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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의지하 (102)화 (102/224)

102화

“걸을 수 있으세요?”

금하가 소리를 낮추어 물었다.

“우선 대인과 여길 떠나는 게 낫겠어요.”

육역이 그녀의 손을 제 손으로 누르고, 가라앉은 음성으로 말했다.

“급하지 않아. 이 물건이 여기 있으니, 그녀의 생사부터 확인해보는 것도 괜찮을 거다.”

금하는 여전히 마땅치 않다는 생각으로 눈썹을 찡그렸다.

“제가 대인 먼저 보내드린 후, 다시 와서 확인해볼게요.”

이 말에 육역은 시선을 들어 그녀를 바라봤다. 눈에는 웃음기를 담은 채 금하가 순간 어리둥절한 것을 지켜보았다.

“왜 그러세요? 제 추종술이 비록 대장에겐 미치지 못해도 육선문 안에서는 손에 꼽혀요.”

금하는 그가 자신의 능력을 믿지 않는다고 여겼다.

바라보던 육역이 빙긋 미소를 지었다.

“내가 널 믿지 않는 게 아니라, 네가 날 믿지 않는 거다. 네 눈엔 내가 바람만 불어도 날아갈 처럼 몸이 약한가? 그래서 우선은 나를 보내야겠나?”

“아니에요……. 대인은 아직 부상 중이잖아요. 게다가 신분도 귀하셔서 만일 생각지 못한 사고라도 나면, 대인 아버님이 분명 저를 조각조각 내실걸요.”

“넌 대체 날 걱정하는 거냐, 아니면 내 아버지를 두려워하는 거냐?”

“오라버니, 이건 같은 거 아닌가요?”

금하는 다급해진 나머지 그새 버릇이 된 오라버니 소리가 자연스럽게 나왔다. 그러며 영문을 모르겠다는 눈빛으로 그를 바라봤다.

“이게 어떻게 같은 일이야?”

육역이 미간을 찡그렸다.

“나는 나, 내 아버지는 내 아버지야.”

일로 칠 수도 없는 이런 사소한 것으로 굳이 이럴 때 진지한 육역이 금하는 도통 이해가 가지 않았다. 하지만 그래도 그녀는 인내심을 갖고 설명해줘야 했다.

“대인은 대인, 이 말 맞아요. 하지만 대인도 대인 아버지의 아들이에요. 뼈는 분리되었어도 살은 이어져 있고, 이건 평생 바꿀 수 없는 일이에요.”

육역은 입을 다물고 그저 미간을 찡그린 채 그녀를 바라볼 뿐이었다.

금하가 다시 무슨 말을 하려는데, 마침 개숙이 문에서 머리를 들이밀었다. 방 안의 상황을 슬쩍 보고는 헤헤거리며 웃었다.

“젊은 부부 싸웠니?”

“아저씨, 무슨 일 있으세요?”

“조카딸은 나랑 도화림에 가서 술 단지 좀 파오자. 나 혼자는 너무 많아서 들고 오지 못해.”

“아, 하지만…….”

금하는 마음을 놓지 못하여 육역을 바라봤다.

“오라버니 혼자 여기 있잖아요……. 돌봐줄 사람도 없는데, 안 되겠죠?”

“난 상관없다.”

육역이 얼굴을 돌린 채 담담하게 말하니, 개숙도 한마디 했다.

“쟤 이미 괜찮아. 뭐가 됐든 안 죽는데, 넌 무슨 걱정이냐.”

“하, 하지만…….”

금하는 자신이 또 심 부인이 육역에게 해코지라도 할까 걱정한다는 말은 할 수가 없었다.

“‘하지만’, 그 소리 그만해.”

개숙이 웃으며 말했다.

“어디에 그렇게 꿀을 발라놔서 한시도 떨어지질 않아. 가, 가. 차 한 잔 마실 시간이면 바로 돌아와.”

금하는 개숙에게 힘껏 밀려 밖으로 나가면서도 여전히 마음이 놓이지 않았다. 그녀가 고개 돌려 육역을 바라보니, 마침 육역 또한 그녀를 보는 바람에 간절한 그녀의 시선과 마주쳤다.

금하가 얼른 그에게 입 모양으로 말을 벙긋거리며, ‘부디 조심하세요.’, 라는 뜻을 만들어 냈다.

육역은 창밖으로 금하가 괭이를 들고 개숙을 따라 도화림 방향으로 타박타박 걸어가는 것을 바라보고 있었다. 그런데 문득 집 문을 나서던 금하가 다시 돌아서 바라보는 것이 보이자, 그는 재빨리 창문 앞에서 보이지 않게 자리를 옮겼다.

잠시 후, 저도 모르게 가볍게 한숨을 내쉬었다.

* * *

“아저씨, 자꾸 젊은 부부, 젊은 부부라고 부르지 마세요. 육 대인 마음이 분명 많이 불편하실 거예요.”

금하는 기분이 좋지 않다는 표정을 얼굴 가득 드러내며 계속 종알거렸다.

“성으로 돌아가면 저는 계속 사역 일을 해야 하는데, 만일 그분이 속으로 기분이 나빠서 저한테 트집 잡으면 그때 전 뭐로 먹고살아요.”

개숙이 고개 돌려 그녀를 흘끔 보고는 웃으며 말했다.

“걔 어디가 기분이 나쁘냐. 내 보기에 그 아이 속으로 엄청나게 좋아하던데.”

“비록 그분 생각을 제가 훤히 알 수는 없지만, 분명 엄청 좋은 건 아닐걸요. 어쩜……, 억울할지도 몰라요. 아이고, 나는 몰라요. 마음대로 생각하라 하죠.”

금하가 곡괭이를 끌며 한숨을 쉬었다.

도화림 안의 바닥은 온통 도화 꽃잎으로 뒤덮였다. 멀리 바라보면 산 정상에는 분홍분홍한 구름이 몽글몽글하고, 땅 위에도 분홍분홍한 것이 넓게 펼쳐졌다.

그녀는 곡괭이를 끌고 가며 꽃잎 위로 쟁기질을 한 것처럼 선명한 도랑 한 줄을 그리고 있었다. 그러다 갑자기 금속 기물이 서로 부딪쳐 나는 쨍 소리가 들렸다. 그리 크지 않은 소리였으나, 걸음을 멈춘 금하는 몸을 웅크려 앉아 곡괭이 옆의 꽃잎을 헤쳤다. 그러자 꽃잎 중에 섞여 있던 작고 정교한 금장식이 별안간 눈앞에 모습을 드러났다.

“재수가 좋구나?”

언제 돌아왔는지 모르게 개숙이 머리를 들이밀고 오, 하며 부러워했다.

금장식을 주운 금하는 엄숙한 표정으로 개숙을 바라봤다.

“아저씨, 제가 아저씨를 믿어도 될까요?”

“그건 무슨 일인가에 달렸지. 나 이 사람이 또 큰일 같은 건 감당 못 해.”

개숙이 금 장신구로 시선을 옮겼다.

“어째. 그 물건이 괴이하냐?”

“이 물건을 저는 예전에 어느 아가씨가 하고 있는 걸 보았어요. 그런데 바로 이틀 전, 이 아가씨가 실종됐어요.”

금하는 미간을 찡그린 채 말을 이어갔다.

“그리고 이건 두 번째 거예요. 다른 하나는 제가 먼저 물가에서 찾았어요.”

금하가 다른 하나를 꺼냈다. 그녀의 손바닥 안에 나란히 놓인 두 개의 금장식은 만든 양식으로 보아 분명 모두 같은 귀고리의 것이었다.

개숙이 금장식을 만지작거렸다.

“물가…, 도화림…. 너는 그 아가씨의 실종이 심 부인과 관련이 있다고 의심하는 건 아니겠지?”

“전 그리 말한 적 없어요. 사건조사는 증거만 봐야 해요.”

그녀는 지극히 사무적인 어조였다.

“꼬마 계집애, 바로 안면몰수한다 이거지!”

개숙이 그녀의 뒤통수를 치려는 자세를 잡자 금하는 재빨리 목을 움츠려 피했다.

“제가 언제요? 이건 아저씨와 상의하는 거잖아요. 심 부인은 산에서 혼자 숨어 살고, 주위에는 또 이렇게 많은 뱀을 키우는데. 좀 이상하지 않아요?”

“그니가 이러는 건 나름의 고충이 있어서야. 에이……, 나이 어린 너희가 어찌 세상의 어려움을 알겠니.”

개숙이 한숨을 내쉬었다.

“심 부인은 지금껏 사람을 구했을 뿐, 사람 하나 해친 적이 없다. 믿고 안 믿고는 네게 달렸지만, 이 점은 내가 확실히 책임질 수 있어.”

“믿어요, 믿어. 아저씨는 제 아저씨이자 육 대인의 할아버지신데, 제가 어떻게 아저씨를 믿지 않겠어요.”

금하는 고개를 숙여 금장식을 살폈다.

“하지만 이 물건이 어떻게 여기서 나타난 거죠? 정말 이상해요!”

“수변…, 도화림…. 분명 뱀일 게다.”

개숙이 금장식 하나를 들어 자세히 들여다봤다.

“마치 얇디얇은 이파리 같잖니. 아마 뱀 비늘에 끼어서 딸려갔을 게야. 작은 뱀의 비늘은 너무 작아 낄 수 없으니, 그 붉은 구렁이뿐이네!”

금하는 개숙의 말이 끝나자마자 이미 붉은 구렁이가 헤엄쳐간 흔적을 찾아 나섰다.

“계집애, 기다려라!”

개숙도 급하게 그녀를 따라왔다.

붉은 구렁이는 몸집이 매우 컸다. 그런 녀석이 헤엄쳐간 곳은 잡초가 쓰러지고, 꽃잎이 짓눌려 진흙에 섞여 있었으니 분간하기가 매우 쉬웠다.

금하는 개숙이 주었던 약 가루를 몸에 뿌렸다. 작은 뱀들을 두려워할 필요도 없어진 그녀는 곧장 흔적을 따라 빠르게 추적해갔다.

골짜기 가장자리의 도화 나무 옆으로 왔을 때, 주위를 진동하는 짙은 썩은 내는 바로 시취屍臭였다.

금하는 코를 가린 채 고개를 쓱 내밀어 골짜기 아래를 내려다보다가 문득 미간을 바짝 찡그렸다.

―― 이 얕은 골짜기에 적어도 3구 이상의 시신이 있었다. 치마로 보아 모두 여자임을 알 수 있고, 부패 상태는 일정치 않았다. 또한 시신 위에는 작은 홍사도 출몰했다.

“이 냄새…….”

개숙도 고개를 내밀고 아래를 내려다봤다. 그런데 그는 한 번 보자마자 재빨리 물러나 다급하게 찬 공기를 들이마셨다.

“죄다 썩었어. 그만둬라, 계집애야.”

“두 구는 비교적 훼손이 심한지만, 그래도 한 구는 온전해 보여요.”

금하의 목소리는 가라앉았다.

“제가 내려가 볼게요. 아저씨는…….”

그녀가 아직 말을 다 하지도 않았는데, 개숙은 이미 머리를 딸랑이처럼 마구 흔들었다.

“난 못 해. 정말 못 해. 내가 이거는……, 다른 건 내가 다 참을 수 있어. 하지만 부패한 시신 냄새는 정말 견딜 수가 없다.”

개숙이 한편으로 물러서자, 금하가 퉁명스럽게 말했다.

“솔직히 말하면, 아저씨 몸에서 나는 냄새도 이거 못지않아요.”

“나와 저걸 비교하지 마라. 내가 비록 거지지만, 그래도 금하는 것 정도는 있어!”

개숙은 강인한 절개로 꼿꼿한 모습을 보였다.

“됐어요, 됐어. 아저씨는 참 복이 많은 인생이시네요……. 그럼 아저씨는 위에서 기다리세요.”

금하는 곡괭이를 그에게 던져 주고, 자신은 골짜기로 가볍게 뛰어 내려갔다. 한 손으로 코와 입을 막고, 다른 손으로는 곡괭이를 짚은 개숙은 쇳덩이라도 달린 것처럼 미간을 굳게 찡그린 채 그녀가 시신 검수하는 것을 지켜보았다.

가장 온전한 그 시신은 얼굴을 아래로 향하여 엎어져 있다. 붉은색의 치마를 입은 그것은 심지어 핏물도 흐르지 않았다.

금하는 작은 뱀들을 건들지 않도록 가능한 한 조심스럽고도 천천히 시신을 뒤집었다. 그런 후, 시신의 얼굴을 가린 검은 머리칼을 살짝 걷었다.

역시……, 적란엽이었다!

이것저것 고려할 틈도 없이 금하는 그녀의 몸에 남은 상처를 검시하여 흉부 쪽 급소 몇 군데를 다른 것과 구분해 냈다. 그건 바로 ‘애별리’와 껴안은 흔적이었다.

그러나 금하는 그와 별도로 붉은색 치마 위의 혈흔이 그다지 많지 않은 것도 알아볼 수 있었다.

만약 적란엽이 살아 있을 때 ‘애별리’에 안겼다면, 가슴에서 분출된 선혈이 빠른 속도로 치마에 스며들었을 거고, 그러면 커다란 혈흔이 남게 된다. 그러나 눈앞의 붉은 치마에 남은 흔적은 명치 쪽 급소의 핏자국으로 겨우 상처 주변만을 물들였을 뿐이었다.

그러므로 적란엽은 죽은 후에야 형구에 놓였을 가능성이 매우 컸다.

이런 쓸데없는 짓은 왜 또 한 거야?

금하는 도대체 종을 잡을 수가 없었다.

개숙은 높은 곳에서 작은 홍사가 시신 위로 기어 다니는 것을 보고 있었다. 그런데 금하는 그 사이에 서서 정신을 놓고 있고, 시신의 악취는 더욱 심해지다 보니, 결국 참지 못하고 큰 소리로 불렀다.

“야아, 조카딸! 다 봤으면 얼른 올라와. 너 계속 거기 서서 새해 맞을 거냐?”

그의 고함 소리에 금하는 정신이 돌아왔다. 그러나 대답은 하지 않은 채 시신 옆에 쭈그려 앉아 적란엽의 진정한 치명상을 찾으려고 했다.

그녀의 몸에는 뼈까지 드러날 만큼 깊은 상처가 몇 개가 있었다. 하지만 혈흔은 매우 적었고, 분명 모두 치명상은 아니었다. 그리고 검푸른 빛의 얼굴은 미간이 잔뜩 일그러져 있어, 죽기 전 극도로 고통스러웠음이 분명했다.

설마……, 금하는 그녀의 아래턱을 들어 목 부분을 관찰했다. 역시 인후 쪽의 피부 위로 두 군데 검푸른 곳이 뚜렷하게 남았다. 그녀는 손으로도 시신의 목둘레를 더듬어 검시했고, 예상대로 피부 아래 인후 뼈가 산산조각이 나 있었다.

적란엽은 분명 누군가에게 후골을 단단히 졸려 뼈가 바스러져 죽은 것이다.

금하는 본능적으로 자신의 목덜미에 생겼던 푸른 멍이 떠올라 등에서 한기가 솟구쳤다……. 정말 그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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