 매우 고급스러워 보이는 것이 고경이 시켰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어떻게 보면 그가 바깥의 주루에 음식을 만들어 보내라고 특별히 시킨 것으로 보이기도 했다.

육역이 고경을 향해 미소를 지었다.

“수고를 끼쳤네.”

“양주 이쪽에선 소곡小曲도 매우 독특한 멋이 있지요. 대인께서 들어보시겠다면, 소관이 대인의 무료함을 풀어줄 이를 대령하겠습니다.”

그의 말 속에는 은근히 다른 뜻이 담겼다.

“노래는 되었네. 내가 그쪽은 좋아하지 않아.”

육역이 담담하게 웃었다. 하지만 눈빛은 냉랭하게 차가워졌다.

“그럼 대인 천천히 즐기십시오. 소관 물러가겠습니다.”

고경은 물러나면서도 매우 세심한 손길로 밖에서 문을 닫았다.

혼자 남은 육역은 천천히 자리에 앉아 젓가락을 들어 내키는 대로 요리 몇 입을 먹었다. 옆에 둔 술 단지를 개봉도 하지 않은 것은 그가 원래 술을 마실 생각은 없었기 때문이다.

바깥의 하늘은 어두컴컴하여 밤이 되면 큰비가 내릴 것이라 예상되었다. 그리고 그때 그는 방에서 깊은 잠에 들 예정이었다.

만약 고경이 여전히 금하에게 손을 쓸 계획이라면, 오늘 밤은 그에게 매우 좋은 기회가 될 터였다.

* * *

금하는 놀라 ‘아’ 소리를 냈다.

“그 밤 대인이 제 방에 뛰어드신 게 고경이 제게 손을 썼다고 생각해서였군요!”

그녀는 눈을 휘둥그레 떴고, 육역은 담담하게 ‘음’ 소리를 냈다.

“금의위가 일을 하는 방식은 그들만의 독특한 일련의 순서가 있다. 실제 천둥이 처음 울렸을 때, 나는 이미 그를 기다리고 있었지.”

금하는 그 밤을 회상했다. 그러나 자신의 악몽을 제외하면 다른 이상은 전혀 없었다.

“고경이 왔었어요?”

“아니.”

“그러면.”

금하는 의구심을 떨치지 못해 양미간을 찡그렸다.

“그는 그 밤에도 술을 많이 마셨나요? 아니면 생각을 바꿔서 절 죽이고 싶어 하지 않았어요?”

“아니. 그때는 내 판단 착오였다. 그는 처음부터 널 전혀 죽이고 싶어 하지 않았지. 그렇지 않다면 그가 네게 자염을 먹일 리가 없었다.”

육역의 말에 금하는 더욱 갈피를 잡을 수가 없었다.

“대인 말씀은 도화림에서 제게 자염을 먹인 사람이 고경이라고요? 그럼 절 속여 도화림에 가게 한 사람은 누군데요?”

그가 천천히 말했다.

“그 또한 고경이다.”

금하는 한참을 멍해 있다가 가까스로 입을 열었다.

“오라버니, 지금 나 놀려요?”

“내가 널 놀린 게 아니라, 누군가 널 놀리고 장난치던 거야.”

육역이 잠시 말을 멈췄다.

“네가 칠분각 창가에서, 도화림 안에서 애별리를 본 것 모두 우연의 일치가 아니었어. 누군가 네게 일부러 그걸 보도록 한 것이다.”

“왜요?”

금하는 얼굴은 온통 의혹으로 가득했다.

“간단히 말하면……, 네게 장난친 거지.”

육역의 어조는 무미건조했고, 금하는 화가 불끈 치밀었다.

“누가요? 고경이? 형구를 마련하고, 시신 몇 구까지 준비하고, 그게 단순히 저한테 장난치기 위해서였다고요? 하, 그 사람 미쳤죠! 아니면 그 뒤에서 누가 그에게 시켰어요?”

육역은 화내는 금하를 말리지도 않았고, 표정은 더없이 냉랭해졌다.

“스스로를 지극히 높게 여기는 이가 있다. 그는 천하의 사람들 모두를 그의 마음대로 할 수 있다고 여기지. 변덕스럽고 권모술수에 익숙한 그에게 있어서, 사람을 죽이는 건 무슨 대단한 일이 아니다. 마치 고양이가 쥐를 잡는 것처럼 갖고 놀아 즐길 뿐이야. 먹어치우기에 급한 것이 아니라, 그에게는 마음껏 갖고 놀 수 있다는 것이 중요해.”

육역의 말에는 감추지도 않은 혐오의 감정이 드러났다.

“아직 그 배 기억하나? 그 사람이 그 배에 있었다.”

금하는 멍하니 얼이 빠졌다.

“대인을 발밑에 밟고자 한다던 그 사람이요?”

육역이 고개를 끄덕였다.

“하지만 이상해요. 그의 목표는 대인인데, 왜 절 건드리려 하죠?”

“흠, 그가 내게 장난을 쳐야 마땅하다는 말인가?”

육역이 비스듬한 시선으로 그녀를 바라보았다. 날카롭던 눈빛에 설핏 스친 장난기를 금하는 알아보지 못했다.

반면 말문이 막힌 금하는 어색하게 웃고, 또 성실한 어조로 재빨리 충성심을 드러냈다.

“당연히 아닙니다. 대인의 걱정을 나눌 수 있는 것은 소관의 영광입니다.”

그러나 육역은 장난스러웠던 표정조차 싹 사라져 이젠 조금의 웃음기도 보이지 않았다.

“솔직하자면, 나도 그가 왜 네게 장난을 치려고 하는지 잘 모른다. 고경은 그의 앞에서 무슨 말인가 했을 것이고, 그 탓에 그는 널 데리고 노는 것이 재밌는 일이라 생각하게 됐을지도 모르지.”

“그래서. 제가 고양이인 그 앞에서 생쥐가 된 건가요?”

금하는 콧잔등을 찡그렸다.

육역은 그녀를 바라보며 무언가를 생각하고 있는 듯했다. 아무 말도 하지 않는 그의 얼굴은 웃는 것 같기도, 웃지 않는 것 같기도 하여 속을 알 수가 없었다.

“고경이 ‘그’의 부하로서 대인을 감시한 것은 대단한 오판이었군요. 지금 그는 중상을 입었고…….”

금하는 여우처럼 의심스러운 눈빛으로 그를 바라봤다.

“그의 부상은 연유가 어떻든 정말로 대인의 뜻에 딱 들어맞았군요.”

“넌 그가 중상을 입은 것이 우연이라 생각해?”

육역이 냉랭하게 흥 소리를 냈다.

이번에는 금하가 그를 멍하니 한참이나 쳐다보았다.

“설마 그가 다친 것도 대인이 계획하셨던 거예요?”

육역의 어조는 지극히 냉랭했다.

“내게 접근해 내 행적을 감시했지. 원래대로라면 마땅히 규정대로 해야 했지만, 나는 고경을 죽이지 않음으로 이미 그의 사정을 봐준 거야.”

“그는…….”

금하의 머릿속은 조금 혼란스러웠다.

“그렇게 말씀하시는 건, 사수죽 강탈 사건에 대해 대인은 내막을 알고 계셨어요? 얼마나 알고 계신 거예요?”

“모든 일은 내가 처리한 것이지. 네 생각엔 내가 얼마나 알고 있었을 것 같으냐?”

육역은 담담한 모습이었으나, 금하는 갑자기 벼락이라도 맞은 것 같았다.

“대, 대인…….”

그녀는 한참이나 말도 할 수 없어 말을 더듬거렸다.

그녀 대신 육역이 설명했다.

“상관 당주는 내게 도움을 준 부분이 있다. 내가 사수죽을 놓아준 것은 사례인 셈이야.”

“왜 진작 말씀하지 않으셨어요!”

금하는 가까스로 분노는 진정시켰으나, 여전히 괴로워하며 풀이 죽었다.

“전 공연히 칼 한 방이나 맞고.”

“네가 그 소방주를 위해 칼마저 기꺼이 맞을 만큼 정이 깊을 줄을 내가 어찌 알았겠어?”

육역의 목소리는 다소 차가워졌다.

“그게 어떻게 그를 위한 거예요! 전 분명히……, 저는 대인께 처벌받는 게 걱정되었어요. 미리 이럴 줄 알았으면, 저는, 저는…….”

아무것도 모른 채 누군가에게 놀림당하는 기분은 완전히 엉망이었다. 마음이 답답하고 울적하던 금하는 돌연 한 가지 사실을 떠올렸다.

나도 사실은 그가 손에 쥐고 있는 바둑돌 한 알에 불과할 테지.

바둑돌을 쥔 사람이 자신의 바둑돌에게 그가 그걸 어디에 놓을지 어찌 말해 줄 수가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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