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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의지하 (97)화 (97/224)

97화

육역의 생김새를 자세히 살피던 개숙이 고개를 저으며 쯧쯧 혀를 찼다.

“넌 생긴 게……, 어째 나와 조금도 닮지 않았니. 그게 말이지. 남자는 그래도 생긴 게 용맹스러워야 해, 그래야 패기가 있어. 이해했니? 예를 들자면 등은 둥글고 두툼해야 하고 배는 좀 툭 튀어나와야 하지. 그래, 바로 나처럼…….”

개숙은 당당한 어조로 차분하게 말했고, 육역도 그의 말을 끊지 않았다.

그때, 금하가 급한 걸음으로 돌아왔다. 미간에 쇳덩이라도 매단 듯 잔뜩 찌푸린 것으로 봐서는 모래톱에 있는 동양인의 시신에서도 해독약을 찾지 못한 것으로 보였다.

“정말 모르겠어요. 어떻게 해독약을 안 갖고 다니죠? 설마 저들은 실수라도 자기편을 다치게 한 적이 없단 말이에요?”

육역은 온힘을 쓰며 버티고 있었다.

“해독약을 찾지 못해도 괜찮아. 나는 방금 자염을 먹었으니, 아마 아무 일 없을 거다.”

육역을 부축하던 금하는 그의 몸이 훨씬 무거워진 것이 느껴졌다. 분명 그 스스로는 이제 몸의 마비를 제어할 수 없어졌을 것이다.

“자염이 뱀독은 해독하겠지만, 동양인의 독도 반드시 해독할 수 있다고는……, 맞다! 아저씨, 의원이 이미 해독법을 찾았지만, 약을 시험해 볼 부상자가 필요하다 하셨죠? 빨리 우리 거기로 가요!”

개숙의 얼굴에는 난처한 빛이 떠올랐다. 그는 주저하기만 할 뿐 길을 안내할 생각이 없어 보였다.

“아저씨?”

금하가 이해할 수 없다는 눈빛으로 그를 바라봤다.

“내가 너희를 데려가고 싶지 않은 게 아니라, 여긴 이유가 있는데…….”

개숙이 난처한 얼굴로 말했다.

“그 의원의 치료에는 자기만의 규율이 있어서 그니는 관아 사람은 치료하지 않는단다.”

한순간 어리둥절하던 금하가 바로 소리쳤다.

“그거 마침 잘됐어요!”

“마침 잘돼?”

“대인은 관복도 입지 않았고, 제가 이분 요패를 풀면, 누가 금의위인 줄 알아요?”

금하는 말을 하는 동시에 육역의 요패를 풀려고 했으나, 바로 그에게 손이 잡혔다.

육역의 말소리는 담담했다.

“의원에게 규율이 있는 이상, 나도 강요하고 싶진 않다. 금하 넌 나와 성으로 돌아가자.”

그가 뼛속까지 오기로 똘똘 뭉친 것은 진즉 알고 있었다. 하지만, 지금이 호기를 부릴 때인가.

금하는 다급해졌다.

“안 돼요! 돌아갈 수 없어요. 이 상처는 계속 짓물러서 지난번 의관에 데려온 두 사람도 이틀 전 모두 죽었어요.”

“생사는 운명에 달렸고 부귀는 하늘에 달렸어.”

육역은 말을 하는 것도 매우 버거워 그녀의 어깨에 머리를 기댔다.

“아니요!”

금하는 급하면서도 화가 나 간단명료하게 정리해 버렸다.

“의원이 이미 해독법을 찾았으니, 이건 구할 운명이 됐어요! 대인은 말하지 말고 쉬고 계세요. 이 일은 제게 맡기시면 돼요!”

금하는 개숙을 향해 화난 눈을 부릅떴고, 개숙은 또 그녀가 부리부리한 눈빛으로 바라보니, 부담이 가득해져서는 겸연쩍어했다.

“내가 또 쟤를 구하지 않으려는 게 아니야. 그 의원은, 그니는…. 에효, 나도 방법이 없단다.”

“그냥 제 말대로 하세요. 요패만 풀면, 누가 이 분이 관아 사람이라는 걸 알아요?”

“이건 속이는 거잖니? 만약 그니가 내가 속인 걸 알면, 그, 그건…….”

금하는 개숙의 마음을 이해하면서도 무기력한 모습에는 화도 확 치밀었다.

“사람 목숨이 달린 중요한 일이에요. 게다가 이게 어떻게 속이는 게 돼요! 저는 아저씨에게 ‘그는 관아 사람이 아니야.’라고 말씀하라 하지 않았어요. 그래야만 속인다고 하는 거죠.”

“아?”

“그냥 말하지 않을 뿐이고, 당연히 속인다고 할 수도 없어요.”

“그럼, 그니가 물어보면 어째?”

“그런 건 제가 답할게요. 아저씨는 말할 필요도 없으시고, 앞으로도 아저씨는 모르는 거로 하셔서, 제게 모두 미루세요. 제가 아저씨를 속였다 하면 돼요.”

“어.”

개숙은 어리둥절한 채 듣고 있었다.

“멍하니 바라보지만 마시고 얼른 가요!”

금하가 재촉하여 개숙은 당장 육역을 등에 업고 경공을 펼쳤다. 그는 한 길로 쭉 질주했고, 그 뒤를 금하가 바짝 쫓았다.

육역은 귓가를 스치는 바람만으로도 지금 그들의 속도를 가늠할 수 있었다. 한 사람을 등에 업고도 이렇게 빠르다니. 이 거지는 경공이 대단할 뿐 아니라, 내공도 매우 심후했다.

“감사합니다, 선배님.”

개숙은 경공을 멈추지 않은 채 입으로 탄식했다.

“할아버지가 되면 한다는 게 전부 손자 뒤치다꺼리라고 말하더니, 옛말이 정말 하나도 틀리지 않아.”

대략 반 시진 가량이 지나자, 개숙의 걸음이 차츰 느려졌다. 그러다 마지막에는 어느 죽림 밖에서 멈췄다.

주위 풍경을 둘러본 금하는 뒤늦게 깨달아 놀랐다.

“여긴 성 서쪽의 도화림에 붙어 있죠?”

“도화림은 앞산이고, 여긴 뒷산이다.”

육역을 내려놓은 개숙이 품속에서 작은 조롱박을 꺼냈다. 그는 조롱박의 뚜껑을 뽑아 손바닥에 분말을 쏟은 후 얼굴, 목덜미 등 밖으로 드러난 피부에 여인이 화장하는 것처럼 가볍게 발랐다.

“너희도 이 분을 바르거라.”

그가 작은 조롱박을 금하에게 건넸다.

“이 숲 안은 온통 뱀이지. 분을 바르지 않고 녀석들에게 한입 물리면, 견디기가 힘들 게다.”

“뱀이 또 있어요?”

금하는 아직도 진홍색 구렁이만 생각하면 가슴이 두근거려 얼굴을 찡그렸다.

“얼른 발라라.”

무색무취의 진주분 같은 가루는 바르면 피부가 은은하게 빛을 발한다. 금하는 가루를 덜어 재빨리 스스로 바른 후, 다시 손에 덜어 육역의 얼굴에도 조심스레 발랐다.

눈을 뜰 기운조차 없어 보이는 육역은 그대로 눈을 감은 채 그녀가 마음대로 얼굴에 분을 바르게 두었다.

그런데…….

이유는 알 수 없지만, 그의 얼굴에 손을 대고 있던 금하의 마음에는 표현 못 할 묘한 느낌이 조금씩 커졌다. 그러며 자신도 모르게 손놀림 또한 서서히 느려져 갔다.

“계집애. 너 분명 지금 얘 데리고 흑심 채우고 있지?”

개숙이 그녀를 야유하자, 금하는 언짢은 시선으로 그를 한 번 노려봤다. 토라진 금하가 보란 듯이 손놀림을 더 빨리했는데, 문득 육역의 입꼬리가 미미하게 휘어진 것이 보였다.

그는 마치 웃고 있는 듯했다.

“대인 왜 웃으세요. 전 정말 아무런 사심도 없었어요.”

그녀는 아예 두 손을 모두 사용해, 그의 준수한 얼굴을 연달아 비비고 문질렀다.

“전 이 가루를 고르게 발라드리고 싶었을 뿐이에요.”

“난 아무 말 안 했다.”

개숙은 옆에서 그들의 대화를 듣는 내내 헤헤거리며 웃었다.

분을 잘 바른 후, 개숙은 다시 육역을 업었다. 그는 천천히 죽림을 향해 걸어가며 금하에게 여러 번이나 신신당부했다.

“나 잘 따라와. 조금이라도 삐끗하지 않는 것이 가장 좋지. 아니면, 뱀굴로 떨어지면 분을 바른 것도 소용없단다.”

“알았어요.”

금하는 깊게 숨을 들이켰다. 개숙의 뒤를 쫓아가며 걸음은 전부 개숙의 발자국 위를 따라 밟았을 뿐 차마 조금도 발을 헛디딜 수가 없었다.

* * *

바람이 불자, 쏴아 소리가 연달아 들리고 죽엽이 후드득 흩날려 떨어졌다.

땅 위에는 몇 년이나 쌓였는지 모르게 낙엽이 두껍게 쌓였다. 더불어 공기는 댓잎 썩은 내가 가득 떠다니니 이곳은 인적이 매우 드물다는 것을 은연중 드러냈다.

달빛이 내리는 사이로 대나무와 사람의 그림자가 함께 엉켰고, 또 한 존재가 움직이고 있었다.

금하는 천천히 고개를 들었다.

두 척 못 미친 그녀의 눈앞에 작은 뱀 한 마리가 대나무를 휘감고 있었다. 옥같이 짙푸른 색인 뱀의 상반신이 허공에 떠서 천천히 흔들거렸는데, 마치 달빛 목욕이라도 즐기는 것 같았다.

고개를 더 높이 들면, 그녀는 적어도 십여 마리의 청사를 볼 수 있었다. 그것은 큰 것도 있고, 작은 것도 있고, 똬리를 틀고 있거나 서 있거나, 제각기의 모습으로 더없이 한가로워 보였다.

그러나 온몸의 솜털이 쭈빗 서버린 금하는 살그머니 개숙을 불렀다.

“아저씨……, 뱀을 봤어요.”

“안 만지면 아무 일 없어.”

개숙은 그녀에게 냉정하게 대답했다.

“그니는 저놈들이 매우 착하다고 늘 칭찬하지.”

“지금 보기로는 참 착하긴 하네요.”

금하는 자신의 목소리가 침착하게 느껴지도록 온 힘을 다했다.

“그분은 누구예요? 이 뱀들 전부 그분이 키우세요?”

“너희는 그니를 심 부인으로 불러야 한다.”

금하는 눈으로는 뱀을 보면서도 개숙의 뒤를 바짝 따라가며 잊지 않고 물었다.

“심 부인? 혹시 심밀 의원과 친척인가요?”

“따지면 그니는 심밀의 집안 제수씨인 셈이긴 하지. 하지만 그니와 심밀은 지금껏 얼굴을 본 적이 없단다.”

개숙이 한숨을 내쉬었다.

“그니는 망문과부(*정혼한 남자가 죽어서 시집도 가보지 못한 생과부.)다. 정혼을 했고, 신랑 집에서 보내는 약혼예물도 받았는데, 부군 될 사람이 배 사고로 죽을 줄은 생각지도 못하였지.”

“……아저씨는 그분을 어떻게 아셨어요?”

금하의 물음에 개숙은 잠시 침묵하며 쑥스러워했다.

“내가 뱀에 물렸어.”

금하는 풋 하며 웃음을 터트렸다.

“원래 미녀가 영웅을 구하는 법이죠. 다 이해해요. 창피한 거 아니에요, 아저씨!”

대화를 하는 사이, 그들은 어느새 죽림의 반을 통과했다.

* * *

산을 휘돌며 졸졸 흐르는 물소리가 어렴풋이 들려왔다. 앞으로 조금 더 걸어간 곳은 확 트인 커다란 평지로 이름 모를 화초가 심긴 소박한 통나무집 한 채가 달빛 아래 고요히 서 있었다.

개숙이 금하에게 먼저 낮은 목소리로 말했다.

“넌 좀 차분히 있어야 한다. 그녀는 시끄럽고 말 많은 사람 안 좋아해.”

“안심하세요. 비위 잘 맞추는 게 제 강점이에요.”

그녀는 마음을 놓지 못하여 육역을 내려다보았다. 그는 여전히 두 눈을 감고 있었지만, 옅은 호흡으로 숨을 쉬고 있어 금하는 그제야 안심이 되었다.

개숙은 매우 주저하며 두어 번 가볍게 기침부터 했다. 통나무집을 잠시 바라보더니, 다시 고개 돌려 금하에게 멋쩍게 말했다.

“지금은 날이 이미 늦었다. 등도 꺼진 걸 보니, 그니는 분명 벌써 잠든 거야. 아니면 우리가 날이 밝기를 기다려…….”

“사람의 목숨이 달린 일이에요, 아저씨! 지금이 그분 위하실 생각만 할 때예요?”

금하는 이를 부득부득 갈며 개숙을 노려봤다.

“……그래, 그래.”

개숙은 고개를 돌렸다. 새로이 목소리를 가다듬고는 통나무집을 향해 낭랑한 소리로 말했다.

“심 부인, 나 육정이오. 내가 부상자를 데려왔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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