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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의지하 (99)화 (99/224)

99화

심 부인이 옆에 있는 풀로 엮은 광주리를 가리키며 지시하자, 개숙은 두말없이 대답하고는 풀광주리를 들고 밖으로 나갔다.

바로 심 부인은 동 대야를 침상 옆으로 옮겨 깨끗한 수건을 물에 적셔서 본격적으로 육역의 등 상처를 닦기 시작했다.

이 샘물은 보통의 물이 아니었다. 심 부인이 상처 부위를 샘물로 닦아 내자 주위의 피부는 바로 불그스름해졌고, 정신을 잃은 육역마저도 미간을 잔뜩 찡그릴 만큼 고통이 매우 심해 보였다.

심 부인은 아랑곳하지 않은 채 상처를 샘물로 여러 번 반복하여 닦아 냈다. 그렇게 주변 피부가 더욱 벌겋게 달아오르고, 피가 방울방울 끊임없이 스미고서야 그녀는 작은 은 칼을 들어 날카로운 칼끝으로 상처를 절개하고, 다시 상처의 깊숙한 곳에서 작은 살점을 잘라냈다.

그 순간 일시에 피가 쏟아졌다.

옆에서 지켜보는 것만으로도 금하의 마음은 온통 욱신욱신하고 숨이 막혔다. 그러다 문득 육역이 정신이 없는 와중에도 주먹을 꽉 쥐는 것이 보였다.

견디기 힘들 만큼 아플 거라는 생각뿐이었다. 바짝 다가선 금하가 그의 손을 감싸 쥐려는데, 순간 오히려 육역이 그녀의 손을 와락 붙들고 놓지 않아 그녀는 안쓰러움과 애타는 마음으로 어쩔 줄을 몰랐다.

심 부인은 정신을 집중하여 잘라낸 살점을 은접시 위에 놓았다. 그때 마침 개숙이 뱀을 잡아 돌아와 심 부인은 풀광주리를 열어 뱀을 천천히 기어 나오도록 했다.

피 냄새에 유인된 작은 청사가 몸을 흔들며 곧장 은쟁반으로 헤엄쳐갔다. 녀석은 그 작은 살점을 몸으로 몇 바퀴 싸고돈 후, 시험하듯 한입 물어뜯고는 다시 몇 번 만에 모조리 삼켰다.

이렇게 뱀이 먹는 것을 보고서야 심 부인의 표정은 한숨을 돌린 듯했다. 그런 후 그녀는 다시 또 청사의 변화를 세심히 살폈다.

살점을 모조리 먹어치운 청사는 원래 옥같이 새파랗고 광채가 부드럽게 돌던 비늘의 광택이 천천히 어두워지고, 빛깔 또한 조금씩 바래져 갔다. 그렇게 결국엔 몸통이 회백색으로 변하고, 그대로 꼬리까지 색이 바랬다. 그래도 꼬리 끝의 새끼손가락 길이만큼 작은 부분은 더는 바래지 않은 본래의 청색으로 남아 있었다.

온몸이 푸르던 작은 뱀은 회색 뱀으로 변했다. 꼬리의 뾰족한 끄트머리만이 새파란 색으로 남아 공중에서 흔들거리는 것이 다소 흥미를 끌었다.

“됐어요. 돌려보내세요.”

심 부인은 자애로운 눈빛으로 작은 뱀을 다시 풀광주리 안에 넣었다.

“며칠이 지나면, 얘는 스스로 독을 제거해서 비늘을 벗고 원래의 모습으로 회복할 수 있어요.”

더는 참을 수 없던 금하가 끼어들었다.

“선생님 말씀은 뱀이 이 독을 충분히 해독할 수 있었으니, 그도 치료할 수 있다는 거죠?”

심 부인은 담담한 어조로 말했다.

“이치로는 그래요. 하지만 사람인 그와 내 뱀을 어찌 비교할 수 있을까요. 치료할 수 있느냐와 살릴 수 있느냐, 이건 다른 말이에요. 치료할 수 있다는 것이 반드시 살릴 수 있다는 건 아니고, 이건 결국 그의 운명에 달렸어요.”

금하는 이때까지도 육역의 손을 잡고 놓지 못했다. 그녀는 그의 손을 더욱 꽉 쥔 채 연신 머리를 조아리며, 심 부인을 바라보았다.

“살 수 있어요. 이 분은 분명 살 수 있는 운명이에요!”

심 부인이 그녀를 잠시 바라보다가 물었다.

“치료에 앞서 설명해야 할 몇 가지 사항이 있어요……. 방금 아가씨도 봤죠. 뱀마저도 이 독에 저항하기 위해선 온몸의 비늘을 벗어야 했어요. 사람이 이 독을 제거할 때의 고통은 뼈와 가죽이 녹고 뜯기는 것에 버금가요. 그가 만약 견딜 수 없어 스스로 목숨을 끊는다 해도, 날 탓할 순 없습니다.”

“그럴 리가요. 제가 그의 목숨을 끊게 할 리 없고, 선생님을 탓할 리는 더욱 없어요. 선생님은 약만 쓰시면 돼요.”

금하의 단호한 말에 심 부인이 고개를 끄덕였다.

바로 심 부인이 소매 속에서 작은 피리 하나를 꺼내 입술에 가져다 대니 괴이한 곡조가 흐르기 시작했다.

괴이하다 한 것은 이 소리에 곡조가 있는 것 같으면서도, 또 없는 것 같아서였는데, 음률이 돌연 높아졌다가 돌연 낮아졌다 하면서…….

이 고수께는 정말 기이한 버릇이 많으시구나. 하, 고민이네.

금하는 개숙을 미심쩍은 눈빛으로 바라보며 조심스레 물어보려고 했다.

이거 정말 듣기 힘든 노래인데, 열광적인 박수갈채가 필요할까요?

창밖에서 사람의 솜털을 곤두세우는 사삭 소리가 들려온 것은 바로 그때였다. 뜻밖에도 어딘가 익숙한 소리라는 것이 그녀의 모골을 송연하게 한 가장 중요한 원인이었다.

피리 소리가 순간 멈췄다. 금하가 헉하고 숨을 들이켤 새도 없이 거대한 구렁이가 창문에서 머리를 들이밀었다. 온몸이 검붉은 구렁이는 밤의 어둠 속에서 두 눈만이 진정 불에 타고 있는 숯같이 반짝반짝 빛이 났다.

도화선인!

이 네 글자를 큰소리로 부르짖은 금하는 저도 모르게 육역 쪽으로 바짝 더 붙었다. 그리고 이번에는 그녀가 오히려 그의 손을 꽉 쥐었으니, 모든 것이 무의식적으로 일어난 일이었다.

붉은 구렁이가 몇 차례 머리를 흔들자, 천천히 다가간 심 부인이 반들반들하고 차가운 비늘 덮인 녀석의 몸을 어루만졌다.

심 부인이 한숨을 내쉬었다.

“봄이 시작된 이래로 밖에서 누군가 네 행적에 대해 떠드는 걸 듣지 못했어. 네가 무척 착하게 굴었구나?”

놀랍게도 구렁이는 머리를 몇 번 끄덕거렸다.

너 이 자식 낯가죽 참 두껍다! 며칠 전에 우리를 도화림에 가둬두고, 네 자식 손자 불러다 죄다 먹일 뻔했잖아. 너 이러고도 뻔뻔스럽게 착한 척을 해!

금하는 차마 겉으론 말도 못 하고, 속에서만 열심히 비난을 쏟아냈다.

구렁이를 몇 번 쓰다듬어 준 심 부인은 그제야 품에서 동으로 된 작은 상자를 꺼내어 뚜껑을 열고 구렁이의 머리 앞으로 내밀었다.

지켜보는 금하가 여전히 의아해하고 있는 사이, 붉은 구렁이는 제 앞의 상자를 덥석 한입에 물었다.

그것은 상자가 찌그러질 만큼의 지독히도 맹렬한 힘으로, 이내 녀석의 목구멍에서는 스스 거리는 소리가 새어 나왔고, 녀석의 지독한 고통스러움 또한 여실히 드러났다.

그러나 심 부인은 가련하다는 눈빛으로 붉은 구렁이를 바라보고 있을 뿐 아무런 대응도 하지 않았다. 그저 한참이 지나 구렁이가 더는 힘을 쓰지 않고, 축 늘어뜨린 머리를 자신의 품에 기대는 걸 보고서야 상자를 받아들었다.

방금까지 비어있던 그 동제의 상자 안에서는 액체가 흔들리는 소리가 들려왔다. 그리고 금하는 이제야 심 부인이 지금 붉은 구렁이의 독액을 받았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심 부인이 언제부터 붉은 구렁이를 키웠는지는 알 수 없지만, 이리도 고분고분 말을 잘 들을 수 있다니. 녀석은 뱀독 추출이라는 지독한 고통 앞에서도 기꺼이 상자를 꽉 물고 놓지 않았던 것이다.

독액이라 하는 이 뱀독은 얻기가 쉽지 않아 암시장에서는 황금에 비할 만큼 귀하다고 금하는 알고 있었다.

심 부인은 동상자를 옆에 놓고, 붉은 구렁이를 한바탕 잘 위로해준 후에야 녀석을 놓아주었다. 그렇게 일을 마친 붉은 구렁이는 처음처럼 창문을 통해 밖으로 나가, 산속으로 들어가는 대신 온천 속으로 스르르 잠수해 들어갔다.

구렁이가 나간 뒤, 심 부인은 바로 궤 안에서 꺼낸 도자 항아리에서 용안 열매 만큼 큰 환약 두 개를 쏟아냈다.

그녀는 하나는 으깨어 붉은 구렁이의 독액과 섞어 육역의 상처 위에 펴 발랐고, 다른 하나는 온수로 녹여서 금하에게 주었다.

“이 사람 얼굴색이 청색이 되고 호흡이 가빠지면 몇 입 먹여요.”

심 부인의 분부에 금하는 조심스럽게 그릇을 받아 들고는 긴장된 표정으로 육역의 얼굴색을 지켜보았다.

붉은 구렁이의 독액은 작은 한 방울만으로도 사람의 혈액을 즉시 응고시킬 수 있는 것으로 일반 사람은 결코 감당하지 못한다.

심 부인이 이렇게 독액을 썼다지만, 그것 또한 육역의 몸 안에 있는 자염 때문으로 어쩔 수 없는 일이었다. 그러나 결과적으로 지금 그의 몸에는 독액이 스몄고, 그것은 그의 맥박을 느리게 뛰게 하고, 전신을 만년 얼음 동굴로 떨어진 것처럼 지독한 오한이 들게 할 수도 있었다.

요컨대 버틸 수 있을지, 없을지는 그 자신의 운명에 달린 셈이었다.

오래지 않아 금하는 육역의 손이 얼어붙을 듯 차가운 것을 느꼈다. 고개 숙여 바라보니, 그의 손바닥은 핏기가 거의 사라진 대신 옅은 청색으로 변해 있었다.

긴장한 그녀가 다른 손을 살펴봐도 마찬가지였다. 이 옅은 청색은 그의 손끝에서 시작해 점차 위로 퍼져 기어이 허리와 명치까지 이르고 있었다.

그릇을 받쳐 든 금하는 떨리는 눈빛으로 심 부인을 바라봤다.

“지금 약을 먹여도 될까요?”

“조금 더 기다려요. 그의 얼굴색이 새파랗게 질렸을 때 먹여요.”

“네.”

심 부인의 말에 금하는 매우 얌전히 대답했지만, 마음은 몹시 초조하고 불안해졌다.

육역의 가까이에 있는 그녀는 그가 이미 숨을 쉬는 것도 둔해지고 힘들어한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만일…….

아니, 아니야!

그녀는 차마 더는 생각할 수 없었다. 갑작스럽게 생길 이상을 혹여라도 놓칠까 하는 두려움에 그저 눈도 깜빡이지 못한 채 그를 주시하고 있었다.

그러는 사이, 육역의 목덜미 쪽 피부도 청색으로 변하기 시작했다. 호흡은 어려울 뿐 아니라, 점점 더 약해져 갔고, 어느 때는 심지어 멈춘 것 같았다.

“심 부인……, 그가…….”

금하의 목소리는 저도 모르게 어느새 덜덜 떨었다. 그러나 그녀와 달리 차분한 심 부인은 한동안 정신을 집중하여 육역을 세심히 살피고는 개숙을 돌아봤다.

“육 오라버니, 그가 버티게 진기 좀 줄 수 있어요?”

개숙은 두말하지 않고 바닥에 책상다리로 앉아, 한 손은 육역의 손을 받쳤다.

그의 내력이 끊임없이 육역의 몸 안으로 전해짐에 따라 비록 청색이 사라지진 않았다고 해도 육역의 숨은 한줄기 실처럼 다시 가늘게 이어지며 조금씩 평온을 되찾아 갔다.

하지만 이것만으로는 청색이 계속 위쪽으로 뻗어가는 것은 막을 수 없었다. 금하는 그의 아래턱까지 새파랗게 되는 것을 속수무책 지켜보다가 마음이 급해져 심 부인을 향했다.

“이젠 약을 마시게 해도 되죠?”

하지만 심 부인은 여전히 냉정했다.

“더 기다려요……. 급하지 않아요.”

육역의 입술도 파란색으로 물들기 시작하던 그때, 그의 입술 사이로 고통으로 인한 빠드득하는 소리가 들렸다. 기어이 더는 참을 수 없던 금하가 수저로 탕약을 떠 그의 입안에 넣었다.

심 부인도 그녀를 막지 않았다. 개숙에게 진기 주는 것을 멈춰도 된다고 눈짓하고는 손을 뻗어 육역의 맥을 짚었을 뿐이었다.

본능적인 한독寒毒에 대한 저항으로 육역은 이를 악물고 있었다. 그러니 은수저로 아무리 육역의 입술을 열려고 해도 입술만 부딪칠 뿐 약은 전혀 먹일 수가 없었다.

“대인…….”

금하는 입술과 치아 사이로 탕약을 천천히 스며들게 하려 했다. 그러나 그 역시 넘어가는 것도 없이 거의 흘러내려 아예 먹일 수가 없었다.

“어떡하죠? 안 마셔요.”

금하는 더없이 다급해졌다.

“입을 억지로 벌려서 이를 파고들어!”

이때의 개숙은 무척이나 과감해 보였지만, 애석하게도 금하는 그의 의중을 알아차릴 수가 없었다.

“어떻게 파고들어요?”

개숙이 그녀를 잠시 바라본 후, 입술을 씩 늘여 희고 반짝이는 이를 드러내 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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