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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의지하 (105)화 (105/224)

105화

상대는 만만치 않은 경공의 소유자였다. 엷은 안개에 쌓인 도화 나무 사이를 민첩하게 뚫고 나가는 모습으로 육역은 그가 남자임을 간파했다.

유인 작전에 휘말릴 염려로 육역은 금하에게서 멀리 떨어질 수도 없었다. 그러나 이내 그 사람이 안개 속으로 사라지려 하자, 그는 도화 나뭇가지를 꺾어 앞으로 힘껏 튀어 나갔다.

육역은 나뭇가지를 휘둘렀다. 그러나 그 사람은 등 뒤에서 거센 바람이 엄습하는 순간, 재빨리 몸을 피해 나뭇가지는 그의 귓가를 스쳤을 뿐이었다. 그렇게 몇 번 자리를 옮긴 그의 모습은 어느 틈에 육역의 시야에서도 완전히 사라졌다.

육역은 계속 뒤쫓지 않고 금하가 있는 도화 나무 아래로 돌아와, 그녀의 맥박을 살폈다. 몸에 다른 상처가 없는 것으로 보아서는 불행 중 다행으로 독장에만 중독이 되었을 뿐이었다.

육역이 금하를 몇 번이나 부르고 흔들어도 그녀는 어떤 반응도 하지 못할 만큼 혼절해 있었다.

“팔백리 유사하流沙河의 경계로, 삼천리 약수弱水(*중국에서 신선이 살던 곳 주위에 있었다는 물 이름. 부력(浮力)이 아주 약해서 기러기 털처럼 가벼운 물건도 가라앉았다고 함.)는 깊어서, 아주 가벼운 거위 털도 뜨지 않고, 갈대꽃은 가라앉아…….”(*서유기의 한 대목.)

그때 금하가 입속으로 무언가를 중얼중얼하는 소리가 들렸다.

육역은 그녀가 말하는 것이 무엇인지 곰곰이 듣고 있다가, 저도 모르게 은근히 우스워졌다. 보기에는 아직 작은 계집아이에 그래도 명색이 육선문의 포쾌이건만, 뜻밖에 금서인 서유기를 훔쳐볼 줄이야.

금하는 의식을 잃어 내내 깨어나지 못했고, 다른 뾰족한 수가 없던 육역은 그녀를 안고 일어서야만 했다.

“태상노군의 팔괘로, 문무의 불로 단련하여……, 정제된 단이 나올 때쯤, 내 몸은 재가 되어…….”

금하는 여전히 웅얼거렸지만, 그래도 애써 눈을 뜨려 했다. 그사이 흐릿한 눈빛으로 그를 본 것도 같았건만, 눈 깜짝할 사이 그의 어깨 쪽 옷자락을 꽉 틀어쥔 채 다시 혼절했다.

“본인이 팔괘로 속에 들었다고 생각하는 건가?”

그때는 육역이 물고 있던 자염도 같은 효과를 보이고 있었다. 오장육부가 불에 타는 것 같은 느낌은 아마도 그녀가 지금 느끼는 것과 같을 것이다. 그 생각에 그는 자신도 모르게 웃고 말았다.

도화림을 빠져나와도 금하는 깨어나지 않았다. 그런데 때마침 말을 질주해 달려오는 사소가 보여 육역은 살짝 미간을 찌푸렸다.

양악의 말에 의하면, 그가 도화림에서 약속한 이는 사소였다.

육역은 가능한 한 가볍게 그의 옷자락을 붙든 금하의 손을 떼어냈고, 그녀를 가까운 곳의 큰 바위에 기대어 내려놓았다. 그런 후 자신은 옆쪽의 나무 위로 도약하여 무성한 나뭇가지 사이로 몸을 숨겼다.

그가 숨은 이곳에서는 금하를 단단히 지켜볼 수 있다. 만약 사소가 그녀에게 위해라도 가한다면, 그 또한 바로 손을 쓸 수 있었다.

사소는 매우 빠르게 산을 올랐고, 숲 밖의 큰 바위 옆에 있는 금하를 발견했다. 그는 한숨 돌린 얼굴로 그녀를 향해 서둘러 다가왔다.

“금하야! 금하! 이 계집애! ……야이 씨, 금하야! ……빨리 정신 차려!”

육역은 미간을 찡그리며 사소가 금하의 양쪽 볼을 번갈아 때리는 것을 지켜보았다. 또한 속으로는 그도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긴장한 사소의 모습은 거짓으로 꾸민 것 같지 않다. 금하의 얼굴을 부어오를 만큼 때리는 것도 육역 자신의 눈으로 보았으니, 이 일은 누군가 사소의 이름을 도용해서 한 짓이 분명해 보였다.

그때 또 먼 곳에서 말발굽 소리가 들려왔다. 육역이 멀리 바라보니, 말 위의 사람은 바로 양악이었다.

그가 다시 고개를 숙여 아래를 보았을 때, 금하는 이미 미미하지만 정신을 차려가고 있었다.

“오빠야?”

눈앞의 사소를 알아본 금하가 손을 내밀어 사소의 소매를 틀어쥐었다.

지켜보던 육역은 조금 전 금하를 안고 나오던 때가 문득 떠올랐다. 그때도 그녀는 그의 옷자락을 꽉 움켜쥐고 있었는데, 그건 아무리 정신을 잃어도 어쩔 수 없는 본능적 반응이었다.

육역은 자신의 구겨진 옷자락과 그녀의 얼굴을 번갈아 보았다. 절실하던 그 손의 온기가 아직 그에게 남았건만, 금하가 바라보는 이가 그가 아닌 것이 육역은 순간 기분이 묘해져 눈매를 가늘게 떴다.

그렇게 금하가 깨어난 것을 보고서야 사소는 한숨을 돌렸다. 그리고 다시 그녀의 손을 잡는 건 맥박을 재는 것 같았다.

육역은 바로 미간을 찌푸렸다.

이제야 맥박을 재야 한다는 생각을 해? 이 소방주는 하는 일이 정말 생각이 짧고 무모하군.

“다행이다. 네가 중독된 장독은 비교적 가벼워. 너도 참 바보냐, 미련한 거냐. 이 도화림은 해마다 사람이 죽어 나가는데, 네가 감히 덤벼들어……!”

산 아래서는 또 양악이 지원하러 달려오고 있으니, 금하에게는 이제 더 이상의 위험은 없었다.

금하 일행이 멀리 간 후에야 육역은 나무에서 뛰어내렸다. 자염의 효과가 아직 남은 틈을 타 그는 다시 한번 도화림으로 들어갔다. 그러나 아까의 그 사람이 떠난 숲속에는 더는 사람의 흔적을 찾을 수 없었다.

대체 어떤 사람일까?

단서 없이 돌아온 육역은 관역의 후원으로 들어서 고경 등을 만나고서야 무언가 이상하다는 낌새를 알아차릴 수 있었다.

고경은 금의위 청록색 외포에 조끼 식의 긴 덧저고리를 입고 있었다. 후원에 있던 그는 금의위 수하 한 명과 무공 겨루기가 한창으로, 번쩍거리는 수춘도를 든 두 사람은 매우 신중하게 상대를 향해 휘둘러 갔다.

그 순간, 옆 사람이 육역에게 인사를 하고서야 고경은 뒤늦게 깨달아 황급히 움직임을 멈추고 육역에게 예를 올리려 했다. 그런데 그의 상대는 고경이 이럴 줄 몰랐기에 칼을 멈출 겨를이 없었다. 칼날은 즉시 고경의 귓가를 스쳤고, 그의 귓바퀴에서는 선혈이 흘렀다.

매우 당황한 그 금의위가 한쪽 무릎을 꿇고 말했다.

“소관이 죽어 마땅합니다. 대인 죽을죄를 지었습니다!”

“작은 상처일 뿐이다. 네가 고의로 그런 것이 아님을 아니, 문제 되지 않는다. 물러가.”

고경은 아무런 상관없다며 귀를 만졌다. 육역을 향해서는 겸연쩍어하며 말했다.

“소관이 우둔하여 대인께 우스운 꼴을 보여드렸습니다.”

육역이 그의 귀를 흘끔 보고, 한숨을 내쉬었다.

“일상의 겨루기라 해도, 조심해야 하네.”

“대인 말씀이 맞습니다. 소관이 부주의하였습니다.”

고경이 재빨리 대답했다.

“가서 약을 바르고, 아직 분부할 게 있으니, 내 방으로 오게.”

“알겠습니다. 소관 물러가겠습니다.”

육역은 물러난 고경의 뒷모습이 모퉁이로 사라지는 것을 바라보았다. 생각에 잠긴 듯한 시선이 비무장을 향했다.

방금 비무를 한 청석판은 어젯밤 빗물에 씻긴 후로 표면의 미세하게 울퉁불퉁한 곳까지 아주 깨끗했다. 고경 그들이 위에서 겨루기를 했음에도 지금은 어떤 흔적도 남아 있지 않았다.

육역의 눈빛이 점점 더 냉랭하게 굳었다.

조금 전 그의 관심을 끌었던 것은 고경이 조피화 표면을 방금 닦았다는 사실이었다. 그것도 매우 깨끗하게 닦은 것으로 청석판 윗면으로 보아, 그는 신발 표면뿐 아니라, 신발 밑창도 모두 닦았다.

이건 모종의 이유가 있는 것으로 그는 매우 세심하게 자신의 뒷정리를 했다는 것을 뜻하고 있다.

도화림의 연무 속에서 육역이 세차게 휘둘렀던 도화 가지는 그 사람의 귓가를 스쳤다. 그리고 공교로운 우연의 일치로 고경은 그의 눈앞에서 똑같은 왼쪽 귀를 심하지 않게 다쳤다. 그가 지금 뭔가를 감추려고 한다는 사실이 이제 아주 분명해진 것이다.

고경은 양정만이 오늘 의관에서 다리치료를 한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그래서 생선 파는 청년이 어디에서 양악을 찾아야 하는지 또한 알고 있었을 것이다.

고경은 이 며칠을 금하, 양악 등과 함께 다녔다. 게다가 두 사람은 언행에 있어선 마음에 거리를 두지 않고, 숨기는 것도 없었으니, 고경은 양정만이 치료를 받고 있으면, 양악은 나가지 못하고, 금하가 대신 갈 거라는 것까지도 손쉽게 예측할 수 있었을 거라고 육역은 확신했다.

그런데 그는 대체 왜 금하를 속여 도화림에 오게 했을까?

만약 그녀를 정말 죽이려고 했다면, 이유는 또 무엇이지?

육역은 한동안 이 답을 얻을 수 없었다.

고경이 약을 바르고 육역의 앞에 다시 섰을 때, 그는 의심을 완전히 감춘 눈빛으로 평상시와 같이 도화림에서의 일을 조금도 숨김없이 털어놓았다. 또한, 그들에게 전력을 다해 생선 파는 청년을 찾으라고도 지시했다.

“대인께서는 이 일이 본 사건과 관련이 있다고 생각하십니까?”

고경의 물음에 육역은 고개를 끄덕였다.

“원 포쾌는 이제 막 양주에 와서 이곳에 원한 같은 것을 가진 이가 있을 수 없어. 만약 누군가 의도적으로 그녀를 해치려 했다면, 분명 우리가 원래 조사하는 사건 때문일 거야. 자넨 그리 생각지 않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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