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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의지하 (100)화 (100/224)

100화

그제야 연신 고개를 끄덕인 금하가 그에게 그릇을 내밀었다.

“아저씨가 하세요!”

놀란 개숙이 뒤로 급히 물러섰다.

“그걸 어떻게 해. 나, 나는……, 아직 총각의 몸이야.”

“제가 장담할게요. 약을 먹여도 아저씨는 여전히 총각의 몸이에요.”

금하는 그를 설득했다.

“아저씨는 그냥 가볍게 입술 한 번 가져다 댄 것뿐이라고 생각하세요. 아저씨가 동정남이라는 사실에는 전혀 지장 없어요.”

“안 돼. 가볍게 입술 대는 것도 안 돼. 입맞춤과 내 동정은 함께 붙어 있어서 떼 내어 따로 팔 수는 없단다.”

개숙은 정당한 이유를 대며 엄숙하게 거절했다.

그때, 계속 육역의 맥을 짚고 있던 심 부인이 갑자기 미간을 찌푸렸다.

“육 오라버니, 그에게 다시 진기를 넣어줘요! 아가씨, 어떤 방법으로든 약을 먹여요. 빨리요!”

더는 지체할 시간이 없었다. 금하는 잠시 멈칫하다가, 이내 탕약을 한껏 들이켜고는 육역의 입술에 닿을 때까지 몸을 숙였다.

바깥의 온천 위로는 달빛이 사르륵 내려앉았다. 붉은 구렁이가 흔든 꼬리에 물결은 끊임없이 일어나고, 동글동글 솟아오른 안개는 대나무 끝부분에 이르러서야 천천히 흩어졌다.

* * *

양악은 아버지께 족욕을 해 드리고, 전신도 깨끗이 잘 닦아 드렸다. 침상에 자리를 잘 펴고, 그가 눕는 걸 시중들어 드린 후, 다시 방을 나와 뜰의 우물에서 물을 몇 번이고 길어다 의관 부엌의 큰 물항아리 두 개에 가득 채웠다.

그런 후 그는 다시 손을 깨끗이 씻고, 밀가루로 반죽을 시작했다.

봄에는 버섯이 가장 신선하다. 내일 아침에 아버지께 버섯나물만두를 만들어드리려면 지금 밀가루를 잘 발효시켜야 했다.

부엌까지 전부 치우고 정리하는 모든 것을 다 끝내고서야 양악은 땀을 훔치며 습관적으로 돌계단에 앉았다.

그렇게 얼마나 지났는지도 몰랐다. 하늘에는 밝은 달이 걸려 있고, 바깥에서 딱딱이 소리가 3번 울리는 것이 들렸다.

결국 또 삼경이 되었다.

자리에서 일어선 그는 속으로는 방으로 돌아가 쉬어야 한다고 생각했으면서도, 왠지 모르게 또다시 두 발은 밖으로 향했다. 의관의 후문을 나와 청석판이 깔린 골목을 지나, 그는 다시 그 밤 적란엽을 구했던 강기슭으로 왔다.

깊은 밤, 사방을 둘러봐도 강변에는 당연하리만큼 인적이 없었다. 그곳에 양악은 말없이 서서 적란엽을 만난 이후의 장면 하나하나를 돌이켜 생각했다.

그녀가 주렴을 말아 올리던 그 순간의 놀랍던 아름다움, 눈썹을 찡그리며 말을 하는 것마저 사람을 설레게 하던 고운 자태…….

적 낭자는 지금 고소에서 어떻게 지낼까? 수놓는 곳이니만큼, 아마도 매일 책상에 앉아 수를 놓아야 할 테지. 분명 매우 힘이 들 텐데. 익숙해질 수 있을까?

만약 고소에 가서 그녀를 한 번 볼 수 있다면……, 먼 곳에서 한 번 보는 것만으로도 좋을 텐데. 하지만 안타깝게도…….

긴 한숨을 내쉰 양악이 의관을 향해 돌아서던 그때였다. 골목 안에서 붉은 옷자락이 나부끼는 것이 얼핏 보여 양악은 순간 눈매가 가늘어졌다. 얇고 부드러운 붉은색의 옷감은 분명 여자의 것이었다.

양악은 미간을 찌푸렸다.

삼경이 이미 지났어. 여자 혼자 이 시간에 무슨 일로 한가로이 돌아다닐까?

포쾌의 본능이 앞선 그가 저도 모르게 빠른 걸음으로 그 옷자락을 뒤따라갔다.

이 골목은 그가 와 본 적이 없는 골목이었다. 복잡하게 얽힌 골목 양쪽에는 집들이 다닥다닥 붙어 있고, 무엇보다도 고요하고 으슥했다.

양악은 그 여자가 분명 멀지 않은 곳에 있다고 생각했지만, 그가 모퉁이를 돌았을 때 사람은 그림자도 보이지 않았다.

만약 앞쪽에서 발걸음 소리가 들리지 않았다면, 양악은 아마도 자신이 쫓는 것이 귀신일지도 모른다고 여겼을 것이다.

양악은 몇 번이나 골목을 꺾어 돌다가 기어이 그 골목의 끝에 이르렀다. 그렇게 이제 막 마지막 모퉁이를 도는데, 그 여자와 한 남자가 서로 껴안고 서 있는 것이 어둠 속에서 설핏 보였다.

알고 보니 이곳에 밀회하러 온 남녀 한 쌍이었던 것이다.

양악은 자신이 쓸데없는 일을 했다는 생각을 하며, 소리도 내지 않은 채 돌아서 조용히 떠나려고 했다.

그런데 그는 채 열 몇 걸음을 걷기 전, 금하가 일전 그에게 말한 ‘애별리’가 퍼뜩 떠오르고 말았다.

뭔가 이상해.

양악은 곰곰이 그 남녀의 자세를 회상했다. 여자는 남자의 품속에 푹 안겨 있고, 남자는 두 팔로 여자를 끌어안고 있었다. 두 사람은 꼼짝도 하지 않은 채…….

그의 걸음 소리는 결코 작지 않았으니, 만약 몰래 만나 사통하는 남녀라면 매우 경계해야 맞았다.

어째서 내게 아무런 관심을 두지 않을까.

양악은 생각할수록 이상해져 재빨리 몸을 돌려 조금 전 남녀가 있던 자리로 되돌아갔다.

그런데 그 남녀는 여전히 조금도 움직이지 않은 채 그 자리에 있었다.

숨을 죽인 양악이 천천히 걸어 여자의 옆까지 이르렀다. 그때 마침 바람이 불고, 바람에 흘러간 구름 사이로 달빛이 다시 나왔다.

달빛은 남자의 얼굴 위로 흩어져 내렸다. 반질반질 매끈한 피부, 검게 빛나는 눈, 그러나 그에게선 묵직한 죽음의 기운이 스며 나왔다.

주저하던 양악은 천천히 손을 들어 남자의 얼굴을 만졌다. 그리고 피부에 손이 닿자마자 그는 움찔 굳었다.

차갑고 단단한 그것은 뜻밖에도 도자로 구워 만든 얼굴이었다.

기괴한 인형에 오싹하게 감도는 음기는 아무리 포쾌인 양악이라 해도 깜짝 놀라 숨을 들이켤 수밖에 없었다. 그는 재빨리 손을 움츠리고는 다시 그 여자에게 시선을 향했다.

하지만 양악은 여자를 보자마자 비틀거리며 뒤로 몇 보 물러서야 했다. 끔찍하게 놀란 그는 숨조차 거의 쉴 수가 없었다.

그 여자는……, 느닷없이 나타난 이는 적란엽이었다!

두 눈을 감고 있는 여자의 얼굴은 검자줏빛으로 죽은 지 또한 이미 오래되어 보였다.

어떻게, 어떻게 이럴 수가 있어!

지금 분명 고소에 있어야 할 그녀가 어떻게 여기에 있는 거야!

이건 분명 자신의 환각이다. 분명한 환각이었다!

양악은 두 손으로 맹렬하게 얼굴을 문질러 애써 정신을 차리려고 했다.

깨어나, 제발!

그러나 그가 채 두 손을 내려놓기 전, 누군가 그의 뒷목을 묵직하게 강타했고, 순간 양악은 의식을 잃었다.

* * *

아직은 몸에 아픔이 남아 육역은 미간을 찡그리며 천천히 눈을 떴다.

대나무 창살을 넘어 들어온 햇빛이 바닥으로 드리워지고, 그의 침상 앞에 엎드린 사람 위로도 따뜻하고 눈부신 빛을 밀어 보냈다.

육역은 몸을 움직이려 했으나, 자신의 왼손이 침상에 엎드린 누군가에게 잡힌 것을 알아차렸다. 그가 빼내려 하는 순간, 금하가 들어오는 것이 보였다.

“깨어나셨어요!”

금하의 말에는 기쁨이 가득 담겼다. 그녀는 들고 있던 쟁반을 내려놓고 다가와 우선 침상 가에 엎드려 달게 자는 개숙을 힘껏 흔들었다.

“응, 응응…….”

눈을 비비던 개숙이 먼저 코를 벌름거렸다.

“먹을 거냐?”

“아저씨! 제가 신경 써서 보고 계시라고 했는데, 어떻게 주무실 수 있어요? 만약 병세가 나빠졌으면 어떡해요?”

금하의 불만스러운 말에 개숙은 기지개를 켜며 일어섰다.

“괜찮아, 괜찮아. 내가 손으로 계속 쟤 맥 잡고 있었어. 숨이 끊어졌으면, 내가 분명히 안 단다……. 심 부인도 그 고비만 버티면 괜찮을 거라 말했다. 봐라. 이젠 깨었잖니?”

육역이 몸을 일으키려 하자, 금하가 재빨리 다가가 부축했다. 베개를 잘 놓아 그를 대나무 침상에 기대어 앉게 했다.

“대…….”

이곳이 심 부인의 구역이라는 것을 떠올린 금하가 급하게 말을 바꿨다.

“오라버니, 배고프죠? 제가 신선죽을 끓였어요. 한 그릇 드셔보시겠어요?”

육역은 아무 말도 하지 않은 채 그저 그녀를 보고 있었다. 그러다 금하의 얼굴이 피로한 기색이 역력한 데다가 입술 위에는 상처마저 뚜렷하게 남은 것을 알아차렸다.

그런데 육역이 말이 없자, 오히려 오해한 금하는 가까이 다가가 작은 소리로 말했다.

“심 부인은 관가 사람을 좋아하지 않잖아요. 제가 대인이 거상의 아들이라 말해서 저도 대인이라 부를 수가 없어요. 정말 급한 상황이라 그런 거니까, 절대 문제 삼지 마세요.”

“너, 여긴 왜 이래?”

그가 고개를 기울여 그녀의 입술을 살폈다. 거리가 이렇게 가까워졌으니, 그녀의 입술 위 상처는 더욱 분명하게 보여 그것은 마치 무언가에 깨물려 잇자국이 남은 것 같았다.

문득 깨달은 금하가 본능적으로 입을 가렸다.

“이건……, 어젯밤 제가 온천 가에서 물을 긷는데요. 순간 조심하지 않아서 곤두박질을 치며 공교롭게도 바위에 부딪혔어요.”

옆에 있던 개숙은 한창 자신이 직접 죽을 담아 먹고 있었다. 금하의 이 말에 두어 번 쯧쯧 입맛을 다셨다.

육역은 여전히 그녀를 응시하며 바라봤다.

“그런데 위쪽에는 왜 또 잇자국이 남았지?”

“바로 부딪힌 후에 제 이가 또 입술을 깨물었죠. 하하하…….”

금하는 자연스럽지 못하게 억지로 두어 번 웃었다.

“진짜 같은 편도 몰라보고 자기편이 자기편을 때렸어요. 어떻게 스스로 깨물어요. 정말 재밌죠? 하하하!”

개숙은 죽을 먹고는 또 두어 번 쯧쯧거렸다. 그래도 그 또한 고개를 끄덕여 맞장구쳐줬다.

“재밌네. 정말 재밌어!”

* * *

금하는 죽 한 그릇을 담아 후후 불어 열기를 식히고는 육역에게 건넸다.

“오라버니, 이건 신선죽이에요. 드셔보세요.”

육역의 눈에는 지극히 평범한 죽 한 그릇으로 특별히 다른 것은 없어 보였다.

“신선죽? 먹으면 신선이 되어 하늘로 올라가는 그런 건가?”

그래도 그가 이렇게 농담을 할 수 있는 것을 보니, 몸은 이제 큰 지장은 없나 보다. 그 생각으로 금하는 빙긋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드셔보시면 알아요. 이 죽은 찹쌀과 생강에 물을 더해서 질그릇에 한 번 익히고, 두 번은 펄펄 끓여요. 그런 다음 파머리를 예닐곱 개쯤 넣고 함께 끓여 반 정도 익을 때, 쌀 식초를 작은 컵으로 반을 넣고 잘 섞죠. 우리 집에서는 누가 병이 나면 엄마가 신선죽을 끓이세요. 몸에 아주 좋아요.”

“이건 네가 끓였어?”

육역이 그릇을 받아 한 입 맛보았다. 생강의 매운맛이 났고, 그 외에는 밋밋하고 싱거웠다. 그가 먹던 연자죽, 우유죽, 산약죽 등에 비교하면 당연히 많이 떨어지는 맛이었다.

“네. 제가 반 시진 이상 끓였어요. 충분히 진해졌을 거예요.”

하룻밤을 꼬박 새운 금하가 눈을 비비면서도 기대에 찬 눈빛으로 그를 바라봤다.

“어때요? 맛있죠?”

“……괜찮아.”

아마도 배가 고팠기 때문이리라. 그는 천천히 한 입 또 한 입 의외로 죽 한 그릇을 전부 비웠다.

그가 깨끗이 먹는 것을 보고, 금하는 매우 기뻐하며 다시 그에게 한 그릇을 더 담아주려고 했다. 그때 마침 심 부인이 천천히 걸어 들어 왔다.

비록 방안에 다른 이들이 있다 해도, 그녀는 군더더기의 인사치레 같은 건 없었다. 곧장 육역의 앞으로 다가가서 그의 맥을 짚고는 잠시 후 담담한 목소리로 말했다.

“체내에 아직 여독이 남아 있는데 이건 억지로 빼낼 수가 없고, 천천히 사라지길 기다릴 수밖에 없어요. 아마도 1년가량은 걸릴 겁니다.”

금하는 깜짝 놀랐다.

“이분, 이분 몸 안에 독이 아직 남았어요? 1년을 꼬박 움직일 수 없다고요?”

심 부인이 그녀에게 눈을 부릅떴다.

“누가 움직일 수 없다고 했나요. 다만 1년가량 그는 체력이 예전보다 상대적으로 조금 약해져서, 쉽게 열이 나요. 사실 열이 난다는 건 좋은 일이죠. 그 스스로 남은 독을 풀고 있다는 뜻이니까요.”

“아. 그럼 이 여독이 또 다른 쪽에 영향을 줄 수도 있어요?”

금하가 관심을 두고 물었다.

“다른 쪽.”

잠시 중얼거리던 심 부인은 그녀를 바라보며 진지한 어조로 말했다.

“차후 일 년 내에는 아이를 낳아선 안 됩니다. 그렇지 않으면 아이에게 좋지 않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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