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3화
“아저씨, 내려와 보세요!”
그녀가 고개를 들고 개숙을 크게 소리쳐 불렀다. 하지만 개숙은 계속 고개를 저었다.
“그렇게 심한 거 아니에요. 아저씨는 한 번만 보시면 돼요, 단 한 번요!”
개숙이 여전히 고개를 저었다.
“안 내려오시면, 이 시신 아저씨가 메게 해 드려요!”
금하는 허리를 굽혀 진짜로 시신을 옮길 준비를 했다.
“알았어, 알았어……. 내려간다. 딱 한 번만 보는 거야!”
금하는 숨을 참고 내려간 개숙에게 적란엽의 목덜미 쪽 상처를 보라고 가리켰다. 그는 정말 딱 한 번만 힐끔 들여다보더니 바로 골짜기 위로 돌아갔다.
“아저씨!”
개숙의 뜀뛰기가 토끼보다 빨라 금하는 소리만 질러야 했다.
“자세히 보셨어요?”
“자세히 봤어. 금강전사수 아니니. 네 목에 있는 것과 똑같아. 네 명줄이 저 여자보다 질기구나.”
개숙이 소리 질러 대답했다.
정말로 아예였어!
그런데 그가 왜 적란엽을 죽여?
적란엽을 죽인 후, 왜 또 그녀를 ‘애별리’에 넣어둔 거야?
아예는 ‘애별리’와 도대체 무슨 관계야?
잇따라 밀려든 수수께끼로 금하는 머릿속이 어지러웠다. 그 자리에 서서 발아래의 시신을 바라봐도, 지금은 단서를 찾을 수 없었다.
* * *
개숙은 금하의 몸에 시신 냄새가 잔뜩 뱄다고 생각했다. 금하는 그 냄새를 참을 수 있지만 개숙은 참을 수 없었기에, 두 사람은 앞서거니 뒤서거니 하며 따로 걸어 심 부인의 통나무집으로 돌아왔다.
“얼른 저 아이 머리부터 발끝까지 깨끗이 씻으라고 해요. 안 그러면, 자넨 저녁에 찐 절인 고기를 분명 먹지 못해.”
개숙이 심 부인에게 말했다.
“도화림 쪽 골짜기에 시신이 몇 구 있는데, 죄다 형체도 없게 썩었어. 근데 저 아이가 아래로 굴러떨어질 줄은 생각이나 했나. 발바닥도 아마 말이 아닐 거고, 몸에 그 냄새가……. 나는 자네가 깨끗한 거 좋아하는 걸 알잖아. 걔한테는 집 밖에 서 있으라고 했어.”
육역이 개숙의 말소리를 듣고 창문으로 바라보니, 집 밖에 선 금하가 대나무 가지로 뱀을 놀리며 노는 것이 어렴풋이 보였다.
“들어오라고 해요. 본인이 물 길어서 깨끗이 씻으라 하고, 옷도 빨라고 하고요. 내가 옷을 찾아 갈아입으라 할게요.”
심 부인이 개숙의 남루한 옷차림을 훑어보며 재미있어했다.
“육 오라버니도 다른 이를 불쾌하게 생각할 때가 있군요. 희한한 일이에요.”
“사실 나도 깨끗한 걸 무척 좋아해. 나도 매일 마른세수 한 번씩은 하곤 하지.”
개숙이 헤헤거리며 웃으며, 금하를 들어오라고 불렀다.
* * *
심 부인은 방으로 들어가 자신의 오래된 옷 가방에서 옅은 남보라색의 옷 한 벌을 찾아냈다. 이 옷은 그녀가 젊었을 때 입던 것으로 여러 해 동안 가방 안에 그대로 있었고, 그녀도 다시 입을 수 있을 거라고는 생각지 않았다.
가볍게 손끝으로 옷감을 쓸던 심 부인은 이제는 아득하게 먼 옛일이 떠올라 잠시 넋을 놓았다. 그녀는 한참 후에야 정신을 차리고 일어나 금하에게 옷을 가져다주었다.
병풍이 가리고 있다지만 문소리가 나자, 방금 막 옷을 벗은 금하는 화들짝 놀라서 재빨리 커다란 목욕통 안으로 뛰어들어 갔다.
그녀가 크게 소리쳤다.
“누구세요?”
“나예요.”
심 부인의 목소리를 듣고서야 금하는 안도의 숨을 내쉬었다.
시신을 검사한 후, 그녀는 이 일이 심 부인과 무관하다고 대략 결론지은 상태였다.
시신을 유기한 곳은 도화림 변두리의 골짜기였다. 주위는 인적이 매우 드문 곳으로, 시신을 버린 이는 이곳이 외지고 조용하다는 것, 게다가 뱀이 출몰하는 것을 보고 이곳을 유기 장소로 결정한 것이 분명했다. 뱀은 며칠 지나지 않아 시신을 깨끗이 뜯어 먹을 테니까.
결과적으로 적란엽 외의 다른 시신 두 구는 이미 누구인지 분간할 수도 없었다.
이렇게 이곳은 시신을 없애고, 범죄의 흔적을 지우는 것에는 적합했으나, 시신을 유기한 이가 미처 생각지 못한 것이 있었다. 바로 붉은 구렁이가 뜻밖에도 주인이 있는 뱀이라는 점과 단서를 온천 가로 끌고 갔다는 점이었다.
게다가 그녀와 육역이 때마침 이곳에 와서 상처를 치료하고 있었고, 흔적을 따라 시신을 찾았다. 진정 이 모든 것은 처음부터 하늘이 보이지 않게 준비하셨다고밖에는 말할 수 없었다.
심 부인이 옷을 들고 병풍을 돌아와 그녀에게 당부했다.
“이따 옷도 잊지 말고 빨아요.”
금하는 목욕통 가에 엎드려 있다가 심 부인이 들고 있는 옅은 남보라색의 치마저고리를 바라보았다. 그녀의 목소리가 기쁨에 들떴다.
“제게 갈아입으라 주시는 거예요?”
“빌려줄게요. 조심해서 입어야 해요!”
“당연하죠. 반드시 조심할게요.”
심 부인의 말에 금하는 벙글벙글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이 치마는 보기만 해도 기분이 좋아져요. 이모는 참 좋은 분이시군요. 정말로 우리 친이모 같아요.”
심 부인이 옷을 옆에 있는 걸상 위에 놓으며 미간을 찌푸렸다.
“아저씨에, 이모에, 어디 아가씨와 진짜 친척이 있어요? 젊은 아가씨가 좀 얌전해 봐요.”
“네. 그 말씀 잘 듣고, 제가 얌전하게 굴게요.”
금하는 흔쾌히 인정했다. 그러다 심 부인이 손에 두 개의 달걀을 든 것을 보고는 의아해 물었다.
“그건 저 먹으라고 주실 거예요?”
“머리 감는 거예요. 아가씨에게 머리카락은 매우 중요해서 잘 관리해 줘야 해요.”
심 부인은 그녀의 말과 행동을 바로 잡아주고픈 마음이 내키지 않아 달걀을 그녀의 손에 넘겼다. 하지만 여전히 불만스러운 시선으로 그녀의 머리카락을 응시하고 있었다.
“이것 좀 봐요. 머릿결이 전부 바짝 말라 윤기 하나 없잖아요.”
“달걀로 정말 머리를 감아요?”
금하는 연신 고개를 저었다.
“우리 엄마가 이걸 아시면, 집안 망할 일이라면 분명 절 패 죽이실걸요. 그냥 남겨뒀다가 이모가 드세요.”
“잔소리하지 말고, 얼른 씻어요.”
“안 돼요, 안 돼. 정말 안 돼요. 이건 진짜 물자 낭비예요.”
금하는 보배라도 되는 양 달걀을 받쳐 들었다.
심 부인 또한 그녀와 더는 쓸데없는 말을 하지 않겠다는 듯, 재빨리 물바가지에 물을 퍼 그녀에게 끼얹었다. 연이어 금하가 아직 정신을 차리지 못한 틈을 타 그녀의 손에 있던 달걀을 집어 목욕통 가에 두드렸다.
심 부인의 손놀림은 빨랐다. 촉촉하고 매끄러운 달걀흰자가 머리칼을 감싸고, 두 손으로 부드럽고 가볍게 주무르는 느낌이 편안하여 금하는 거의 눈을 감고 있었다.
그렇게 심 부인은 그녀의 머리카락을 몇 번 비벼 문지르고는 금하에게 자신이 한 대로 두피를 안마해 보라 했다.
“어쩐지 이모 머리카락은 검고도 빛이 난다 했어요. 비단 같아요.”
금하는 심 부인의 말대로 머리카락을 비볐다.
“이거 다 씻어내기 아까운데요?”
심 부인이 물을 떠 손을 씻고는 그녀에게 담담히 물었다.
“아가씨는 정말 계집종이에요? 설마 집안의 부인이나 아가씨의 머리를 감겨드린 적도 없어요?”
“……저, 저는 부인과 아가씨를 모셔본 적이 없어요. 전 우리 도련님만 책임지고 시중들면 됐거든요. 도련님은……, 머리 감기 싫어하세요.”
금하는 고심하며 말했고, 심 부인도 그녀에게 더는 캐묻지 않았다. 그러나 그녀가 벗어 놓은 옷 안에서 슬그머니 제패를 들어 보였다.
“그런데 아가씨가 왜 육선문의 제패를 갖고 있어요?”
“…….”
잠시 말문이 막혔던 금하는 가까스로 해명에 들어갔다.
“얘기하면 좀 길어요. 사실 제게 은인이 계신데 그분이 육선문의 포두세요. 저는 그분께 정말 커다란 은혜를 입어서…….”
“얘기해요, 계속!”
심 부인은 고개를 끄덕였고, 금하는 어렵사리 말을 이어갔다.
“……저는 그분의 은혜를 잊지 않기 위해, 이 육선문의 제패를 만들어서 갖고 다니고 있어요. 언제나 은인의 크나큰 은혜를 잊지 말자면서요.”
심 부인은 칭찬의 뜻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계속 얘기해 봐요.”
“사실 이 제패는 가짜예요. 보세요, 만든 게 매우 어설프고, 동 함유량도 매우 낮죠.”
금하는 말에는 진실이 담겼다. 육선문의 경비는 한정적이라 이런 것조차 빼놓지 않고 짠돌이 짓을 한 것은 다행이라 할 수 있었다.
그런데 심 부인은 유유히 또 다른 제패를 집어 들었다.
“이건 정말 육선문의 것보다 무게가 더 나가서 매우 묵직하군요.”
부인이 손에 든 것은 육역의 금의위 제패였다.
―― 금하는 그것을 본 순간, 바로 머리를 물속에 내리꽂아 숨고 싶었다.
“아가씨의 또 다른 은인이 금의위인가요?”
부인은 태연했고, 금하는 수심에 가득 찬 얼굴로 부인을 바라봤다. 한참이 지난 후, 힘껏 입술을 깨문 그녀는 그래도 완강히 버텼다.
“네. 이모는 정말 똑똑하시네요. 바로 알아맞히셨어요!”
두 사람은 서로를 한참 동안 쳐다보았다.
금하가 안절부절못하는 모습을 보고서야 심 부인은 헤아릴 수도 없는 오묘한 표정으로 빙긋 웃었다.
“우선 씻고 있어요. 나는 아저씨와 잠깐 얘기 좀 하러 가요.”
“이모!”
병풍 쪽으로 가던 심 부인이 잊지 않고 뒤돌아서 당부했다.
“이따가 머리 헹굴 때, 꼭 온수로 해요. 너무 뜨겁게 해서 머리에 온통 달걀 꽃 피게 하지 말고.”
“아, 네.”
금하의 대답을 들은 심 부인이 목욕실을 나가고, 금하는 개숙이 어떻게 대답할지 생각할수록 자신이 없었다. 머리를 대충 헹군 그녀는 재빨리 깨끗이 몸을 씻고 물기를 닦아 옷을 갖춰 입은 후 그곳을 나왔다.
* * *
밖은 조용했다. 실랑이 소리 같은 것도 들리지 않았다.
금하는 반쯤 젖은 머리를 틀어 올리고, 나무 복도를 가볍게 걸어서 제일 먼저 육역이 머무는 방으로 갔다.
방 밖에 서서 잠시 기척을 들어봐도, 안은 매우 조용했고 특이하다고 할 만한 소리 같은 건 들리지 않았다. 안쪽을 기웃대던 그녀는 빼꼼히 머리부터 들이밀었다.
대나무 침상에 기댄 육역은 고개를 갸웃 기울인 채 그녀를 바라보고 있었다.
“수상쩍게 뭐 하는 거야?”
그가 불만스럽게 말했다.
방 안에는 그 혼자였다. 금하는 그제야 발소리를 죽여 살금살금 들어와 그의 옆으로 미끄러지듯 다가갔다.
“오라버니, 심 부인 왔다 가셨어요?”
금하는 언제부터인지 육역을 가끔 대인이라고 부르지 않는다. 그녀가 섞어 부르고 있다는 사실을 알아차린 육역은 금하의 모습을 훑어보며 슬며시 웃었다.
“안 오셨어요?”
금하는 어리둥절해 하다가 바로 그에게 빠른 어조로 설명했다.
“문제가 생겼어요. 제가 씻을 때 심 부인이 오라버니 것만이 아니라 제 제패까지 발견할 줄은 생각지도 못했거든요. 제가 허튼소리를 좀 했지만, 그분은 전혀 안 믿는 것 같아요. 그러니 심 부인이 따져 묻기 전에 우리 얼른 여길 떠나는 게 좋겠어요!”
“그 옷은 심 부인 것인가?”
육역은 그녀의 말을 전혀 듣지 않는 것 같았다. 그래서 금하는 고개를 끄덕이고는 다시 말해야만 했다.
“우리 얼른 가야 해요! 걸을 수 있어요?”
대나무 침상에 기대 있는 육역은 여전히 그녀의 말을 듣지 않은 채 연이어 묻기만 했다.
“넌 왜 평소 이런 치마를 입지 않아?”
“비록 몇 년 전 옷이라지만, 이 옷감은 분명 아주 비쌀걸요. 우리 엄마가 사 주시기나 하시겠어요? 게다가 저는 종일 밖에서 마구 구르는데, 이런 비싼 옷을 사서 더러워지고 해지면, 마음이 좋진 않겠죠.”
금하는 설명을 하면서도 고개 숙여 치마저고리를 소중하게 쓰다듬었다.
“돌아가면 깨끗이 빨아서 심 부인께 보내드려야 해요. 이 옷은 분명 십여 년 전 것일 테죠. 옷감과 만든 모양으로 봐선 심 부인은 분명 대가댁의 규수였을 거예요.”
육역이 빙긋 웃었다.
“네가 입으니, 그래도 아가씨 같은 태가 나는군.”
“전 원래 아가씨였는데요.”
금하는 무의식적으로 대답하고 나서야 뒤늦게 깨달았다. 지금은 한가히 옷 얘기를 하고 있을 때가 아니었다.
“그게요, 심 부인이 우리가 관가 사람이라는 것을 이미 눈치챘어요. 우린 빨리 가야 한다고요, 오라버니!”
“급하지 않아. 정말 눈치챘다면, 네게 옷을 빌려주면서 부인은 얼마나 많은 고민을 했겠어?”
육역의 어조는 여유가 있었다.
금하는 잠시 멍해 있었지만, 생각해 보니 육역의 말에 일리가 있었다.
“부인은 우리 아저씨를 찾아보신다고 했어요. 아저씨부터 먼저 손봐주시려나요?”
한창 이런 대화를 하고 있는데, 개숙이 문 입구에서 서성거리다 들어왔다.
그는 일신이 아주 새로운 모습이었다. 머리에는 뒤로 긴 망토처럼 늘어지는 두건인 호란건을 쓰고, 몸에는 옥색의 열두 폭 심의深衣 (*아래와 위가 하나로 연결되어 몸을 감싸는 옷.)를 입고, 발에는 운두혜를 신었다. 한 올도 빠짐없이 빗어 넘긴 머리와 나무랄 곳 없이 깨끗하게 씻은 얼굴은 그야말로 충분히 빼어난 용모라고 말할 만했다.
“아저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