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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의지하 (101)화 (101/224)

101화

“……아.”

금하는 잠시 어리둥절했다. 심 부인이 이 말을 왜 자신을 응시하며 말했는지, 진정 이해할 수 없음에도 머릿속으로는 육역이 과연 혼인했던가, 그 사실을 진지하게 고민하고 있었다.

“참, 심 부인, 제가 부인을 위해서는 특별히 죽엽죽을 끓였어요. 바깥 탁자에 정갈하게 차려뒀는데, 보셨어요?”

심 부인이 바로 나가려 하자, 그녀가 서둘러 말했다.

심 부인의 어조는 담담했다.

“그는 이미 깨어났으니, 더는 아가씨도 내 비위 맞추려고 애쓸 필요 없어요.”

“강을 건너고 나면 다리를 뜯어버리는 그런 사람처럼 부인은 제가 일이 끝나면 은덕을 잊는 사람으로 보이세요? 전 부인을 몹시 가까운 분으로 생각하고 있었어요. 우리 엄마 같이요. 아니, 아니요. 부인은 아직 젊으시니, 우리 이모 같이요. 저는요. 부인께 특별히 잘해드리고 싶어요.”

금하는 말을 하면서도 개숙이 다시 먹기 시작한 그릇을 빼앗아버렸다.

“아저씨, 여기서 드시지 마시고, 밖에서 우리 이모와 함께 드세요. 혼자 밥 먹으면 엄청 외롭잖아요.”

개숙이 우물쭈물 어색해했다.

“안돼, 안 돼! 내 온몸이 더럽고 냄새가 나는데…….”

심 부인이 그를 힐끔 쳐다봤지만, 눈빛에는 어떤 감정도 드러나지 않았다.

“육 오라버니, 빨리 나와요. 이 젊은 부부가 둘만 있고 싶어 하는 것도 모르고 아직도 거기 있어요?”

“에? 아, 아아…….”

개숙은 문득 크게 깨닫고는 재빠르게 심 부인을 따라 나갔다.

심 부인이 입으로나마 더는 거절하지 않았다는 것은 자신의 정을 받아들인다는 뜻이다. 금하는 기쁨으로 가득해 다시 육역을 향해 돌아서 죽 한 그릇을 담아 줬다.

“오라버니, 한 그릇 더 드세요.”

그녀는 말에도 정성이 가득했지만, 바라보던 육역은 고개를 저었다.

“아니. 이제 괜찮아……. 젊은 부부는 어떻게 된 거야?”

목소리를 낮춘 금하가 바깥을 가리키며 생그레 웃었다.

“속인 거죠. 부인은 우리가 정분나서 도망 온 어린 연인으로 생각해요……. 헤헤헤, 그분이 의외로 그걸 믿으시네요.”

얘기를 하면서도 그녀는 매우 즐거워했으나, 육역의 얼굴에 아무런 표정도 없는 것을 보고는 저도 모르게 멈칫 거렸다.

“화나셨어요? 임시방편일 뿐이었어요.”

육역은 그녀를 흘끔 보고는 담담하게 얘기했다.

“그럼 이 일은 네가 날 데리고 사심을 채운 것이군.”

“내가 언제요!”

금하는 그때 문득 무슨 생각이 떠오른 듯 갑자기 얼굴 표정이 부자연스러워지고, 말투마저도 어색하게 변했다.

“……정말 아니에요. 공연한 걱정이세요. 우리는 치료를 하러 왔으니, 상처를 잘 치료하는 게 제일 중요하죠!”

금하는 돌아서 얼렁뚱땅 재빨리 죽 한 그릇을 전부 삼켰다. 그런 후 서둘러 그릇들을 챙겨 뛰어나갔는데, 채 두어 걸음도 가지 못하고 다시 그릇을 들고 돌아오고 말았다.

“왜 그래?”

금하는 살금살금 그릇을 내려놓고는 작은 소리로 말했다.

“심 부인과 우리 아저씨가 식사 중이시거든요. 아저씨의 저 어색한 꼴을 제가 도저히 못 보겠어요. 저는 저분 둘이 뭔가 있다는 생각이 줄곧 이상하게 들던데, 느끼셨어요?”

“이상할 게 뭐가 있어. 그분은 마음으론 늘 상대를 생각하고 있지만, 또 차마 말하지 못하는 거 아닌가?”

“맞아요, 맞아요. 저도 그렇게 생각해요.”

육역의 해석에 금하 또한 동의했다.

귀를 쫑긋 세운 금하는 바깥의 두 사람이 대체 무슨 얘기를 하고 있는지 들어보려고 애를 썼다. 하지만 아쉽게도 심 부인은 원래 말하는 소리가 작은 데다 금하의 청력은 평범해서 아무것도 들리지 않았다.

그녀는 차라리 육역의 침상 앞으로 다가가 듣기 좋은 말로 구슬렀다.

“오라버니 청력 좋으신 거 알아요. 저분들 무슨 얘기하나 좀 들어볼래요?”

“남의 말을 몰래 엿듣는 건 군자가 할 바가 아니야.”

육역이 거절했다.

“웃기지 마세요. 그쪽 금의위들께서 숨어서 몰래 안 들으면, 그렇게 많은 속사정과 소식은 어디서 와요?”

금하는 그가 화를 낼까 걱정이 되어 서둘러 말을 덧붙였다.

“사실 우리 육선문도 마찬가지로 지붕 위에 엎드려야 할 때가 있어요. 전 청력이 오라버니만큼 좋지 않아요. 아니었으면 제가 직접 들었죠.”

육역은 그녀를 어떻게 말릴 방도가 없자 잠시 귀를 기울였다.

“……심 부인이 말하길, 작년에 도화림에 술 두 단지를 묻었는데, 네 아저씨께 시간 나면 가져오라고…….”

“그리고요?”

“또 네 아저씨에게 죽림에 가서 ‘황니공’을 캐오라 하시네. 저녁에 절인 고기를 곁들여 찐다고…….”

“황니공?”

금하는 어리둥절하다가 뒤이어 문득 깨달았다.

“그건 가장 신선한 봄 죽순으로 땅에서 캐자마자 먹어야 하고, 잠깐도 그냥 둬선 안 돼요……. 그리고요?”

육역이 다시 잠깐 듣다가 말했다.

“모두 사소한 일상이야. 듣고 싶지 않다.”

금하는 아예 네모나고 작은 대나무 걸상을 끌고 와 침상 앞에 앉았다. 그녀의 말은 열렬하고 간절했다.

“사소한 일상이야말로 진상을 가장 잘 드러내죠. 이어서 들어보세요, 이어서……. 우리 아저씨가 뭐라 하세요?”

“그분은 응응응, 하는 소리만 들려.”

“그나마 발전했군요!”

금하는 변변치 못한 개숙의 모습에 화가 나 한숨을 내쉬었다.

“그리고요?”

“심 부인이 물었어. 너의 아저씨가 어쩌다 우릴 알게 됐느냐고. 그가 말하길…….”

육역이 그녀를 곁눈질로 보았다.

“네가 개한테 물려서?”

금하는 침상 위에 팔꿈치를 받친 자세로 겸연쩍어하며 웃었다.

“그건 일반적인 개가 아니었어요. 제가 말씀드렸죠. 그건 설산사자라고 생긴 게 곰 같아요. 게다가 물리지도 않았어요.”

육역은 빙그레 웃으며 계속 귀를 기울여 들었다. 금하 또한 눈을 감고 그쪽 방의 목소리에 귀를 기울이려 했다.

“……그가 말했어. 이틀 동안 대나무를 베고, 큰 정자를 세우면, 어떤 약재는 그늘서 말려야 하니, 좀 편리할 거다……, 심 부인이 말하길 그건 급하지 않다…….”

그는 계속 말을 전하고 있었으나, 금하의 대답은 들리지 않았다. 그녀를 바라보고서야 육역은 그녀의 호흡이 얕아진 것을 알아차렸다. 이미 침상에 엎드려 잠이 든 것이다.

어젯밤은 동양인과의 사투가 있었고, 그녀 역시 서둘러 마을로 뛰어가 사정을 알려야 했다. 하지만 결국 육역이 중독되어 금하는 이에 대해 줄곧 마음을 졸였을 것이다. 다행히 지금은 육역의 독도 대부분 해독되어 생명엔 지장이 없었다.

그러니 일시에 긴장이 풀린 그녀에게 졸음은 어떤 방법으로도 막을 수가 없었을 터였다.

육역은 말을 멈추고, 그녀의 모습을 조용히 바라보았다.

―― 어젯밤은 분명 무척이나 피곤했을 테지.

그래도 그는 금하를 알게 된 이후로 그녀가 이렇게 편안한 걸 본 것이 처음이었다.

문득 육역은 그녀가 죽림 밖에서 그의 얼굴에 약 가루를 바르던 때가 떠올라 저도 모르게 손을 뻗었다. 그의 손끝은 가볍고 부드럽게 그녀의 눈두덩을 따라 어루만지고, 그다음으로 그녀의 볼을, 마지막에는 부드럽고 연약한 입술 위에 머물렀다.

입술 위쪽의 검붉은 상흔은 매우 뚜렷해 바라보던 육역은 저도 모르게 살짝 미간이 일그러졌다.

옅은 한숨을 내쉰 그가 손끝으로 상흔 위를 왔다 갔다 하며 가볍게 매만졌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고개를 숙여 가볍고 부드럽게……, 입맞춤했다.

* * *

금하는 다시 한번 꿈속의 그 거리로 돌아와 있었다.

주위는 여전히 떠들썩하니 번화했고, 그녀만이 홀로 외톨이였다. 매우 다급하게 사방을 둘러보았지만, 그녀는 자신이 대체 누구를 찾고 있는지조차 몰랐다.

앞으로 나아가려던 그녀는 인파 사이로 놀이꾼이 기름을 적셔 불을 붙인 부젓가락을 높이 높이 던진 것을 볼 수 있었다. 부젓가락의 윗면에는 철편으로 만든 둥근 고리 모양이 달려있어 그것은 움직일 때마다 웅웅 소리도 따라서 울렸다.

허공에서 출렁거리는 빛이 너무도 밝아 눈이 부시다고 생각했을 때, 옆에서 누군가 손을 뻗어 그녀를 붙잡았다. 쇠집게 같은 손은 너무도 단단하여 벗어나려 해도 벗어날 수가 없었다.

그녀는 필사적으로 발버둥 치며 고함을 지르려 했으나, 소리도 나오지 않았다. 오히려 몸은 아래를 향해 똑바로 곤두박질쳐 마치 바닥이 없는 심연으로 떨어지는 것 같았다……!

갑자기 눈을 뜬 금하는 격렬한 숨을 몰아쉬었다. 태양 빛은 대나무 창을 넘어 비쳐들었고, 아주 가까운 거리에서 육역이 고요한 시선으로 그녀를 지켜보고 있었다. 그렇게 아주 잠깐 그의 눈빛이 흔들린 것을 본 것 같았다.

“또 악몽을 꾼 건가?”

육역은 놀람이 가시지 않은 금하의 두 눈을 바라보고 있었다. 그는 저도 모르게 손을 들어 그녀의 뺨을 부드럽게 쓸어주려다가 흠짓 멈췄다. 대신 그녀의 자그마한 얼굴을 들여다보며 손등을 이마에 대고 슬쩍 식은땀을 쓸었다.

“아.”

차분하고 깊은 그의 눈빛을 알아보고서야, 금하는 잔뜩 조여들던 심장이 풀리는 기분이었다. 그의 눈빛이 그녀를 위로하는 듯했다.

꿈이었구나.

금하는 깊이 숨을 들이켰고, 마음은 서서히 진정이 되었다.

“……꿈을 꾼 것뿐이에요. 괜찮아요. 저 언제 잠들었어요? 오래 잤어요?”

“차 한 잔 못 마실 만큼 잤어.”

“아.”

그녀는 잠을 깨려고 시리고 뻑뻑한 눈을 꽉 감고 머리를 흔들었다.

바라보던 육역이 미간을 찡그렸다.

“곤하면, 한잠 더 자.”

금하가 일어나 팔과 다리를 힘껏 뻗으며 웃었다.

“괜찮아요. 안 피곤해요. 세수하면 돼요.”

육역이 말릴 새도 없이 그녀는 이미 물가와 가까운 문으로 나갔다. 잠시 후 들린 주르륵하는 물소리는 분명 그녀가 물을 떠 세수하며 낸 소리일 터였다.

그런데 한동안 물소리가 그치고 고요해졌다. 주위가 너무 조용하다 보니 육역은 저도 모르게 조금씩 걱정이 되었다.

“금하?”

그가 소리 내어 금하의 이름을 불렀다.

그 후, 금하는 모호한 소리로 대답을 한 후 안으로 들어왔는데, 표정은 불안해 보이고 손에는 무언가를 들고 있었다.

“왜 그래?”

금하는 곧장 육역에게 다가와 들고 있던 물건을 그에게 보였다. 그것은 이파리 모양을 한 얇디얇은 금 장신구였다.

“대인 이거 아직 기억하세요?”

금하는 목소리를 아주 낮고 또 낮게 억눌렀다.

“난초잎 모양, 제가 기억하기로 이건 적란엽의 귀고리 장식이에요.”

“여기서 나왔다고?”

“네. 제가 온천물에서 발견했어요. 아마 실수로 빠뜨렸나 봐요.”

금하는 미간을 잔뜩 찌푸리고는 꼼짝도 하지 못한 채 그를 바라봤다. 지금 두 사람이 속으로 생각하는 것은 같은 것이었다.

……설마 이곳 심 부인이 적란엽의 실종과 관계가 있어?

이렇게 생각하니, 이곳은 매우 위험한 곳으로 금하는 육역의 상태가 걱정되지 않을 수 없었다.

만일 심 부인이 진작에 그의 신분을 알고 있었다면, 치료할 때 몰래 손을 썼을 것이다. 그럼 이거야말로 그를 오히려 위험에 처하게 둔 것이 아닌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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