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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의지하 (93)화 (93/224)

93화

금하는 사 가로 또 한 번 뛰어갔으나, 사 씨 부자는 예상과 달리 아직 돌아오지 않았다. 이미 두 번이나 허탕 친 그녀에게 가복은 그제야 생각이 났다며 난처해 했다.

“아, 오늘이 사실 돌아가신 마님의 기일입니다. 두 분은 묘까지 가셨을지도 모릅니다. 그러면 거기서 하룻밤 묵고 돌아오실 겁니다.”

“그렇군요.”

금하는 그 길로 양악에게 밥을 얻어먹으려 의관으로 돌아왔으나, 줄곧 적 낭자의 실종사건이 마음을 묵직하게 짓눌렀다.

적 낭자는 도대체 어디에 있는 거야. 이걸 정말 양악에게 얘기해야 해?

금하가 그런 고민을 하며 의관의 뒤채로 들어가고 있었는데, 마침 다과를 들고 가던 양악이 불러 세웠다.

“도련님아, 들어가지 마. 육 대인이 안에 계셔.”

“육 대인? 뭐 하러 오셨어?”

금하는 순간 멈칫하여 양악을 바라봤으나, 그는 고개를 저었다.

“나도 자세히 몰라. 아마 아버지 병세를 보러 오신 것 같아.”

금하가 아는 육역은 용무가 있어야만 찾아오는 사람으로, 이미 밤이 다 되었는데 공연히 찾아올 사람이 아니었다.

“넌 안에서 무슨 얘기 하시는지 들었어?”

“인사말 정도지 뭐. 아버지는 네가 주변에 폐를 끼쳤나 물어보셨고, 육 대인도 정중하게 몇 마디 하셨다.”

“정중하게 하는 몇 마디가 뭔데?”

금하는 알아들을 수 없어 반문했다.

“네 무공이 좀 떨어지고, 하는 일이 무모한 편이고, 나이가 아직 어리고, 그래서 실수가 종종 생기고, 그런 거지 뭐.”

“……그, 그걸 정중하다 해? 그건 분명 고자질하러 온 거잖아!”

금하는 크게 기겁했다.

“그분 말투가 그럭저럭 괜찮아서 고자질하러 온 것 같진 않았어. 게다가……, 도련님아, 사실 사수죽도 네 손으로 놓친 거잖아. 육 대인이 저리 말씀하신 건 오히려 네 체면을 세워 준 거나 다름없지.”

양악이 그녀를 위로했고, 금하는 손이 닿는 대로 다과를 가져가 씹으며 한숨을 내쉬었다.

“설령 체면 세워줬다고 해도, 대장은 저런 얘길 들으시면서 분명 불편하셨을 거고, 내가 잘하지 못한다고 또 한바탕 훈계하시겠지. 난 못 들어가.”

금하가 푹 한숨을 내쉬었다.

“오늘 하루 정말 운이 없어. 마음대로 되는 일이 하나도 없네……. 대양, 국수 한 그릇 해주라.”

“그래. 다과 드리고 올게. 기다려.”

“달걀도 올려줄 수 있지?”

금하는 몹시 불쌍한 모습으로 그를 바라봤다.

“그럼, 그럼!”

양악은 다과를 곁채에 내다 놓고 부엌으로 돌아와 금하에게 달걀 국수를 만들어주었다.

면과 달걀 모두 이미 있는 재료라 만들기는 매우 빨랐고, 금하가 먹는 건 더 빨라 그녀는 잠깐 사이 면과 국물까지 모두 깨끗이 먹어치웠다.

“너 요즘 제대로 밥도 못 먹고 다니지?”

양악은 고개를 저으며 그릇을 치웠고, 금하는 문설주에 기대어 그가 설거지하는 것을 보고 있었다.

적 낭자의 일은 그래도 당분간 말하지 않는 게 좋겠어. 양악의 마음을 안정시키려면, 단서가 더 생기고 나서 얘기해도 늦지 않아.

“간다. 대장께는 내가 왔다 간 얘기하지 마.”

금하는 의관을 나와 거리에 섰다.

시선을 들어 본 하늘에는 밝은 달이 떠 있어, 달빛이 비친 기와마다 희고 밝은 빛으로 빛났다.

진정 달빛이 더없이 좋은 밤이었다.

* * *

누군가 뒤에서 걸어오는 소리가 들렸다. 아마 의관에서 나온 사람일 거라는 생각으로 금하는 별생각 없이 걸음을 옮기려 했다. 그 순간 누군가 말하는 것이 들렸다.

“이런 달빛이 어그러지면, 어찌 아쉬움이 없을 수 있으랴.”

이 말과 목소리 전부 익숙한 것이었다.

금하가 돌아서니, 육역이 그녀를 바라보고 있었다. 그의 눈빛은 어떤 감정도 드러나지 않았으나, 오히려 표정은 웃을 듯 말 듯 했다.

“소관, 경력 대인을 뵙습니다.”

그녀가 격식에 맞게 예를 올렸다.

“대인, 무슨 분부가 있으십니까?”

동시에 속으로 기원했다.

오늘은 때와 운이 좋지 않아 정말 문밖으로 한 걸음도 나오지 말았어야 하는 날이에요. 제발 제게 사건 조사는 시키지 말아 주세요.

눈매를 살짝 가늘게 뜬 채 육역은 둥근 달을 보고 또 보았다.

“호숫가로 가서 달구경을 하면, 또 다른 운치가 있을 거야. 넌 나와 성을 나가 한 바퀴 걷는 것이 어떠냐?”

“그것이…, 소관이 대인의 흥취를 깨고 싶은 것이 아니라…, 사건 조사였다면, 소관도 마다치 않겠습니만, 달구경이라 하시니…….”

금하는 말하지 않을 수 없었다.

“제가 오늘 운이 참 나빠서 이미 하루 종일 재수가 없었어요. 저 혼자만 재수가 없으면 그래도 견디겠는데, 만일 대인께서 제 이 옴 붙은 재수에 말려드시면, 그건 정말 큰 죄를 짓게 되는 거죠.”

“넌 금갑신인의 보호를 받는데, 뭐가 두렵지?”

육역의 어조는 여유가 있었다.

“…….”

하지만 금하는 그의 말에 대답할 수 없어 계속 핑계를 댈 수밖에 없었다.

“제가 또 사 가에 한 번 다녀와야 합니다.”

“나도 사 가의 어르신을 한번 찾아뵙고 싶었는데, 마침 잘 되었군.”

육역이 손을 들어 그녀에게 길을 안내하라 일렀다.

“…….”

금하는 몇 걸음을 걸어가다가 다시 고개를 돌려 육역에게 진지하게 말했다.

“대인, 제가 곰곰이 생각해 봤는데요. 사실 사 가에 가지 않아도 크게 문제는 없습니다. 오히려 대인을 모시고, 달구경 하는 것이 더 중요하겠죠.”

“그렇다니 아주 다행이다.”

육역이 동의하며 고개를 끄덕였다.

비록 날이 어두워져 성문은 닫혔으나, 두 사람은 각자의 요패를 몸에 지녀 성을 나가는 것도 그리 어려운 일이 아니었다.

성을 나선 후, 육역의 걸음걸이는 갈수록 빨라졌다. 처음에는 금하도 어느 정도 따라갈 수 있었으나, 시간이 지날수록 그녀는 힘에 부쳤다.

이게 어디가 달구경이야. 정말이지 도적 잡기보다 더 힘들잖아.

금하는 은근히 한숨을 내쉬며 옷자락이 바람에 휘릭 날리는 사람을 유심히 지켜보고 있었다.

그녀가 무슨 수를 쓴다 해도 지금은 그를 쫓아갈 수는 없었지만, 그의 경공은 매우 훌륭하여 이런 달빛 속에서는 더욱 빛을 발했다.

물가에는 부드럽게 안개가 서렸다. 휘영청 밝던 달빛마저 안개 속으로 스며들어 주변은 뿌옇게 희미해졌다.

금하는 옅은 안개 속을 빠르게 걷고 있는 청죽색의 그림자를 보며 다른 생각에 잠겼다.

책 속의 선인이 바람을 거슬러 가는 모습이 바로 이렇지 않을까.

문득 근처의 물새 한 마리가 허공으로 날아올라 그녀를 깜짝 놀라게 했다. 바라보니 녀석은 다른 동료와 함께 밤빛 속으로 스며든 뒤였다.

휴우…, 대인은?

뒤늦게 금하는 정신을 차리고 둘러보았지만, 육역의 모습은 이미 시야에서 사라졌다.

“육 대인! 육 대인…….”

몇 번 소리쳐 불러도 주위는 대답하는 이 하나 없이 고요할 뿐이었다.

어쩔 수 없이 그녀는 한숨을 내쉬며 방금 쫓아가던 방향으로 계속 나아갔다. 앞쪽은 커다란 모래톱이 펼쳐진 곳으로 오래되고 낡아 폐기된 작은 배 한 척이 보일 뿐, 멀리 바라봐도 이 주변에 사람이라곤 없어 보였다.

금하는 배 위로 뛰어올랐다. 허전하고 공허한 마음을 안고 내키는 대로 앉아 달빛이 반사되어 조용히 반짝이는 강물을 바라보았다.

먼 곳에는 불빛이 은은하게 새어 나오는 좌선 한 척이 정박해 있었다. 좌선을 탈 수 있는 이는 관료가 아니면, 거상일 뿐으로 지금 이 시각 좌선에서는 춤과 노래가 한창일 터였다.

그때, 금하는 멀지 않은 우거진 풀숲에 인기척이 있는 걸 발견했다. 풀잎이 사락거리며 몇 번이나 흔들리는 것이 바람 때문이 아니었다.

문득 깨달은 금하는 배에서 훌쩍 뛰어내려 긴장한 두 눈으로 앞을 주시하며 천천히 풀숲으로 가까이 다가갔다.

“꽥꽥꽥…….”

굵고 탁한 물오리의 울음소리가 풀숲 깊은 곳에서 몇 차례 전해진 후, 갑자기 물오리 한 마리가 풀숲에서 뛰쳐나와 금하의 볼에 날개를 아슬아슬 스치며 날아가 버렸다.

저거였구나.

한숨 돌린 금하가 다시 되돌아가려는데 순간 누군가에게 오른손을 붙잡혀 돌아볼 새도 없이 바로 풀숲으로 끌려 들어갔다.

“누구……, 대인?”

투둑투둑 소리 내며 꺾인 풀잎이 눈, 코, 귀 여기저기를 때리는 바람에 금하는 이 사람이 육역임을 가까스로 알아볼 수 있었다.

“쉿.”

그녀에게 소리 내지 말라는 손짓을 한 육역은 잡은 손을 놓지 않은 채 풀숲의 더 깊은 곳으로 계속해서 나아갔다.

대략 열 걸음가량 더 가서 멈춘 그가 눈앞의 무성한 풀잎을 헤치고, 금하에게 앞을 보라 눈짓했다.

……눈앞에는 못 쓰는 나무 대야가 있었다. 누가 여기에 버렸는지는 알 수 없지만, 물오리는 각종 나뭇가지와 풀줄기를 물어 와 나무 대야 안에 자신의 작은 둥지를 만들어 놨다.

지금 둥지 안에는 조그마한 새끼 새 네 마리가 들어 있었다.

가늘고 작은 솜털이 돋아났을 뿐인 녀석들은 서로서로 뒤엉켜 목덜미를 기댄 채 편안하게 잠에 빠져 있었다. 꿈나라 속 어린 새끼 한 마리는 여린 부리를 벌려 하품을 하고는 바로 다른 녀석에게 머리를 붙인 채 달콤한 꿈나라로 다시 향했다.

달빛은 휘영청 밝고, 사방은 무척 평온하고 조용했다.

“와.”

금하는 만족스러운 나머지 작은 소리로 감탄했다. 그러다 육역이 손을 내밀어 새끼 새를 어루만지려 하자, 급하게 그의 손을 잡아 막았다.

“손대면 안 돼요. 대인이 만지면, 새끼의 몸에 사람의 냄새가 남아요. 그럼 녀석들의 부모가 새끼들을 포기할 수도 있어요.”

금하의 목소리는 낮게 억눌렸고, 어조는 매우 진지했다. 하지만 육역은 듣는 대신 시선을 내려 그녀에게 잡힌 자신의 손을 보고 있었다. 눈에는 재밌다는 감정이 희미하게 드러났다.

“살살 어루만지기만 할게.”

“안 돼요. 절대 손댈 수 없어요!”

금하는 그의 손을 단단히 쥔 채 고개를 저었다.

“한 번인데도?”

“한 번도 안 돼요!”

육역이 일부러 다시 말했으나, 금하는 단호히 거절했다.

그녀는 멀지 않은 곳에서 초조하게 꽥꽥거리는 물오리 소리를 들었다. 분명 어린 새끼가 마음에 걸리나 차마 가까이 오지 못하는 상황일 터였다.

금하는 육역을 억지로 끌고 원래의 길로 빠져나왔다. 그렇게 모래톱으로 돌아와서야 자신이 육역의 옷소매를 꽉 쥐어 엉망이 된 것을 알고는 황급히 손을 놓았다.

“한순간 마음이 급했습니다. 대인, 언짢아하지 마십시오.”

육역은 그녀를 흘끔 보고, 태연자약하게 옷소매를 바로잡았을 뿐 아무런 말도 하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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