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4화
금하가 의아해하며 그를 불렀다. 이 사람은 개숙의 쌍둥이 형제일지도 모른다는 의심을 떨칠 수 없었다.
“조카딸아, 이번에 너 때문에 손해가 지독해!”
개숙은 입을 열자마자 원망이었다.
“너 왜 제패를 잘 챙기지 않았냐?”
“잘 챙겼어요! 제가 목욕할 때 그분이 들어오실 줄 누가 알았겠어요.”
금하는 충분한 이유가 있었다며 떳떳해 했다.
“이게 제 탓은 아니죠……. 그분이 아저씨를 어쨌는데요?”
개숙은 불만스럽게 그녀를 흘끔 보고는 두 손을 양옆으로 활짝 벌렸다.
“내 이 모양을 보고도 여태 몰라봐?”
금하는 정말 알아차리지 못했다. 고개 돌려 육역과 눈빛을 교환했으나, 그 또한 알아차리지 못했다며 고개를 저었다.
한참 개숙을 훑어보던 금하는 별안간 번뜩임과 같은 깨달음이 스쳤다.
“알았다! 아저씨 숫총각 딱지 떼셨죠?”
그녀의 말이 끝나자마자, 개숙은 온통 아연실색했고, 육역은 바로 그녀의 뒤통수를 지그시 눌렸다.
“넌 아가씨야. 이런 말은 해선 안 돼.”
육역은 가르치고 타일렀다.
“알았어요, 오라버니…….”
금하는 고개를 들고 넌지시 탐색하듯 그에게 물었다.
“그럼 전 뭐라 물어야 해요? 신방 차리셨냐고요?”
잠시 생각하던 육역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렇게는 가능해.”
그래서 금하는 기쁘기 한량없는 표정으로 개숙을 바라봤다.
“아저씨, 신방 차리셨어요?”
“이런 제기랄!”
개숙이 더이상은 참을 수 없다며 그녀의 앞으로 다가와 때리려는 자세를 취했다.
“대낮에 차리는 신방도 있냐? 게다가 신방을 이렇게 짧은 시간에 차려?”
금하는 온몸으로 웃느라 대나무 침상에서 떨어질 뻔하고, 육역은 그런 금하를 제게로 끌어당겼다.
* * *
당연히 개숙은 금하를 정말로 때릴 수는 없었으나, 격분하여 이를 갈았다.
“웃어라, 계속 웃어. 내가 어젯밤 일을 아주 자세히 얘기 한바탕 해 볼까?”
금하는 재빨리 웃음을 참고 다급하게 말했다.
“아저씨, 말하면 안 되는 건 말하지 않기로 약속하셨잖아요!”
“그러니까. 너 이 꼬마 녀석아, 날 몰아세우지 마. 나 건드려 화나게 하면, 전부 까발려 버린다.”
개숙은 일부러 사납고 거칠게 말했다.
* * *
“어젯밤 무슨 일이 있었습니까?”
육역이 갑자기 묻는 소리가 바로 금하의 귓가에서 들렸다.
허둥지둥 당황한 금하는 벌떡 튕겨 일어나 귀를 긁적거리며 겸연쩍게 웃어 보였다.
“별거 없어요. 사소하고 보잘것없는 일뿐이었죠……. 참, 중요한 일이 있는데, 제가 도화림 변두리에 있던 적란엽의 시신을 찾았어요. 조금만 늦었으면, 뱀에게 깨끗이 다 먹힐 뻔했었죠.”
웃음기를 거둔 금하의 얼굴은 온통 진지해졌다.
“어떻게 죽었지?”
그가 물었다.
“시신에는 ‘애별리’가 만든 상흔이 있으나 출혈량은 적고, 치명상도 아니었어요. 적 낭자의 인후가 사전에 누군가에게 먼저 바스러졌는데, 목덜미의 검푸른 멍은…….”
금하가 자신의 턱을 들어 올렸다.
“제 목에 있는 것과 같아요.”
개숙도 말참견을 했다.
“손을 쓴 위치와 수법이 전부 저것과 같아. 금강전사수, 자네도 틀림없이 들어봤을 거야.”
육역이 금하를 당겨 앉히고, 고개를 기울여 그녀의 목덜미 쪽 청자색 멍을 자세히 보았다.
관역에서 본 그 멍이었다. 육역은 자신도 모르게 어루만져 주고 싶은 마음을 꾹 참았다.
이내 그가 미간을 찡그리며 입을 열었다.
“듣긴 했습니다만, 주위에 이 무공을 연마한 사람은 없습니다. 누구에게 당한 거야?”
마지막 한 마디는 금하에게 물은 것이다.
“아예. 적란엽을 소주로 데려간 것도 바로 그였어요!”
금하의 대답에 개숙이 옆에서 쯧쯧 혀를 찼다.
“그자가 이 아이에게 손 쓴 그 날, 내가 옆에서 보고 있었어. 그 자식 실력이 좋아. 그런 수준은 양주성 전체에서도 셋, 넷을 찾기 힘들지.”
“그는 허리에 늘 단도를 차고 다녀요. 설마 자신의 진정한 정체를 숨기기 위해서일까요?”
금하는 이해하기가 어려웠다.
“이 무공은 어떤 내력을 갖고 있어요?”
“황궁에서 유래된 거야.”
육역이 담담하게 말했고, 금하는 멍하니 그를 바라봤다.
“설마 아예가 오안방에 숨어든 금의위 밀정이에요?”
육역이 그녀를 흘끔 보았다.
“넌 혹시 내가 그와 공모라도 했다고 의심하나?”
“아니요, 당연히 아니죠!”
금하는 서둘러 해명했다.
“금의위의 밀정은 정말 많고, 오라버니도 전부 다 알 수는 없는 일이잖아요. 아마도 그는 다른 이의 장기 말일 테죠. 그가 정말 황궁 출신이라면, ‘애별리’ 역시 황궁에서 나온 형구이고, 그거야말로 충분히 말이 될 수 있어요.”
이 일을 이전 일어난 일과 연관 지어 생각하니, 더욱더 서로 관계가 있음을 알 수 있었다.
금하가 제일 처음 ‘애별리’를 본 것은 상관희, 아예와 헤어진 후로, 칠분각에서 사소와 술을 마시던 때였다. 그리고 두 번째가 바로 도화림으로 이렇게 보면 생선 파는 청년도 아예가 보낸 것이거나, 혹은 그가 분장할 것일 수도 있었다.
“도화림 안의 ‘애별리’ 역시 그가 놓아둔 것이겠죠.”
생각에 잠겨 있던 금하에게 육역은 고개를 저었다.
“그때의 도화림은 그가 아니야.”
“그럼 누구일까요?”
금하는 잠시 말을 멈췄다가 연이어 의아해하며 물었다.
“오라버니는 어떻게 그가 아닌 것을 알아요?”
육역은 담담한 표정을 지었을 뿐 답은 하지 않았다.
“오라버니, 뜸 들이지 말고, 그냥 말해요.”
금하가 조급해하자, 옆에 있던 개숙은 싱글벙글 즐거워했다.
“참거라, 절대 말하지 마! 쟤 속 좀 태워.”
“아저씨는 대체 어느 편이에요?”
“어차피 네 편은 아니다.”
금하의 불만스러운 표정이 재밌다는 듯 개숙은 득의양양한 모습으로 여유 있게 걸어서 방을 나갔다.
“흥!”
그의 뒷모습을 노려보던 금하가 다시 고개를 돌렸다. 육역을 애가 타 바라보며 간절하게 물었다.
“도대체 누구예요?”
육역은 잠시 침음하고서야 느릿한 어조로 입을 열었다.
“말해 줄 수는 있어. 하지만 너도 지금 네가 이리저리 숨기고 있는 일을 말해줘야 해.”
“제가 뭘 이리저리 숨겨요?”
“조금 전 네가 선배님께 말하지 못하게 한 어젯밤 일.”
육역의 시선이 그녀를 향했다.
“대체 무슨 일이야?”
금하는 단박에 목이 메었다. 재빨리 알 수 없는 어딘가로 시선을 옮기고는 멋쩍게 중얼거렸다.
“별일 없어요……. 무시해도 좋을 사소한 일뿐이라니까요.”
육역은 여전히 여유로웠다.
“네가 말하고 싶지 않으면, 나는 당연히 네게 강요하지 않는다. 대신 내가 말하고 싶어 하지 않은 일을 너도 내게 강요하지 마.”
“…….”
“사실 이 일을 내가 선배님이 직접 말하게 하는 건 그다지 어려운 일도 아니야. 아무리 봐도 이 거래는 내게 수지가 안 맞아. 그만두는 게 낫겠군.”
육역이 계속 이어 말했다.
개숙이 끝까지 비밀을 지킨다? 그것에 대해선 금하도 그리 큰 믿음이 없었다. 그러니 그녀는 저도 모르게 점점 더 초조해졌다.
“그러지 마세요! 저, 저는…….”
육역은 미미하게 눈썹을 치켜들고, 매우 재미가 있다는 표정으로 그녀를 바라보았다.
치열하고 깊은 고민 끝에 금하는 그래도 사건 조사가 더 중요하다는 결론을 내렸다. 이런 정신이야말로 개인의 희생으로 전체를 살리는 것이 아닌가, 그녀는 매우 슬픈 어조로 입을 열었다.
“좋아요, 해요! 거래 성사!”
“아니, 난 그만두는 게 좋겠어.”
“그러지 마시죠, 오라버니. 성립됐어요, 우리 거래……. 하지만 오라버니 먼저 말해야 해요. 다 말씀하시면, 제가 그다음 말할게요.”
금하의 어조는 신중했다.
“왜 네가 먼저 말 안 해?”
금하는 아주 성실하게 사실 그대로 말했다.
“제가 정말 인정하긴 싫지만, 어쩌면, 아마도, 아주 손톱만큼의 가능성으로, 제가 오라버니보다 아주 쪼끔 둔할 수 있어요. 그래서 저는 오라버니가 절 속일 걸 대비해야 하죠. 만약 제가 먼저 말했는데 오라버니는 아무 말이나 대강 얼버무려 말하면, 그건 제가 큰 낭패를 보는 거잖아요.”
육역은 웃음을 머금은 채 한참이나 그녀를 바라보았다. 그러고 나서야 그는 고개를 끄덕였다.
“네 말은 확실히 일리가 있다. 좋아. 내가 먼저 하지.”
* * *
이 얘기의 시작은 그날의 심 씨 의관으로 거슬러 올라가야 했다.
육역은 양악이 한 말로 금하가 성서 쪽의 도화림으로 갔다는 사실을 알아냈다. 그는 그때 도화림이 아주 위험한 곳이라는 걸 몰랐으나, 사소라는 사람에 대해서는 줄곧 경계심을 품고 있었다.
보통 사람들이 만날 약속으로 정하는 장소는 성안의 주루나 차관이다. 만약 사람의 이목을 피하려 한다면, 장소를 선상으로 정할 수도 있었다. 그런데 사소는 대체 왜 약속 장소를 성 교외의 도화림으로 정했을까.
양악이 들어온 후, 중정中庭으로 간 육역은 의동을 불러 도화림이 있는 곳을 물었다. 그리고 의동의 대답은 그를 한껏 놀라게 했다.
대체 배후가 누구야?
그는 더 생각해 볼 틈도 없이, 우선은 도화림으로 달려야 했다.
도화림에 도착했을 때, 그가 제일 먼저 본 것은 금하의 말이었다. 말의 몸에는 관가의 낙인이 찍혀 있어 그는 보자마자 그녀의 말이라는 걸 분명히 알 수 있었다.
말은 외로이 홀로 나무에 매여 있었으니, 그 주인이 이미 도화림으로 들어갔다는 사실은 더욱 확고해졌다.
육선문 이 사람들은 머리는 모자라면서도 담력은 지나치게 넘치는군.
이 도화림은 인적이 드문 데다가 어젯밤 비까지 왔다. 도화림 밖에 서 있다지만, 육역은 그다지 힘들이지 않고도 금하의 발자국을 알아보았다.
인적 하나 없는 곳에 벌레나 파리도 없다. 게다가 눈길이 닿는 도화림 깊숙한 곳까지 옅은 안개로 자욱하여 이곳의 독장이 얼마나 지독한지는 충분히 미루어 짐작할 수 있었다.
육역은 결코 얕볼 수 없는 상황에 우선 품속에서 자염을 꺼내 입에 머금었다. 그러고 나서야 그 또한 금하의 발자국을 따라 안으로 들어갔다.
육역이 조금 걸어 들어갔을 때, 그는 발자국의 깊이가 달라진 것으로 금하가 이곳에서 잠시 망설인 것을 알아보았다. 어쩌면 이곳에서 그녀는 수상한 점을 발견했을 수도 있다.
육역은 미간을 찌푸린 채 계속 안으로 들어갔다. 손등을 덮치는 엷은 안개는 사람을 불쾌하게 하는 한기를 머금고, 오랜 세월을 지내오며 부패한 냄새는 코끝에 맴돌아 사람을 매우 역겹게 했다.
이렇게 인적 없고, 이렇게 냄새가 강하면, 보통 사람이라도 이상하다고 생각해야 하잖아!
하지만 금하의 발자국은 여전히 안으로 계속 이어지고 있어, 육역은 정말 금하를 어떻게 이해해야 할지 알 수가 없었다.
조금 더 안쪽으로 들어가자, 육역은 머지않은 도화 나무 아래 사람이 쓰러져 있음을 알아차렸다. 쑥색의 옷을 입은 이로 그건 바로 그날 금하가 입은 옷 색깔이었다.
육역은 빠른 걸음으로 도화 나무 몇 그루를 지났다. 그가 마침내 금하를 발견했을 때, 그녀는 나무 아래 한껏 몸을 웅크린 모습으로 쓰러져 있었다. 그녀의 안색은 더없이 창백했고, 미간은 잔뜩 일그러졌다.
금하를 부축해 안은 육역은 제일 먼저 자염 한 알을 먹이려고 했다. 그러나 그가 입안에 그것을 넣기도 전, 금하는 이미 자염을 물고 있었다.
원 포쾌가 어떻게 이 약을 갖고 있지?
순간 멈칫한 육역은 양정만의 예전 신분이 금의위였다는 사실을 연이어 떠올렸다. 아마 그가 제자에게 구명용으로 주었으리라.
바로 이때였다. 그의 왼편으로 이십 보가량 떨어진 곳에서 도화 가지가 꺾이는 아주 작은 소리가 들려왔다.
누가 또 있어!
육역은 즉시 금하를 내려놓고, 가벼운 발끝으로 나는 듯 재빨리 뛰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