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금의지하 (98)화 (98/224)

98화

한참이 지나도 안에서는 움직임이 없었다. 마음이 급한 금하가 직접 가서 문을 두드리려고 하던 그때, 통나무집 안에 불이 켜졌다.

“저걸 봐라…….”

개숙이 한숨을 쉬었다.

“그니는 본래 잠을 제대로 못 잔단다. 아이고, 우린 정말 때를 잘 못 맞췄어.”

“아저씨, 정말이지 여자분께 다정다감한 분이시군요.”

금하는 목을 빼고 다시 한참을 기다렸고, 드디어 문이 열린 통나무집에서 중년 부인이 유등을 들고 나왔다.

단정히 옷을 차려입은 부인은 머리카락마저 한 올 흐트러짐 없이 빗어 올렸다. 차분한 얼굴에는 한밤중에 불러 일어난 피곤함이나 짜증스러운 기색은 조금도 보이지 않았다.

개숙이 재빨리 앞으로 나섰다.

“한밤중에 귀찮게 하여 매우 미안하오. 허나 진정 어쩔 수 없는 일이 생겼지. 심 부인, 이 사람 등의 상처가 바로 그 동양인의 암기로 인한 상처요.”

“육 오라버니, 제게 무슨 남처럼 그러세요. 우선 사람을 데리고 들어가요.”

온화하게 말을 한 심 부인이 먼저 집으로 들어갔다. 그 뒤로 육역을 업은 개숙이 들어갔고, 금하도 그 뒤를 따랐다.

* * *

심 부인의 안내로 개숙은 육역을 대나무 침상 위에 뉘었다. 부인이 그의 상처를 살펴보는 사이 금하는 유등을 들어 비췄다.

“언제 다쳤어요?”

심 부인의 질문에 금하가 급히 답했다.

“대략 반 시진 전에요.”

심 부인이 미간을 찌푸렸다.

“당신들은 이 사람에게 무슨 약을 썼나요?”

“……아, 아니요. 저는 동양인의 몸에서 해독약을 찾지 못했어요. 맞다. 이분은 해독약을 갖고 있었고, 분명 자염 한 알을 먹었어요.”

“자염!”

심 부인이 고개를 돌려 개숙을 바라보며 물었다.

“이 사람은 누구죠? 어떻게 자염을 갖고 있죠?”

“나, 나는…….”

개숙은 당황하여 금하만을 바라봤다.

“이분 집안은 경성에서 장사를 하시고, 재력이 상당해요. 자염은 이분이 암시장에서 산 것으로 만일을 대비해 몸에 지녔던 거예요.”

금하의 말은 일견 매우 그럴듯하게 들렸다.

“이 약에 무슨 잘못이 있어요?”

“약이 증상에 맞지 않으면, 독약을 능가하죠.”

심 부인은 금하를 바라보며 물었다.

“아가씨는 또 누구죠?”

“전 이분의 계집종입니다.”

“얘는 이 사람의 정인이오.”

금하와 개숙이 동시에 대답했다.

한숨을 삼킨 금하가 재빨리 개숙에게 눈을 부릅뜨고는 실수를 만회하기 위해 안간힘을 썼다.

“원래는 제가 계집종이지만, 후에 저희 도련님이 제게 반하셨죠. 그게 뭐랄까…….”

“그가 아가씨한테 반해요?”

“네, 맞아요.”

심 부인은 의외라고 생각하는 듯했고, 금하는 이어서 설명했다.

“처음에는 그도 저를 마음에 들어 하지 않았지만, 제가 힘껏 그를 유혹했죠. 나중에는 그도 결국 버티지 못하고 제게 넘어와서 저희는 함께 강남으로 몰래 도망온 거예요.”

개숙이 눈치 빠르게 알아듣고, 옆에서 보충하여 설명했다.

“이 계집애의 이야기는 정말 사람들에게 용기를 북돋게 하고, 내가 들어도 유달리 감동적이야. 정말 한 쌍의 불운한 원앙이잖소. 가까스로 강남에 왔는데, 여기서 또 왜구를 만났네? 자네가 좀 저이를 구해주시게.”

심 부인은 이들의 말을 믿는 건지, 아니면 믿지 않는 건지 모를 눈빛으로 개숙을 한참 동안 주시했다.

“그가 만약 자염을 복용치 않았으면, 내게는 7할의 가능성이 있었어요. 하지만 지금은 그의 몸 안에 두 가지 독성이 존재하고 있어서 해독하려면 쉽지 않아요.”

“제발 해 보세요, 심 부인.”

금하는 애타고 절박하게 말했고, 개숙도 설득했다.

“한번 해보시게. 자네 마음껏 약을 써 보고, 어쨌든 끝까지 최선을 다해 보는 거지.”

이 말에 금하는 화를 내며 개숙에게 눈을 흘겼다.

“이분은 절대 죽지 않아요!”

심 부인은 잠시 생각을 하더니 고개를 끄덕여 승낙했다.

“물을 끼고 있는 뒤채로 그를 옮겨요. 나는 먼저 가서 약재를 배합할게요.”

* * *

물을 끼고 있다는 것은 바로 산 중의 온천수가 가까이에 있다는 뜻이었고, 뒤채의 창 너머로 달빛 아래 안개가 자욱히 서린 온천을 볼 수 있었다.

“육 오라버니, 먼저 그의 옷을 벗기세요. 상처를 깨끗이 씻어야 해요.”

심 부인이 다시 금하를 향해 돌아섰다.

“아가씨는 가서 샘물 한 대야 떠와요.”

금하가 정신없이 대답하고 나간 뒤로 개숙은 육역에게 다가가 그의 겉옷을 벗겼다. 그런데 무심코 그만 육역의 품속에 있던 두 통의 편지를 떨구고 말았다.

관가의 편지 양식은 민간과 달라 보면 바로 알게 된다. 뜨끔한 개숙은 재빨리 겉옷으로 덮어 편지를 둘둘 말아두고는 몰래 심 부인을 훔쳐보았다.

심 부인도 마침 그를 보고 있었다.

“이게…, 그게…….”

그가 어물어물거렸다.

“육 오라버니는 바닥에 엎드려 뭐 하세요?”

심 부인의 어조는 담담했다.

“얼른 일어나요. 여긴 그다지 밝지 않으니, 바깥방에 가서 등잔 몇 개 더 가져와요.”

“알았어, 알았어.”

아마 별 관심 두지 않았겠지.

개숙은 속으로 그런 요행을 바라며 옷가지를 한쪽에 놓고, 밖으로 등잔을 가지러 나갔다.

그가 방을 나간 후, 심 부인 역시 그 옷더미를 흘끔 보았으나, 결코 뒤지러 손을 대지 않았다. 하지만 다시 육역을 바라보는 그녀는 어떤 생각에 잠긴 듯했다.

* * *

바깥의 온천가에 금하는 웅크려 앉았다. 살짝 코를 찌르는 냄새가 섞인 안개가 수면으로 밀려들었고, 물바가지를 든 그녀가 샘물을 자세히 들여다보니, 놀랍게도 쇳빛이었다. 바가지로 물을 퍼낼 때도 물 밑에 무언가가 있는 듯 어렴풋이 꿈틀거렸다.

금하는 매우 놀랐지만, 억지로 용기를 짜내어 제 눈으로 자세히 보고는 물속에도 작은 뱀이 있는 것을 가까스로 구분해냈다. 대략 손가락 굵기만 한 것들로 한 마리 한 마리가 매우 기분이 좋은 듯 물결을 따라 일렁거렸다.

이곳은 진정 뱀이 사는 별천지구나.

깊게 숨을 들이켠 금하는 가능한 한 작은 뱀들을 놀라게 하지 않으며, 조금씩, 조금씩 온천물을 퍼내어 한 대야 가득 담았다. 그러고는 서둘러 심 부인에게 가져다주었다.

심 부인은 고개를 끄덕이며 옷소매를 걷어 올렸다. 그녀는 동 대야의 물로 재빨리 손을 씻은 후 가볍게 물기를 털고는 금하에게 지시했다.

“물을 버리고, 다시 한 대야 떠와요.”

“네, 바로 올게요.”

금하는 두말없이 물을 들고 나가버리고는 다시 온천물 한 대야를 떠서 들고 왔다.

심 부인은 여전히 이 온천물로 손을 씻었고, 그 후 같은 모습으로 말했다.

“다시 한 대야 떠와요.”

그래서 금하도 또 한 대야를 다시 떠 왔고, 그 후 심 부인이 똑같은 모습으로 이 대야의 물로 손을 씻는 것을 두 눈 빤히 뜨고 지켜보았다.

심 부인은 손을 깨끗이 씻은 후 옆에 둔 정결한 수건으로 손을 잘 닦아내고 부드러운 목소리로 지시했다.

“다시 한 대야 떠 와요.”

“네!”

금하는 쓸데없는 말 한마디도 하지 않고, 재빨리 대야를 들고 뛰쳐나갔다. 심 부인은 그런 그녀의 뒷모습을 보며 희미하게 웃었다.

“저 계집애는 나이는 어려도 인내심이 좀 있군요. 아니면 정인에 대한 정이 매우 깊던지요.”

“자네가 얼마든지 들들 볶아도 괜찮아. 애가 단단해.”

개숙이 헤헤 웃자, 고개를 살짝 기울인 심 부인이 조금은 어두운 얼굴빛으로 그를 바라봤다.

“육 오라버니 눈에는 혹시 제가 괴팍한 사람으로 보이세요?”

“아니야. 당연히 아니지.”

개숙이 연거푸 웃음소리를 내며 웃었다.

“그러니까 내 말은 자네는 뭘 하든 다 옳다는 거지! 진짜야, 진짜. 자네가 내게 시켰으면, 나도 무엇이든 다 했을 거야.”

심 부인이 순간 그를 쏘아보았다.

“만약 제가 옷을 모두 벗으라 하면요?”

“…….”

개숙은 긴장된 표정으로 가슴 앞을 두 손으로 감쌌다.

“이거, 이거……, 좋지 않아. 미풍양속 해치는 거야……. 아니, 이건 중요한 게 아니지. 내가 몸이 약해서, 벗으면 아마 감기에 걸릴걸.”

그들의 대화 사이, 금하는 이미 또 대야를 들고 들어왔다.

밖은 비록 살을 에는 듯한 꽃샘추위가 기승을 부렸지만, 몇 번을 왔다 갔다 하느라 그녀의 코끝에는 미세한 땀방울이 송송 맺혔다.

동 대야를 내려놓은 금하는 먼저 육역에게 시선을 두었다.

―― 그는 이때 상반신을 벗은 채 대나무 침상에 엎드려 있었는데, 두 눈을 여전히 꼭 감고 있는 것이 아마 혼수상태인 듯했다.

“심 부인, 물 떠왔어요.”

금하는 소매로 얼굴을 쓱쓱 문지르며 웃었다. 그리고 심 부인은 이제는 다시 손을 씻지 않고 그녀를 바라보았다.

“아가씨는 이렇게 왔다 갔다 뛰어다니며, 분명 원망을 많이 했겠죠. 속으로 은근히 날 욕하고 있죠?”

“그럴 리가요!”

금하는 커다란 눈을 부릅뜨며 반박했다.

“저는 그렇게 철없지 않아요. 선생님 같은 불세출의 명인은 분명 본인만의 독특한 버릇이 있으실 테죠. 물 몇 대야로 손 씻는 건 말할 것도 없고, 선생님이 발이나 몸을 몇 번이나 씻거나, 일고여덟 번씩 다시 옷을 갈아입는다 해도 응분 당연한 일이에요. 전 마음 깊이 선생님을 존경하고 있는데, 어떻게 불평을 하겠어요!”

금하가 진심이 가득한 얼굴로 심 부인을 바라보니, 심 부인은 그다지 편치 않은 심정으로 말문이 막혔다.

심 부인이 개숙을 향해 돌아섰다.

“제가 오래 외출을 안 했더니, 바깥세상이 달라졌군요.”

“아니야. 얘 이런 모습은 바깥에서도 보기 힘들어.”

심 부인은 나무로 만든 궤에서 돌돌 말린 천 꾸러미를 하나 꺼내 탁자 위에 펼쳤다.

촛불의 빛 아래, 밝게 빛이 나는 은 도구들이 정렬되어 놓였다. 칼날이 얼음 결정처럼 얇은 은 칼들이 크기별로 있었고, 그 밖에 은 족집게, 은 가위, 은 끌, 심지어 은 톱 한 자루도 있었다.

“육 오라버니, 죽림에서 뱀 한 마리 잡아다 주세요.”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