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금의지하 (95)화 (95/224)

95화

육역은 결코 서둘러 움직이지 않았다. 몸을 낮게 숙여 이 동양인 무리가 가까이 오길 인내심을 갖고 기다렸으며, 동시에 속으로는 그들의 인원을 셌다.

셋, 여섯, 아홉……, 스물넷, 스물일곱……, 서른아홉, 마흔둘, 마흔다섯.

인원은 모두 쉰아홉, 그리고 하나하나 전부가 무법천지로 날뛰는 흉악한 놈들이었다. 그가 저들을 동시에 해결하기엔 분명 너무 많았다.

하지만 저 동양인들은 내륙에 도착한 내내 아무런 방해도 받지 않고 이곳까지 거침없이 쳐들어왔던 터라, 때때로 한담을 하고, 드문드문 흩어져 어슬렁거리는 등 경계심이 극히 낮았다. 그것은 그에게는 다행이자, 유리한 점이었다.

대열의 가장 마지막 동양인은 육역의 앞쪽에서 멀지 않은 곳에 있었다.

- 작은 기름 주전자가 거의 비어가. 마을에 들어가면 기름을 찾아 먼저 가득 채워야겠어.

동양인은 불평의 말이 그치질 않았다.

- 칼을 잘 손질해야 하지만, 이건 너무 귀찮은 일이야.

동양도는 상당히 날카로운 반면, 정비가 번거롭다는 것이 결점으로 매일 기름으로 손질하지 않으면, 매우 빠르게 녹이 슬었던 것이다.

육역은 그 동양인이 다섯 보 앞으로 걸어갔을 때 행동을 개시하여, 고요한 밤하늘을 소리 없이 활공하는 독수리처럼 풀숲에서 뛰어올랐다.

대열의 마지막 동양인에게 나는 듯 달려든 그가 한 손으로 상대의 입을 막고, 다른 한 손은 아래턱을 떠받쳐 힘껏 훅 돌렸다.

순간 비명도 지르지 못한 동양인의 축 처진 몸이 육역을 향해 쓰러졌다. 그 시신을 안고 옆쪽 풀숲으로 가뿐히 구른 육역은 시신이 지니고 있던 동양도를 뽑아서는 재빨리 다시 몸을 솟구쳤다.

이때 가장 뒤에서는 동양인 두 명이 어깨를 나란히 하고 걸어가는 중이었다.

그런데 그중 동양인의 노래를 곡조도 제대로 맞지 않게 흥얼거리던 이의 소리가 갑자기 뚝 끊겼다.

- 윽!

동양도가 거침없이 그의 인후를 그었고, 동시에 그 칼의 손잡이는 옆 사람의 태양혈을 가격했다.

옆 사람이 반응도 하지 못한 채 억눌린 끙 소리를 내는 사이, 육역은 칼을 든 손바닥을 뒤집어 그의 인후를 가차 없이 아래로 베었다.

앞쪽에서 걷고 있던 동양인이 소리를 듣고 고개를 돌렸다. 그러나 그는 상황을 파악하기도 전 두 번째 사람의 인후에서 뿜어 나온 뜨거운 선혈을 얼굴에 뒤집어썼다.

- 뭐야!

동양인은 얼굴을 문지르며 바로 검을 뽑으려 했다. 하지만 채 뽑기도 전, 한줄기 차가운 기운이 두개골 쪽으로 쏟아져 들어와 온몸이 뻣뻣하게 굳어 바닥으로 쓰러졌다.

여기저기서 들리는 울부짖음에 동양인 여럿이 이상한 낌새를 눈치챘다. 순간 누군가의 습격이 있음을 알아챈 무리는 어수선해지고, 당장 암기 여러 개가 육역을 향해 한꺼번에 날아갔다.

- 저쪽이다!

육역은 칼을 지닌 채 깊은 풀숲으로 굴렀다. 날아온 암기 일부는 칼에 맞아 딩당 소리와 함께 떨어졌고, 일부는 풀숲으로 들어오지도 못했다.

쫓아온 동양인들이 눈앞에 나뒹구는 시신을 살폈다. 그들은 전부 누군가 소리도 없이 단칼에 해치워 목숨을 잃은 것으로 그들은 결코 육역을 얕볼 수 없었다.

그들은 섣불리 움직이지도 못한 채, 수풀을 향해 여러 개의 암기를 연달아 발사했다.

하지만 암기는 한 번 튀어 나가면, 아무런 움직임도 없어 풀숲은 쥐죽은 듯한 정적에 휩싸였다.

우두머리 동양인이 옆에 있던 두 사람에게 호통을 쳤다.

- 너희, 가봐!

지명받은 두 명은 그다지 내키지 않는 기분으로 장도를 뽑아 꽉 쥐고는 한 걸음씩 수풀을 향해 접근하고 있었다.

깊은 밤. 서리 같은 달빛은 칼을 닮은 풀잎 위로 내리고 있었다.

이미 풀숲 주변까지 가까이 다가온 두 동양인은 들고 있던 동양도로 풀숲을 마구 베고 갈랐다. 하늘로 날아오른 푸른 풀의 향기와 피비린내가 한데 어우러져 주변은 순간 기묘한 분위기를 자아냈다.

이내 풀숲이 드러났지만, 안에는 사람은 없이 암기만 흩어져 있었다.

* * *

그림자 하나가 오른쪽 풀숲에서 몸을 굽혀 순식간에 튀어나왔다. 동양인은 긴장한 나머지 자세히 보지도 못한 채 서둘러 암기를 발사했고, 동양도 몇 자루 또한 그 사람을 향해 달려들었다.

하지만 그들은 칼을 휘두르고서야 이 사람이 대열의 뒤편에서 따라오던 동료라는 것을 뒤늦게 알아차렸다.

- 뭐, 뭐야!

바로 이때 육역이 번개처럼 튀어나와 검을 휘두르니, 그의 도신이 월광을 반사해 눈처럼 하얗게 반짝거렸다.

가장 앞장섰던 동양인은 미처 반응할 새도 없었다. 칼은 귀신처럼 빨라 왼쪽부터 오른쪽으로 눈 깜짝할 사이 두 사람의 목을 베었고, 마지막 한 사람은 왼쪽 어깨에 중상을 입어 즉시 피가 콸콸 솟구쳤다.

동시에 암기는 다시 몇 차례나 육역을 향해 날아왔다. 하지만 그는 지극히 빠른 움직임으로 손에 잡히는 대로 시신을 방패로 삼았고 마지막으로는 동양인을 향해 시신을 던져 그들이 당황한 순간을 틈타 몸을 뒤로 빼냈다.

그의 뒤쪽으로 칠십 보를 못 간 곳에 오래된 버드나무 숲인 노류림이 있었다. 일단 안쪽으로 들어가면, 은폐물을 쉽게 찾을 수 있어 대응하기가 매우 좋다.

내륙으로 쳐들어온 후로 방화와 살육, 약탈 등의 만행을 저질러 온 동양인들이지만, 관아를 피했던 것 외에 그들이 언제 이런 어려움을 겪은 적이 있던가.

그들은 현저히 당황했지만, 그것도 잠시. 육역의 의도를 바로 알아차린 동양인 우두머리가 손을 재빨리 흔들었다. 소매 속에서 솟구치듯 발사된 암기 세 개는 육역의 등 쪽 급소를 노리고 일직선으로 날아갔다.

등 뒤에서 암기가 허공을 가르는 소리가 들렸다. 육역이 동양도를 등 뒤로 재빨리 돌려막자, 땅땅 소리를 내며 막힌 암기가 그대로 땅으로 떨어졌다.

- 잡아!

분노로 소리친 우두머리 동양인이 육역의 뒤를 바짝 추격해 오고, 다른 이들 또한 연이어 긴 칼을 든 채 그 뒤를 따랐다.

그들이 노류림으로 들어가던 바로 그 순간이었다.

쉬익 날카로운 소리가 들린 동시에 육역은 서북쪽 밤하늘에 피어오른 불꽃 한발을 드디어 보았다.

선명하게 아름다운 짙은 자홍의 불빛. 밝게 빛나는 그것은 무엇보다도 짜릿한 흥분을 느끼게 한다.

내 예상보다 빨라. 이 꼬맹이, 정말 젖먹던 힘까지 다해 마을로 뛰었군.

육역은 노류림으로 가볍게 뛰어들었다. 그는 미간을 찡그렸지만, 입가에는 오히려 웃음기를 머금고 있었다.

* * *

이 강가의 노류림이 얼마나 오래되었는지는 모르나 나무 둥치는 전부 한 사람이 안을 수 없을 만큼 단단하고 굵었다.

겨울이었다면 나무는 잎을 다 떨구어 매우 스산했겠지만, 지금은 봄날이 한창으로 무수히 뻗어 나온 버드나무 가지는 이제 막 보드라운 싹을 틔웠다. 여린 나뭇가지가 밤바람 속에서 어지러이 흔들리는 것이 마치 천연의 장막 같아 보인다.

달빛은 버드나무 가지를 뚫고 들어오고, 그 빛에 나무 그림자와 사람 그림자가 뒤엉켜 때때로 밝았다가 어두웠다 하며 땅 위로 어른거렸다.

키가 작고 뚱뚱한 동양인은 목덜미와 귓가에 늘어진 버드나무 가지가 간지러워 견딜 수 없어 했다. 긴 칼을 든 손으로 쉬지 않고 가지를 헤치며 걸어가던 그에게 누군가 갑자기 동양어로 사납게 소리를 질렀다.

- 바보, 그는 네 왼쪽에 있다!

그는 무의식적으로 자신의 왼쪽을 바라봤다. 확실히 누군가 있다고 느낌과 동시에 명치에 한차례 한기가 전해져 천천히 고개를 숙였다. 자신의 비수가 언제인지 모르게 그곳에 박혀 있었다.

비수를 뽑은 육역이 놈의 손을 오래된 버드나무의 가지 한곳에 걸쳐 놓았다. 그는 나무에 기대어 쉬고 있는 것처럼 보였지만, 콸콸 터진 선혈이 옷을 따라 아래로 흘러내려 나무뿌리까지 스며들었다.

육역은 버드나무 가지 사이를 뚫어지게 바라보았다. 그 사이로 보이는 강 위에는 수십 척의 배가 이쪽으로 달려오고 있었다. 배의 윤곽으로 미루어보건대, 그건 틀림없는 관아의 병선이었다.

훌륭하군. 항상 만반의 경계를 하고, 경계를 게을리하지 않고 싸울 준비가 되어 있다던 저들 말도 허언은 아니었어.

육역은 깊게 숨을 들이쉰 채 어깨에 박힌 초리검을 단번에 뽑았다. 이 마취약의 독성은 그의 예상보다 훨씬 대단하여, 그는 자신의 몸이 점점 더 통제력을 잃어감을 알고 있었다.

그 사이 대각선 쪽에서 두 명의 동양인이 다시 다가왔다. 육역이 있는 곳을 의심의 눈빛으로 살피던 그들은 무언가 이상함을 느끼고는 하나가 먼저 칼을 휘둘렀다.

휙—.

바람 소리를 따라 육역은 머리를 살짝 기울여 칼을 피했다. 동시에 들고 있던 초리검을 손가락 힘만으로 그중 한 사람의 목구멍에 꽂아 넣었다.

놈은 그 자리에 못 박힌 듯 섰다. 목구멍이 경련을 일으켰으나, 입으로는 소리도 내지 못한 채 바람이 새는 것처럼 쉬쉬 소리만 낼 뿐이었다. 그리고 잠시 후 놈은 맥없이 쓰러졌다.

- 그놈이 여기 있어! 여기!

다른 동양인은 차마 섣불리 앞으로 다가가지 못하고 우선 동료를 소리쳐 불렀다. 그러자 바로 수십 명의 동양인이 이쪽으로 모여들어 육역 주변으로 각자 자리를 잡았다.

육역은 다시 강을 흘끔 보았으나, 병선은 아직 이곳에서 거리가 있었다.

- 조금 전 너희도 불꽃과 강 위의 배들을 봤지?

육역이 동양어로 분명하게 말했다.

- 사실을 말한다면, 너희는 이미 관아의 토벌 포위망 안에 있다. 오늘 밤, 너희는 한 놈도 도망가지 못해.

이 말에 동양인은 순간 걸음이 느려졌고, 그중 몇은 저도 모르게 고개를 돌려 강을 바라봤다. 과연 수십 척의 배가 달려오고 있어 그들도 놀라지 않을 수 없었다.

그렇다 해도 우두머리 동양인은 상담한 담력을 지닌 자로, 그는 육역에 말에 상관없이 큰소리로 고함을 쳤다.

- 명나라의 관병은 전부 사람 모양을 한 허수아비야. 겁낼 필요가 전혀 없다. 일단 먼저 저놈을 죽여!

육역이 냉랭하게 코웃음 쳤다.

- 넌 속으로 나를 두려워하여 본인은 감히 가까이 오지도 못하고, 옆 사람만 나와서 죽으라고 하는군. 넌 저들이 모를 거라고 생각하나?

우두머리 곁의 동양인들은 원래 칼을 들고 달려들려 했었다. 그러나 육역의 말에 왠지 마음이 내키지 않아 전부 움직임을 멈추고 우물쭈물했다.

상황이 이렇게 되자 우두머리 동양인은 화를 버럭 냈다.

- 저놈이 지금 일부러 시간을 끌려고 이간질하는 거잖아. 너희는 그것도 알아차리지 못해!

그의 말은 확실히 맞아서 실제로 육역은 지연시키는 계책을 쓰며 관선이 기슭에 닿기를 기다리고 있었다.

육역은 자신의 온몸이 점점 무뎌지고 있음을 알고 있었다. 다리에는 천근이나 되는 추가 달려 바닥에서 끌어당기는 듯하니, 만약 이 동양인들이 한꺼번에 몰려든다면, 그에게는 조금의 승산도 없었다. 아니, 그럴 뿐 아니라 어쩌면 목숨도 걸어야 할지 모른다.

- 너희!

우두머리 동양인은 아무도 앞으로 나서지 않는 것을 보자 점점 더 화가 치밀어 올랐다.

- 멍청한 새끼들!

칼을 든 우두머리가 성큼성큼 앞으로 나와 육역을 노려보았다.

- 뻔뻔한 지나(*支那 중국의 다른 이름.)놈, 죽어라!

높이 솟구친 동양도가 육역을 향해 힘껏 허공을 갈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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